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호

“대기업 탐욕 멈춰야 양극화 해소된다”

재벌 때리기 나선 김종인 새누리당 비대위원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12-02-21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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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누리당 의원들 세상 인식 철저하지 못해
    • 4월 총선은 MB 심판의 날
    • 경제 민주화와 강한 정부
    • 유통 재벌의 골목 상권 진입 제한
    • 안철수 원장은 비정치적 인물
    “대기업 탐욕 멈춰야 양극화 해소된다”
    대기업들이 여의도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다. 각 정당이 선거를 앞두고 대기업 개혁안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은 출자총액제한제(이하 출총제)의 부활과 계열사에 대한 과세 부담을 늘리는 재벌세 도입안을 내놓았고,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은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와 하도급 부당행위 등에 대한 규제, 대기업의 중소기업 진출 제한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김종인 위원(정책쇄신분과 위원장)이 대기업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그래서 정·재계에선 김 위원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있다. 김 위원은 야권보다 더 강력한 개혁안을 쏟아내는 데다 새누리당 내부 의원들과 정책 조율이 어렵게 되자 회의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다.

    김 위원은 결코 신선한 인물은 아니다. 이미 전두환 정권 시절인 제11대 국회 때부터 국회의원을 시작했고, 노태우 정권에선 경제수석·보건사회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민자당 민주당 국회의원도 지냈다. 그런데 사람도 시절이 있고, 때가 있는 법이다. 새누리당 비대위에서 김종인 위원의 역할이 돋보이는 것은 그가 지금 시대의 요구를 잘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요구란 양극화 해소 등 경제 민주화에 대한 요구다. 그는 헌법 119조 경제 민주화 조항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2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 김종인 위원의 집무실. 책상 한 켠에는 독립운동가 출신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사진이 세워져 있다. 김 위원의 할아버지다. 조지 부시(아버지) 미국 대통령의 얼굴 사진도 나란히 세워져 있다. 김 위원은 노태우 정부 시절 부시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절친하게 지냈다 한다. 두 사진은 그의 이념적 지형이 어디쯤 있을지 짐작게 한다. 김 위원은 인터뷰 내내 카랑카랑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72세의 노익장을 과시했다. 화법이 직설적이고, 감추는 게 없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새누리당 의원들이나 탐욕적인 재벌 기업들에 대해 집중 포화를 안긴다.

    ▼ 요즘 고생 많으시죠?



    “고생은 무슨. 할 일을 하는 것뿐인데.”

    ▼ 어제(8일)는 회의를 거부하고, 오늘 오전엔 브리핑 참석도 거부하셨는데요.

    “새누리당 비대위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지요? 사실 통상적으로 돌아가는 정당에서는 이상한 형태의 기구인데.”

    ▼ 새누리당이 전에 없는 변화를 꾀하려 하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비대위를 통해 변화를 꾀하려고 하지만 그게 금방 쉽게 되겠어요?”

    기자가 묻고 싶은 이야기를 그가 스스로 한다. 정책분과에서 개혁안 합의가 쉽지 않은 인상이다.

    일부 의원들 상식 안 통해

    ▼ 부정적으로 보나요?

    “대기업 탐욕 멈춰야 양극화 해소된다”

    2월 8일 새누리당이 정책쇄신 의지가 없다며 회의를 거부한 김종인 비대위원이 굳은 표정으로 음료를 마시고 있다.

    “변화를 하려고 했으면 적극적으로 해야지. 시간도 없어요. 개혁은 4월 총선을 겨냥해서 해야 할 거 아니요. 근데 새누리당 구성원들, 의원님들이 세상에 대한 인식이 철저하지 못해. 지난 몇 년 동안 표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잖아. 그러면 뭘 해야 하는지 알아야지.”

    ▼ 기득권을 놓치고 싶지 않은 건가요?

    “기득권이야 유지하려 해도 두 달밖에 안 남았는데…. 선거에서 지면 무슨 기득권이야. 기득권 유지하려면 변화에 더 적극적으로 따라와야지.”

    ▼ 정책쇄신위 회의를 거부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회의를 안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새누리당이 ‘국민과의 약속’에서 정강·정책을 조율하지 않았어? 그러면 거기에 있는 대로 정책도 따라가야 할 거 아니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에 맞는 정책을 만들고 그를 바탕으로 해서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해야지. 나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말한 거야. 그걸 특별한 거라고 하면 안 돼.”

