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호

송호근 교수가 진단한 ‘노무현 정부의 도전과 실패’

실속 없는 이념정치, 통치력 흩뜨린 ‘참여 과잉’, 갈등 부추긴 ‘선별적 대화’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6-07-04 17: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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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용의 한계 넘었다’는 신호 계속 무시
    • 경제적 업적 빈곤이 사회적 업적 가려
    • 현실정치의 반격을 이념으로 짓눌러
    • 선별적 참여로 견제와 감시 원리 작동 안 돼
    • 방향 옳지만 방법 틀린 4대 개혁법안
    • 결정된 국가정책에 대한 저항은 단호히 대응했어야
    • 실질소득 침해하는 부동산정책 강행은 통치 아닌 무지
    • 실용주의와 거리 먼 한미FTA 졸속 추진
    • 탈물질·탈이념세대 지지층 거스른 도덕정치
    • 이데올로기 지형은 여전히 진보가 우세
    송호근 교수가 진단한 ‘노무현 정부의 도전과 실패’

    - 1956년생 <br>-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 미 하버드대 박사<br> - 現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장<br>- 저서 : ‘시장과 이데올로기’ ‘열린 시장 닫힌 정치’‘한국,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한국,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오전 9시, 신림동 서울대 캠퍼스는 연둣빛 햇살로 출렁거렸다. 병풍처럼 늘어선 관악산은 상큼한 공기를 내뿜고 있었다. 출입차량을 통제하는 직원의 손짓과 목소리에 활력이 넘쳤고, 가방을 둘러멘 학생들은 종종걸음으로 강의실로 향했다.

    송호근(宋虎根·50) 교수는 담배를 피우던 중이었다. 연구실은 비좁았다. 사방에 책이 넘쳤다. 서가에 자리를 잡지 못한 책들이 응접세트를 위태롭게 포위하고 있었다. 그가 손수 커피를 내왔다. 혼잣말처럼 “할 얘기도 별로 없는데…” 하며 싱긋 웃었다.

    “수업은 없느냐”는 질문에 홀가분한 표정으로 “어제로 다 끝났다”고 했다. 다음주에 기말고사가 있다는데, 송 교수는 “학생들이 너무 지식만 가지려 한다”며 “나름대로 고민이 있겠지만 학점 경쟁에 지나치게 매달린다”고 우려했다.

    그의 백발은 나이에 비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성성했고, 야윈 얼굴에 빠른 하관은 날카로운 인상을 풍겼다. 움푹 들어간 두 눈에서 범상치 않은 안광이 느껴졌다.

    인터뷰 주제는 ‘5·31 지방선거 결과로 본 참여정부의 도전과 실패’로 잡았다. 대표적인 참여지식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송 교수는 그간 왕성한 언론 기고와 강연을 통해 ‘참여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지난해 6월엔 전경련 강연회에서 집권층을 향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그만 부르라고 질타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 경기도 일산에 살다가 얼마 전 서울 강남으로 이사 왔다.

    -투표는 하셨겠죠.

    “물론이죠. 그런데 뭘 했는지 몰라요. 너무 복잡해서.”

    -혹시 일괄 투표하지는 않으셨습니까. 광역 단체장 찍고 나서, 나머지 후보들은 (광역 단체장과) 같은 정당 사람들로.

    “인물을 보긴 봤는데….”

    정당보다 인물을 선택했다는 그는 사전에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가정에 배포한 유인물을 보고 누가 출마했는지를 살폈다고 한다. 하지만 인물 투표는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었다.

    “여러 명을 한꺼번에 뽑으니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더라고요. 제대로 찍었는지 몰라요. 딸내미가 말하길, ‘투표장에도 전단지를 놓아 유권자의 기억을 되살리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일리 있는 얘기라고 봐요. 유권자들에게 모든 걸 기억해서(투표소로) 오라는 것이니 어렵죠.”

    -캠퍼스 내의 정치 관심도는 어떤가요.

    “관심 없어요. 무작정 민노당을 찍는 학생이 많죠. 언론매체도 잘 안 봐요. 아침신문의 톱기사가 뭔지 모를 정도니. 주로 인터넷 포털을 보는데, 그런 학생도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송 교수 관찰에 따르면 서울대생의 투표 기준은 인물이 아니라 정당이다. 열린우리당 지지자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열린우리당만 찍고, 민주당 지지자도 마찬가지라는 것. 다만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얘기는,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54%의 득표율을 얻었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52%를 득표한 2002년 지방선거와 비슷하죠. 그런데 이번 선거결과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여야 지지율 격차가 두 배 이상 벌어 졌다는 점, 수도권을 한나라당이 독점했고, 서울의 강남북 구도, 즉 여-강북, 야-강남의 구도가 깨졌다는 점, 아울러 한나라당이 모든 연령대에서 지지를 고르게 받았다는 점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의 싹쓸이 현상을 어떻게 보세요.

    “말씀하신 대로 득표율로는 과거와 큰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모든 지역구에서 야당이 당선된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에요. 일부 지역에서 지역구도 불씨가 되살아난 것 같기도 하고. 집권당이 이처럼 처절하게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건 초유의 사태예요. 총선과 지방선거는 달라요. 총선은 중앙정부의 권력분점과 관련된 것이고 지방선거는 행정부의 거버넌스(governance·통치)와 관련된 것이에요. 이번 선거를 통해 거버넌스가 약화된 것은 큰 문제입니다. 행정부 권력의 약화거든요. 행정부 정당성의 소멸이랄까.”

    송 교수는 여당의 참패에 대해 “정책 실패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누구는 정권에 대한 탄핵, 또는 정리해고라고도 하는데 저는 그렇게까지는 보지 않아요. 전반적인 정책 실패의 결과죠. 어떤 정부에서든 정책 실패가 있을 수 있는데, 참여정부가 과거 정부와 다른 점은, 첫째, 집권당과 국민의 인식 차이가 너무 크다는 거예요. 과거엔 (선거에서 참패하면) 인식 차이를 인정했거든요. 우리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민심이 문제’라고 말하고 있어요.

