- “國政은 분열 지향적, 道政은 번영 지향적”
- “경기도 성공 경영, 한나라당 수도권 지지율 상승에 공헌”
- “한나라당 소장파와 행보 함께하겠다”
- “‘무난한 행정가’ 고건 전 총리에겐 비전이 없다”
2월10일 오전 경기도 지방공무원 교육원에서 손학규 지사를 만났다. 손 지사는 이곳 행사에 참석한 뒤 인근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기로 돼 있었다. 그는 그 사이 1시간30여 분의 시간을 내 인터뷰에 응했다. 이 때문에 인터뷰 장소는 사무실, 엘리베이터, 자동차 안으로 수시로 바뀌었다. 산만해질 수 있는 여지를 줄이기 위해 더욱 공격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과거에 비해 지지율이 많이 낮아진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손 지사는 “하락한 것 같지는 않다. 처음부터 낮았으니까”라고 답하며 웃었다.
“1%, 2%, 또는 2.5% 정도. 여기서 왔다 갔다 합니다. 그것을 두고 지지율의 변화라고 할 것도 없을 겁니다. 그 자체가 오차범위 안이니까요.”
철저하고 냉혹한 검증을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의향이 있습니까.
“대선 얘기는 공식적으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기도를 땀으로 적신 그 경험과 그 정신으로 대한민국을 땀으로 적시겠다는 분명한 의지는 말씀드립니다.”
-한나라당 대선주자 지지율의 ‘수직계열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누구를 내세워야 최종적으로 이길 수 있는지를 따져볼 것입니다. 하나 하나 채점해 종합 채점표가 매겨지는 때가 되면 많은 변화가 있을 겁니다. 두 번의 대선 실패를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절실한 요구가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검증의 기준을 아주 철저하고 냉혹하게 세울 겁니다.”
현재의 지지율에는 개의치 않는다는 손 지사. 그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한나라당 내에 ‘손 지사의 지지율이 더 내려가면 한나라당 경선 흥행은 참패할 것이고, 이는 한나라당엔 불행이다. 그래서 손 지사 살리기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거든요.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손 지사는 “우리 한나라당이 하고 있는 고민을 반영한 논평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내게는 한나라당에 부족한 2%를 채워주는, 그래서 한나라당의 외연을 넓힐 능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손 지사는 경기 시흥 출신으로 박근혜 대표, 이명박 시장과는 달리 연고지가 수도권이다. 경기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정치학)를 받았으며, 서강대 교수를 역임했다. 한일회담 반대운동 등 학생운동, 노동운동, 빈민운동을 한 인연으로 현재도 민주화 세력과 두터운 교분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1993년 정치에 입문해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을 거쳐 경기도 지사로 재임 중이다.
경기 지사 재임 4년여(2002~2006년) 동안 손 지사는 LG필립스 LCD단지 등 첨단기업으로부터 136억달러(13조여원) 의 투자를 경기도에 유치했다. 또한 킨텍스 조성, 한류우드 조성 사업 착수, 광교테크노벨리·판교IT벨리 등 R&D 기반 구축 사업 착수, 평택 평화신도시 및 평택-당진 자유무역구역 조성 사업 착수, 중소기업을 위한 임대공업단지(15만평) 조성 착수, 백남준 미술관 조성 착수, 영어마을 등 교육 인프라 확충을 통해 한 언론사로부터 ‘한국을 빛낸 글로벌 CEO’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임기는 2006년 6월 종료된다.
손 지사의 한 측근은 이 같은 이력과 실적을 근거로 “손 지사는 한나라당의 취약층인 중도개혁 성향 유권자, 대선의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의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말했다. 이것이 손 지사가 “한나라당에 부족한 2%를 채우고 외연을 넓힐 소양이 있다”고 밝힌 배경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일탈하는 일 없다
-한나라당 지지자와 국민에겐 무엇을 해달라고 요청할 생각입니까.