    새누리당은 2월 9일 상임전국위원회에서 10대 약속, 25개 정책으로 구성된 새 정강·정책 ‘국민과의 약속’을 의결했다. 주요 내용은 △모든 국민이 더불어 행복한 복지국가 △일자리 걱정 없는 나라 △공정한 시장경제 △기회균등의 창조형 미래교육 △다양함을 존중하는 소통과 배려의 사회문화 △지속가능한 친환경 사회 △한반도 평화를 기초로 한 국익 중심 외교와 통일 한반도 시대의 주도 등이다.

    ▼ 상식이 잘 안 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종전의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이들이라 사고의 전환이 힘든 거지. 그런데 시대상황을 보면 사고의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 아니요. 자신들뿐 아니라 당과 나라를 위해서도.”

    박 위원장과 의견 달라도 직언

    김 위원을 만나러 간 9일 오전 박희태 국회의장이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퇴를 선언했다.

    ▼ 박희태 의장 사퇴를 보는 감회는 어떠하신지요?

    “너무 늦었어. 사실은 누구보다 본인이 제일 잘 아는 거니까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진작 물러났어야지.”

    ▼ 박근혜 위원장의 총선 불출마 선언은 현명한 건가요?

    “당연한 거죠. 이번 총선 때 전국 각 지역으로 돌아다니면서 진두지휘를 해야 할 사람인데, 어느 한 지역에 발이 묶여 있으면 되겠어요?”

    ▼ 당명을 바꾸는 절차가 비민주적이었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대기업 탐욕 멈춰야 양극화 해소된다”

    김종인 위원 집무실 책상에 그의 할아버지이자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사진이 놓여있다.

    “공모를 통해 들어온 1만여 개의 이름 가운데 전문가들이 1차로 추리고, 이를 다시 비대위에서 논의했어요. 저는 ‘새누리’라는 이름이 정당의 이름으로는 적합지 않다며 반대했지요. 온누리교회도 연상되고, 희화화되기 십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젊은층에게 호감을 줄 수 있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비대위에서 정하긴 했지만 전국대의원대회에서 확정지을 계획이었습니다.”

    ▼ 박근혜 위원장과 가끔 충돌하는 듯한 인상이 언론에 보도됩니다.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어떤 것들인가요?

    “의견이 다르면 다르다고 말해야지. 그걸 충돌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의견의 일치를 보는 게 중요합니다. 이견이 없다는 것은 토론하지 말고 박근혜 위원장의 의견을 추종하라는 건데, 그게 더 비민주적인 거 아닌가요?”

    ▼ 지난해 ‘신동아’인터뷰에서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는데, 현재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그런 두려움 때문에 쇄신을 하자고 강조하는 거예요. 선거라는 게 모르는 거거든. 여당이 실정(失政)으로 인해 국민에게 배척받으면 자동적으로 야당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지. 현실적으로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년간 해온 것을 국민이 좋게 수용하지 않아요. 그러니 이번 총선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이랄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얘기하면 패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겁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비대위에서 쇄신하자는 겁니다. 새누리당이 창조적 파괴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물이나 정책, 브랜드까지.”

    ▼ 창조적 파괴….

    “경제학자 슘페터가 창안한 개념입니다. 기술의 혁신을 통해 낡은 것을 도태시키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과정이 기업 경제의 원동력이듯이 정치에서도 그런 변화가 필요합니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야당 후보를 이기고 야권 단일 후보가 되어 시장에 당선된 것이 바로 그런 예입니다. 기존 정당의 메커니즘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진정으로 변화를 꾀하려면 창조적 파괴를 해야 합니다.”

    경제 민주화와 강한 정부

    ▼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기존 정당의 메커니즘이 통하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사회는 1987년 개정된 헌법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후 정치적 민주화가 25년간 이어졌어요. 그 이전 25년간 압축성장이 이뤄졌고요. 문제는 정치적으론 민주화를 이뤘지만 압축 성장 과정에서 쌓인 여러 가지 모순은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요. 빈부 격차 등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심각합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게 정치와 정당의 의무인데 정치인들은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기득권이나 챙기고 있으니 국민이 무시하는 것도 당연하지요.”

    ▼ 헌법에 명시된 경제 민주화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제도는 아직 갖춰지지 않았지요?