    둘째, 국민을 계몽 대상으로 본다는 점이죠. 참여정부의 초기 슬로건이 ‘국민이 대통령이다’였는데, 실제로는 그 반대양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국민과의 인식 차이가 표로 나타났는데도 오히려 국민에게 마음을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셋째, 표심이 이탈한 이유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어요. 스스로 과도하게 정당성을 부여한 탓이지요. 국민이 등을 돌린 것은, 과거에 혁명과 개혁을 지향했던 운동권 세력이 집권 후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국민은 사실 편안하게 사는 걸 원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현 집권세력은 ‘개혁이나 혁신을 위해선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왜 그걸 모르느냐’고 국민을 다그치고 있거든요.

    넷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국민의 마음이 언제부터인가 매우 허탈해져 있다는 점입니다. 초기엔 상당히 기대했지요. 그 기대에 부응해 뭔가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국민의 마음 한가운데 휑하니 생긴 공간을 정권은 거친 말로 메우려 했습니다. 허전한 마음을 따뜻한 정치로 감싸줬어야 하는데 모질고 야박한 말로 채워놓은 거죠. 왜 그걸 못 참느냐면서.”

    “관용의 한계 넘었다”

    송호근 교수가 진단한 ‘노무현 정부의 도전과 실패’

    참여정부에서는 유난히 국책사업에 대한 저항이 컸다. 2003년 8월 전북 부안군민 3000여 명이 서해안고속도로를 점거해 방폐장 유치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송 교수는 “관용의 한계를 넘었다”는 표현을 썼다. 국민의 인내 범위는 한정돼 있는데 참여정부는 계속 관용의 수준을 높일 것을 요구해왔다는 것이다.

    “국민 상당수가 이 정부가 하는 일에 나름대로 도덕적인 정당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 같아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런데 관용의 한계를 넘은 거죠. 정권은 국민에게 관용의 수준을 높이는 데 필요한 경제적 여력은 제공하지 않은 채 인내만 요구했어요. 국민이 관용의 한계에 이르렀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냈는데도 짐짓 무시했죠. 그것이 표심으로 나타난 겁니다.”

    그는 통치의 극단적인 약화에 따른 정책수행 능력의 마비를 우려하기도 했다.

    “앞으로 남은 1년 반 동안 중앙정부 차원에서 대통령 권한으로 할 수 있는 것 외에 지방정부와 연결되거나 지방정부의 협조가 따라야 하는 정책은 추진하기 매우 어려울 거예요. 최대한 기대한다면 현상유지죠.”

    -이 정부가 지향하는 바에 정당성은 있는데,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말씀인가요.

    “국민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는 표현이 맞겠죠. 뿌리 깊은 버릇 같아요. 운동권 전술이란 것이 대중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 그에 맞는 목표를 설정하는 게 아니라 자기네가 정한 전략대로 대중을 끌고 가는 겁니다. 정권을 잡은 운동권 세력이 지난 3년여 동안 국민을 계몽 대상으로 설정하고 혁신의 전선으로 끌고 간 거죠. 대중과 유리된 것이 확인되면 원인을 분석해 노선을 수정해야 하는데, 5년이라는 시간 제약 속에서 애초 정한 방향대로 끌고 가는 상황이 아닌가 싶어요. 정부의 정책 실패가 뚜렷이 나타나면 당이 뒤에서 추슬러야 하는데 무기력한 모습만 보임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상실했습니다. 거친 말로 무장된 통치 스타일도 문제죠. 정책수행의 정의감이 국민에게 완고함으로 비친 겁니다.”

    -최근 중앙리서치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의 압승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79%가 ‘정부 여당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후보나 공약이 마음에 들어서’라고 응답한 사람은 16%에 불과 했고요.

    “한나라당이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건 맞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사실 한국의 정당구도에서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별로 없어요. 주도적으로 법안을 내는 게 어려우니 정부 여당이 내놓은 법안을 수정하거나 완화하는 정도죠. 야당은 여당이 공세적으로 나오면 실패하길 기다리면 돼요. 실패하면 민심이 넘어오게 마련이니까. 한나라당이 여당의 위치로 바뀔 때도 과연 국민의 지지를 받을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다만 우리당과 하나 다른 점은 국민의 마음에 상당히 신경을 쓴다는 점입니다. 그건 보수주의자들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물론 여론의 향배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는 것도 때로는 단점이 될 수 있어요. 정작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멈칫거릴 수 있거든요.”

    그의 분석으로는 비록 여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긴 했지만 한국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일부에서 추측하는 보수로의 전면적인 회귀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지방선거 이후 대다수 국민의 마음이 진보에서 보수로 넘어가고 있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지방선거는 총선, 대선과 달라요. 사람들이 비교적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죠. 선택에 따른 책임감의 부하가 총선이나 대선에 비해 적어요. 전반적인 이데올로기 지형의 변화라기보다는 통치 스타일에 대한 경고 내지 반박으로 봐야겠죠. 위축의 정치, 부정의 정치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고요. 응징보다는 반박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합니다. 이데올로기 지형은 여전히 진보 쪽이 우세하다고 봅니다.”

    정권의 업적은 크게 사회적 업적과 경제적 업적으로 나눌 수 있다. 참여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경제적 업적의 부진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송 교수는 “민주주의는 업적이 쌓이지 않으면 그 정당성이 약화된다”며 “성과가 있어야 체제가 유지되고 정당성이 확보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참여정부의 사회적 업적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평가받을 만하다. 호주제 폐지 등 여권을 신장하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독려하고 여성 지원을 늘리고 약자를 배려하고 사회 서비스제도를 확충한 점이 우선 꼽힌다. 또한 부정부패에 대한 감시체제를 강화하고,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정치권의 고질적인 병폐인 돈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점, 공천제도를 바꿔 정당체제를 개선한 점 등은 분명 높게 평가할 만한 업적이라는 것이 송 교수의 견해다.