“내가 그동안 한나라당에 보여온 변하지 않는 자세, 이것을 눈여겨봐줬으면 합니다. 한나라당이 위기에 있건, 나와 생각을 달리하는 게 있건 한나라당을 위해 뛰었습니다. 한나라당을 일탈한 적이 없었습니다.”
손 지사의 측근은 “한나라당 대권주자 3명 중 손 지사가 가장 먼저 한나라당과 인연을 맺었다”고 부연했다.
-앞으로도 한나라당을 일탈하는 일은 없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당연한 듯하지만 조금은 뜻밖의 대답이었다. 정치인, 특히 대권주자는 운신의 폭을 좁히는 발언은 대개 자제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는 것 자체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데, 손 지사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현재의 한나라당 경선 시스템이 공정성을 보장한다고 봅니까.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고쳐 나가면 됩니다.”
-이명박 서울시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업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시장은 청계천 사업 같은 가시적 성취를 통해서 서울 시정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박근혜 대표는 보궐선거 승리를 통해 당을 안정시킨 훌륭한 리더십을 갖고 있죠.”
손 지사, 이 시장, 박 대표가 한나라당 경선에서 본격 경쟁하게 되면 아마 상대방을 날카롭게 공격할 것이다. 덕담만 한 손 지사에게 이 시장과 박 대표와 관련된 구체적 쟁점 사안을 들이밀어봤다.
-이명박 시장이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경부운하 구상을 몇 차례 밝혔습니다. 경부운하는 경기도를 지나게 되어 경기도 주민들도 이해관계가 있는 사안이죠. 이 구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경기도를 지나가고 안 지나가고는 별 문제가 아닙니다. 실효성과 경제성, 이런 걸 정밀하게 검토해봐야죠. 이제 대형 국책사업은 철저하게 실용적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손 지사는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히기를 유보하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박 대표의 대북 정책에 대해선 박 대표와 다소 다른 의견을 밝혔다.
북한 인권에 유연해져야
-박근혜 대표가 이끄는 한나라당 지도부는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을 매우 강도 높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북 정책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비판적이라기보다는… 북한과는 경제협력을 통해 상생 발전의 기틀을 다져야 합니다. 그러면서 한미 동맹관계도 더욱 튼튼히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인권단체와 똑같은 수준으로 북한 인권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북한은 인권 문제 등에서 대북 강경기조인 한나라당을 맹비난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대북관계가 악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한나라당 집권 불가’ 논리의 핵심 중 하나다. 그런데 손 지사의 대북관은 현재의 한나라당과 분명 다른 기조다. 이명박 시장은 북한 관련 사안에 대해선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3자가 뚜렷이 갈라지는 출발점인 대북 문제와 관련해 좀더 물어봤다.
고건-열린우리당 연대, 외면당할 것
-경기도는 북한에 벼농사를 지원하는 사업(평양 용성농장)을 시행하고 있고 통일경제특구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북사업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손 지사는 이 질문에 대해 기다렸다는 듯 자세히 설명했다.
“북한에 언제까지 쌀 가마를 대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벼농사 기술을 제공하는 겁니다. 절대빈곤에서 탈출하도록 도와주는 일이야말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것이죠. 통일경제특구는 북한 개성공단과 한국 파주 LCD단지를 연결해 남북한의 경기도가 하나의 단일 경제체제를 만들자는 구상에서 비롯됩니다. 가령 북한 노동자가 파주의 공장으로 출퇴근하는 식이죠. 경기도는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어 국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남북한이 긴밀하게 연결되면 평화는 저절로 찾아오게 됩니다.”
-손 지사의 통일경제특구 계획은 일본 언론에도 비중 있게 보도됐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제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큰 성과가 있을까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대북협력과 남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선 대미 관계 등 전통적인 우방과 협조 체제를 공고히 해야 합니다.”
최근 열린우리당에선 고건 전 총리와 연대론이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손 지사는 고 전 총리에 대해 “실체가 없다”며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범(汎)여권 후보 중엔 고건 전 총리가 여론조사에선 독주하고 있는데요.
