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념논쟁이 우리 사회에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한국 현대사 해석은 물론 현 정권에 대한 평가에 이르기까지 그 논쟁의 폭이 넓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고, 20세기의 이념 대립 구도로 후퇴하지 않기 위해선 무엇이 전제되어야 하는가.
4월26일 발족한 뉴라이트 재단에는 자유주의연대, 뉴라이트싱크넷, 교과서포럼,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등이 참여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런 이념논쟁에서 뉴라이트의 위상과 뉴레프트의 위상이 사뭇 다르며, 논쟁 구도 또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우파 내에서 뉴라이트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큰 반면, 좌파 내에서 뉴레프트의 흐름은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 또한 뉴라이트 내에는 뉴라이트전국연합, 뉴라이트재단 등 그 지류가 다양한 반면, 뉴레프트 내에는 스스로 뉴레프트라고 나서는 단체가 거의 없는 편이다. 좋은정책포럼이 흔히 뉴레프트의 대표주자로 꼽히지만, 구성원들 사이에는 이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들은 우리 사회의 이념 구도가 갖는 복합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 좌파와 우파의 대립은 광복 직후 본격화했다가 남북분단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좌파가 사실상 불허되어 수면 아래 잠복했다. 이 대립이 다시 등장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이다. 이후 좌파를 포함한 민주화 세력은 민주화 과정과 사회운동을 주도해왔으며, 바로 이 점에서 좌파에 대한 내재적 비판은 상대적으로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좋은정책포럼, 희망제작소, 세교연구소 등이 언론에 의해 뉴레프트로 분류되고 있지만, 정작 이 단체들이 뉴레프트를 자칭하지 않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거시적으로 보면 이념적 분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념이란 현실의 반영이자 조타수다. 그동안 우리 현실은 지속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변화해왔으며, 이 변화는 이념의 변신을 요구했다. 세계화 시대에 박정희식 발전모델이 유효하지 않다면 새로운 우파 모델을 모색할 수밖에 없으며, 민주화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면 이를 넘어선 새로운 좌파 모델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런 이념의 전환 또는 이념 구도의 변화 과정에서 이념 사이의, 이념 내부의 논쟁이 활기를 띠게 되는데, 최근의 상황은 이런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현실의 변화, 이념의 변신 촉구
최근 이념논쟁에서 깃발을 먼저 든 쪽은 뉴라이트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우파가 내세운 이념적 정체성은 크게 보아 네 가지다. 남북관계보다는 한미관계를 중시하는 대외전략, 분배보다는 성장을 중시하는 성장주의, 시장의 원리보다는 국가의 개입을 중시하는 발전국가론, 공산주의를 거부하는 반공주의가 그것이다. 문제는 1980년대 이후 이런 우파 이념에 대한 시민사회의 지지가 점차 감소해왔다는 점이다. 특히 1980년대 대학을 다닌 386 세대와 1990년대 대학을 다닌 신세대는 우파가 갖는 권위주의와 보수주의에 거부감을 갖고 있으며, 이런 경향은 1997년 대선(大選) 이후 치러진 여러 선거에 반영되어 나타났다.
이런 상황의 변화가 우파의 내적 분화(分化)를 가져왔다. 2002년 대선을 경험하면서 우파 내에서는 전통적 우파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판단 아래 우파의 변화를 모색하는 흐름이 등장했다. 우파는 개발독재적 우파와 신자유주의적 우파로 분화됐는데, 최근에 등장한 뉴라이트는 후자의 흐름을 대변한다. 뉴라이트를 주도해온 자유주의연대를 중심으로 이들의 이념을 보면 ‘시장 주도형 경제, 한미동맹의 강화와 북한의 민주화, 기회균등 보장과 빈곤 해소, 법치주의와 사회적 공동선(共同善)의 실현’ 등이 강조되고 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를 제외하면 이런 내용은 서구사회의 신자유주의와 유사하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경제는 신자유주의 모델로 빠르게 재편됐으며, 국가의 역할을 특권화하는 박정희식 개발독재 모델은 유효성을 상실했다. 경제정책의 초점도 국가가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원리가 확대되는 가운데 국가가 시장에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에 놓여 있었다. ‘세계화의 충격’이라 할 수 있는 대외적 조건의 변화가 우파에게도 중대한 영향을 끼친 셈이다.
