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움직여 노 개런티 수락, 러닝개런티도 기부
- “서태지 오빠 위해 순결 지킨다”던 교내 스타
- 한번 사랑 주면 계속 아껴주는 중국이 좋아
- ‘꽃잎’ 데뷔 동기 설경구, 中 리밍과 친해
- 취미로 바비인형·그림 모으며 재테크 재미 쏠쏠
이후 그는 일본과 중국으로 활동 무대를 넓혀 아시아 전역에 테크노 댄스 열풍을 일으켰다. 상대적으로 국내 활동은 확연히 줄었다. 지난 11월 중순,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가 여느 게스트보다 큰 관심을 끈 것도 그 때문일 터. 게다가 그는 전보다 한결 평온해 보였다. 서글서글한 눈매도, 다소곳한 자태도, 생글생글 잘 웃는 표정도. 11월 28일 그를 만나러 가는 내내 그런 변화의 흔적이 꼬리를 물고 궁금증을 자아냈다.
대체 그동안 이 여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최근 개봉한 영화 ‘범죄소년’에서 미혼모를 연기하며 삶의 지혜라도 얻은 걸까. 어쩌면 원래 온유했는데 본색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닐까. 1996년 영화 ‘꽃잎’으로 데뷔했지만 지난 16년 동안 그의 스크린 활동은 활발하지 못했다. 지금껏 그가 출연한 영화는 ‘하피’(2000)와 ‘범죄소년’, 단편인 ‘파란만장’(2010)까지 포함해 네 편뿐. 극장에 걸리는 장편만 놓고 보면 그의 스크린 복귀는 ‘하피’ 이후 12년 만이다. 이정현을 마주하자 자연스레 그 이야기부터 나왔다.
‘꽃잎’ 이미지 벗어나고 싶어
▼ 왜 영화를 멀리했나요?
“항상 같은 캐릭터가 들어왔어요. 공포 혹은 광적인 느낌의 캐릭터요. 해외에서는 ‘꽃잎’이라는 영화를 모르니까 연약하고 예쁜 역도 들어오는데 한국에선 ‘꽃잎’의 신들린 이미지가 세게 박혀 있어서 캐릭터가 늘 겹쳤어요. 그게 내키지 않았어요. 좋은 감독님과 작업하고 싶은 욕구도 무척 강했고요. 어설프게 연기 활동을 하느니 해외에서 꾸준히 연기 욕구를 채우면서 국내에서는 그 답답함을 음반 작업으로 푼 거죠. 1집 때부터 앨범 기획을 혼자 다 해서 작곡가 만나 녹음하면 바로 음반이 나올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영화는 좋은 시나리오와 좋은 감독님, 좋은 투자배급사를 만나야 하는데 운이 없었던 것 같아요.”
▼ 운이 좋은 거 아닌가요? 출연한 영화들은 대부분 국내외에서 큰 상을 받았잖아요.(장선우 감독의 ‘꽃잎’은 그에게 청룡영화제와 대종상영화제 등의 신인여우상을 안겼고, 강이관 감독의 ‘범죄소년’은 도쿄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박찬욱 감독의 ‘파란만장’은 베를린영화제에서 단편 부문 황금곰상을 차지했다.)
“사실 일면식도 없는 박찬욱 감독님한테서 전화가 와서 깜짝 놀랐어요. 감독님이 같이 영화하자, 근데 단편이야 하셔서 괜찮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여주인공이야, 근데 무당이야, 이러는 거예요. 하하하. 감독님의 무당은 천번만번 할 수 있죠. 너무도 존경하는 분이니까.”
▼ 어째서 존경하나요?
“표현이나 메시지가 깊고 굉장히 상업적이면서도 예술적이에요. 감독님의 작품 중 ‘공동경비구역 JSA’와 ‘올드보이’도 좋았고 ‘박쥐’도 예술이었어요. 이병헌, 강혜정 씨 나오는 단편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도 굉장히 특이했어요.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원한 외국인 노동자에 관한 작품이었죠.”
▼ 그런 존경심 때문에 센 역임에도 기꺼이 출연했다?
