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을 놀라게 한 노 후보의 대역전 승리는 어디에 기인하는가? 여러 가지 효과적인 선거전략이 동원됐고, 이것이 적중한 덕분이다. 그 중에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이 제몫을 다했을까? 노 후보 진영은 대중의 심리를 파고드는 대중적 정서 캠페인에 치중했다. 예컨대 부산 자갈치 아지매가 찬조연설을 해서 노 후보가 국민의 아픔을 이해하고 이들의 대변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무엇보다 노 후보 진영은 이회창 후보와 차별화하는 전략을 세웠다. 이 후보가 상류층 가정의, 소위 KS마크로 통하는 일류학교 출신, 대법관과 총리를 역임한 고위권력층인 데 비해 노 후보는 가난한 농촌 출신, 별 볼일 없는 학력의 소유자임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차별화 전략을 통해 대중은 이 후보보다 노 후보에게 친근감을 가졌고, 나아가 동정심과 연민까지 품게 됐다. 부산상고를 졸업했으나 첫 취업에 실패했던 그는 와신상담 끝에 고시에 합격해 인생을 대역전시켰다. 코리안 드림의 주인공으로 노 후보의 트레이드 마크가 결정됐다.
노 후보의 선거광고 중 압권은 그가 파란만장한 인생을 회고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TV광고 장면이다. 이 광고를 시청한 일반 대중, 특히 서민들은 가슴이 미어졌고 노 후보에 대한 연민에 목이 메었다. 마치 모세가 홍해바다를 갈라놓듯, 2분여의 이 TV광고가 50만표의 향방을 갈랐던 것이다.
물론 노 후보의 눈물은 탤런트들이 최루성 드라마를 녹화할 때 안약을 넣어 억지로 짜낸 가짜 눈물과 다르다. 그의 인생살이 자체가 눈물바다였기에 선거용 광고에서 내비친 눈물은 순도 100%의 진짜 눈물이다. 그가 대통령당선자로 결정된 이후 여러 공식석상에서 흘린 눈물도 연기를 위해 짜낸 것이 아닌 진짜 눈물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노 대통령이 너무 자주 눈물을 흘린다, 그것은 자연발생적이 아닌 연기다”라고 수군거린다. 이제 노 대통령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눈물을 흘렸기에 이 같은 국민적 의문이 싹트게 됐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落淚…落淚…落淚
2003년 1월31일 SBS TV의 ‘좋은 아침’ 프로그램에 대통령당선자 신분으로 노무현 부부가 출연했다. 노 당선자는 사법시험 합격 당시를 회상하면서 “사법시험에 합격하자 평소 자존심 때문에 나에게 몸을 기대지 않던 부인이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약한 모습을 보였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 눈물 역시 선거 때의 TV광고처럼 순수한 것이었고 여기엔 아무런 정치적 동기가 없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노 당선자는 다시 한번 국민의 가슴속에 따뜻한 인물로 각인되는 효과를 얻었다. 특히 그가 이제는 영부인이지만 당시 한낱 농촌 처녀였던 권양숙씨를 짝사랑하고 애태웠던 연애추억담을 토로했을 때 시청자들은 노 당선자의 애틋한 인간미를 곱씹을 수 있었다.
노 당선자는 인생 길이 평탄치 않았기에 인생의 고비고비에서 적잖이 눈물을 머금었을 것이다. 그 결과 노 당선자는 자주 감상에 젖고, 쉬이 눈물을 흘리는 정서적 성격의 소유자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성격과 감상적 행동을 탓할 수는 없다. 더구나 지금까지 그가 흘린 눈물을 정치적 술책의 하나라고 간주할 하등의 근거도 없다. 그러나 이후에도 노 대통령은 여러 공개석상에서 눈물을 흘렸는데, 이것이 바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2003년 12월19일 리멤버1219 행사를 여의도광장에서 가졌다. 이 행사는 바로 역전 드라마를 연출한 2002년 12월19일 대선 개표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이른바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 주축이 된 행사인데 노 대통령은 이들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 배경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노 대통령은 선거시절 노사모에게 자신이 당선되면 그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삼겹살을 대접하겠노라고 약속했는데 아직 이를 이행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낙루(落淚)했다. 이에 감읍한 노사모들은 “괜찮아요. 삼겹살 매일 먹어요”라고 열광적으로 소리쳐 답례했다. 그리고 곧바로 노사모들은 대통령의 눈물에 크게 감동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두 사례만 인용해보자.
‘석송’이란 아이디의 노사모 회원은 “우리들 앞에서 ‘노짱(노 대통령의 별명)’이 두 뺨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는 순간 나는 그대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이 글을 쓰는 지금도 멈출 수 없는 내 눈물은 그날의 못다 흘린 눈물”이라고 했다. ‘윤이다’라는 노사모 회원은 “대통령은 제대로 된 정치를 국민에게 선사하고 싶기에 눈물을 흘린 것”이라며 “더 이상 노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고 싶다. 이제 나부터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의 낙루는 다시 한번 국민의 심금을 울리고 특히 노사모의 지지를 담보하는 위력을 발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