그렇다면 뉴라이트를 어떻게 볼 것인가. 뉴라이트를 자임하는 그룹들은 뉴라이트가 구(舊)우파, 즉 올드라이트(Old Right)와 구별되는 차별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올드라이트가 사실상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을 고수하려 했던 것과 달리 뉴라이트는 변화를 수용하며 기회의 균등이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수적 처방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뉴라이트는 시장의 원리에 따라 사회를 재편하되 그 부작용을 최소한의 국가 개입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의 한국적 버전이라 볼 수 있다. 뉴라이트와 올드라이트가 공통점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대북(對北)정책 영역이다. 뉴라이트의 대북정책은 남북한 평화체제 구축과 북한의 민주화를 강조하는데, 이는 올드라이트가 제시한 상호주의의 연속선상에 있다.
한국 좌파의 특수성
다른 한편에서는 뉴라이트에 대한 좌파의 비판이 꾸준히 이어졌다. 좌파 진영의 다수는 뉴라이트에 대해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지만, 일각에서는 뉴라이트가 새로운 내용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혹평했다. 이들에 따르면, 냉전 반공주의를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 제기로, 국가가 주도하는 개발독재를 시장이 선도하는 성장제일주의로 바꾼 것을 제외하면, 뉴라이트의 ‘새로움’이란 고작 올드라이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뉴라이트가 자신의 이념으로 내건 ‘공동체 자유주의’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는데, 이 개념은 시장의 한계를 공동체적 연대로 감싼다기보다 오히려 시장의 경쟁을 특권화하고 권위주의 통치로 돌아가겠다는 모순적인 혼합물이라고 평가절하한다.
일반적으로 좌파가 사회개혁에 집중한다면 우파는 사회통합에 무게 중심을 둔다. 오늘날 사회통합의 핵심은 세계화를 적극 활용하되 사회적 양극화를 제어함으로써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있다. 바로 이 점에서 뉴라이트에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박정희식 발전모델을 넘어서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을 생산적으로 결합시키는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추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냉전적 대외전략을 넘어서 평화공존을 새롭게 모색하는 것도 뉴라이트에게 부여된 또 다른 과제일 것이다.
2005년에 뉴라이트 담론(談論)이 각광을 받았다면, 올해 들어서는 뉴레프트가 주목을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뉴레프트에 대한 관심이 좌파 진영이 아니라 오히려 우파 진영에서 높았다는 점이다. 우파 진영에서 뉴레프트를 반기는 이유는 뉴라이트와 긴밀히 연관돼 있다. 지난해 등장한 뉴라이트에 대한 좌파 진영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한 편이었는데, 뉴레프트가 등장했으니 뉴라이트와 뉴레프트의 새로운 대립 구도를 만들 수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뉴레프트의 출범은 뉴라이트의 등장이라는 외적 조건보다는 민주화 과정에서 나타난 좌파의 자기비판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좌파 지식인사회 내에서는 일부 노동조합의 집단이기주의와 도덕적 해이, 일부 시민단체의 근본주의와 비타협주의가 좌파의 문제점으로 지목되기 시작했으며, 뉴레프트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좌파 프로그램의 갱신을 모색하고자 했다. ‘지속가능한 진보’ ‘대안이 있는 진보’를 추구하는 뉴레프트 내에는 강조점의 차이가 존재한다. 좋은정책포럼이 국가 전반의 정책대안을 모색한다면, 희망제작소는 일단 지방자치에 큰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세교연구소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만남에 주목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정책 마련
좌파를 갱신하려는 이런 흐름들에 대해 좌파 진영은 이들을 뉴레프트라고 명명하는 데 망설이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 좌파의 특수성이 놓여 있다. 서구식 분류에 따라 ‘뉴’와 ‘올드’를 구분한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운동을 중시하는 전통적 좌파와 신사회운동을 중시하는 새로운 좌파가 공존해왔다. 경제가 압축성장을 이뤄왔듯이 냉전 분단체제 아래에서 불허된 진보 이념 또한 압축 발전해온 셈이다.