“네, 늘 촬영장에 신나게 뛰어가서 연기했어요. 욕심 없이 했는데 좋은 성과가 있어서 무척 기뻤어요. 극장에 개봉하지 않아 대중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영화 관계자들은 많이 봤더라고요. 강이관 감독님도, 다음 작품을 같이 할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님도 그거 보고 연락하신 거예요. 그 외에도 여러 감독님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 아이폰 내장 카메라로 촬영해 힘들지는 않았나요?
“전혀요. 박찬욱 감독님 촬영장은 일단 굉장히 풍족해요. 먹을 것부터 스태프나 모든 준비가 굉장히 완벽해요. 카메라는 아이폰이었지만 나머지는 여느 영화 촬영장과 똑같았어요. 저한테는 보물 같은 작업이었어요.”
▼ 정말 신 내림을 받은 무녀처럼 보이던데 어떻게 연기한 건가요?
“박 감독님이 연기를 잘 이끌어주세요. 옆에서 지켜보면서 말투나 표정 따위를 정확히 짚어주세요. 평소 제 목소리 톤과 달리 약간 사투리 섞인 허스키보이스로 나오는데 그런 걸 하나하나 잡아주시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셨어요. 배우는 그럼 너무 편하거든요. 콘티에 그림이 상세하게 묘사돼 있어서 이해하기가 한결 쉬웠어요. 감독님 만난 게 행운이죠.”
▼ ‘범죄소년’은 어쩌다 출연하게 된 건가요?
“2011년 말 미혼모 역을 처음 제의받았을 땐 내키지 않았어요. 싱글 여배우들이 싫어하는 캐릭터거든요. 이미지가 고착되면 위험하니까요. 더군다나 ‘노 개런티’라고 하는 거예요. 소속사에서 반대가 심했어요. 연말에는 공연이 몰려 더 바쁘거든요. 물론 내가 아주 예쁘게 나오는 작품이었다면 그렇게까지 반대하진 않았겠지만, 제작 규모도 너무 작은데다 미혼모 역이고 화장도 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심지어 다크서클을 그려야 한다고 하니 제 주위 사람들이 다 뜯어말렸죠. 이걸 왜 상의하러 오느냐는 식으로요. 그래서 저도 여러 번 거절했는데 감독님이 안 해도 좋으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만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다큐멘터리 몇 편을 추천해주셨어요. 난 정말 미혼모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 네가 이걸 보고 느끼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면서요.”
▼ 다큐멘터리 보고 마음이 바뀌었나요?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미혼모들이 교육도 못 받고 기술도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아이와 살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결국 버티기 힘들어 아이를 입양 보내는 굉장히 안 좋은 상황까지 가더라고요. 미혼모들은 자살 시도를 많이 해요. 사회적으로 보호받는 기간도 몇 개월 안 되고, 다시 사회로 나오면 기술도 없고 못 배워서 취직도 안 되고, 그러면 단기 아르바이트나 일용직 하다가 밖으로 내몰리고…. 그렇게 아이 지키려고 열심히 힘겹게 살아가는 미혼모들을 보고 많이 울었어요. 마음이 먼저 움직여서 한 것 같아요. 무조건 내가 해야겠다 싶어 하겠다고 했더니 주위에서 난리가 났었죠. 역시나 너무 힘들더군요. 석 달 분량의 촬영을 한 달 반 안에 끝내야 하고, 현장 상황이 너무 열악해서요.”
‘무늬만 성교육’ 실감
▼ 투자를 못 받은 건가요?
“인권위에서도 투자하고 영화진흥공사에서도 투자하고 감독님 돈도 들어갔는데 그래도 많이 부족하죠. 간식은커녕 회식도 엄두를 못 낼 정도였어요. 스태프 돌보고 간식, 회식 챙기는 건 제 담당이었어요. 스태프 중에 나보다 연장자가 없었거든요. 다들 저처럼 돈 안 받고 재능기부 하는 거여서 힘든 내색조차 할 수 없었어요. 그들이 도망갈까봐 걱정돼서요. 거의 매일 밤을 새우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내가 힘들어하면 다 무너질까봐 늘 생글생글 웃고 다녔어요. 그게 가장 힘들었어요. 정말 말도 안되는 여건이었는데 끝까지 현장을 지켜준 스태프들에게 무척 고마워요. 영화 찍으면서도 이게 과연 마무리될 수 있을까 늘 불안했는데 어느덧 마지막 촬영을 하고 편집된 영상이 나오고 영화제 초청도 받고 개봉까지 하게 돼서 주위 모든 분께 그저 감사할 뿐이에요.”
