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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신당’ 실체와 파워

2위 내줘 동력 급감… 한나라 내분이 한 가닥 희망

‘이회창 신당’ 실체와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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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 출마설이 나돌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지만, 그는 결국 대선에 뛰어들었다. 한때 20% 중반의 지지율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정도(正道)가 아니라며 선을 그었고, BBK 검찰 수사발표는 이명박 당선자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그리고 12월19일 이 전 총재는 초라한 성적표를 얻는 데 그쳤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두 달여 대선 행보와 향후 행로를 짚어봤다.
‘이회창 신당’ 실체와 파워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는 싫건 좋건 4월 총선에서 또 한 번 한나라당과 전면전을 치러야 하는 처지다.

이회창 후보의 출마설이 언론에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10월19일 연합뉴스가 ‘이회창 출마설’을 보도하면서부터다. 그러나 당시 조간신문들은 연합뉴스 기사를 인용 보도하면서도 ‘설마…’ 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이전에도 타블로이드 주간지에서 이 후보의 미확인 출마설을 여러 번 다뤘고, 연합뉴스 기사도 그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후보가 2006년 12월 경희대 특강에서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아직 배가 12척 남아 있고 신은 죽지 않았습니다)’라는 이순신 장군의 장계를 떠올릴 때마다 전율 같은 감동을 느낀다”고 해서 정계 복귀 가능성이 점쳐졌을 때도, 신년 인사 때 이 후보 스스로 출마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함으로써 해프닝으로 일단락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무렵부터 이 후보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남대문 단암빌딩에 정치부 기자들의 출입이 잦아진 게 사실이다. 물론 만에 하나라도 사실로 확인되면 낙종(落種)할 수 있다는 방어적 성격이 강했다.

이 후보는 출마설에 대해 한동안 긍정도 부정도 않는 전략으로 일관했다. ‘아니다’라고 하면 될 일인데 뜸을 들이자 출마설은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단암빌딩에서 이 후보를 보좌해온 이흥주 특보가 출마 가능성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비좁은 단암빌딩 사무실에는 10여 명의 기자가 상주하기 시작했고, 이 후보가 칩거에 들어간 서울 서빙고동 자택 앞에는 방송 카메라진이 새벽까지 진을 쳤다. 특히 이 전 총재가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를 만난 데 이어 서빙고동 자택에서 강삼재 전 부총재를 면담하는 등 지난 대선에서 자신을 보좌한 인사들을 잇달아 만난 것으로 확인되면서 출마설은 갈수록 힘을 얻었다.

그 후 이 후보는 “때가 되면 말씀드리겠다”는 말을 남긴 채 부인 한인옥씨와 함께 지방 칩거에 들어갔고, 5일 만인 11월7일 전격 출마기자 회견을 열었다. 이로써 이 후보 출마설은 취재진과의 숨바꼭질이 20여 일 계속된 끝에 사실로 확인됐다. 다만 2002년 대선 패배 뒤에도 보좌를 계속해온 측근들은 꽤 오래전부터 이 후보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감지했다고 한다. 이 후보가 측근들에게 ‘출마’란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한 적은 없지만 이심전심으로 속뜻을 읽은 것이다.

측근들 사이에선 출마를 권유하는 분위기가 더 강했지만, 출마에 반대하는 인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쪽도 이 후보의 출마 가능성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의 출마가 대선판도에 몰고 올 격랑을 생각하면 당연했다. 72세의 노(老)정객 이회창은 그렇게 돌아왔다.



조직도 돈도 없었다

이 후보 진영은 강삼재 전략기획팀장과 이흥주 홍보팀장 ‘투톱’ 체제로 운영됐다. 5선 의원 출신 강 팀장은 선거 전략을 진두지휘하고 자원봉사자 일색인 캠프의 규율을 책임졌다. 캠프 관계자들은 “당신들은 감기에 걸려도 직무태만”이라는 강 팀장의 다그침에 알 수 없는 힘을 얻었다. 43세의 나이에 집권여당 사무총장에 오른 강 팀장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화려한 정치생활을 하다 ‘안풍(安風·안기부 자금 선거 전용) 사건’으로 정계를 떠났었다. 그런 강 팀장이 외롭게 법정투쟁을 할 때, 한나라당 총재이던 이 후보가 측근인 서정우 변호사와 이정락 변호사에게 “당을 위해 고생한 사람”이라며 무료 변론을 당부했다고 한다. 이때 도움으로 강 팀장은 2005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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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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