“이 정부가 워낙 일을 잘못하고 불안정하니까 민심이 찢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건 전 총리가 행정가로서 무난하다’는, 이런 의식이 여론조사에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손 지사의 답변이 끝나 다른 질문을 두어 마디 꺼내고 있을 때였다. 손 지사는 말을 잠시 막고 고 전 총리에 대해 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고 전 총리에 대한 지지는 반사심리의 반영일 뿐이어서 확고한 것은 아니라고 봐요. 이는 비전 있는 대안에 대한 지지와는 다른 겁니다.”
-그건 어떤 의미입니까.
“나는 지금 고 전 총리가 (국민을 이끌) 무엇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 전 총리가 좋다고 하는데, 고 전 총리는 그 실체가 없지 않습니까.”
-열린우리당과 고건 전 총리의 연대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지방선거 혹은 대선에서 이런 구도가 성립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 파급효과가 어느 정도일 것이라고 전망합니까.
“선거를 앞둔 정략적 연대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국민도 다 알아요. 그러나 지방선거 후가 문제입니다. 이대로 가면 지방선거 후 반(反)한나라당 연대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됩니다.”
-당에 어떤 것을 주문하고 싶은가요.
“한나라당은 당장 혁신에 나서야 하는데 그런 역동성이 느껴지지 않아 걱정입니다. 한나라당의 혁신은 ‘타락한 자의 정당’ ‘가진 자의 정당’ ‘낡은 생각의 정당’ ‘특정지역의 정당’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에게 스스로 가혹한 도덕적 잣대를 대야 합니다.”
한나라당 혁신에 나서겠다
-그렇다면 향후 당내 소장파와 함께 활동할 생각이 있습니까.
“최근 소장파, 중도파 의원들이 당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다행입니다. 나는 이런 움직임의 결과가 한나라당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봅니다. 내가 한나라당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에 앞장 설 것입니다. 내가 한나라당 ‘빅3’라고 불리는 것은 지지율이 아닌, 시대의 대표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대선을 2년여나 남겨놓고 지지율 운운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우리 후보의 평소 지지율이 낮아서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손학규 지사는 최근 “정부는 양극화를 해소하겠다고 떠들지만 마음의 양극화만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 지사는 “말로만 양극화 해소를 외칠 땐 분노가 치밀어오른다”고도 했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일자리 창출을 통한 양극화 해소’다.
-현 정부 들어 양극화가 더 확산됐다고 보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통계적으로 그렇습니다. 여러 지수가 빈부격차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양극화 문제를 제기한 것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양극화 문제를 제기할 자격이 있습니까. 노 대통령은 양극화를 더 심화했습니다.”
-대통령은 앞으로 더 관심을 기울여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게 아닐까요.
“더 중요한 것은 노 대통령이 양극화 문제를 제기해 심리적 양극화를 더욱 더 심화하려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양극화 이슈를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행동이 잘못됐다는 거예요.”
-정부 정책 중 경기도와 관련된 것 두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행정복합도시, 혁신도시, 공공기관 이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다음 정부에서 이러한 정책이 바뀔 수 있다고 봅니까.
“나는 행정복합도시 건설에 동의합니다. 우리나라는 국민통합을 위해 그 정도는 감당할 여력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혁신도시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경우 획일적 분배 방식이라면 효율성이 의심스럽습니다. 지방에 환심을 사고 표를 얻으려는 것이기 때문에 장래가 극히 불투명하다고 봐요.”
서울·경기 분할에 반대
-서울과 경기도를 여러 개의 개별도시로 나누는 행정구역 개편에 찬성합니까.
“사실 내가 국회에 있을 땐 지금 논의되는 행정구역 개편안을 앞장 서서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도지사로서 세계화 속의 지방화를 경험해보니 중요한 것은 지방의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행정단위의 광역화는 세계적 추세입니다. 여권이 추진 중인 행정구역 개편은 이런 추세에 역행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현재의 광역 행정단위가 주는 이점이라면.
