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의 ‘대한민국 올림픽 완성’
- 강원지사 재임 때 컬링·봅슬레이·스켈레톤팀 창단
- 박근혜 대통령, 의원 시절부터 평창올림픽에 각별한 의지
- 한국 기업들, 평창올림픽 스폰서 참여에 인색
- 공상정 선수 특별귀화…“내가 나서 도왔다”
“기후와 환경이 낯선 소치에 오래 머물렀더니 귀국 후 집 현관문 전자키의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아내에게 전화해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어벙한 듯 후유증이 좀 남았네요.”
김진선(68)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이하 평창조직위) 위원장은 2월 1일 2014소치동계올림픽대회(이하 소치대회) 참관차 러시아로 떠났다가 같은 달 25일에 돌아왔다. 3월 6일 다시 출국해 소치장애인동계올림픽대회(패럴림픽)를 참관하고 13일 귀국했다. 빡빡한 일정 탓에 제대로 쉴 틈이 없었을 법하다.
이처럼 패럴림픽 참관을 위한 재출국 준비로 바쁜 상황임에도 김 위원장은 3월 3일로 잡힌 ‘신동아’ 인터뷰에 쾌히 응했다.
평창조직위 정관상 위원장 임기는 2년. 올림픽 개최 준비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2011년 10월 공식 출범한 평창조직위의 초대 위원장을 맡은 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정관 개정을 통해 2기 위원장에 연임돼 내년 10월까지 올림픽 준비를 진두지휘한다. 이후에도 재선임되면 연임이 가능하다.
김 위원장과 평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강원지사 당선 이듬해인 1999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선언한 이후 삼수(三修) 끝에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를 통해 평창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주역이다. 게다가 전 세계인의 눈과 귀가 소치에서 평창으로 쏠리는 과정까지 현지에서 낱낱이 지켜봤으니 누구보다 감회가 깊었을 터다.
‘이젠 딱 4년 남았구나’
▼ 소치대회 참관 소회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내 눈엔 IOC 위원들만 보였다. 다른 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IOC 총회의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투표에서 밴쿠버에 패해 고배만 들지 않았어도 지금쯤 우리가 대회를 개최하고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많은 걸 봤다. 기본적으로 올림픽은 어느 지역에서나 성공해야 하는 세계적 이벤트다. 그럼에도 소치대회의 경우는 특별했다. 2007년 과테말라 IOC 총회에서 2014동계올림픽 개최지를 놓고 경쟁한 곳인 데다, 다음 대회 개최지인 평창이 그 영향을 적잖게 받게 되니 소치의 성공이 곧 평창의 성공을 예약, 담보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참관 일정 내내 쫓기는 마음이었다. 다행히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한 모습이 보였고, 대회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평창올림픽 개회식 날짜가 2월 9일인데, 소치대회 기간 중 그날이 되자 ‘이젠 딱 4년 남았구나’ 생각했다. 적어도 개최 1년 전까지 대회 준비를 모두 마친다고 하면 실제론 3년 남은 것이라 긴장했다. 해야 할 일에 대한 무게감과 걱정, 한편으론 ‘우리가 더 잘하면 되지’ 하는 각오가 교차해 25일간의 일정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 귀국 후엔 어떻게 지냈나.
“귀국 당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선수단 해단식 및 평창올림픽 대회기(旗) 인수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곧장 강원도로 갔다. 도지사와 강원도 동계올림픽추진본부, 평창조직위 관계자들과 올림픽 관련 시설물에 대한 긴급점검 회의를 했다. 새로 짓는 경기장의 설계 책임자들도 따로 초청해 프리 토킹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 하면 가장 기능적이고 효율적이며 절약 가능하면서도 적합한 시설을 만들지를 짚어봤다. 패럴림픽 참관 준비와 종합적인 차후 스케줄도 논의했다.”
▼ 소치대회 참관에서 특히 중점을 둔 부분은.