▼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연습은 따로 안 했어요. 다큐멘터리를 통해 미혼모의 삶을 어느 정도 인지한 후 아무런 준비 없이 현장에 갔어요. 시나리오에는 제가 맡은 미혼모 효승이가 슬프고 어둡고 불쌍한 캐릭터로 돼 있지만 영화에서는 굉장히 밝게 연기했어요.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해본 사람이 아들을 다시 찾으러 간 것은, 서른이 되면서 어설프게나마 가족이라는 관념이 생겨서일 거예요.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니 동냥하듯 부탁하고 다닐 것 같진 않았어요. 자존심 다 버리고 비굴하게 실실 웃으면서 부탁할 것 같았어요. 다행히 감독님이 제 의견을 잘 받아줘서 캐릭터를 새롭게 설정했고, 촬영 내내 효승 캐릭터에만 몰입했어요. 아무도 안 만나고 연락도 안 했을 정도로.”
▼ 미혼모를 연기하면서 어떤 게 아쉬웠나요?
“무엇보다 성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성교육의 부재로 아이가 생기고 또 부모와 대화가 단절돼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고 미혼모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또 미혼모의 자녀가 방치돼 단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정상적인 부모가 있으면 합의가 되지만 이 아이들은 그럴 기회조차 없어요. 볼펜 하나를 훔쳐도 절도범이 되고 사회에 나왔을 때도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죠. 가난이 대물림되듯이 미혼모와 그 자녀들은 불행한 삶을 거듭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 영화는 결코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에요.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어요. 정말 어른들, 기성세대들, 이 시대를 이끄는 사회지도층에서 꼭 봐야 할 영화예요. 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제도권 안에서 보호하고 도와줘야 해요. 지금보다 체계적인 성교육과 더 많은 사회적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됐으면 좋겠어요.”
▼ 평이 워낙 좋아서 보람 있겠네요?
“토론토영화제에서 초청장이 왔기에 나이애가라 폭포 구경 가야지 하는 심정으로 갔어요. 도쿄영화제에선 상도 받았고요. 그밖에도 이탈리아, 대만, 필리핀 등 여러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진출했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상까지 받아서 기쁘지만 이런 걸 바라고 한 건 아니에요. 마음이 움직여서 노 개런티인데도 출연한 거고, 영화가 잘되면 주겠다는 러닝개런티도 다 기부하도록 했어요. 너무나도 뜻이 잘 맞는 사람들과 만나서 좋은 영화 만들었고 몇 명이라도 보고 공감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미혼모와 그 자녀들의 실상을 알리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 것만으로도 보람 있어요.”
▼ 또 이런 제의가 온다면 할 건가요?
“마음이 움직이면 할 것 같아요. 이러다 노 개런티 전문 배우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하하하.”
강한 여자로 중국 사로잡아
이정현은 2012년 중국에서도 큰 상을 받았다. 제7회 중국 화정장(華鼎奬) 아시아 인기대상이 그것. 중국에 진출한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이 상을 받은 그는 “화정장은 중국에서 권위 있는 시상식”이라며 “2011년엔 장이머우 감독님과 배우 장쯔이 씨가 수상의 기쁨을 맛봤고, 2012년에는 청룽(成龍)아저씨가 공로상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또 “한류라는 게 한 2~3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10년 넘게 꾸준히 이어져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 중국 드라마나 광고에도 많이 나온다고 들었어요.