    그럼에도 참여정부의 사회적 업적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송 교수의 분석으로는, 국민이 그것을 평가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왜 마음의 여유가 없는가. 경제적 업적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활에 쪼들려 사회적 업적을 평가하거나 그것에 감사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참여정부가 경제적 업적의 중요성을 제대로 모르거나 어쩌면 너무 멀리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경제정책은 실패했다고 봐요. 진보정권 정책의 핵심은 국민의 실질소득을 어떤 형태로든 보전해주는 겁니다. 유럽의 진보정당이 국민을 사로잡는 방안은 복지 제공이에요. 첫째가 완전고용, 둘째가 각종 사회 서비스 제공입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해 국민의 실질소득을 보전해주죠. 최대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취업이 쉽지 않은 사람에게는 사회 서비스를 통해 생활 안정을 도모해줍니다.

    셋째는 효율적인 조세정책이에요. 구매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또는 구매력을 촉진하는 효과를 낳는 조세정책을 펴요. 그런데 참여정부는 사회 서비스를 늘린다며, 말하자면 복지예산을 늘린다는 명목으로 여러 형태로 세율을 인상해왔습니다. 이건 좌파정부가 아니에요. 진보정권의 정책 방향과 정반대로 나간 거예요. 정당성도 약하고. 그래놓고는 사회정의 개념으로 과대 포장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책의 효과가 기대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지적하는 내부의 검증 시스템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면적인 정책 실패가 나타난 거죠.”

    -정책 입안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인가요.

    “정책 결정 과정의 문제죠. 방향을 설정해놓고 그쪽으로만 쫓아가는 거예요. 부작용이나 예기치 않은 결과를 점검하는 기능이 없습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이념과 노선이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토론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책 결정 과정에 동류 집단만 참여함으로써 목적지향적 의식과 이념의 상승효과가 일어난 겁니다. 정책 결정 과정에 이념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컬렉티브 인텔리전스(Collective Intelligence·집단적 지혜)를 도출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안 한 거죠.”

    참여의 과잉과 배제

    -지방선거결과를 두고 여권 내에선 두 가지 엇갈린 평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개혁을 제대로 못한 데 따른 전통적 지지층의 이탈 이라는 시각과 실속 없는 이념과잉 정책에 대한 대다수 국민의 염증이라는 견해입니다.

    “전반적으로 이념과잉이 나타난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념과잉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주로 (이 정부의) 반대집단입니다. 지지집단 내부에서도 그 문제를 지적하고 우려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 그대로 우려 정도지 그것 때문에 이탈했다고는 보지 않아요. 지지층이 보기엔 이탈해야 할 정도로 이념과잉이 심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탈 조짐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에요. 정책수행 과정에 나타난 완고한 경직성에 대한 실망이자 염증이죠.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이 정부의 지지층이 남아 있다고 봅니다. 이념지형의 구도가 근본적으로 흔들린 것은 아니라는 거죠. 조금 약화됐을 뿐입니다. 전통적 지지층의 열망을 담아내지 못하고 반대파를 설득하지 못한 결과죠.”

    -이 정부의 사회적 업적 중엔 권력기구의 탈정치화에 따른 민주적 자리매김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배구조 또는 지배력 약화를 낳은 자충수라는 평가도 있어요. 개혁동력을 상실한 큰 요인이라는 지적이죠. 권력기구에 대한 지배력 약화와 정권의 무능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송호근 교수가 진단한 ‘노무현 정부의 도전과 실패’
    “참여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진화과정에서 가장 진보적인 형태예요. 우리의 경우 제도가 따라주지 못하니 제도를 그쪽으로 맞추려 한 게 권력기구의 탈정치화로 나타난 겁니다. 국정원과 군을 쇄신하고 검찰을 개혁했습니다. 그런데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는 준비와 기반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경험의 누적이 필요한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별적인 시민윤리의 성숙이에요. 그 다음이 자제력이고. 이런 덕목은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얻어지는 것이거든요.

    이런 경험이 결핍된 상태에서 권력기구의 탈정치화 등 제도개혁을 밀고 나갔을 때 생기는 부작용이 바로 거버넌스, 즉 통치의 약화죠. 보수주의자는 통치를 강화해야 업적이 생기고 업적이 다시 통치를 보완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진보주의자는 통치 강화는 민주주의 침해이므로 약해질수록 좋다고 말합니다. 참여정부는 그 노선을 따랐죠. 그러고는 현실정치의 반격을 이념으로 내리눌렀죠.

    권력기구의 탈정치화는, 대상의 본질과 그 소임을 구분해 속도조절을 해야 했어요. 예컨대 국정원 개혁의 경우, 내부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됐지만 대외업무의 전문성이 보장되지 않는 결과를 빚었습니다. 군? 여러 차례 시민단체와 부딪치면서 위상이 크게 떨어졌어요. 26년 전의 잘못(5·18) 때문에 오랫동안 죗값을 치르고 있는 셈인데, 그럼에도 군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되죠. 군과 시민사회가 충돌했을 때 군을 보호해줬어야 합니다. 권력기구를 시민의 감시와 견제에 전면적으로 노출시킨 것은 잘못이에요.

    또 하나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참여의 과잉입니다. 시민단체라고 해서 다 참여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정권과) 이념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참여한 단체가 많아요. 이런 단체들이 과연 시민의 대표성을 갖고 있느냐. 예컨대 참여연대가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 점에서 동류의식에 기초한 선별적인 참여가 있었을 뿐 시민사회의 견제와 감시 원리가 제대로 작동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정몽구 회장이 어디로 도망간다고…

    -이 정부가 출발할 때부터 딜레마를 안고 있었던 셈이네요.

    “저도 예상을 못했어요. 그저 과거보다 큰 폭으로 참여의 문을 개방하겠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이 정도로 넓게, 그리고 선별적으로 문을 열 줄은 몰랐습니다. 참여의 과잉이 시민단체의 권력화를 부추겼습니다. 권력기구의 탈정치화와 대조적으로 시민단체의 정치화, 권력화가 발생했어요.”

