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인 원초적 동기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孝心)’일 것이다. 박 대통령이 보기에, 가당치 않은 좌편향 검인정교과서들은 아버지를 멋대로 깎아내렸다. 박정희에 대해 김일성보다 적게 다룬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수한 대목에서 박정희의 업적이 폄훼됐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자라나는 새싹들이 이런 걸 보면서 박정희를 잘못 알게 된다니… 박 대통령에겐 끔찍한 일이다.
처음엔 좋은 말로 “좀 고치라”고 했다. 그러나 교과서들은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교학사 교과서를 만들었더니 아예 채택을 안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잔 다르크의 피가 흐르는 박 대통령은 일전불사의 투쟁심을 불태웠을 것이다. ‘교과서와 학교가 아직 해방구로 남은 모양인데, 한번 해보자’고 결심한 듯하다. 그리고 마침내 ‘시대 퇴행적 종북 교과서들’을 쓸어버리는 국정화를 밀어붙인 것이다.
딸 된 도리
‘아버지 대통령’의 영전에 ‘자랑스러운 국정교과서’ 한 권 올려드리는 것, ‘딸 대통령’의 당연한 의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 책은 아마 박정희의 산업화를 객관적으로, 그러나 애정을 담아 기록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퇴임 후 차기 대통령에 의해 다시 검인정으로 돌아가더라도 별로 괘념치 않을 것 같다. ‘정-반-합’의 변증법 원리에 따라 그 검인정교과서는 지금의 검인정교과서보다 훨씬 덜 좌파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박 대통령은 국정화로 효도도 하고 ‘종북 장사’도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국정화가 내년 총선 압승의 묘약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정국은 과연 그렇게 굴러갈까.
1차 ‘역사교과서 전투’는 교육부의 행정예고가 끝나면서 사실상 종료됐다. 1차 전투의 승자는 박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돌격명령을 내렸고, 새누리당은 선제타격을 담당했으며, 공격은 주효했다. 목표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 대표와 친노계, 타격 전략은 종북 프레임이었다.
새정연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의도를 정확하게 읽었어야 했다. 그러나 문 대표와 친노계는 앞뒤 따지지 않고 대응사격부터 했다. 포격 원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포 소리가 들린 곳에다 발포부터 하고 본 격이다.
문 대표가 특등사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 엉터리는 아니다. 당시 문 대표는 절박한 상황이어서 그의 속마음도 쉽게 읽힐 수 있었다. 그는 당 내부로부터 시달린다. 당시 혁신위원회 활동 종료 이후 문 대표 사퇴론이 다시 불붙었다. 그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사퇴론에서 탈출할 요량으로 박 대통령의 선제공격에 맞대응한 것으로 비친다. 내부 갈등을 봉합하려면 박 대통령과 대립전선을 형성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전투는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여론조사에서 국정화 반대의견이 더 많이 나왔다. 신당 창당을 서두르던 천정배 의원까지 불러들여 연석회의를 구성했다. 당내 비주류의 국정화 반대투쟁 동참도 이어졌다. 사퇴론도 잠잠해졌다.
그러나 국정화 반대여론은 거셌지만 문 대표와 새정연은 반사적 이익을 얻지 못했다. 지지율도 답보 상태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길 바랐지만,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실력 바닥’ 재확인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표는 10·28 재·보선에서 또 참패하고 말았다. 4·29 재·보선 참패는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전당대회 직후이고 대표 활동 초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참패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만저만한 참패가 아닌 데다, 이번 선거 결과에는 문 대표가 공을 들인 혁신위원회 활동에 대한 평가도 담겼기 때문이다.
혁신위원회 활동에 감동받았다면, 적어도 호남 민심은 호전됐어야 했다. 하지만 호남에서도 참패했다. 문 대표는 낮은 투표율을 탓했지만, 이번에 호남 투표율은 높았다. 전남 신안군 기초의원선거 투표율은 64.5%였는데, 여기에서도 새정연 후보는 무소속 후보에게 1, 2위를 내주고 겨우 3위를 했다.
문 대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장외투쟁 와중에도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사상구 광역의원선거에 전력투구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졌다. 자신의 선거구조차 못 지키는 대표라는 게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주자로서 의원직을 사퇴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이 잇따를 때도 지역구 유권자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꿋꿋하게 쥐고 있던 지역구다.
당연히 사퇴론이 힘을 더 받을 수밖에 없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로 당내 사퇴론을 덮은 것까진 좋았다. 그러나 10·28 재·보선으로 실력이 바닥이라는 사실이 재확인됐다. 사퇴론에 힘이 더 쏠리는 상황으로 몰린 셈이다. 박지원 의원을 시작으로 안민석, 안병엽 의원에 이어 조경태 의원, 이종걸 원내대표까지 문 대표의 책임론을 거론하며 사실상 사퇴를 압박했다.
그래도 물러날 문 대표와 친노계가 아니다. 문 대표는 “총선 승리에 저의 어떤 정치적 운명이 걸려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내년 총선 때까지 물러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더욱이 그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11월 4일, 자신의 지역구를 포기했다. 문 대표는 이제 지역구 없는 국회의원이다.
이제 2차 역사교과서 전투의 막이 올랐다. 이번 전투의 시한은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 말이다. 이번에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문 대표와 친노계의 고립을 목표로 삼는다. 다만 타격 전략을 민생 프레임으로 바꿨다.
종북 프레임으로 문 대표와 친노계를 고립시키는 데 일단 성공했다고 보고, 민생 프레임으로 이들을 더 압박해 나가려는 전략이다. 중도세력까지 끌어들여 지지기반을 더 확고히 하겠다는 의도도 담겼다. 민생 프레임은 사실 문 대표와 새정연이 먼저 제기했다. ‘민생에 주력해야 할 때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들고 나오는 게 타당하냐’는 공격이었다. 박 대통령이 10월 27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할 때도 이들은 ‘민생 우선’ 스티커를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