“많이 했어요. 중국에선 한 번 찍으면 여러 번 재방해요. 한참 전에 찍은 한국 드라마가 지금도 재방되고 있어요. 음악 프로그램이나 공연도 마찬가지예요. 계속 나오니까 무척 좋죠. 10년 전에 부른 노래가 지금도 인기가 있으니까요. 한국은 뭐든지 빨리 바뀌는데 중국은 뭐 하나를 잘하면 끝까지 지켜주고 찾아주는 것 같아요. 지금도 공연 계약할 때마다 ‘와’와 ‘바꿔’는 꼭 불러달라고 해요. 광장에 모여 태극권 하는 분들은 아예 제 노래를 메들리로 틀어놔요. 그래도 화장 지우면 못 알아보세요. 한번은 발마사지 받으러 갔는데 한국에서 왔다니까 저더러 이정현 아느냐고 묻는 거예요. 하하하.”
▼ 왜 그렇게 이정현 씨를 좋아하는 건가요?
“중국인들이 강한 여자를 좋아해요. 중국어는 발음이 약해서 여자 가수들이 노래를 강하게 못 부르는데, 전 무대에 올라가면 한국말도 되게 강한 데다 안무까지 발차기 같은 센 걸 보여주잖아요. 강해 보이는 이미지 덕을 많이 보는 게 아닌가 싶어요. 고맙게도 중국 가수들이 제 노래를 여러 곡 리메이크해서 제 노래가 많이 알려졌어요. ‘와’‘바꿔’‘너’‘평화’‘줄래’‘반’‘미처’‘다라다라’‘아리아리’…. 그 노래들이 히트하면서 오리지널 가수인 절 부르게 된 거죠. 일부러 중국어로 녹음까지 해서 준비해갔는데도 그쪽 PD님들이 한국말로 불러달라고 청하더라고요. 중국인들이 한국 브랜드와 한국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2000년에 ‘와’로 중국에 진출한 후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한 지도 벌써 13년째. 중국 공연이 한 달에 많게는 네 번, 적을 때도 한두 번은 잡힌다. 그는 매번 공연 장소가 바뀌어 일정에 맞춰 호텔에서 숙식을 해결하는데, “중국 음식을 무척 좋아해 갈 때마다 설렌다”고 한다.
▼ 사기당한 적은 없나요? 중국에 처음 진출한 한류 스타인 안재욱 씨는 여러 번 당했다고 하던데….
“전 한 번도 없어요. 갈 때마다 참 잘해주셨어요. 재욱 오빠는 저보다 조금 먼저 가셨는데 중국에서 속인 게 아니라 공연을 주선한 한국 에이전시에서 장난친 걸로 알고 있어요. 저도 한국 에이전시에서 속이려고 한 적이 몇 번 있어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항상 꼼꼼하게 체크해요.”
▼ 한국 가요가 여전히 인기 있나요?
“요즘에는 인기가 예전 같진 않아요. 4년 전이 절정이었고, 지금은 한류가 없어진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좋아서 찾는 경우는 있어도 바람을 타서 찾거나 하진 않는 것 같아요.”
▼ 중국 4대 천왕인 류더화(劉德華), 장쉐유(張學友), 궈푸청(郭富城), 리밍(黎明) 씨와 친하다면서요?
“10월에 열린 차이나 아시안 엑스포 개막공연 때도 만났어요. 공연을 같이 할 때가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어요. 그중에서도 리밍 씨와 친해요. 항상 내 앞 시간에 공연을 하시거든요. 리밍 씨랑은 무대 뒤에서 얘기를 많이 해서 매니저끼리도 친하고 가끔 연락하고 그래요.”
▼ 중국어 잘하겠네요?
“영화를 찍었으면 많이 늘었을 거예요, 영화에선 중국말로 연기를 하거든요. 근데 드라마는 100% 더빙이라 한국말로 하라고 해요. 빨리 찍고 나서 더빙해야 하니까. 그래서 중급 하다가 진도를 못 나갔어요. 너무 바빠서요. 몇 년째 기본 대화밖에 못 하고 있어요. 너무 창피해요.”
▼ 한국 홍보대사 역할도 하겠네요?