“세 가지 틀이라 보면 된다. 먼저, 소치대회 전반을 배우려고 했다. 소치 현장은 평창올림픽 개최 이전에 대회 전체 운영상황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이 때문에 IOC, 소치조직위와 협조해 옵서버 프로그램, 섀도프로그램, 파견프로그램 등 다양한 소치대회 벤치마킹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평창조직위뿐 아니라 강원도, 대회 개최 시·군, 관계부처 관계자 200여 명을 참여자로 꾸려 많은 활동을 했다. 이를 통해 대회 운영, 경기장 건설 및 사후 활용 문제, 관광, 교통, 숙박 등 다양한 분야를 종합적으로 배우고 점검할 수 있었다. 난 조직위원장으로서 시설 및 경기 운영에 특히 방점을 찍었다. 둘째는 평창을 전 세계가 관심 갖는 다음 개최지로서 적극 홍보하는 작업이었다. 셋째는 IOC, 국제경기연맹과 평창올림픽 준비와 관련해 여는 회의였다.”
비인기 종목이란 없다
▼ 평창올림픽에 대한 소치대회 관계자 및 일반인의 반응은 어땠나.
“IOC 및 각국 관계자, 선수들은 아시아 쪽 개최지인 평창의 대회 준비 방향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표했다. 관광객과 탐방객 등 일반인도 다음 대회 개최지란 점에서 평창에 대한 관심도가 상당히 높았다. 따라서 성화 봉송 참여, ‘평창하우스’ 운영, 올림픽 대회기 인수 공연 등을 통해 평창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 주력했다.”
소치 올림픽파크 입구에 연면적 625㎡(약 191평)의 1층 규모 경량구조로 세워진 평창하우스는 2월 7일부터 23일까지 운영됐다. 대한민국과 평창의 꿈을 미디어아트로 표현한 미디어 파사드 영상시스템을 설치하고 우리의 전통과 문화, 준비된 평창을 홍보하는 내부 전시, 공식 행사인 ‘평창의 날’ 운영(한국 시간으로 2월 9일), 한국 전통무용과 K-POP 등 상설 문화공연을 통해 21만여 명의 관람객을 유치해 ‘대박’을 터뜨렸다.
폐회식 문화예술공연 또한 평창올림픽 비전인 ‘New Horizons(새로운 지평)’를 소개하고 세계인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데 중점을 뒀다. ‘New Horizons’는 잠재력이 큰 아시아 무대에서 세계의 젊은 세대와 함께 동계스포츠의 새 지평을 열겠다는 의미다.
▼ 차기 대회 조직위원장으로서 소치대회를 총평하면?
“시설, 여건, 운영 등 종합적 측면에서 멋진 대회였다. 지금껏 보기 어려웠던 개회식과 성화 봉송의 장대한 규모를 비롯해 여러 면에서 세밀히 신경 쓴 대회였다고 본다. 대회 초반 테러 위협과 숙박시설 미비로 잠시 비판받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잘 진행됐다. 경기장과 숙박시설, 취재지원시설을 올림픽파크 한곳에 집중시킨 것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한국도 88서울올림픽과 2002한일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나라다. 매뉴얼과 노하우가 있으니 평창올림픽도 잘되리라고 본다.”
▼ 소치에서 한국 선수 경기도 많이 관전했을 텐데.
“빙상종목인 스피드 스케이팅과 피겨 스케이팅, 쇼트트랙, 컬링 경기 등은 현장에서 관전했다. 다만 설상종목의 경우 경기장엔 다 가봤는데 한국 선수 경기 시간을 못 맞춰 응원을 하진 못했다.”
▼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는.
