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호

“세월호 희생자 기념관 만들어야”

美 뉴욕 9·11추모박물관 그린월드 관장

  • 뉴욕=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4-07-22 17: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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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러 희생자 2983명의 삶 기록하고 기려
    • 한국인은 세월호 슬픔 기억할 의무 있어
    “세월호 희생자 기념관 만들어야”

    9·11추모박물관은 9·11테러 사실을 전한 세계 주요 신문 1면을 전시한다. 한국 신문 중엔 ‘동아일보’가 유일하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2001년 9월 11일 오전 알 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은 납치한 두 대의 여객기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충돌시켰다. 미국 경제를 상징하는 두 채의 초고층 빌딩은 무너져내렸고 3000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 희생자를 기리는 미국 국립 9·11 추모박물관(9·11 Memorial Museum)이 5월 21일 문을 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개관의 의미를 역설했다. 이 박물관은 미국 안팎에서 다양한 인문사회 담론을 촉발시켰다. 국내 여러 언론에도 일제히 개관 소식이 보도됐다. 그러나 박물관을 직접 찾아 책임자를 인터뷰한 언론은 없었다.

    끝없이 이어진 줄

    9·11테러는 “미국인의 삶이 9·11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21세기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고, 9·11 추모박물관은 미국이 13년간 온 힘을 기울여 이 사건을 담아낸 핵심 시설이므로, 이곳을 취재해볼 필요가 있었다. 서울에서 이 박물관 앨리스 그린월드(Alice Greenwald) 관장(Director)과의 인터뷰 섭외가 이뤄졌다. 기자는 약속된 날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에 위치한 이 박물관을 찾았다.

    파란 하늘엔 태양이 작열했고 기온은 30도를 넘었다. 이 박물관과 그 옆 추모공원은 인파로 붐볐다. 뉴욕을 찾는 사람들에게 새 명소가 된 듯하다. 이 박물관과 공원은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바로 그 자리인 일명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에 있다. 두 초고층 빌딩이 서 있던 사각형의 두 지점은 물이 지표면 아래로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검고 우아한 인공연못으로 바뀌었다.



    이 거대한 두 연못의 테두리엔 두 빌딩에서 숨진 희생자 전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알파벳 순이 아니라 가족, 친구, 직장 동료로서 서로 가깝게 지낸 순서로 배열돼 있다. 대신 희생자의 지인이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서비스가 제공된다. 행정편의주의를 넘어 숨진 사람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 옆으로 세계무역센터를 대체하는 미국 내 최고층 빌딩인 원 월드트레이드센터(프리덤타워)가 서 있다. 수평의 풀(pool·물을 가둬놓은 공간)과 수직의 초고층 빌딩, 녹색의 나무들과 주변 월가의 고풍스러운 마천루가 조화를 이룬다.

    박물관 앞엔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의 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 들어가려면 두어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 듯싶었다. 이 박물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반영하는 장면이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미국 언론은 “관람객은 추모의 감정을 경험하기에 앞서 땡볕에서 힘든 시련부터 체험하게 된다”고 비꼬기도 했다.

    이 박물관의 홍보 책임자인 앤터니 가이도(Anthony Guido) 씨는 박물관 밖에서 기자를 맞이했다. 기자출입증을 주며 안으로 안내했다. 가이도 씨의 설명을 들으며 박물관 곳곳을 둘러봤다. 9·11테러 사실을 대서특필한 당시 세계 주요 신문들의 1면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전시실도 있었다. 가이도 씨는 “한국 신문으로는 ‘동아일보’ 1면만 유일하게 소개했다”고 말했다.

    “박물관 자리 자체가 진품”

    그린월드 관장과는 50분 정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물관 근무 경력이 30년 이상이라는 그린월드 관장은 9·11 추모박물관 건립 계획 단계이던 2006년부터 이 박물관 관장 직을 맡았다. 전시물 수집, 디스플레이, 관람 프로그램 개발, 행정, 희생자 유가족과의 협의 등 거의 모든 업무를 주도해왔다고 한다. 그녀는 “박물관들이 그렇듯, 이 박물관은 진실에 관한 어떤 것이다. 이 박물관이 자리한 곳 자체가 진품(테러사건 현장)”이라고 말했다.

    ▼ 사람들은 이 박물관에 대해 “매우 오랫동안 기다려온 박물관”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기억하려 할 때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박물관이나 기념관을 짓는 것이죠. 그러나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립니다. 저는 워싱턴DC에 있는 미국 홀로코스트 박물관(독일에 의한 유대인 집단학살 희생자를 추모하는 박물관)에서 부관장으로 일한 적이 있어요. 그 박물관은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건립을 승인한 지 14년이 지난 1993년에야 문을 열었죠. 박물관 설립자들은 유대인 학살을 반세기에 걸쳐 다룬 수많은 역사서와 자료를 참고해야 했어요.”