“시상식 같은 데 참석할 때는 항상 한복을 입어요. 공연 때도 ‘리젠시엔’이라는 중국 이름이 따로 있지만 ‘한국에서 온 이정현 씨’라고 소개해달라고 해요. 한국이라는 말을 안 빼놓죠. 중국에서도 그런 걸 좋게 봐주세요. 한국을 대표해 무대에 설 때마다 기쁘고 뿌듯해요.”
‘와’ 덕분에 싸이 데뷔
그러고 보니 그는 참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언제부터 끼를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일까.
“데뷔한 건 고1 때예요. 열다섯 살이었죠. 세 살 때부터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를 너무 좋아해서 음악 나오면 춤추고 그랬대요. 늘 연예인을 꿈꾸긴 했는데 ‘꽃잎’으로 데뷔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배우가 된 건 운명 같아요. 가수 하면서도 항상 연기에 목말라 있었거든요.”
▼ 그럼 왜 가수가 됐나요?
“다양한 연기 변신을 하고 싶었는데 나이가 어중간했어요. 어른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니고, 몸도 성숙해가는 과정이었어요. 너무 답답했어요. 그때는 대학을 가야겠다는 욕심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중앙대 영화과에 들어갔는데 1학년 때 교수님들과 유럽 배낭여행을 갔다가 테크노 음악에 빠졌어요. 해외에서 CD를 30~40장씩 사와서 홍대 클럽 DJ들과 공유할 정도로요. 클럽에 춤만 추러 간 게 아니라 음악 들으러 갔거든요. 근데 춤을 특이하게 추니까 ‘철이와 미애’ 출신 제작자인 신철 씨가 절 픽업했어요. 그룹 구피의 ‘게임의 법칙’ 뮤직비디오에 나와서 피처링 해줄 수 있느냐고 제의하셨죠. 그 뮤직비디오가 굉장히 화제가 돼서 여러 음반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중 예당음향(현 예당컴퍼니)과 손잡고 ‘와’로 데뷔했죠.”
세계적인 가수가 된 싸이도 ‘와’ 덕에 데뷔했다. 싸이는 당시 이정현과 같은 소속사에 있었는데 비주얼이 달리고 음악 색깔이 너무 강하다는 우려에 가로막혀 데뷔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정현이 1집 음반으로 상 받고 나서 마련한 회식자리에서 싸이는 평소 나이트에서 즐겨 추던 싸이 스타일의 ‘와’ 춤을 선보였다. 우스꽝스럽지만 좌중의 시선을 사로잡은 독특한 춤사위에 반한 소속사 대표는 ‘바로 그거야’ 하고 무릎을 치며 싸이에게 데뷔 음반을 내줬다.
“춤을 하도 독특하게 춰서 다들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오빠가 잘돼서 정말 기뻐요.”
▼ 싸이 씨와 친한가요?
“그렇게 친하진 않고요. 이번에 오빠가 미국 가기 전에 같이 저녁 먹었어요. 지인 몇 명과 함께요.”
▼ ‘꽃잎’으로 같이 데뷔한 설경구 씨와는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요?
“경구 오빠하고는 무척 자주 봐요. 오랫동안 만나는 연예인은 경구 오빠밖에 없는 것 같아요. 싸이 오빠와 처음에는 친했는데 서로 바빠서 연락이 뜸해졌고 지금은 오빠가 너무 떴잖아요. 오빠한테 문자 보내고 있어요. 친하게 지내려고요. 하하하.”
▼ 세계적인 슈퍼스타 레이디 가가와도 친한가봐요. 2010년 그의 공연에 출연했던데….
“친분은 없어요. 2009년에 장르를 한번 바꾼 적이 있어요.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비욘세 안무를 담당하는 세계적인 안무가, 자넷 잭슨과 함께 춤추는 댄서들과 함께 뮤직비디오를 멋지게 찍어서 한국에서 잠깐 활동했어요. 공교롭게도 당시에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셔서 많이 보여주진 못했지만요. 레이디 가가가 내한공연을 앞두고 오프닝 무대에 설 가수를 찾다가 그 뮤직비디오를 보고 절 선택한 거예요. 그때는 레이디 가가가 가장 핫 할 때였어요. 공연 끝나고 만났는데 ‘너무 미안하다. 무대 중앙에서 널 보고 싶었는데 팬들 때문에 못 봤다. 사이드에서 널 지켜봤는데 완전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기뻐서 탄성을 지르고 얼굴 빨개지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레이디 가가는 굉장히 카리스마 있고 멋진 아티스트라서 개인적으로도 정말 좋아하거든요.”