“컬링, 봅슬레이, 루지, 스켈레톤이다. 특히 여자 컬링 경기가 기억에 남는다. 이유가 있다.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선 이후 10년 넘게 국제스포츠 무대를 도는 동안 난 거대한 장벽의 존재를 느꼈다. 비록 쇼트트랙엔 강하다지만, 세계인들은 한국이 동계스포츠를 하는 나라란 걸 잘 모르더라. 영국, 캐나다,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 전통적인 동계스포츠 강국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그들 눈에 비친 한국은 그저 동계스포츠 약국(弱國)이었다. 그래서 강원지사 시절 강원도와 시·군에 동계스포츠 실업팀 11개, 꿈나무학교 25개를 지정해 육성했다. 도청 내에 남자 컬링팀을 최초로 만들었고, 봅슬레이팀, 스켈레톤팀도 창단했다. 그렇게 초석을 다진 결과 선수들이 소치대회에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비인기 종목이란 없다. 국민이 잘 모르고 선수가 잘 못하니 그렇게 불릴 뿐이다.”
평창올림픽 예산 9조6000억 원
▼ IOC와 각종 스포츠 종목 국제경기연맹이 평창조직위에 바라는 점은.
“평창에 대한 그들의 신뢰는 높다. 2번의 유치 실패에도 경기장과 올림픽 관련 시설에 대한 꾸준한 투자, 교통 인프라의 구축 덕이다. 그동안 바이애슬론, 컬링, 스노보드, 쇼트트랙 등 다양한 동계스포츠 대회를 개최한 경험도 있어 대회 운영능력도 높이 평가받는다. 올림픽 준비 상황에 대해 IOC는 평창조직위와 한 배를 탔음을 강조하면서 IOC가 가진 전문성을 바탕으로 평창올림픽 준비에 아낌없는 협조를 약속했다. 앞으로 평창조직위가 분야별로 중점 추진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도 조언해준다.”
▼ 평창올림픽 성공을 위한 김 위원장의 ‘소치 구상’은 뭔가. 밑그림을 보인다면?
“그동안 치열했던 올림픽 유치전에서부터 소치대회 참관에 이른 과정을 돌아보면서 올림픽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긴 역사를 지닌 올림픽은 지금도 변화를 거듭하며 진화한다. 어느 나라든 자국 이미지 제고와 국격(國格) 상승, 국민 결속과 자긍심 고취를 위해 한사코 올림픽을 개최하려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올림픽은 분명 내셔널리즘(국가주의)적 면이 있다. 하지만 올림픽은 본질적으로 코스모폴리타니즘(세계주의)적 면이 강하다. 소치대회 후반부에 아내와 국제통화를 수시로 하면서 우리 국민이 두 가지 반응을 나타낸다는 걸 알게 됐다. ‘소치는 저렇게 성대하게 대회를 여는데, 평창은 어떡하지?’ ‘엄청난 돈을 들인 소치는 대회 이후 어찌 될까?’ 하는 거였다. 내가 세운 평창올림픽 준비의 원칙과 방향성은 세 가지다. 하지 않아도 될 일엔 과다한 투입을 삼가는 것, 그러나 꼭 해야 할 일은 확실한 투입을 통해 제대로 할 것, 가장 한국적이고 평창답게 대회를 개최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양(量)과 외관에 치우치지 않는 대신 질(質)과 내실을 중시하겠다는 것이다. ‘새로운(new) 러시아’ ‘열린(open) 러시아’ ‘위대한(great) 러시아’를 표방하면서 물량을 쏟아 부은 소치대회가 러시아의 국가 마케팅에 기여한 건 사실이지만, 평창은 다른 방식으로도 국가 마케팅에 성공할 수 있다. 굳이 소치와 비교할 필요는 없다.”