    “세월호 희생자 기념관 만들어야”

    박물관 안에서 포즈를 취한 앨리스 그린월드 관장.

    ▼ 반면, 다른 어떤 사람들은 “9·11테러 현장에 박물관을 세우기엔 시기가 이르다. 9·11은 아직 진행 중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 견해도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솔직하게 답변하고 싶어요. 맞아요. 9·11의 역사는 지금도 쓰여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일로부터 바른 해석을 내려줄 그런 박물관을 열 위치에 있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모르니까요. 9·11이 왜 일어났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아직 잘 몰라요.”

    ▼ 미국의 몇몇 언론은 “이 박물관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하더군요.

    “몇 년 전까지 이곳은 6만4736㎡의 면적에 지하 7층 깊이인 거대한 구멍이었습니다. 지금은 무너진 두 타워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두 개의 풀과 공원이 있습니다. 매우 자연친화적인 방식으로 꾸며졌어요. 그리고 박물관을 만들었습니다. 9·11을 느끼고 기억할 안전한 장소를 사람들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정표라고 하는 것 같아요.”

    ▼ 방문할 가치가 있다고 보나요? (웃음)

    “그러길 바라죠. 물론. (웃음)”

    ▼ 구체적으로 볼만한 게 무엇인지….

    “우리는 추모 전시실과 역사 전시실을 마련했어요. 전자와 관련해, 9·11 당시 살해당한 사람들은 군인이 아니었죠. 아침에 출근해 커피 한잔 하던 사람들, 평소처럼 일하던 사람들, 휴가차 가족과 함께 비행기를 탄 사람들, 비즈니스 목적으로 출장을 가던 사람들…. 이들은 나이가 2세부터 85세까지였고 90개국에서 왔어요. 이 박물관의 임무는 당시 희생된 평범한 사람들을 추모하고 영예를 기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계층에 있든 어떤 문화권에 있든 아무 죄 없이 학살된 희생자들을 기려야 할 도덕적 의무를 가지고 있어요. 남측 빌딩 터의 지하에 조성된 추모 전시실은 9·11테러와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테러의 희생자 2983명이 어떻게 죽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줍니다. 북측 빌딩 터의 지하에 조성된 역사 전시실은 그날의 공격 상황, 이후의 사건 전개를 조사해 보여줍니다.”

    전시실엔 희생자 전원의 사진과 이름을 보여주는 ‘얼굴의 벽(Wall of Faces)’이 있다. 희생자 대부분은 환하게 웃는 모습이다. ‘선하게 보이는 이 사람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감정적 펀치를 관람객은 마음속으로 느끼게 된다.

    화재로 일그러진 세계무역센터라고 적힌 간판, 불에 타고 망가진 경찰차·앰뷸런스, 너덜너덜해진 고가 사다리 소방차, 녹슨 빌딩 철골구조물, 생존자 수백 명이 빠져나올 때 사용한 계단, 잔해에서 발견된 희생자의 유품이 관람객을 당시의 처참한 현장으로 이끈다. 당시 테러 상황을 긴박하게 전하는 텔레비전 뉴스 보도, 당국의 교신 내용, 희생자와 가족 간 대화내용 등 580시간 분량의 영상 기록과 1995건의 음성 기록도 함께 전시돼 있다. 관람객은 이들 1만2500여 점의 전시물을 지켜보면서 마치 2001년 9월 11일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린월드 관장은 “이 박물관은 월요일 아침 이집트의 어떤 남자가 한 일이 월요일 오후 뉴욕에서 어떤 일을 발생시키는지를 일깨워준다”고 말한다. 이어 “모든 지점이 서로 연결되는 지구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평화적으로 잘살 수 있는 건설적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한다”고 덧붙인다.

    이름들에서 빛이 나오고…

    ▼ 9·11의 렌즈로 보는 세계인가요?

    “모든 박물관은 각자의 특별한 사건에 대해 말하죠. 또 그 사건이 발생한 시간과 장소에 대해서도요. 9·11은 매우 특별하고 구체적이죠. 동시에 인간 본성의 근원과 연결됩니다. 이 박물관으로부터 우리가 배우는 것은 악마에 맞설 능력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는 점이죠. 인류가 비정상적 능력을 가졌다는 점을 9·11은 증명해요. 공감하고, 책임을 느끼고,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헌신하고, 옳은 일을 하는 능력 말입니다. 사건의 한가운데에서 혹은 사건 직후에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나요’ ‘내가 어떻게 도와야 하나요’라고 계속 말하며 복구에 헌신하는 모습을 이 박물관은 보여주죠. 함께할 때 세상은 더 좋아집니다. 이 박물관의 궁극적 메시지는 이러한 인간의 능력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 풀에 새겨진 희생자들의 이름을 봤는데요. 이 이름들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우리가 그 풀을 볼 때 그들은 거기에 없어요.”

    ▼ 일종의 부존재감(a sense of loss or absence)?