“만약 경기도가 10개로 쪼개진 상태였다면 우리 경기도는 LG필립스 LCD단지를 유치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겁니다. 일산에 킨텍스를 저 정도 규모로 건설하는 것도 어려웠을 겁니다. 킨텍스 입구에 인터체인지 하나를 만드는 데도 800억원이 들었습니다. 그 돈을 경기도가 전부 댔습니다. 수원에 첨단 나노단지가 설립되는데, 정부는 500억원만 지원했고 경기도가 1000억원을 부담했습니다. 경기도가 분할되면 엄두도 못 내는 일입니다. 지방은 작게 잘라져선 국제 경쟁력을 갖지 못합니다. 서울 분할도 같은 이유에서 반대합니다.”
최근 감사원은 기초자치단체의 각종 비리를 적발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경기도 일부 기초단체도 포함돼 있다. 경기도측은 “각 기초단체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총괄적으로 봤을 때 도정은 투명하고, 유능하게 운영됐다”고 밝혔다.
-정부의 국정 운영 스타일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정부의 국정운영 스타일과 경기도의 도정 운영 스타일에 차이점이 있다면.
“현 정부보다는 경기도가 더 신뢰를 받을 만하다고 자부합니다. 이 정부는 ‘글로벌 마인드’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정부가 문을 닫아 놓고는 안에서 다투게 하고 있어요. 이념적 편가르기와 내부 분열 조장이 여권을 대변하는 모습입니다.
정부는 국제관계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남북간의 자주적 협상을 외치지만 그것이 주변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간단한 원리를 모르는 겁니다. 경기도는 경제적 번영을 목표로 삼아왔습니다. 내가 표방하는 것은 세계 속의 경기도이며 미래를 지향하는 리더십입니다.”
파주에서 평택까지…
-그렇다면 경기도의 미래 구상은 무엇입니까.
“북쪽의 파주에서 남쪽의 평택까지 경기도 전역을 세계 최고 경쟁력의 첨단산업 클러스터로 만드는 일입니다. 파주 LCD단지에서 10만명의 고용이 창출됩니다. 이어 고양, 서울의 상암 DMC와 양재동 기업군을 거쳐 판교, 분당, 용인, 수원, 동탄, 오산, 화성, 평택의 첨단 산업단지로 이어지게 됩니다. 인근의 과천, 안양, 의왕도 변화될 것입니다. 이 라인은 충남 당진, 아산, 천안까지 연결됩니다. 국제적 기준으로 봤을 때 단일 산업지역으로서 넓은 면적도 아닙니다. 한편으로 질 높은 교육,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여러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손학규 지사는 “시대정신을 실천하겠다”고 했다.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을 개통했고, 경기도는 외국 첨단기업 유치·영어마을·수준 높은 학교·한류우드·킨텍스 건설 등을 착실히 안정적으로 해나갔습니다.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높은 것은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사 이익만은 아닙니다. 한나라당에 나라를 맡겨도 되겠다는 신뢰가 쌓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나는 여기에 크게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구·경북지역 언론은 “LG필립스 차세대 LCD단지 건설지가 파주로 결정됨에 따라 기존 LCD 단지가 위치한 경북 구미는 커다란 위기감에 휩싸이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손 지사는 한나라당을 “보수·TK당”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대목을 지나칠 수 없었다.
-LCD단지 파주 유치와 ‘TK당’ 발언을 대구·경북 주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만약 LG필립스가 한국에, 특히 구미에 그대로 남기로 결정했다면 경기도가 유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단 차세대 LCD단지는 구미를 떠난다고 했고 후보지는 상하이냐 타이페이냐였습니다. 그때 경기도는 최대한의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해 유치했습니다. 경기도가 아니었다면 외국으로 갔을 겁니다. (함께 있던 공무원을 가리키며) 저분이 투자진흥과에 있었는데, 타 지방과 유치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나는 ‘스톱’이라고 말해왔습니다. 경기도는 절대로 타 지방이 하려는 것을 끌어오지 않습니다.