    -최근 손학규 경기지사가 ‘동아일보’ 인터뷰 에서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구속과 관련해 청와대의 태도를 비판했더군요. 청와대가 검찰 독립을 내세워 재벌회장 구속을 방관만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이냐고. 관여해야 할 때는 관여해야 한다면서. 자칫 권위주의정권 시절의 사고방식으로 비칠 소지가 있던데요.

    “저는 손 지사의 발언이 권위주의정권의 잘못된 관행을 상기시킨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 인터뷰 기사, 저도 읽어봤는데, 저는 이렇게 봐요. 현대자동차라는 기업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해보라는 거죠. 정몽구 회장, 물론 잘못했지요. 그건 누구나 알고 있어요. 저는 그가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데 일말의 회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경제를 이끌고 가는 중요한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런 사람을 어떻게 예우할지를 생각했어야 해요. 대외적으로는 기업 이미지를 고려하는 것이고 대내적으로는 기업가에 대한 존중이거든요. 그 두 가지를 다 살리는 방안을 생각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기업을 놔두고 어디로 도망간다고….”

    -검찰의 강한 구속의지의 표현이자 일종의 배수진이었지요. 재벌에 약하다는 비판을 의식해 대외적으로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정말 검찰의 자율적인 판단인지 의문이에요. 재벌회장을 사전구속한다고, 검찰이 (정권으로부터) 독립했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그보다는 참 완고하구나, 하는 게 국민의 보편적 감정일 겁니다. 검찰이 정말 자율권을 갖고 있다면 정 회장 사전구속이 불러올 파장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법 해석을 유연하게 했어야 해요. 검찰이 청와대와 상관없이 자율적으로 결정했다? 그건 정치가 아니죠. 검찰과 청와대가 긴밀히 협의해 법도 구하고 경제도 구하는 방안을 찾았어야죠. 그게 정권의 시녀입니까. 아니죠. 자율적인 권력행사의 주체로서 국정의 여러 면을 고려해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거죠.”

    -검찰이나 청와대나 여론 눈치를 많이 보죠. 정 회장 사법처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 비난받을까 봐….

    “부동산정책 같은 건 비난을 감수하고 밀어붙이면서… 이해가 안 돼요. 정권의 행위양식에 균형감각이 없다는 뜻입니다. 정작 여론의 향배를 고려해야 할 때는 안 하고… 모순이고, 일관성이 없는 거죠.”

    송 교수는 “공공선을 어떻게 확대하느냐가 정치권과 검찰의 최대 목표”라며 “서로 자율권을 인정한 상태에서 대화가 필요할 땐 해야 한다”고 검찰과 정권의 유연한 관계를 강조했다.

    대화와 토론은 참여정부의 ‘상표’이기도 하다. 그런데 송 교수에 따르면 선별적인 대화와 선별적인 토론이 있었을 뿐이다. 이념적 친화성을 갖는 사람들끼리의 대화와 토론으로 오히려 사회적 갈등이 더 조장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 대표적 사례로 4대 개혁법안을 꼽았다.

    우리 사회의 보혁(保革) 대결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데 이바지한 4대 개혁법안은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사학법), 언론관계법, 과거사규명법을 일컫는다. 이중 국가보안법은 완전 폐지, 부분 개정, 대체입법의 논란 속에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4대 개혁법안은 법안 자체가 문제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추진방식이 잘못됐다고 보십니까.

    “방향은 맞다고 봐요. 어떤 형태로든 성사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내용이나 추진방식에서 유연성이 떨어진 게 문제였죠.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 청산은 좋다고 봅니다. 문제는 사학법과 언론관계법이에요. 사학법의 경우 종교사학은 제외했어야 해요. 어느 나라든 종교사학을 사악과 부패의 온상으로 간주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매우 무지한 방법이에요.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사학을 건드리려면, 먼저 교리와 건학이념을 충분히 이해하고 종교의 특수성과 권한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학을 일률적으로 개혁대상으로 삼았어요. 상당히 경직되고 완고했던 거죠.

    언론개혁법도 문제가 많아요. 결국 3대 메이저 신문과의 싸움인데, 무리한 면이 있습니다. 물론 전면적인 부정과 왜곡보도 등 신문들이 잘못한 점이 분명 있어요. 그럼에도 언론에 족쇄를 채우려 해선 안 되죠. 지방언론에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도 문제이고.

    과거사 청산도 마찬가지에요. 마땅히 청산해야죠. 하지만 60년 만에 이뤄지는 청산은 60년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돼야 합니다. 그때와 지금의 친일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당시라면 친일로 간주되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보기가 애매한 경우가 많아요. 겉으로 드러난 생애 또는 일부만 보고 단죄하는 건 진보정권의 방식이 아닙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대체입법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고요.”

    -양당의 정체성이 걸린 문제라 타협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이런 데서야말로 충분한 대화와 토론이 필요한 거죠. 어느 지점에서 양측이 절충해야죠.”

    -사학법의 경우 개방형 이사제 도입이 핵심쟁점입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그걸 빼라고 요구하고 있고 여당은 그걸 빼면 법안 자체의 의미가 없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이사) 수를 줄이는 절충안이 있죠. 여당안의 개방형 이사 수가 전체 이사 수의 4분의 1인데, 조사해봐서 많이 부패한 사학의 경우엔 그대로 적용하고 그런대로 괜찮은 사학과 종교사학은 자율권을 주는 겁니다.”

    참여정부식 대화와 토론은 갈등조정 능력을 저하시킨다는 점으로도 비판의 도마에 올라 있다. 4대 개혁법안 추진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비판받는 것이다. 국책사업, 또는 주요 정책에 대해 논쟁만 벌이고 결론을 내지 못하다 보니 되는 일 없이 시간만 낭비하고, 그 때문에 국민이 더 피곤해한다는 지적이다.