▼ 소치대회가 역대 올림픽 사상 최고액인 500억 달러(54조 원)를 투입했다가 후폭풍을 맞게 될 것이란 우려가 많다. 현대경제연구원도 평창올림픽의 고정시설 투자비를 줄이고 시설의 사후 활용방안 계획을 치밀히 준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평창올림픽 예산은 9조6000억 원쯤이다. 소치대회의 6분의 1 수준이다. 여기엔 간선교통망 사업인 원주~강릉 간 고속철도 건설공사 비용 4조2000억 원과 민간투자 유치 비용도 포함된다. 평창올림픽 예산은 조직위 예산과 비조직위 예산으로 나뉜다. 조직위 예산은 조직위가 대회를 조직해 임시시설을 만들고 개·폐회식을 개최하는 등 대회 운영 전반에 관한 일을 하는 데 쓰인다. 2조 원 남짓 들 것 같다. 이는 IOC가 공식 후원사 계약을 맺은 11개 톱 파트너(Top Partner)로부터 받은 지원금을 조직위에 배분해주는 금액과 조직위가 직접 후원사 계약을 맺은 로컬 파트너로부터 받는 금액, 입장권 수입 등을 합쳐 충당할 계획이다. 비조직위 예산은 경기장을 짓고 교통망을 확충하는 데 주로 쓰이는데, 가장 큰 프로젝트가 원주~강릉 간 고속철도 건설이다. 이와 별도로 민간투자를 유치할 미디어빌리지와 선수촌 운영 등에 1조 원쯤 든다. 셋을 다 합치면 9조6000억 원쯤이다. 외신 기자들이 평창올림픽엔 왜 그렇게 돈이 덜 드느냐고 묻는데, 우리는 꼭 필요한 것만 집중적으로 할 것이다. 게다가 소치와 달리 평창은 이미 상당한 시설과 인프라를 갖췄다. 이처럼 평창올림픽은 올림픽 사상 가장 콤팩트하면서도 효율적인 대회를 목표로 한다. 올림픽 관련 시설의 사후 활용방안에 대해선 연구용역을 통해 다양한 활용 계획을 마련 중이다. 큰 방향은, 대부분 민간시설인 설상종목 시설은 스포츠·관광·레저시설로 활용하고 실내경기장은 다목적 실내체육관, 학교체육관, 컨벤션 및 레저 시설 등 시민 활용도가 높은 시설로 전환, 활용하는 것이다.”
올림픽 유치 후 금연
▼ 평창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아시아는 동계스포츠 저변은 약해도 잠재력은 큰 시장이다. 인구가 30억 명을 넘고, 동계스포츠에 대한 관심도도 최근 10여 년 사이에 무척 높아졌다. 1998년 내가 막 강원지사가 됐을 당시만 해도 중국, 일본, 동남아 등지에서 강원도를 찾은 외국 관광객은 23만 명에 불과했다. 3선 연임을 하고 4년 가까이 된 지금은 무려 150만 명에 육박한다. 처음엔 눈 자체를 신기해하던 그들이 이젠 스키를 배운다. 이는 동계올림픽 유치뿐 아니라 관광 차원에서도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잠재력을 일깨워 평창을 아시아에 동계스포츠를 확산시키는 ‘기회의 창’으로 만들자는 게 내 생각이다. 강원도 발전을 위한 지역적 유산, 대한민국을 위한 국가적 유산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올림픽 생각에 푹 빠져든 듯했다. 기자는 그가 강원지사로 있던 시절에도 인터뷰 때문에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헤비 스모커다. 예전엔 인터뷰 도중에도 담배를 피웠는데, 이번엔 전혀 피우지 않는다. 알고 보니 45년 넘게 피우던 담배를 2년 전에 끊었단다. 평소 주변에서 금연을 권하면 “올림픽 유치하면 끊겠다”고 답했는데, 유치 후 1년쯤 지나 결국 실천했다. 그런데 요즘 다시 흡연 욕구가 생겨 껌을 씹곤 한단다. 올림픽 준비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다.
소치대회는 제22회 동계올림픽이다. 제23회인 평창올림픽은 2018년 2월 9일 개막해 25일까지 17일간 열린다. 참가 예상 국가와 인원은 80여 개국, 2만6000여 명. 선수와 임원이 6000여 명이고, IOC 패밀리, 각국 국가올림픽위원회(NOC)와 국제스포츠 관계자, 보도진 등이 2만여 명이다. 7개 경기 15개 종목에 약 100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고, 설상종목은 평창(알펜시아, 보광, 용평)과 정선(중봉)에서, 빙상종목은 강릉에서 각기 경기가 펼쳐진다. 평창패럴림픽은 3월 9~18일 열린다.