    “공정거래법 등 관련 법률이 약간 있긴 하지만 그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요. 이익단체에선 헌법 119조를 없애자고 하고, 심지어 새누리당에서도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제 민주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해선 좀 더 구체적인 세부안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 김 위원께서 그리고 있는 그림은 어떤 것인지요?

    “아직은 발표할 수 없어요. 경제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원칙만 다시 말씀드릴게요. 예컨대 복지와 성장이 함께 가도록 세제 개편, 예산구조 개편 같은 게 뒤따라야 합니다. 대선주자들이 가장 역점을 두고 만들어야 할 프로그램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예산은 곧 정책을 수치화한 것이니까요.”

    ▼ 경제 민주화 논의가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요?

    “정치권에서 재벌 개혁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자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정치권의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면 그런 소득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가

    ▼ 강한 정부란 어떤 것을 말합니까?

    “꼭 규모가 큰 정부를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규모는 작아도 사회조화를 이루기 위해 모든 부문을 장악할 수 있는 힘이 정부에 있어야 한다는 거죠. 독일이 좋은 사례가 될 듯합니다. 미국의 후쿠야마 교수도 독일은 사회적 연대가 잘 형성돼 있는 ‘사회보장 국가(social state)’이면서 경제적 경쟁력이 높은 국가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발시대에는 정치권력이 월등히 우위에 있었지만 1990년대부터는 경제세력의 힘이 정부를 압도하는 상황으로 변했습니다. 정부가 사회를 조화롭게 만들 수 있는 힘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오죽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가버렸다’고 했겠어요. 이건 심각한 얘기입니다. 국가권력이 사회 조화를 위해 정책을 펴려고 해도 시장 권력에 눌려 아무것도 못한다는 겁니다.”

    ▼ 민간기업의 힘이 얼마나 커졌다는 건가요?

    “기업들은 로비를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제도를 만들어갑니다. 제가 제11대 국회에서부터 활동했는데, 17대 국회에 들어가 보니 과거보다 그런 상황이 더 심해져 있었습니다. 1990년엔 부동산 투기가 큰 사회적 문제였습니다. 무엇보다 재벌들이 수출을 통해 벌어들이거나 환차익으로 번 돈 100억 달러 정도를 부동산 매입에 썼습니다. 그 때문에 부동산 값이 크게 뛰었지요. 그래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재벌의 부동산 자진매각을 유도하기 위해 5대 재벌 총수를 청와대로 불러 뜻을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서는 연락이 없는 겁니다. 결국 제가 10대 재벌 기조실장들을 불러서 부동산 매각이 이뤄지도록 했지요. 그때 벌써 재벌은 대통령 얘기도 귀담아듣지 않았던 겁니다. 재벌들이 동반성장위원회 회의를 거부하고 위원장의 총수 면담 요청을 거부하는 것도 바로 힘의 관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사례 아닌가요?”

    ▼ 기업으로부터 직접 로비를 받아본 적도 있나요?

    “재벌에게 협박을 받아봤어요.”

    ▼ 어떤 협박이었나요?

    “세상에 그런 엄청난 협박을 당할 줄이야.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그 전화를 받고 정말 놀랐습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이었지요.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가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누군가 있으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타지 않을 정도였지요.”

    ▼ 재벌의 부동산 강제 매각을 지휘할 때였나요?

    “부동산 매각뿐 아니라 기업 구조조정 등 여러 가지를 계획하고 있었지요. 그때도 그랬지만 우리나라 재벌들이 나만큼 두려워하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 재벌의 오만한 행태를 보여주는 일화들이 있습니까?

    “1990년대 초 재벌의 문어발식 기업 확장을 막기 위해 주력업종과 무관한 신규 분야 진출을 억제할 때였습니다. 통상적으로 재벌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주무 부처에 상당한 압력을 가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었어요. 특히 재벌들은 자기네들이 하고 싶은 것들이 잘 되지 않으면 가끔 대통령을 독대해 애로사항을 실토하고 대통령의 동의를 구하는 것 같은 행위를 합니다. 대통령이 애로사항을 들으면서 약간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면 대통령이 자기네들의 요청을 이해한 것으로 판단하고 주무부처에 가서 대통령이 동의했으니 허가해달라는 식으로 밀어붙였습니다.”

    당시 반발이 아주 심했던 한 재벌 총수는 진출하려고 했던 신규 사업이 거부되자 “지금까지 내가 하려고 한 것을 못 해본 적이 없다”며 스스로 정부 위에 군림하는 사람인 것처럼 말했다고 한다.