    시민단체가 반대한다고 중단해서야

    -참여정부의 갈등조정 능력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이 정부에서 사회적 쟁점이 된 정책은 하나같이 결정하기 쉽지 않은 것이에요. 새만금사업, 천성산터널, 방폐장(방사성 폐기물처리장) 부지 선정, 미군기지 이전, 쌀 개방, 비정규직 문제 등 어느 정권에서든 다루기 힘든, 만만찮은 과제죠.

    “그렇죠, 그건. 그런데 대화와 토론은 정책 성격에 따라 달리 해야 해요. 모든 정책 결정과정에 오랜 대화와 토론이 필요한 것은 아니거든요. 방폐장 설립의 경우 당연히 대화와 토론을 거치고 주민을 설득해야 합니다. 그 점에서 이 정부가 방폐장 문제만큼은 잘 처리했다고 봐요. 오랫동안 설득하고 홍보하고 주민투표까지 해서 결정했으니. 가장 성공한 정책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비록 부안사태라는 진통을 겪긴 했지만, 일을 그런 식으로 하면 많은 사람이 수긍하게 되고 결정된 것이 흔들릴 가능성이 거의 없죠.

    반면 새만금사업의 경우 비록 전(前) 정권에서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추진되긴 했지만 공사가 70% 이상 진척된 상태에서 뒤집는 건 문제라고 봅니다. 전문가 집단이 공공복지 차원에서 면밀히 검토하고 그것을 토대로 어떻게든 정부가 결정했어야 합니다. 시민단체가 반대한다고 전면 중단한 건 문제였죠. 더 심각한 경우는 천성산터널이에요. 이건 국력 낭비예요. 한 사람이 반대한다고 국책사업을 추진하지 못하다니요. 이미 결정된 국가정책에 대한 저항이기 때문에 일종의 범죄로 볼 여지도 있어요.”

    -말하자면 그런 영역에선 통치가 필요하다는 거죠?

    “사안의 성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어느 쪽이 공공의 복지와 공공의 이익에 더 부합하는지를 따져 어떤 경우엔 단호하게 추진하고 어떤 경우엔 다소 시일이 걸리더라도 대화와 설득을 거쳐야 한다는 거죠. 가장 큰 문제는 평택 미군기지 이전입니다. 이미 결정된 사안이에요. 결정했다면 그대로 수행해야죠. 저항하려면 다른 형태로, 예컨대 사회적 캠페인을 펼친다든가 해야죠. 논바닥에 막무가내로 드러눕는 것은 국가의 정책 실행을 방해하는 행위입니다. 더욱이 군과 맞부딪치는 문제 아닙니까. 그런 방식은 안 되죠.”

    -그런 사안들의 경우 이 정부가 밀어붙이기 쉽지 않았던 게 전통적 지지층의 정서나 뜻에 어긋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죠.

    “맞습니다. 내재적 한계랄까 생래적 제약이랄까, 그런 한계를 안고 출발한 정권입니다. 그렇지만 통치란 무엇이냐. 대의명분과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라면 지지기반에 금이 가더라도 소신껏 추진하는 것이죠. 그런데 참여정부에선 공공의 이익은 외면하고 지지기반에 충실한 비합리적인 통치 현상이 자주 나타납니다.”

    -지방선거 참패 후 여당 내에서 ‘부동산정책과 세금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겠다. 어떻게 인기 있는 정책만 추진하느냐’는 취지로 말해 논란이 됐습니다. 이럴 때는 통치자의 면모가 두드러져 보이지 않나요.

    “잘못된 정책을 통치자의 신념으로 밀어붙인다면, 그건 통치가 아니라 무지죠. 이를테면 천성산(터널)은 밀어붙이지 못했는데, 부동산(정책)은 왜 요지부동이냐는 거죠. 거꾸로 됐다는 거죠. 지금의 부동산정책으로는 집값을 잡기 어려워요.”

    -뜻은 좋은데 실행 방안이 잘못됐다는 말씀 인가요.

    “집값 상승을 막겠다는 건 좋은 얘기입니다. 그런데 실질소득을 전면 침해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거예요. 더욱이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마디로 방법도 좋지 않고 시기도 좋지 않다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진보정권이 취할 수 있는 최악의 정책인 거죠. 세금정책도 국민 보기에 전반적으로 혜택보다는 손실이 더 늘어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돈을 더 내야 하거든요.”

    -그건 집을 한 채 이상 가진 사람들에게 해당 되는 얘기 아닌가요.

    “그렇죠. 그런데 문제는 중하층이 감면 받는 세금 액수는 얼마 안 되는데 중상층이 새로 내야 하는 세금은 많다는 거죠. 10만원에서 8만원으로 줄어드는 것, 그것이 경제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 것이며 그 혜택이 얼마나 피부에 와 닿겠습니까. 반면 100만원 내다가 300만원 내게 된다면 느낌이 다르죠. 소비 여력이 있는 층의 소비를 위축한 조치입니다. 그러니 경기가 더 위축되죠.

    대통령은 손실을 보는 대상이 전체 국민의 10%밖에 안 된다고 했지만, 그 10%가 경제구도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10%라면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 없죠. 10%가 움직여 전체 공공의 이익이 증진된다면, 그들을 마구 때려선 안 되죠. 부유세와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한 것은 경제정의에 맞아요.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좌파정책인가. 이에 대해 송 교수는 고개를 내저었다. 좌파정책이라기보다는 공공성을 중시하는 정책, 재산의 공개념을 중시하는 정책쯤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단계에 비춰 재산의 공개념 도입은 조금 이르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FTA, 왜 그리 서두르는지

    송호근 교수가 진단한 ‘노무현 정부의 도전과 실패’

    탄핵사태는 노무현 정권의 분기점이었다. 2004년 3월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13만여 명의 촛불 시위대로 가득찬 서울 세종로 일대.