▼ 평창올림픽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은.
“국민은 잘 모르지만, 박 대통령은 예전부터 평창올림픽에 누구보다도 강한 의지를 보였다. 올림픽 유치 선언 때부터 많이 도와주셨다. 내가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던 박 대통령에게 우리나라도 동계올림픽을 유치해야 한다며 도움을 청했는데, 2전3기로 유치에 성공하기까지 단 한 번도 마음을 놓아본 적이 없다고 들었다. 단지 의원 시절이니 그런 노력이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대통령선거 전이던 2011년 1월 한나라당에 평창동계올림픽 유치특별위원회가 구성됐는데, 위원장을 맡은 내가 박 대통령 등 특위 고문을 몇 분 모셨다. 박 대통령으로선 3년 반 만에 처음 맡은 당직이었다. 이후 다른 고문들은 급한 일이 있으면 회의에 불참하기도 했지만, 박 대통령은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만큼 평창올림픽에 대해 잘 알고 열정적이다. 이건 언론에 처음 공개하는 비화다.”
2월 9일(한국시간) 소치 올림픽파크에서 열린 평창하우스 개관식.
▼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위해 기업 역할도 중요하지 않나.
“그래야 하는데, 솔직히 참여도가 생각만큼 못하다. 원인을 따져보겠지만, 아마 한국 기업들이 올림픽 후원사 경험이 별로 없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기업으로선 삼성이 IOC의 무선통신 분야 공식 후원사를 장기간 해봤을 뿐이다. 반면 외국에선 기업 참여도가 아주 높다. 올림픽에 후원사로 참여하는 기업은 자사와 올림픽의 가치를 동시에 제고한다. 윈-윈인 셈이다. 평창조직위는 통신, 은행, 자동차, 의류, 정유, 건설, 항공 등 분야에서 공식 후원사 모집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5월 200여 개 기업의 임직원 300여 명을 초청해 올림픽 스폰서십 설명회도 개최했다. 기업들이 사고를 전환해 적극적으로 참여해줬으면 좋겠다.”
▼ 이번 겨울의 동해안 폭설에서 보듯 기상 악화가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나.
“평창은 2월 평균기온이 -4℃여서 올림픽 기간 중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래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에 대비해 비상대책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 스키점프 3종목 경기장은 전 코스에 최소 70cm 두께의 눈을 준비한다. 이는 기온 상승 및 강우 발생 시 눈이 녹는 시간을 지연시킨다. 예비용으로 5만㎥의 눈도 비축한다. 또한 보강대책으로 -2℃ 이상에서도 제설(製雪) 가능한 장비를 현장에 준비한다. 이런 대책은 패럴림픽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2월 24일(한국시간)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폐회식에서 차기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평창의 이석래 군수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으로부터 올림픽 대회기를 넘겨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렇다. 하지만 일정 변동은 없다. 항간에선 1월에 개최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도 하는데, 세계 어느 국가도 연초부터 올림픽을 개최하는 곳은 없다. 더욱이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결승전인 ‘슈퍼볼’이 2월 초에 열린다. 그런 갖가지 요인과 기후조건 등을 모두 고려해 미리 날짜를 잡은 것이다.”
▼ 평창올림픽에 북한이 선수단을 보내올 가능성은 있다고 보나.
“올림픽 유치 이후 북측과 공식적으로 선수 출전, 남북 협력방안 등을 논의한 건 전혀 없다. 하지만 북한에서도 동계스포츠가 발전하고 선수들이 육성되면 언젠간 동계올림픽에 참가할 것이라 전망한다. 또한 그렇게 되길 기대한다.”
