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지사의 자살소식을 접하고 오열하는 어머니와 여동생. 배경은 5월3일 광주도청 앞에서 치러진 영결식.
하지만 박 지사의 경우 몇 가지 점에서 앞선 이들과 차이가 있다. 정 의장과 안 전 시장은 자살직전 유서를 남겼고, 남 전 사장은 유서를 쓰지는 않았지만 변호사에게 자살의 뜻을 전했다. 반면 박 지사는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한강에 투신하기 직전까지도 함께 있던 측근들조차 아무런 낌새를 채지 못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박 지사는 4월27일과 28일 이틀간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후 사건 당일 오전까지도 변호사 및 측근들과 함께 검찰 조사에 대한 대책을 숙의하는 등 나름의 준비를 해오던 터였다. 하루이틀 정도 밤을 새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해서 쓰러질 정도로 허약한 체력도 아니었다. 전남 도정(道政)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미래를 던질 만큼 깊은 애정도 갖고 있던 터였다.
때문에 주변 관계자들 중 박 지사가 검찰 수사로 인한 심리적 압박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 임직원이 자신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에서 느낀 배신감 때문에 목숨을 버렸다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박 지사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던 것일까.
검찰과 결코 협상할 수 없다
먼저 박 지사의 측근과 변호사 등의 기억을 바탕으로 사건 당일로 거슬러 올라가 그날 아침부터 자살하기까지의 상황을 재구성해봤다. 취재과정에서 박 지사의 자살사건에 대한 일부 언론의 보도내용이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틀린 것으로 확인됐다. 일례로 박 지사가 투신한 곳은 반포대교 남단에서 북단방향이 아닌 북단에서 남단으로 향하는 중간 지점이었다. 알려진 것과는 정반대방향이었던 것.
4월29일 아침 7시30분경,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자택을 나선 박태영 지사는 초췌한 모습으로 승용차에 올라탔다. 이틀째 13~14시간의 강도 높은 검찰 조사를 받은 데다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탓이다. 이날도 오전 11시까지 검찰에 출두할 예정이었다.
동부이촌동을 빠져나온 박 지사의 차는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뒤편 팔레스호텔로 향했다. 오전 8시에 담당 변호사와 측근들과 함께 모여 검찰 조사에 대한 대책을 숙의하기로 약속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호텔 일식당에 모인 이는 박 지사와 그의 변호를 맡은 이종찬 권오영 변호사, 박 지사의 친척인 또 다른 변호사 한 명, 박 지사의 친구, 정창욱 전남도청 종합민원실장 등 모두 6명이었다. 정 실장은 박 지사를 13년간 보좌해온 최측근.
이날 모임배경에 대한 정 실장의 기억이다.
“전날 지사님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검찰 쪽에서 ‘일부 시인하면 어떻겠느냐’는 말이 흘러나왔어요. 밤 12시쯤 조사를 받고 나오는 지사님에게 그런 내용을 보고했더니 ‘죄가 없는데 어떻게 시인할 수 있느냐. 시인하면 그 사람들하고 공모했다는 게 되는데’라며 불쾌해하셨죠.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변호사들과 조찬 겸 약속을 잡아놨으니 그때 상의해보자고 말씀드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날 아침 모임에 참석한 변호사 세 사람의 의견은 모두 달랐다. “어차피 기소될 것이니까 (불구속 기소를 조건으로) 일부 시인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과 “사실대로 해야 한다. 나중에 법정에 가서 진위를 따지는 것이 옳지, 검찰과 협상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검찰측과 대화통로를 열어놓고 있던 권오영 변호사는 협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권 변호사는 ‘혹시 검찰의 기소내용 자체가 입증될지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검찰측에 박 지사의 ‘자수서’를 제출해놓은 상태였다. 일부 언론에서는 ‘자수서’ 제출사실만 가지고 박 지사가 검찰에서 자백하기로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권 변호사는 “자수서는 자백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이번 경우엔 다분히 형식적인 것이었어요. 만일의 경우 박 지사의 혐의사실이 입증된다면 자수에 따른 감형을 받기 위해 사전 조치해놓은 것일 뿐이죠. 자수서 내용을 보더라도 알 수 있어요. 그 내용은 혐의사실을 전면 부인하는 것이거든요”라고 말했다.
이날 아침 회의에서도 권 변호사는 여러 차례 박 지사에게 “인정할 게 있습니까”라고 물었으나, 박 지사는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회의 도중에는 간간이 건보 임직원들을 성토해 강한 ‘배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