‘TK당 발언’은 한나라당이 영남권으로 포위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한 말입니다. 영남을 위해서도 한나라당은 외연을 넓혀야 합니다.”
어머니의 고생이란…
손 지사는 대학 시절, 삼성과 관련된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다 무기정학 처분을 받은 바 있다. 그는 학원자유화 투쟁으로도 무기정학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누구보다 ‘기업 마인드’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삼성의 8000억원 사회환원 발표나 에버랜드 상속 문제에 대해 “삼성의 잘못을 과장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그러나 대기업일수록 도덕적 책임은 더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지사는 “졸업식에는 늦으면 안 되잖아요”라고 양해를 구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등학교까지 가는 그의 승용차 안에서 인터뷰를 계속 진행했다. 자연히 대화의 주제는 그의 유년시절, 청년시절로 옮아갔다.
손 지사는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50대 사람들과 견줘봐도 형제가 많은 편이다. 무기정학과 투옥으로 점철된 민주화 운동가와 빈민운동가에서 옥스퍼드대 박사, 대학교수, 국회의원, 도지사에 이어 대권 예비후보가 되는 ‘인생의 전환’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민주화 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엘리트 학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경우는 꽤 있다. 그러나 세 가지 이력을 모두 가진 경우는 흔치 않다.
-10남매의 막내로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습니까.
“아버님이 제가 세 살 때 돌아가셔서….”
-선친은 교편을 잡으셨던 것으로 압니다.
“예. 7남매가 자랐는데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죠. 어머니는 산에 가서 나무하고 밭에 가서 밭 메고 하시면서 손발에 ‘똥독’이 오르고 그랬습니다.”
-10남매가 아니라 7남매인가요.
“10남매를 낳았는데 자라기는 7남매가 자랐죠. 셋은 어려서 세상을 떴고요. 어머니는 저녁에는 장에 나가서 채소 같은 것을 팔아 우리를 키우셨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다닐 때 찐 옥수수를 조그만 광주리에 담아 길거리에 나가 팔며 어머니를 도왔습니다. 그러다 담임선생님과 우연히 마주쳤는데 부끄러워서 광주리를 놔두고 도망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 어렵게 살던 때였으니까요.
그때 경기도 시흥은 도시가 아니고 시골이었죠. 무척 고생하신 어머니와 형제들 생각하면서 ‘나도 어려운 사람들 위해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대학 합격한 뒤에는 매일 저녁 남대문시장엘 갔습니다. 걸인이 많았죠. 그런 사람들과 소주도 같이 마시고 그랬어요.”
-그래서 빈민운동을 하게 됐군요. 그런 활동을 하다 어떻게 옥스퍼드대 유학을 하게 됐습니까. 영국 유학은 새로운 인생을 사는 계기가 됐겠습니다.
“1970년대는 완전히 반유신운동으로 보냈습니다. 감옥도 두 차례 1년씩 갔다 왔고, 수배돼 도피생활도 2년 했습니다. 저에게 붙은 포상금이 2계급 특진에 200만원이었습니다. 그때 그 돈이면 집 한 채 샀어요. 고문당한 건 말도 못합니다.
빈민운동,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원봉사활동도 벌였습니다. ‘수도권 특수지역 선교위원회’라는 빈민선교단체, 인권운동단체에서도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유신이 끝난 뒤 한 영국 교회 기관의 장학금으로 옥스퍼드대에 가게 됐습니다. 제 봉사활동을 눈여겨본 교회 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유학하면서 우리가 비록 군사독재 정권의 인권 탄압 속에서 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경제 속으로 편입돼가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민주화 운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누가 서민을 위해 살았나
한 정치평론가는 “노무현 대통령, 이명박 서울시장,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대중적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인기가 높고 이회창 전 총재, 손학규 경기도 지사는 엘리트의 언어를 구사한다”고 했다. 손 지사는 “나의 말이 사람들에게 충분히 전달될 기회가 없었다”며 이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서민은 누가 그들을 위해 살아왔고, 그들에게 잘 봉사할 수 있는지 결국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