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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제는 타락했다 장관 사퇴는 운명”

사의 표명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대의제는 타락했다 장관 사퇴는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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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원들, 국민 배제하고 자기 청중만 관리
  • ‘정부3.0’으로 ‘국민주권’ 지향
  • 박 대통령의 고민을 함께 고민
  • 대통령, 남은 2년 내 ‘숙제’ 끝내기 원해
“대의제는 타락했다 장관 사퇴는 운명”

조영철 기자

정종섭(58) 행정자치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특별히 신임한 각료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19대 총선을 석 달 앞둔 2012년 1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박근혜)과 같은 당 공직후보추천위원회 부위원장(정종섭)으로 손발을 맞췄다. 당시 한나라당은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철수의 양보로 단일화한 박원순에게 패하면서 지지율이 추락하자 박근혜를 호출했다. 박근혜는 ‘박·안 바람 앞의 등불’ 같던 당을 구해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박근혜에겐 기분 좋은 기억일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 경북고 출신과 좋은 인연이 별로 없다. 친(親)이명박계에 경북고 출신이 많았다. 그러나 정종섭 등 일부 인사는 예외”라고 전한다. 다른 여권 인사는 “원칙과 신뢰의 박근혜와 헌법 이론가인 정종섭(서울대 법대 교수 출신)은 뭔가 잘 어울리는 면이 있다”고 평한다. 이 인사는 “세월호 참사로 정부 조직이 개편된 뒤 각 부처의 구체적 소관업무 밖의 문제, 예를 들어 ‘정부가 나아가려는 큰 틀과 방향’ 같은 것은 정 장관과 행자부가 주로 맡아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


11월 초 ‘신동아’는 정 장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정 장관이 수락해 일주일쯤 뒤로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그 사이 그가 장관직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려면 국회가 더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와 내가 같이 가야 하니 내가 그 길을 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말로 내년 4월 20대 총선에 출마할 뜻을 비쳤다. 그의 사의 표명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고 정치적 이슈로 부각됐다. 야당은 그가 고향인 경북 경주에 예산을 특별히 많이 배정해줬다고 공격했다. 중간에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예정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후임 장관이 직을 승계할 때까지 업무를 수행한다.

“운명이죠.”

사의 표명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내 “퇴임하는 순간까지 혁신과제를 계속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 지난해 정부 조직 개편으로 행자부가 출범했죠. 취지에 맞게 잘 기능합니까.

“안전행정부에서 안전과 인사가 떨어져 나갔어요. 행자부에 남은 것은 조직과 지방자치죠. 그런데 정부조직법엔, 다른 부처에 소속되지 않는 일은 전부 행자부에 속하는 걸로 돼 있어요. 저는 행정자치 차원을 넘어 국가혁신부서로 성격을 규정하고 쭉 그렇게 운영해왔어요.”

▼ 혁신이 누구를 위해 왜 필요하다고 봅니까.

“제가 5개의 혁신단을 꾸렸는데, 이게 국민 전체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봐요. 안전 문제만 하더라도 사고에 노출되는 물리적 위험뿐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위험도 크거든요. 혁신단엔 민간위원들만 들어오게 했어요. 정말 이 시대에 뜯어고쳐야 할 것은 다 뜯어고쳐보자고 했어요. 다들 짧은 시간 안에 잘 만들어줬어요. 일정 수준까지 올려놓았어요. 예를 들어 지방공기업 혁신을 통해 부채 1조4000억 원을 줄였어요. 제 후임자가 가속화하면 될 것 같아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를 포함해 국가 전체를 혁신해야 한다고 봐요. 그 작업을 여기 진원지인 행자부에서 시작한 겁니다.”

“행자부는 국가혁신부”


정 장관의 ‘근무환경 혁신’은 공직사회에선 널리 소문이 퍼졌다. 그는 행자부 직원들의 주말·휴일 근무를 없앴다. 직원들이 “월요일 차관 회의와 실·국장 회의를 준비해야 해 주말 근무가 불가피하다’고 하자 그는 월요일 회의를 없앴다. 장관 주재 회의도 한 달에 한 번만 했다. “회의 많이 한다고 잘 돌아가는 게 아니다”라는 게 그의 소신이다.

수요일과 금요일엔 전 직원이 오후 6시 30분에 퇴근하도록 했다. 더 남아 근무하면 경고를 했고 삼진아웃제까지 뒀다. 덕분에 행자부 직원들은 금요일 저녁~일요일의 휴식을 완벽하게 보장받는다. 대변인실 관계자는 “직원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드린 건데, 정말 좋아한다”고 했다.

정 장관은 “근무시간에만 집중해서 일해도 충분하다. 우리나라 공무원은 근무시간 중 생산성이 낮으면서 시간외 근무가 많다. 너무 비효율적으로 일하는 셈인데 아무도 이를 개혁하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면보고도 최소화했다. 모든 보고서는 1쪽 이내로 요점만 쓰게 했다. 대신 필요할 때 실·국장을 수시로 불러 묻는다. 이 자리엔 담당실무자를 배석시키기도 한다. 이것도 격식보다 능률을 중시하는 그의 소신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는 “장관과 자주 대화해야 하므로 실·국장이 업무를 더 잘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 사람의 일하는 관행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요.

“아주 간단한 것, 그렇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 이런 것부터 바꾸고자 했어요. 장관이 책임진다고 하니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내놓기 시작했어요. 자기 삶이 간단히 바뀌는 걸 한번 보여주고 싶었어요. 6개월의 실험은 성공했고요. 전 부처로 확산하고 싶어요.”

▼ 박근혜 정부 하면 ‘불통’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행자부에 따르면, 공동 데이터 개방 수준에서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위네요. 우리 정부가 투명하게 국정을 운영한다는 뜻인지….

“정보 개방 면에서 투명하게 운영하죠. 이 방향으로 가속화할 수밖에 없고요. 이에 대한 의지는 대통령이 저보다 더 강해요. 국민 생활에 밀접한 정보를 제공해 국민이 편익을 누리게 하려는 취지죠. 과거엔 부모가 돌아가시면 유족이 유산부터 시작해 관련된 자료를 일일이 찾아다녀야 했어요. 이젠 안심 상속 원스톱 서비스로 채무까지 모든 자료를 한 번에 알 수 있어요.”

▼ 정부가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나 통계를 약간 다듬어 발표하지 않느냐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어요.

“특히 중요한 게 통계청 자료죠. 전적으로 믿진 않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러면 국민이나 기업이 이 자료를 쓰지 않죠. 제가 통계청장과 이 문제를 논의했어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더라고요. 앞으로 정부에서 나오는 통계자료는 신뢰성이 높고 내용이 풍부해질 겁니다. ‘각 부처가 불리한 통계를 안 내놓는다’는 점과 관련해, 통계에 아예 손을 못 대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정확하겠죠? 저는 될 거라고 봅니다. 이 점은 굉장히 중요해요. 민간에서 정부 통계를 믿고 활용하기 시작하면 사업비용이 크게 줄어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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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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