“연애 2년간 휴업 중, 혼자가 편해”
▼ 어릴 때는 어떤 아이였나요?
“무척 밝고 노래 좋아하고 수학여행 가면 장기자랑 나가서 항상 1등상 받고 그랬어요. 서울 명덕여고를 나왔는데 그땐 수학여행 장기자랑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를 불렀어요. 되게 좋아했거든요. 연예인 돼서 태지 오빠를 꼭 만나야지 그랬어요. 태지 오빠 보는 게 소원이었죠. 서태지와 똑같이 춤추며 노래했더니 난리가 났어요. 여고니까. 중학교 때도 학교 주위에 중·고등학교가 5, 6개가 있었는데 옆 학교에서도 알 정도로 춤과 노래로 유명했어요. 팬클럽도 있었죠.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팬레터도 주고, 선물도 책상 위에 갖다놓고, 매일매일 그랬어요. 쉬는 시간만 되면 애들이 절 구경하러 왔어요. 연예인 되면 질투가 나서 왕따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던데 전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영화 찍고 나서도 평소와 똑같이 대하더라고요.”
▼ 남학생에게도 인기가 많았겠네요?
“남자들이 사귀자면 이랬어요. ‘너 서태지 노래해봐.’ 못 따라 하면 ‘니가 서태지인 줄 알아? 난 서태지만 만날 거야. 난 태지 오빠를 위해서 순결을 지킨다’고요. 오직 서태지 만나는 꿈만 꿨어요. 연예인 된 것도 태지 오빠의 영향이 커요(웃음).”
▼ 남녀로 만나는 이성친구는 있나요?
“2년 전에는 있었는데 연애를 오래 안 했더니 혼자인 게 너무 편해졌어요. 그렇다고 독신주의는 아닌데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근데 혼자인 걸 너무 편하게 즐겨서 주위에서 걱정을 많이 해요.”
▼ 사랑에 몰입하는 스타일인가요?
“어릴 때는 그랬어요. 지금도 좋은 사람 나타나면 그러겠죠. 근데 푹 빠지게 만드는 사람을 못 만났어요. 언니 4명이 낳은 조카가 7명이에요. 아이를 좋아해서 아이를 낳고 싶은데 남자가 없네요. 30대가 되고 보니 괜찮은 남자는 다 장가갔더라고요. 하하하.”
▼ 어떤 타입에 푹 빠질 것 같나요?
“외모는 잘 안 봐요. 책임감 있고, 자기 분야에서 프로고, 배울 게 있는 사람이 좋아요. 그런 사람이면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연하는 어때요?
“연하 중에 책임감 있고 좋은 친구가 있다면 좋겠죠. 근데 아직 만나보진 못했어요.”
▼ 나이에 비해 참 어려 보여요. 동안을 유지하는 비결이 뭔가요?
“클렌징을 열심히 해요. 클렌징 오일을 써서 항상 촉촉한 상태로 지워지게 하고, 이틀에 한 번씩 팩을 해요. 얼굴에 수분이 안 떨어지게 항상 관리하고 수분크림을 듬뿍 바르죠. 화장품 브랜드도 안 가리고 써요. 싼 거나 비싼 거나 다 거기서 거기더라고요.”
▼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아무리 바쁘고 잠을 2시간밖에 못 자더라도 아침밥은 꼭 먹고 나와요. 그래야 힘이 나요. 아침밥을 안 먹고 스케줄을 맞추려고 하면 너무 힘들어서 쓰러질 것 같아요.”
▼ 뭐든 잘 먹나요?
“안 가리고 잘 먹는데 군것질을 안 해요. 그래서 살이 안 찌는 것 같아요. 2005년부터 1년간 일본에서 살 때는 군것질을 많이 해서 8kg이 쪘어요. 그때 일본 드라마도 찍고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戰)’이라는 프로에도 나가고, 오리콘 차트에서 계속 1위 하고 그러다가 중국 활동에만 집중했어요. 중국이 저랑 잘 맞는 것 같더라고요. 모든 면에서요.”