    “그때 제가 그 재벌 모기업의 어려운 재무 상황을 제시하면서 무분별한 확장은 결국 국민이 그 부담을 안게 된다고 설명하자 크게 반발할 명분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물론 뒤에서는 저를 음해하고 다녔지요.”

    재벌 총수 정부 위에 군림

    ▼ 지금은 재벌들이 어떤 폐해를 보이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부가 늘어나면서 경제세력이 다른 부문에 행사하는 영향력도 그만큼 커지고 있습니다. 언론, 법률시장, 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을 장악해가고 있지요. 자본주의가 인간의 탐욕에 의해 성장하긴 했지만 끝없는 탐욕은 결국 2008년 미국 금융위기와 같은 결말을 초래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IMF 체제가 시작된 것도 대기업의 무분별한 탐욕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조화라는 화두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세계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시장경제가 보이지 않는 손(가격)에 의해 작동된다고 했지만, 지금은 보이는 손(정부)의 개입이 대세입니다.”

    ▼ 그동안 비대위에서 공정거래법 손질을 통해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와 하도급 부당행위 등에 대해 대기업 규제에 나서겠다고 했고, 대기업의 중소기업 진출 제한 강화나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유통업종 대책 등 여러 압박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요.

    “법이 미비한 분야는 법 제정을 해야 하겠지만, 법이 있음에도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은 제대로 집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는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통치자의 의지에 따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습니다.”

    ▼ 민주통합당 등에선 재벌세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시키려는 흐름도 있습니다.

    “재벌세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에서만 나오는 얘기입니다. 재벌에 부과하는 세금은 자연히 비용으로 계산돼 제품 가격에 반영될 것이고, 그러면 그 부담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로 전가됩니다. 출총제는 과거에 해봤지만 실효성이 없어 폐지한 겁니다.”

    ▼ 대기업 압박이 단순히 선거용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대기업 개혁이 포퓰리즘이라고 생각하면 시대의 흐름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우리 사회가 조화를 이뤄야 남북통일도 가능합니다.”

    대기업 협조 좀 해주셔야

    ▼ 지나친 대기업 압박은 경제 효율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저는 경제를 전공한 사람입니다. 그런 우려를 모르는 게 아닙니다. 암탉이 마당에서 아무거나 쪼아 먹고 다닌다고 그 목을 비틀면 달걀을 구할 수 없어요. 마당에서 닭이 지속적으로 달걀을 낳을 수 있도록 하면서 압박을 가하는 겁니다.”

    ▼ 대기업에 주문할 것이 있다면….

    “새누리당의 대기업 개혁안은 대기업에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닙니다. 대기업의 안정적 미래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저항하지 말고 협조해줘야 합니다. 지나친 탐욕을 억제하면 사회가 안정을 되찾고 그 결과 기업들도 중장기적으로 이득을 볼 겁니다.”

    “대기업 탐욕 멈춰야 양극화 해소된다”

    1991년 당시 김종인 청와대 경제수석(앞줄 오른쪽)이 마슬류코프 소련 제1부총리와 한소경협 성명서에 서명하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2월 11일자) 기사 ‘코리아 디스카운트: 소수의견’에서 한국 증시가 저평가받는 가장 큰 원인으로 한국 대기업 집단의 후진적 지배구조 탓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재벌의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나 상속세 탈루, 일감 몰아주기 같은 비도덕적 지배구조가 주주이익을 훼손하고 증시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재벌 개혁 논리를 뒷받침하는 지적인 셈이다.

    ▼ 우리 사회 양극화 원인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지요.

    “간단해요. IMF 체제를 맞이해서 우리 경제·사회의 구조가 완전히 깨졌어요. 수습을 위해 정부는 169조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습니다. 그때가 한국 경제의 잘못된 구조를 시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어요. 그런데 돈을 다루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1970년대 부실기업을 정리하던 방식으로 기업에 자금만 지원해서 해결하려 했던 거지요. 그래서 재벌 구조를 더 고착시켰습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실업자가 된 이들은 방치하고, 기업을 살리는 데만 집중했습니다. 소득세 법인세도 인하하고, 환경개선이란 이름으로 큰 기업에 지원책이 집중됐어요.”

    ▼ 양극화 해소를 위한 특단의 대책은 있나요?