    송 교수는 “이 정부가 진보정권으로서의 과도한 의무감이나 책임감에 사로잡힌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기자의 지적에 도표를 그려가며 설명했다. 재정-성장(고용)-분배(평등)의 세 축으로 형성된 삼각형 구도다. 그에 따르면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재정을 기준으로 분배 쪽으로 치우쳐 있다. 그러다 보니 성장이 둔화됐다. 성장이 안 되니 재정에 문제가 생겼다. 재정에 문제가 생기면 분배가 힘들다. 결론은 성장 없는 분배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재정과 성장, 분배 세 가지를 다 취할 순 없어요. 국민에게 이쪽(분배)으로 치우쳐 있다고 솔직히 얘기하고 인내를 호소해야죠. 저성장 참읍시다, 실업률 높아집니다, 고령자에게 돈 못 줍니다라고. 그러나 이 정부는 이것(분배)도 하고 저것(성장)도 한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실제로는 두 가지 다 제대로 안 되고 있는데. 전반적인 정책 실패가 예상되는 이유입니다. 실질적인 분배 효과를 낳은 정책이 뭐가 있었습니까. 별로 없어요. 사회 서비스를 조금 확충한 정도지. 700만명의 빈곤층에 뭘 해줬습니까. 주로 비정규직, 여성 가장, 파트타임 노동자들인데, 그들한테 집을 줬나요, 일자리를 줬나요. 진보정권이라 하기엔 부끄러울 정도로 업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죠.”

    -지난해 중앙일보에 ‘도덕만으로는 배가 고프다’는 제목의 칼럼을 쓰셨는데, 이 정부가 도덕정치를 한다고 볼 수 있나요. 집권측은 실용주의로 자처하고 있지 않습니까.

    “도덕이 이 정권의 최대 무기죠. 그런데 도덕을 추구하는 정권은 결국 업적 빈곤에 시달려 도덕적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요. ‘도덕만으로 배가 고프다’는 것은 현실정치의 집요한 반격을 직시하라는 얘기죠. 재정, 성장, 분배 세 영역에서 재정과 분배에 치중하면 도덕적인 정치입니다. 성장의 빈곤에서 빚어지는 현실의 반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 정권은 ‘시스템이 좋아지면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얘기만 되풀이합니다. 아무도 안 믿는다는 게 문제죠.”

    -이 정부에 실용주의적인 면은 없나요.

    “없다고 봐요. 행복도시 만드는 것, 이게 실용주의입니까. 균형발전, 이게 실용주의입니까. 실용의 기준은 정책의 유효성입니다. 그런 정책이 별로 없어요.”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추진 따위를 실용주의로 내세우는 것 같은데요.

    “FTA는 그런 면이 있어요. 불가사의예요. 이 정권이 왜 지금 FTA를 서둘러 추진하는지. 그런데 정말 실용주의라면 지금처럼 전면적으로 추진할 게 아니라 목표를 세우고 단계별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거든요. 그 점에선 실용주의와 거리가 멀어요.”

    -FTA 정책을 비판한 정태인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에 따르면 참여정부의 ‘업적 조급증’ 때문이라는데요.

    “국익 차원에서 장기적으로는 하는 게 맞다고 봐요. 그런데 시간을 좀 가져야 합니다. 협상에 들어가기 전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손익을 면밀히 분석하고 취약 부문을 보완하고 대비하는 것, 그것이 실용적인 태도죠. 그런데 국민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레 미국과 시장을 통합하겠다고 저렇게 달려가면 겁 안 낼 사람이 어디 있어요.”

    -상당수 학자가 대미경제종속을 우려하고 있죠. 그런데 정부는 그게 성장의 동력이 될 뿐만 아니라 고용도 증대하고 양극화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그건 모르는 일이죠. 지식시장과 서비스시장의 포섭 현상이 생길 텐데, 그게 경쟁 효과로 전환되기를 기대한다면 사전에 준비하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의료, 보험, 교육서비스가 그렇고 법률시장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전면개방을 하겠다니…. 지금으로선 한미FTA의 득과 실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워요. 정확한 연구와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밀고 나가니 불안하죠. 도대체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어요.”

    2003년 2월 취임 직전 노무현 정권에 대한 지지도는 84%였다. 그것이 40%대로 떨어지는 데는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올해 들어와서는 20%대로 내려앉았다. 실망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기대가 컸다는 뜻일까.

    -2002년 12월 한국민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무엇을 기대해서였을까요.

    “무엇보다도 기존의 카리스마정치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권위주의정치에 대한 혐오 내지는 이탈이었던 거죠. 둘째는 카리스마정치가 끝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에 대한 욕구가 매우 컸다는 점입니다. 구태와 기존 관행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욕망이 작동한 거죠. 그 새로운 틀에 노무현 대통이 우연히 끼워 맞춰진 겁니다.

    그런데 노 후보는 다른 어떤 대선후보보다 국민의 새로운 욕망을 부채질하는 요소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든가, 권위주의 시대에서 저항운동을 했다든가, 시민운동권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든가…. 지금 와서 보면 2002년 대선은 우리 사회의 기류가 진보 쪽으로 전환하는 계기였어요. 한국사회의 물줄기를 한번 다른 쪽으로 돌려보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그 흐름 속에 노 후보가 당선된 거죠.”

    -2002년 대선의 특징으로는 2030세대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송 교수께서 ‘신동아’(2003년 2월호) 기고문에서 ‘2002년세대’라는 표현도 하셨지만요. 지금 이 세대가 노 정권에 등을 돌렸다고 볼 수 있을까요.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2002년세대는 엄밀히 말해 진보라기보다는 일종의 포스트 머티리어리즘(post-materialism), 즉 탈물질주의적인 가치관에 상당한 친화감을 갖는 세대예요. 전통적 패러다임을 혐오하는 거죠. 그 점에서는 노 대통령의 스타일이 여전히 유효합니다.”

    청와대 386과 기업체 386은 달라

    -노 대통령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여전하다는 말씀인가요.

