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혁신위 김병준 위원장(왼쪽)이 2003년 4월 청와대에서 열린 정부혁신 국정과제회의에서 밝게 웃고 있다.
혁신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정부조직개편의 원칙과 방향이 각 부처간 통폐합보다는 기능조정 중심으로 바뀌면서 당초 예상과 달리 소폭에 그칠 전망이다.
혁신위 한 관계자는 “정부조직이 대폭 개편될 것 같지는 않다. 필요에 따라 부문별로 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최근 정부조직개편과 관련해 언론에 나온 보도내용들은 대부분 이해관계가 달려있는 부처에서 전략적으로 흘린 내용이다. 그건 본인들의 희망사항일 것”이라면서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말했다.
혁신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 5월12일을 기점으로 행정개혁전문위원회 1기가 끝나고 2기가 시작됐다”고 전하면서 “이번 정부의 조직개편은 과거 정권처럼 일괄타결 방식으로 하지 않고 하나씩 부문별로 정리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발언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정부조직개편은 과거 김영삼, 김대중 정부 때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던 작업이다. 김영삼 정부 때는 비공개로 은밀하게 준비해서 전격적으로 단행했고, 김대중 정부 때는 공론을 거쳐 일괄타결하는 방식으로 각 부처의 반발을 최소화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과거 정부와는 달리 각 부처의 의견을 듣고 충분한 자기방어의 기회를 부여한 후 단계별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침은 여러 가지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그동안 현 정부가 거듭 천명한 정부조직개편 방침은 “정치적으로 타협하지 않고, 합리성을 가장 우선적인 원칙으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씩 부문별로 정리해가는 과정에서 과연 정치적으로 타협하지 않고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원칙만 지켜진다면 가장 합리적인 정부조직개편이 가능하겠지만, 만일 정치적 타협이 불가피하다면 일괄타결보다 오히려 더 많이 훼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눈치 보는 혁신위
혁신위에 전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 교수는 “혁신위 안이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당정협의과정에서 바뀌고, 국회에 법안이 상정된 이후에 여야합의 과정에서 또다시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조금씩 부문별로 조직개편을 진행할 경우 협상의 여지가 협소하기 때문에 원안의 훼손정도는 더욱 심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아직까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라고 말했다.
이런 연유로 혁신위나 행정개혁전문위원, 정부조직개편작업에 참여했던 교수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렇다 할 조직개편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아무리 사소한 내용이라도 구체적인 언급은 꺼리고 있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보면 혁신위의 정부조직개편안이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혁신위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4월부터다. 처음 몇 달 동안은 로드맵을 만들었고, 지난 연말까지 각 부처별 기능진단을 거쳐 조정 작업을 마쳤다. 혁신위는 또 각 부처별로 자체 혁신안을 제출받아 분야별 전문가들을 통해 검토작업도 끝마쳤다. 그 작업의 일환이 올해 초 한국행정학회에서 용역을 받아 정리한 ‘정부조직개편안 연구보고서’다.
행정학회의 보고서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다뤘다. 혁신위는 이를 기초로 부총리제, 복수차관제, 대부처제, 현상유지제 등의 큰 틀에서 시작해 각 부처 기능별 조정가능성까지 세밀하게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개편안도 그중 하나다. 혁신위 내에서는 과기부총리제를 놓고 한동안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혁신위 내부 논의과정에서는 부총리제 자체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도 있었지만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위는 결국 “국가과학기술 담당 부서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위상확보가 필요하다는 데는 크게 이견이 없다”는 선에서 합의점을 찾았다. 이는 결국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등 3개 부처간 조정에서 과기부총리 중심으로의 재편 가능성을 높인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혁신위의 논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편 혁신위는 노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발언 하나하나에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노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곧 정부조직개편으로 이어진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 3월 통과된 정부조직개편안 중 보건복지부에서 여성부로 보육기능이 이관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중순 노 대통령과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만난 자리에서 보육기능을 여성부로 이관해 달라는 요청에 대해 노 대통령이 ‘한번 검토해보겠다’고 한 대답은 결국 조직개편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