    “양극화를 일시에 해소할 수는 없어요. 다만 지금보다 더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지.”

    MB 경제인식 잘못돼

    ▼ 복지가 중요 이슈입니다. 재원 마련도 중요하지만 현실 가능한 복지 시스템이 중요할 듯한데요.

    “중요한 건 복지 수요가 더 늘어나지 않게 정책을 펴는 겁니다. 복지 수요자가 더 늘어나는 상황을 방치하고 재원이 부족해 감당할 수 없다고 해선 안 됩니다. 탐욕스러운 유통재벌을 보세요. 이들이 지역의 골목 상권까지 다 장악하게 되면 소상인, 도매상인들이 몰락해 실업자가 크게 늘어날 겁니다. 그 결과 복지 수요자가 늘어나는 상황이 되면 별도의 실업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건 잘못된 겁니다. 유통재벌의 소상인 말살을 억제해야 해요. 이처럼 양극화가 확대되지 않도록 제반 조치를 취하고, 장기적으로 분배구조의 왜곡 문제를 시정하는 방식의 복지 대책이 세워져야 합니다.”

    ▼ 이명박 대통령은 재벌들이 돈 벌어 그 덕에 가난한 사람들도 덕을 보는 ‘낙수효과’를 언급했는데, 이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요?

    “그건 친기업 정책을 위한 핑계였지요. 지금 국민이 느끼는 게 뭡니까. 수출기업들이 사상 최대 이윤을 냈지만 국민 60~70%는 자기 삶에 아무런 변화를 못 느낀다잖아요. 온돌방에 불을 때면 아랫목에서부터 시작해서 윗목까지 따뜻해진다는 사고방식은 낡은 것입니다. 요즘엔 아궁이가 아니라 전기히터나 기름을 땝니다. 그러면 한꺼번에 방이 따뜻해져요. 경제 대책도 그런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나라 10대 재벌그룹의 생산액은 전체 상장기업 생산액의 53%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47%에서 6% 성장한 수치다. 금융위기를 계기로 상위 기업의 생산액은 오히려 크게 늘어난 것이다.

    ▼ MB노믹스(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의 한계는 무엇인지요?

    “MB노믹스? 그게 성취된 게 뭐 있어. 이명박 정부는 출범 당시 한국 경제 상황과 국제 경제 상황을 잘못 인식했어요. 747 공약만 해도 당시 여건에선 불가능한 지표였어요.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로 2008년의 금융위기가 예견되는 상황이었음에도 그런 장밋빛 희망을 외쳤습니다.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세웠다고 해도, 실제 정치를 해나갈 때는 현실에 입각한 정책으로 수정했어야지. 1983년 일본에서 부동산값이 뛰고 주가가 급등할 때 노무라연구소에서 10년 안에 일본 닛케이지수가 80,000을 찍고, 21세기 초가 되면 일본의 GDP가 미국의 그것을 능가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어요. 그런데 2년도 지나지 않아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합니다. 그 보고서를 내놓은 애널리스트들이 얼마나 무책임합니까. 일본 대기업집단인 게이단련(경제단체연합회), 관료, 집권여당인 자민당, 언론이 결탁해서 오늘의 몰락하는 일본 경제상황을 만들었고, 50년간 집권해온 자민당은 몰락을 맞이하고 있어요.”

    ▼ 한국도 그렇게 가고 있는가요?

    “여기서 시정하지 않으면 그렇게 가는 거지.”

    ▼ 비대위 활동은 언제까지 이어지나요.

    “공천 작업이 끝나고 선거전에 돌입하면 선거대책위원회가 꾸려지겠지요. 그러면 비대위의 실질적 역할은 끝날 겁니다.”

    비대위 끝나면 자연인으로

    ▼ 이후 위원님의 거취는 어떻게 되는지요?

    “나는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거지요. 원래 자연인이었고, 할 일이 끝나면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지. 내가 국회의원이나 다음 정권에서 한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어요. 그런데 정말 나는 아무런 욕심이 없어요. 내 경험이나 지식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대통령이 등장할 수 있게 돕자는 취지로 비대위에도 가담했을 뿐입니다. 이것을 욕하는 이도 있고, 비난하는 이도 있지만 나 스스로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개의치 않아요.”

    ▼ 위원님이 권력욕이 많다고 하는 이가 있던데요.