    “탈정치, 탈권위, 탈냉전이라는 이 정권의 상징이 바뀌지 않았고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가 정책을 통해 계속 드러나고 있잖아요. 문제는 이러한 상징의 매력이 얼마나 지속되느냐죠. 이대로라면 앞으로 1~2년 가기 힘들다고 봐요. 상징의 매력을 유지하는 수단은 업적입니다. 업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상징으로서의 매력이 상실될 수밖에 없죠. 배용준 장동건과 같은 톱스타가 상징의 매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출연한 영화가 계속 공전의 히트를 기록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정권이 포스트 머티리어리즘의 상징을 얼마나 유지하느냐는 업적에 달려 있는데, 그간 크게 훼손된 상태죠. 2002년세대는 지금 노 대통령에게 ‘제발 상징의 매력을 유지해달라’고 간절히 애원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만약 내년 대선에서 누군가 ‘2002년 당신들이 노무현 후보에게 느낀 매력을 재현하겠다’고 나선다면, 그가 새로운 스타로 부상할지도 모르죠.”

    -2030세대의 특징 중 하나가 탈이념인데, 현 정부가 추진하는 새로운 유형의 이념정치가 부담스럽지 않았을까요.

    “굉장히 부담스러웠을 거예요. 균형, 분배, 형평… 수사(修辭)로 얘기하는 이념적 경직성이 탈이념에 크게 부딪혔을 거예요. 우리 개방합시다, 여행 갑시다 따위의 얘기와 동시에 그런 수사가 진행됐다면 또 모르는데 지나치게 이념적 공간으로만 몰고 갔습니다.”

    -이 정권이 자신들을 지지한 세대의 속성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을까요.

    “각 세대의 특징을 변별하지 못했고 전체 국민의 마음도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50~60대를 설득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들을) 그야말로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잖아요. 당신들은 산업화세대로서 이 시대에 기여할 게 없다고. 정리해고한 셈이죠. 그렇다고 30~40대를 껴안은 것도 아니고 20대에게 희망을 준 것도 아니에요. 진보의 이름으로 진보세력을 약화했어요. 세대 특성을 오판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386세대가 지금 40대인데, 청와대에 있는 386과 기업체에 있는 386은 세계관이 다르거든요. 그런데 (집권측은) 386세대가 궁극적으로 자신들을 지지할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을 품고 있어요. 새로운 세대가 진보적 정권을 지지할 거라고 막연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실속 없는 자주와 실패한 외교

    인터뷰 시작한 지 두 시간이 지났다. 한 정권의 도전과 성취, 그리고 실패를 어찌 한두 시간에 논할 수 있으랴. 언제 그렇게 피웠는지, 그의 앞에 놓인 재떨이에 네댓 개의 담배꽁초가 보였다.

    -우리 사회에서 보혁구도 설정, 또는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으로 꼽히는 것이 북한과 미국에 대한 시각입니다. 거기에 세계화에 대한 시각,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덧붙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에 대한 우리 국민의 평균적 가치관 기류는 어떤가요.

    “북한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아직 보수 성향이 강하다고 봅니다. 자주 노선이 매력을 띠고는 있지만 상당수 국민의 정서는 반공입니다. 따라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요. 일방적인 지원과 감싸기보다는 견제와 감시를 전제로 지원하는 게 맞다고 봐요. 미국과의 관계는, 종속적인 위치에서 독립적인 위치로 옮기는 건 좋다고 봐요. 그걸 자주라고 표현하고 있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 방식이에요. 이 정권이 정말 실용적이라면 외교력을 발휘해 전통적인 대미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한국의 위상을 차츰 높여갔겠죠. 그런데 고도의 전문 역량이 필요한 외교 분야에서 베테랑이 다 배제되고 현 정권의 이념과 맞는 사람들이 대미관계를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권의 지지층이나 진보측은 그들대로 불만이에요. 이 정권이 겉으로는 자주를 내세우고 남북공조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이라크 파병이나 미군기지 확대 이전, 한미 FTA 추진에서 보듯이 미국이 하자는 대로 다 맞춰주고 끌려가고 있다는 거죠. 보수는 보수대로 한미관계에 균열을 일으켰다고 비난하고.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다 욕을 먹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미숙한 거죠. 김대중 정부가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해놓았잖아요. 그것을 토대로 조금씩 자주성을 높여가는 정치력과 외교력을 발휘했으면 좋았는데, 뭐든지 선언부터 하니 견제에 부딪히고 제동이 걸리는 거죠. 한마디로 실속이 없죠. 미국에 대해서도 불필요하게 한국에 대한 견제의식을 높여놓았어요.”

    선거 관련 질문을 하나만 더 하기로 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인기가 참여정부의 실정(失政)에 비례한다고 말하면, 박 대표에 대한 모독일까. 아니면 한나라당에 대한 모독일까.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의 영향으로 인물 구도의 대전시장 선거판세가 극적으로 뒤집힌 것을 한국정치의 일시적 퇴행으로 볼 수 있을까요.

    “꼭 그렇게 보지는 않아요. 한국의 정당구조에선 표심이 선거 당시의 느낌과 정서에 좌우될 수밖에 없거든요.”

    -군사정권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했던 독재자의 딸이 진보적 정권에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로 부각되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선 알다시피 긍정과 부정, 두 가지 평가가 있습니다. 박 대표가 지금 인기가 좋은 것은 (박정희에 대한) 긍정적 평가 위에만 서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야당 대표였기 때문에 (박정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그다지 제약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결정적 국면으로 접어들면 두 가지 평가가 다 박 대표를 에워쌀 것이고 그에 따라 박 대표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송 교수는 그러나 “박 대표가 야당 대표를 하면서 개인적인 역량도 인정받았다”고 덧붙였다.

    “매우 이질적인 집단인 한나라당에서 정당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요소를 끄집어내 국민에게 시의적절하게 보여주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정치력을 검증받은 셈이죠.”

