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17일 여야 대표와 청남대 골프장을 찾은 노무현 대통령이 티샷을 하고 있다.
지난 4월10일 이용섭(李庸燮) 국세청장은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세청장 재임 중에는 절대로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공언(公言)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 아침 간부회의에서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했고 직원들도 내 뜻을 헤아릴 것이기 때문에 국세청에서 골프문화가 자연스레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외부 청탁을 받아 골프장 부킹(예약)을 부탁하는 국세청 공무원은 인사조치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청장은 이와 함께 “국세청장으로 있는 동안에는 친구와도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골프와의 단절을 선언했다.
이틀 전(4월8일), 국세청이 “기업체 임직원이 룸살롱이나 골프장에서 접대할 경우 회사 접대비용으로 처리해주지 않겠다”고 발표한 직후라 이같은 ‘깜짝 선언’은 공직자 사이에서 “새 정부가 골프를 아예 못 치게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참여정부의 ‘골프 불가’ 방침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청장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11일, 청와대 일부 참모들은 이 문제를 놓고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노대통령의 생각을 잘못 읽은 국세청장이 ‘오버’했다”고 입을 모았다. 참모들은 “이청장의 느닷없는 ‘골프 결별’ 발언이 자칫 새 정부의 ‘골프 금지령’으로 비쳐질 수 있다”며 “청와대 생각이 그렇지 않다는 신호를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강하게 제기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두 가지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한 쪽은 이청장의 말을 청와대에서 뒤집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핵심 경제주체이며 권력기관장인 국세청장의 ‘사심 없는’ 선언이 노무현 코드를 잘못 읽은 점은 있지만 면전에서 무안을 주기는 그렇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동시에 흘러 나왔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조용히 있다가 대통령이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비서관은 “국세청장이 골프를 하고 안 하고는 개인의 자유지만 기자간담회까지 하면서 신문에 나도록 한 것은 진짜 ‘오버’한 것”이라며 “이청장이 청와대 코드(code)에 맞추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대통령의 코드를 전혀 모르고 한 처사”라고 잘라 말했다.
청와대의 한 386 핵심 참모는 “최근 대통령이 청남대 가서 골프 치고 태릉 골프장에서 참모들과 라운딩을 한 것은 ‘골프 금지령’이 내려진 게 아니라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골프’는 이처럼 세간의 오해를 추스르기 위해 사전에 철저히 기획된 청와대의 의도된(?) 작품이었다.
청남대 골프 전말
국세청장의 골프 결별선언이 있은 지 6일 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골프를 좀 하겠다”며 공개적으로 운을 뗀다. 4월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한일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관람하던 중 전반전이 끝나고 난 뒤였다. 정몽준(鄭夢準) 대한축구협회장, 가와부치 사부로(川淵三郞) 일본축구협회장 등과 환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골프가 화제에 올랐다.
가와부치 회장은 노대통령에게 “자동차만 타고 다니기 때문에 운동이 부족하기 쉬운데, 골프를 하시느냐”고 묻자 노대통령은 “배우는 중이다. 골프를 좀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평소 골프를 즐기는 정대표도 노대통령에게 “골프를 하셔야죠.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도 골프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 미국에 가면 같이 치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이에 노대통령은 “이번에는 일정이 그렇게 안 될 것 같다”고 답했다.
이날 골프를 화제로 한 대화는 언론에 보도되면서 ‘대통령이 곧 골프를 치겠구나’ 하는 암시를 주기에 충분했다. 노대통령은 지난해 3월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이후 잠시 골프를 접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