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호 기<br>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실용주의를 내세우지만, 이번 총선을 통해 의석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과정에서 이 사람도 들어오고 저 사람도 들어오고 하다보니까 ‘어떻게 하면 국민에게 집권당으로서 좀더 온화하고 안정적인 이미지를 줄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가 그런 표현이라고 봅니다.
김 :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민주노동당이 현재 제시하는 진보적 프로그램의 실현가능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유권자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 : 부유세만 봐도 그렇습니다. 부유세가 결코 특별한 얘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웬만한 학자들은 다 압니다. 예를 들어 이미 여러 나라가 부유세 혹은 부유층에 대한 누진과세 제도를 채택하고 있지 않습니까? 일부에서는 부유세 도입에 대한 반대하기 위해 독일 등 몇 나라에서 (부유세를) 최근에 폐지했거나 앞으로 폐지할 예정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이 나라들은 이미 누진세와 부유세를 통해서 분배 위주의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런 정책이 필요없는 겁니다.
각 당이 모두 사회복지를 주장하면서 그 돈을 어디서 가져올 것이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방비를 줄이든 아니면 다른 데서 세원을 창출하든 해야 하는 겁니다. 누진과세나 탈루세액 환수를 이야기하지만 그건 이미 수십 년 동안 관료와 학자, 시민단체들이 이야기해온 내용입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벌써 이루어졌겠죠.
김 : 사회학자들이 보기에 동아시아 국가들은 보수주의를 추진하기에 유리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사실 강력한 유교문화 영향 아래에 있는 한국인이나 중국인, 일본인은 기질적으로 보수적인 편이죠. 그런데 지난 10여년간 우리 사회를 보면 한나라당처럼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이 이런 조건을 크게 활용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박정희 모델’을 넘어서야 하는데 여전히 과거의 독재 모델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냉혹한 시장경제만을 강조해 국민으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원 : 저는 민주노동당이든 열린우리당이든 한나라당이든 앞으로 생산적인 정책경쟁을 하려면 우리나라를 어떤 국가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 명확한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나라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주축으로 하고 통일도 이 연장선상에서 이룰 것입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성장과 분배가 모두 악화되는 상황에서 중산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강력한 성장 동력을 다시 일으켜야 합니다. 그래서 실업문제도 극복하고 분배문제 역시, ‘빈곤의 분배’가 아니라 ‘풍요의 분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도 부유세 도입에 찬성합니다. 하지만 부자에게 벌금 내라는 식의 부유세라면 곤란하다는 것이죠. 실제로 돈 벌 사람을 죽여놓고 어디 가서 돈을 벌어옵니까? 민노당 쪽에서 사회복지 재원을 어디서 끌어올 것이냐고 묻지만 그 재원은 결국 우리 GNP에서 나오는 겁니다.
김 : 이제 본격적인 논쟁구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군요. 한나라당은 민주노동당의 노선이나 정책에 대해 어떤 ‘의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봐야겠죠?
원 : 경제성장에 대해서 민주노동당은 어떤 패키지를 제시하는 겁니까? 경제성장을 추진하면서 부유세도 물리고 조세부담도 늘리겠다는 건가요? 부유세라는 게 별 겁니까? 어차피 조세가 부의 분배에 중요하고도 유일한 수단이나 다름없는데 이러한 부분을 늘리는 것은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편을 가르기보다는 일단 어떻게 성장시킬 것이냐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민주노동당이 ‘어떤’ 나라를 만들려는 것인가를 보다 명쾌하게 밝혀야 합니다.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개혁이니 실용이니 하는 것은 모두 방법론입니다.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인지가 빠져 있어요. 아까 송영길 의원이 말씀하신 것처럼 시장경제의 활력을 우리 경제의 최대동력으로 쓰면서 시장 실패로 인한 경제적 약자들을 사회안전망을 통해 흡수하겠다고 한다면, 한나라당이 추구하는 사회상과 다를 게 없습니다. 열린우리당 내부에 여러 가지 경향이 섞여있기 때문에 저희들도 혼돈스럽습니다. 하지만 반(反)기업적인 경향, 탈(脫)이익적인 성향을 통해서 국민의 지지를 얻어나가는 정치적 기술만 계속 구사한다면, 열린우리당이 아무리 ‘글로벌 10’ 진입이니 2만달러 시대 또는 동북아중심국가니 하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것은 정치적 구호에 그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열린우리당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