구체적으로 전통적 좌파와 새로운 좌파의 대표 격인 민주노총과 환경운동연합이 민주화 과정에서 연대활동을 활발히 벌여온 것은 한국적 좌파의 특수성이며, 이런 전후 맥락이 최근 등장한 포럼 및 연구소들을 뉴레프트라 이름짓는 데 진보 진영이 망설이는 이유라 할 수 있다. 뉴레프트의 등장이 기존 좌파 진영의 성취를 낡은 의미의 올드레프트(Old Left)로 자리매김하는, 다시 말해 의도하지 않은 ‘정치적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선이 존재한다.
3월 27일 '희망제작소' 창립기념으로 열린 국제세미나에서 사례 발표를 듣고 있는 참가자들.
현재 우리 사회의 좌파 진영이 직면한 이슈도 이와 유사하다. 고용 없는 성장과 일자리 창출, 시장 개방과 성장 시스템 개편,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재원 확충, 경제성장과 환경보존의 조화, 남북화해와 동북아 평화공존 등 그 목록은 다양하다. 이런 이슈들에 대한 좌파적 해법들 사이에는 해소하기 어려운 긴장이 존재하는데, 개혁세력이라 불리는 신중도 또는 중도좌파 그룹이 세계화의 한국적 수용에 주목한다면,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순수 좌파 그룹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맞서는 반(反)세계화 내지 인간적 세계화를 강조한다.
앞으로 뉴레프트가 어떤 위상을 갖게 될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넓은 의미의 진보개혁 세력 내에서 연대를 모색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제기할 수도 있고, 독자적인 중도좌파 세력의 목소리를 강화할 수도 있다. 올드라이트와 뉴라이트의 관계와는 달리, 뉴레프트와 기존 좌파의 관계도 아직은 확실하지 않다. 이는 좌파의 기본 성향과도 관련이 있다. 좌파에는 근본적으로 체제 비판적인 성향이 내재돼 있으며, 현실주의적 접근을 강조하면 할수록 지지 그룹의 이탈을 불러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로서 뉴레프트는 앞선 국가들의 시행착오를 교훈으로 삼되, 사회적 형평성과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정책 대안의 개발에 더욱 주력할 필요가 있다.
‘집단적 기억’에 대한 갈등
이념논쟁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것은 우리 현대사에 대한 해석이다. 그동안 뉴라이트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박정희 시대의 평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왔는데, 이와 연관해 최근 논란을 일으킨 책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이다. ‘재인식’은 일군의 역사학자, 국문학자, 정치학자, 경제학자가 일제 식민지시대부터 1950년대까지 우리 현대사에 대해 쓴 논문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은 일각에서 ‘뉴라이트’의 역사 해석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학계 밖에서도 적지 않은 관심을 모았다.
논란은 책 제목이 내걸고 있는 상징성에서 비롯된다. 이 책은 1980년대 우리 지식사회는 물론 시민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 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겨냥하고 있다.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한 교수는 “지난 20여 년간 학계의 부단한 연구로 ‘인식’에서 제기된 주장의 잘못이 지적되고 수정되어왔음에 주목해 그간 진척된 수준 높은 학술 논문을 선정해 대중에게 알기 쉽게 제시하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이 목표는 ‘인식’에 담긴 민족지상주의와 민중혁명필연론이 ‘우리 역사 해석에 끼친 폐해에 대한 우려’와 ‘균형감각을 잃은 역사 인식에 대한 걱정’으로 표명됐다. 그리고 이 우려와 걱정은 최근 진행되는 과거사 청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학문적 연구에서 시작됐으나 현실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에서 ‘재인식’을 둘러싼 논란은 학문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
‘재인식’을 둘러싼 논란이 갖는 의미는 우리 국민의 ‘집단적 기억’에 대한 경쟁과 갈등이 이제 본격화했다는 점이다. 물론 ‘재인식’이 역사적 사실의 복원을 되풀이해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에 대한 해석이 이념적으로 그렇게 자유롭기는 어렵다. ‘재인식’의 편집위원 중 한 교수가, 일제가 남긴 전시경제 체제를 해체하고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대한민국이 성립된 것은 출발로서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한 것은 해방 공간에 대한 전형적인 우파적 해석이다.