    박 대표와 박정희 전 대통령 얘기를 하다가 뉴라이트 운동으로 화제가 넘어갔다. 송 교수는 뉴라이트의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그 효력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했다.

    “보수주의의 장점만 추려놓은 것이라 국민의 호응을 얼마나 받을지 의문입니다. 과거 보수주의와 이념적 차별성이 별로 없어 보이거든요. 과연 뉴라이트가 과거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보수주의의 폐단을 충분히 치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고요.”

    이어 뉴라이트 일각에서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해 많은 얘기가 오갔다. 요점만 말하자면, 송 교수는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게 참 안타까운 이론”이라면서 “어느 정도 맞는 얘기지만 별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고 털어놓았다. “자칫 시대정신에 대한 침해로 작용할까 겁이 난다”는 것.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일제의 덕이라는 것까지는 좋아요. 그렇다고 부역(附逆)까지 인정하자는 건 아니고. 그런데 그 다음에, 박정희가 사실은 국가를 만들어냈다, 이런 논리를 펴면 골치 아파지는 거죠. 그건 아니올시다거든요.”

    -박정희 개발독재의 성취와 폐해에 대해선 학계 논쟁도 치열하지요.

    “독재의 폐단보다 성취의 업적이 더 컸다고 얘기하면 곤란하죠. 균형감각을 잃은 거죠.”

    -잘사는 것 못지않게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 하죠.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는 후자 쪽에 나름 대로 도전한 게 아닌가 싶어요.

    “맞습니다.”

    -뉴라이트는 정권을 어떻게 잡았든 또는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업적만 이루면 된다, 잘사는 게 최고라는 논리를 펴는 것 아닌가요.

    “잘사는 게 최고라기보다는 바르게 사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얘기하는 거죠. 진보가 내세우는 도덕은 도덕지상주의이고 실질적인 도덕은 현실정치에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겁니다.”

    -참여정부의 도전과 성취를 개략적으로 정리한다면.

    “가장 큰 업적은 한국사회가 다른 방향으로도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념의 스펙트럼을 넓혀놓음으로써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를 열었습니다. 사회적인 업적도 괜찮은 편이고. 또 하나, 비주류집단의 등장입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권력집단의 교체는 상당히 큰 의미가 있어요. 다만 세대교체는 좋은데, 그것이 배제의 형태로 일어난 게 문제입니다. 기존 세대를 비난하고 폐기처분하는 형태로 진행된 거죠. 우리가 가진 자산을 과소평가하면서. 사회가 깨끗해진 대신에 활력을 잃었어요. 그것을 발전으로 볼지는 평자에 따라 다르겠지요.”

    송 교수는 지난해 펴낸 ‘한국,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저서에서 진보정권이 앞으로 10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이유로 4가지를 꼽았다. 첫째, 유권자의 인구분포가 진보 쪽에 유리하게 돌아간다. 둘째, 진보정권은 이념상 좌파가 아니라 반(反)보수일 뿐이다. 셋째, 정치권에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넷째, 보수는 새로운 비전 제시에 실패했다.

    -참여정부의 임기가 1년여 남았는데, 남은 기간에 국민과 함께 가기 위해서는 무엇에 중점을 둬야 할까요.

    “한국 역사에서 진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국민이 외면하게 하면 안 되죠. 진보의 긍정적인 의미를 국민에게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성과죠. 한국사회 발전방향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저는 이 정권이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기존 정책 기조를 상당 부분 수정 해야겠네요.

    “사회적 업적의 효과가 유지될 수 있도록 경제정책에서 성공해야죠. 그것이 뭐냐. 고용과 성장이죠. 정책 전반을 전환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다만 융통성을 발휘하라는 거죠. 부동산정책, 그렇게 갑갑하게 하지 말고. (부동산을) 팔 사람은 팔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소득 없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정책을 펴야 합니다.”

    -실질적인 복지정책 말이죠?

    “사회보험은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능력이 없으니. 대신 사회 서비스는 건드릴 수 있어요. 출산한 사람에게 20만원 주는 게 무슨 효용이 있습니까. 고령자에게 8만원 주는 게 무슨 효과가 있습니까. 고령자, 출산 여성, 빈곤층 이 세 대상에 대해 획기적인 사회 서비스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돈 얼마 안 들어요. 저 같으면 행복도시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을 여기에 투입하겠어요. 그게 바로 진보정권이죠.”

    송 교수는 딸 둘을 뒀다. 현재 대학생, 고등학생이다.

    -자녀의 정치적 성향은 어떤가요. 2002년 세대의 특징이 있나요.

    “후기물질주의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어요. 경제적 풍요로움에서 비롯된 거죠. 정치에 대해선 별 관심 없고. 정당보다는 인물로 판단하는 것 같아요. 누가 산뜻하다, 아니다라고.

    -아버지세대와 어떻게 다르죠.

    “우리 세대에 비하면 상당히 열려 있습니다. 생활환경이 좋아지니 독립적인 공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요. 우리 세대보다 독립성과 주체성이 강하죠. 부모와 자식이 주체 대 주체로 만나는 거죠. 다들 그러지 않나요.”

    -소통은 잘 되는 편인가요. 2002년 대선 때 드러난 세대간 갈등은 없나요.

    “저 같은 경우 부권(父權)을 상당히 자제하고 있어요. 모권(母權)도 마찬가지고. 되도록 아이들의 얘기를 많이 들어주고, 자율권을 주고 있습니다. 가끔 규율을 발동하는데, 그게 효과가 없다는 게 금방 드러나기 때문에 자제하죠. 캐어(care)로서의 부모지, 규율 주체로서의 부모가 아니에요. 대화는 잘 되는 편인데, 실은 대화를 강요당하고 있어요. 의견을 강요당하는 세대가 된 겁니다. 우리 세대의 가치를 아이들에게 강요할 수 없어요. 강요하면 역효과 나니. 아마도 우리 세대의 많은 부모가 그럴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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