“점 봐달라는 연예인 있어요”
그에겐 바비인형과 그림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 바비인형의 경우 희소가치가 높은 것들 위주로 모아 시가로 상당한 액수다. 그림 역시 마찬가지. 신인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구입하는데 몇 년 후 가격이 뛰어 투자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바비인형을 좋아했어요. 한 5년을 모으다 2004년 들어서면서 그만뒀어요. 인형이 너무 많아서 바자에도 내놓고 기부도 많이 했어요. 지금 남은 건 50개 정도예요. 한정판매한 특이한 것만 갖고 있어요.”
▼ 좋은 그림을 가리는 기준은 뭔가요?
“전문적인 지식이나 안목은 없어요. 그냥 보고 있으면 기분 좋고 느낌 좋고 그런 그림에 마음도 가더라고요. 그림 보는 걸 좋아해서 미술관에 잘 가요. 어디를 가든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꼭 찾아요. 구경하다 느낌 좋고 가격도 안 비싼 신인작가의 작품이 있으면 사 모으는 편이에요. 근데 제가 그림을 사가면 연락이 가나 봐요. 작가가 고맙다며 직접 카드도 보내주고, 전시회 초대장이나 편지도 써서 보내주더라고요. 신인 작가의 그림을 사고파는 건 서로 좋은 일 같아요. 전 좋은 그림을 싸게 사서 좋고, 신인 작가에겐 그림에 전념할 수 있는 기반이 될 테니까요.”
▼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편인가요?
“거의 의식하지 않아요. 전 막 다녀요. 극장도 혼자 잘 가고 예약도 혼자 다 하고 혼자 잘 다녀요. 혼자 편하게 다니면 사람들도 편하게 다가와요. 편한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 신들렸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데뷔 초부터 돌았던 소문이에요. 가수 되고 난 후에도 그런 소문이 따라다녔고요. 그때는 신비주의를 고수하느라 해명을 안 했더니 지금도 저 보면 점 봐달라는 연예인이 있어요. 근데 신들린 거 절대 아니고요. 종교도 없어요. 근데 제가 조로아스터교라는 소문도 났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 어느덧 30대인데 미래에 대한 설계를 해뒀나요?
“지금까지 계획대로 된 건 없어요. 스무 살부터 연기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안됐고, 32세면 결혼할 줄 알았는데 결혼도 못하고 남자도 없고…. 그냥 앞으로 6개월까지만 생각하려고 해요. 다음 영화랑 음반 준비 열심히 하는 게 지금은 가장 중요한 계획이에요.”
이정현은 2012년 초부터 자신의 11번째 앨범을 준비해왔다. 모두 5곡이 들어가는 미니앨범을 낼 계획이다. 차트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좋은 곡을 받아놨지만 타이틀 곡 선정이 쉽지 않고 편곡을 새로 하는 바람에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 그 와중에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이 영화를 같이 하자고 제의해 음반 발매 시기도 2013년으로 넘어가게 됐다.
그의 차기작은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회오리바람’.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진구 등 연기파 배우가 대거 출연해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극중 홍일점인 조선의 여인으로 등장하는 그는 “굉장히 임팩트(impact) 있는 인물”이라며 궁금증을 자극했다.
“2013년은 무척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새해 초까지 영화 촬영 마치고 곧바로 음반 녹음해서 5월 안에는 발매할 생각이거든요. 하지만 결과에는 연연하지 않을 거예요. 대신 가수로서도 배우로서도 부끄럽지 않게 그때그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데 의미를 두려고요”
▼ 참, 대통령선거철마다 여야를 막론하고 ‘바꿔’라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면서요?
“2002년에는 그런 요청이 있었는데 응하진 않았어요. 그래도 제 노래를 선거운동에 쓰긴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때 이후로는 그런 요청을 받은 적 없어요. 전 정치에 관심도 없고 어떤 식으로든 얽히고 싶지 않아요. 다만 누가 당선되더라도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