    “바로 그거예요. 영원한 상실에 관한 것이죠. 공원 이름도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입니다. 누군가는 그 풀을 보며 부재의 부정적인 공간으로 느끼겠죠. 그러나 밤에 빛이 문자 그대로 그 이름들 속에서 나와요. 그 이름들을 기억하고 영예를 주는 것이죠. 우리는 역사를 나누고 죽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이 박물관 이전에 사람들은 희생자 하나하나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지만 이 박물관 이후엔 압니다.”

    “세월호 희생자 기념관 만들어야”

    9·11테러 희생자들의 생전 모습을 보여주는 ‘얼굴의 벽’(위) 붕괴된 세계무역센터 두 빌딩 자리는 추모의 연못으로 바뀌었다.(아래)

    사람들은 2983명의 죽음 위에 세워진 이 특별한 박물관에서 마치 어제 일처럼 사건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고 각각의 특별한 삶을 산 희생자들의 부재를 더 절감할 수 있으며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지구촌 세계의 현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이 박물관이 감정적으로 9·11에 몰입하게 만든다고 본다. 대신 냉정하고 이성적인 비평은 잠시 유보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대학교수는 “이 박물관은 미국 정부가 알 카에다의 성장을 도왔다는 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다른 일부 사람들은 “사건의 당사자임에도 어느 정도 보편적 시각으로 9·11을 다루려 노력한 것 같다”고 평한다. 이어지는 그린월드 관장과의 대화다.

    ▼ 관람객의 관점에선, 무엇이 가장 가슴에 와 닿는 전시물일까요?

    “사람마다 전시물에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 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 같아요. 한번에 45명이 들어가는 방이 있어요. 여기선 희생자 가족, 끔찍한 경험을 한 생존자, 철거와 복구에 나선 사람을 인터뷰한 10분짜리 영상이 상영됩니다. 이들의 경험담은 사람들이 9·11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죠.”

    ▼ 이 박물관은 여러 유형의 수많은 수집품을 통해 9·11에 관한 스토리를 말해주는 것 같네요. 이런 것들을 어떻게 수집했나요?

    “당국과 빌딩 관계자들은 잔해를 보존하기로 했어요. 왜 빌딩이 무너졌는지를 과학적으로 조사하는 데 필요했기 때문이죠. 이것은 박물관에 전시할만한 의미 있는 물건을 확보할 굉장한 기회가 됐어요. 우리는 2006년부터 유가족, 생존자, 사고 당시 활동한 관계자들로부터 9·11 관련 소장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물품들이 스토리를 말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니까. 또 이런 일을 도와줄 파트너도 갖게 됐고요.”

    ▼ 그 파트너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나요?

    “9·11헌사회(9·11 Tribute Center), 화요일의 아이들(Tuesday‘s Children), 9·11의 목소리(Voice of September 11th) 같은 조직인데 희생자 가족이 설립했어요. 이분들은 희생자의 소장품을 저희에게 기꺼이 기부했죠. 이들 중 일부는 저희 박물관 조직에 참여하거나 관람객 가이드로도 활동해요. 우리는 희생자 가족과 협력하려고 굉장히 노력해왔어요.”

    9·11 추모박물관은 비정부기구인 9·11추모재단이 건립했으며 일부 공적 자금이 들어갔다고 한다. 그린월드 관장에 따르면 이 박물관은 희생자 2983명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기린다. 또 희생자 가족과의 소통으로 내실을 다졌다. 이런 모습은 세월호 사건을 겪은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기억의 의무

    ▼ 세월호 침몰 사고를 들어봤나요?

    “네. 수많은 학생과 교사가 목숨을 잃은 끔찍한 사고죠. 세월호 사고와 9·11 테러는 모두 비극입니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 가족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황을 받아들이기 매우 힘들 겁니다. 이들은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전혀 몰랐을 거예요.”

    ▼ 한국인도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추모기념관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네. 내 생각엔 그렇게 하는 건 매우 중요해요.”

    ▼ 왜 그런가요?

    “무엇보다, 한국인에겐 그 수백 명의 억울한 희생자를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근원적 요구입니다. 희생자를 기려야 할 다른 이유도 있어요. 거기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하니까요. 직업윤리와 안전의 문제에선 철저하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환기하는 교육적 효과가 크다고 봐요. ‘아이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일은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라고 사람들이 늘 생각할 수 있도록…. 기념관을 안 지을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겠어요.”

    미국인은 ‘미국 땅에서 늘 풍요롭고 안전한 삶을 누릴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낙관적 세계관은 종말을 고했다. 인간의 악마성과 이타성은 동시에 목격됐다. 세월호 사건으로 우리도 비슷한 체험을 했다.

    9·11 추모박물관이 개관한 지 한 달여 만에 30만 명이 이 박물관을 찾았다. 이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9·11과 세월호 사건은 우리에게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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