▼ 소치대회 출전 한국 선수들과 개인적 인연이 있나.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우승을 일궈낸 공상정 선수가 2011년 특별귀화를 할 수 있게 적극 도운 일이 있다. 공 선수 아버지가 대만 국적으로 춘천에서 병원을 운영하는데, 한국에서 나고 자란 공 선수는 실력이 월등한데도 대만 국적이라 국가대표가 돼도 국제대회에 나갈 수 없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사연을 전해준 이는 나와 같이 사진동아리 활동을 하는 사진작가 심상만 씨다. 이후 내가 법무부에 특별귀화를 요청했다. 그러곤 한동안 잊었는데, 이번에 시상대에 오르는 걸 보곤 그 정도로 잘하는구나 싶어 깜짝 놀랐다.”
▼ 12년 만에 ‘노메달’에 그친 한국 남자 쇼트트랙 선수들과 ‘살아 있는 쇼트트랙 전설’이 된 안현수(빅토르 안) 선수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겠다.
“안 선수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를 처음 접한 건 2002년이다. 춘천에서 열린 쇼트트랙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 혜성같이 나타난 선수가 그였다. 당시 박성인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이 내게 ‘안현수를 눈여겨보라, 진주 같은 애를 발굴했다’고 말하기에 쇼트트랙 전문가가 아닌 나로선 뭔 소린가 했다. 이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가 밴쿠버 동계올림픽 땐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걸 보고 선수 생명이 그리 오래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러시아로 귀화한 후 이번에 다시 3관왕에 오른 걸 보고 갖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랜드슬램’ 기록 6번째 국가
▼ 소치대회에서 한국은 ‘3회 연속 10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평창올림픽의 선전(善戰)을 이끌 선수층이 두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림픽을 한국적이고 평창답게 잘 치를 순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성공을 가늠할 순 없다. 무엇보다 개최국 선수들이 전 종목 전 경기에 출전하고 성적도 좋아야 한다. 국민도 모든 경기장을 꽉꽉 메워줘야 한다. 이는 평창조직위 힘만으론 안 된다. IOC가 평창조직위에 요구하는 것 중 하나가 선수 육성이다. 회의의 단골 사안 중 하나다. 한국 선수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국제경기연맹도 도울 준비가 돼 있으니 논의하자고 한다. 소치대회에서 가능성을 봤으니 남은 4년이 길진 않지만 노력하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라 본다. 정부와 대한체육회, 각 경기연맹, 기업체 등이 합심해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평창올림픽 준비에 대한 각오는.
“올해가 준비의 고비가 되는 해라고 생각한다. 이젠 연습할 시간도, 시행착오를 겪을 여유도 없다. 따라서 경기장, 교통인프라, 선수촌 등 필수시설들을 제대로 갖추는 데 진력해야 한다. 또한 2조 원에 달하는 대회 운영비를 평창조직위 스스로 마련해야 하므로 마케팅도 매우 중요하다. 문화예술 행사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틀을 짜는 일, 숙박시설의 민자 유치 등도 당면한 현안이다. 이러한 현안들의 조기 해결을 위해 비상한 각오로 매진하겠다.”
▼ 국민에게 하고픈 말은.
“세 번의 도전에도 포기하지 않고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었던 힘은 국민 절대다수의 성원과 지지 덕분이다. ‘신동아’ 지면을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평창올림픽은 우리로선 첫 동계올림픽 개최이자 대한민국 올림픽의 완성이다. 하계대회였던 88서울올림픽 이후 한 세대에 해당하는 30년 만에 개최돼 의미가 매우 깊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일 때 88서울올림픽이 열렸는데, 이젠 평창올림픽을 통해 선진국의 면모를 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 전 국민적 참여를 통해 선진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과 높은 시민의식을 전 세계에 보여주길 희망한다.”
대한민국은 동계올림픽, 하계올림픽, 축구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세계 4대 국제스포츠 행사를 모두 개최하는 이른바 ‘그랜드슬램’을 기록한 6번째 국가다. 동·하계 올림픽을 모두 치르는 아시아 국가로선 일본에 이어 두 번째다.
강원지사 3선을 연임하면서 ‘행정의 달인’으로 불렸던 김 위원장은 그의 바람대로 ‘평창의 꿈’을 세계를 향해 한껏 펼칠 수 있을까. 그가 특유의 뚝심을 발휘한다면,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는 일은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