    “대기업 탐욕 멈춰야 양극화 해소된다”
    “다 자기 같은 사람만 있는 줄 아는군. 나는 국회의원 네 번을 지냈고, 장관과 경제수석도 해봤어요. 맹세하지만 나는 내 입신을 위해 남에게 한 번도 부탁해본 적이 없어요. 노태우 전 대통령이 경제수석 맡아달라고 했을 때도 처음엔 거절했습니다. 새누리당의 내부 구성원들도 내가 무슨 큰 혜택을 바라고 있는 줄 알아. 그들이 나를 싫어하면 내가 떠나면 되는 거지. 내 나이가 72세요. 설령 박근혜 위원장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내가 그 밑에 가서 장관을 할 거요, 뭘 할 거요?”

    ▼ 정말 그런 생각이 전혀 없나요?

    “정말입니다. 누구는 나보고 총리 하려는 거 아닌가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총리처럼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직위가 없어요. 내가 왜 그런 일을 해요.”

    ▼ 이전에 민주당 국회의원도 지냈는데, 새누리당 비대위에서 활동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 제대로 된 대통령이 나오면 좋겠다 이거야. 그래도 새누리당이 변해서 나라를 이끌어야 일반 국민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지 않겠나. 갑작스러운 변혁은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요. 내가 이 일을 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일을 안 하는 것만 못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니까.”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대학원장의 멘토로 알려졌었는데요. 안 원장의 장점과 한계는 무엇인지요?

    “안 원장은 백신 개발해서 벤처기업가로 성공한 사업가였어요. 청춘콘서트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성공한 벤처기업가의 경험을 전하고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고 있지만 그의 자질이 정치와 연결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안 원장 대선 나오기 힘들 듯

    ▼ 그 이유는 뭔가요?

    “물론 안 원장은 정직하고 솔직합니다. 또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합리적인 비판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요. 형편없는 기존 정치권에 지친 사람들이 그에게서 신선함을 발견하고 지지하고 있긴 하지만….”

    ▼ 안 원장이 대선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까.

    “안 원장은 대선에 나오기 힘들 거요. 무소속으로 대선에 나갈 수는 없을 테고. 정치적 기반이 없으니 민주통합당 같은 데 들어가는 것도 어려울 겁니다. 박원순처럼 무소속으로 나섰다가 민주통합당의 후보와 야권 단일화를 시도할 수는 있겠지요.”

    ▼ 김문수 경기지사는 안 원장에게 30개 의석을 주고 한나라당으로 데려오자고 주장하기도 했는데요.

    “안 원장이 한나라당은 역사를 후퇴시키는 당이라고 선언했는데, 어떻게 오겠어요. 새누리당이 변신했으니 가보자? 그런 상황은 전개되지 않으리라고 봐요.”

    ▼ 박근혜 위원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개인적으로 요즘 대통령후보로 지목되는 이들 가운데 나라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에 대한 수업을 가장 잘 해온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 새누리당이 변신에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지요?

    “새누리당은 이미 이름만 바꾼 게 아니라 정말 큰 변신을 한 거예요. 경제 민주화와 강한 정부를 내세우는 정강·정책은 우리 사회에 대한 바른 인식에서 나온 것이고, 다른 정당의 정책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그 약속을 어디다 처박아두지 말고 거기에 합당한 정책개발을 하자는 거지. 그러면 새누리당이 엄청나게 변신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고, 다시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김 위원은 요즘 비대위 활동 틈틈이 회고록을 쓰고 있다.

    “경제정책에 관한 시대적 상황을 기술해보고 있어요. 그런데 비판적으로 글을 쓰자니 당시 참여했던 인사들에 대해 이러저러한 평을 할 수밖에 없는데, 나쁘게 그리면 원수처럼 달려들 것 같고, 허허. 적나라하게 쓰기가 쉽진 않겠지만 후세에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써야겠지요. 또 하나는 양극화 해소에 관한 내용을 써볼까 하고 목차만 구상해보았습니다.”

    김 위원이 비대위원에 선정됐을 때 동화은행 퇴출 저지 과정에서 2억 원의 뇌물을 받아 실형을 살았다는 점이 새삼 제기돼 논란이 일었다. 김 위원은 사석에서 자신은 비자금을 모처에 전달만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겐 아픈 과거이겠지만 개혁을 외치는 인사라 다시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김 위원은 선을 그었다.

    “그 얘기는 하지 맙시다. 이미 끝난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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