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8월15일 현대비자금 수수와 관련,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법원에 출두한 권노갑씨.
검찰에 따르면 권씨는 현대측으로부터 200억원 외에 3000만달러(당시 환율로 약 400억원)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중 기소가 된 것은 200억원 부분이다. 도합 600억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쪽과 한푼도 받지 않았다고 부인하는 쪽의 거리는 아득하기만 하다.
권씨 주장과 별개로 이 사건 전개과정에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돈을 줬다는 진술은 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물증이 부족한 탓이다. 죽은 자(정몽헌)와 해외로 달아난 자(김영완)의 주장을 근거로 삼은 검찰의 기소는 그다지 탄탄해 뵈지 않는다. 또 둘 사이에 끼여 있는 이익치씨는 진술의 일관성 부족과 말 바꾸기로 신뢰성을 의심받고 있으며 돈 전달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서도 기소되지 않아 눈총을 받고 있다. 세 사람의 진술은, 몸통은 같지만 줄기는 제각각이다.
그렇긴 해도 권씨의 무죄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기엔 세 사람의 진술이 매우 구체적이다. 비록 허위진술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도 있지만 현대비자금이 고 정몽헌 회장 지시로 김영완씨를 거쳐 권노갑씨에게 건네졌다는 대전제에서만큼은 세 사람의 진술이 일치한다. 또 한 가지 꿰맞추거나 지어냈다고 보기엔 ‘덩치(돈 액수)’가 너무 크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1심 결심이 있은 지 며칠 후 수감중인 권씨의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권씨는 이날 지인인 모 면회객을 반갑게 맞았다. 푸른색 방한 죄수복을 입은 그는 비교적 건강해 보였다. 말이나 행동에 부자연스러움이 없었다. 얼굴 혈색도 좋아보였다. 하지만 지병인 당뇨가 여전하고 발이 붓는 증세가 심하다고 했다. 양볼 가장자리와 턱에는 산신령에게서나 볼 수 있는 흰 수염이 뒤덮여 있었다. 손이 시린지 검은색 장갑을 끼고 있었다.
권씨는 “억울해 죽겠어요”라는 말로 얘기를 시작했다.
“검찰에서 나를 세 번째 죽이려 해요. (지난해) 7월2일 진승현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난 다음 7월12일 엉뚱하게도 월드컵 휘장 사건에 나를 또 엮어 넣었잖아요. 관광협회장 김재기를 구속해 나한테 1억원을 줬다는 진술을 강요해서는. 그런데 그것도 재판에서 무죄로 판명됐잖여.”
권씨는 가슴에 한이 맺힌 듯 자신의 옥살이 경력을 끄집어냈다. 박정희 정권 때 DJ의 최측근이라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의 정치공작에 의해 몇 차례 구속됐던 일을 회상할 때는 감회가 깊은 듯 눈가가 젖어들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돈 문제와 관련해 내게 특별히 당부하신 말씀이 있어요. ‘자네는 돈 관리를 하기 때문에 자네가 잘못되면 내가 죽어. 자네가 잘해줘야 돼. 첫째는 무얼 부탁하면서 주는 돈은 받지 마. 또 부탁을 해결해준 후 사례금을 받지 마.’ 그리고 둘째는 용공색채가 있는 사람한테는 받지 말라는 거였어요. 용공분자로 몰린다고. 그것만 걸리면 당신(DJ)의 정치생명이 끝난다며. 그동안 정치하면서 그 말씀을 철칙으로 여기고 살아왔어요.”
김영완이 넥타이 선물
권씨는 한보사건과 관련해서도 억울하다는 심정을 내비쳤다. 선거를 앞두고 받은 정치자금이므로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아 뇌물죄가 성립되지 않자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해 옭아맸다는 것이다. 1998년 1월 그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리고 그해 5월경 정몽헌 회장이 그의 집을 찾아 왔다.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병 때문에 형집행정지로 나온 후 병원에 좀 있다가 집에서 요양하고 있었어요. 당시 8·15 사면복권 대상이 되느니 마느니 해서 심란했고, 또 사면되면 일본 가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집에서 그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나한테 무슨 청탁을….”
-그때 정몽헌 회장이 찾아왔다는 거죠?
“5월엔가 우리 집에 왔었어요. 그런데 카지노 얘기를 할 경황이 없었지. 집에서 요양하고 있을 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