돌아보면, ‘인식’의 역사인식에는 1980년대 민족해방과 민중해방에 대한 염원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 염원에 공감한 386세대가 이후 우리 사회를 주도해온 것이 사실이다. 현재 시점에서 볼 때 ‘인식’은 사실 복원과 해석에서 문제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1980년대 시점에서 볼 때 ‘인식’이 당시 한쪽으로 편향된 역사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고 역사의 또 다른 측면을 밝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더불어 ‘인식’으로부터 지적 세례를 받은 386세대의 현실을 보는 눈이 1980년대의 역사 인식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다. 386세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모두 민족지상주의적이고 친(親)좌파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들은 과거의 역사 이해보다는 오히려 현재 직업의 미래, 자녀교육, 주택문제 등으로부터 자신의 사회의식을 구성하며 정치적 지지를 선택하고 있다.
정치적 讀法의 위험
‘재인식’에 대해서는 최근 좌파 진영으로부터 본격적인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은 통계 조작에 기반한 잘못된 주장이고, 역사의 승리자가 보이는 무한한 냉소가 느껴진다고 비판받았다. 더불어 ‘재인식’의 편자들이 다양한 필자들을 과연 대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앞으로 ‘재인식’을 둘러싼 논쟁은 예상컨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선거와 같은 정치적 국면에서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재평가 등과 맞물려 논쟁이 더욱 뜨겁게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임을 상기한다면 과거에 대한 집단적 기억의 문제는 현재를 인식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지나간 우리의 현대사를 정치 이념의 이분법으로 과도하게 독해하려는 의도다. ‘재인식’을 둘러싼 논란을 ‘좌파 민족주의 대 뉴라이트’의 역사인식 대립으로만 보려는 것은 여전히 역사를 이념투쟁 수단으로 파악하려는 정치적 독법(讀法)의 위험을 안고 있다.
어느 나라이건 역사 해석에서 하나의 시각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역사적 사실의 복원과 이에 대한 평가 또한 고정돼 있지 않다. 새로운 사실의 발견으로 역사는 재구성되며 재해석된다. 과거에 대한 우리 기억도 어느 하나의 집단적 기억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현재진행형이다. 어떤 집단적 기억이 역사를 정직하게 반영하는지를 연구하며 그것이 현실에 어떤 함의를 주는가를 성찰하는 것은 역사를 해석하는 학자들의 기본적인 책무다.
일찍이 사회학자 다니엘 벨은 1960년대에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말한 바 있다. 이데올로기가 정치 및 사회에 대한 사고(思考)의 틀 내지 방식을 뜻한다면, 이념이 사회를 주도하는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는 의미일 터다. 그리고 미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80년대 후반 ‘역사의 종언’을 주장했다. 국가사회주의 몰락과 더불어 이제 우리 인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역사의 종착역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20세기 이념 구도에 갇히나
이 두 학자의 견해에 필자는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다. 이념은 여전히 현실을 해석하는 눈이자 문제를 해결하는 틀을 제공하고 있으며, 자유민주주의가 유일한 정치적 담론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수긍할 것이 있다면 어느 사회든 좌파 대 우파 또는 진보 대 보수의 20세기적 이분법이 갖는 의미가 점차 퇴색해 왔다는 점이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자코뱅당과 지롱드당에서, 그리고 카를 마르크스와 에드먼드 버크에서 사상적 기원(起原)을 갖는 좌파와 우파는 근대사회에 대한 상이한 해석 및 처방을 제시함으로써 이념적 대결구도를 이뤄왔다. 그리하여 우파가 대체로 성장·시장·자유를 중시한다면 좌파는 주로 분배·국가·평등을 강조해왔다.
문제는 오늘날 과연 성장과 분배, 시장과 국가, 자유와 평등을 칼로 무를 베듯 양단할 수 있는가에 있다. 시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와 국가를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가 여전히 맞서고 있지만, 시장과 국가 중 어느 하나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세계사회에서 성장과 분배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특권화한다는 것은 사실판단에서 지속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규범판단에서도 소망스럽지 않다.
이념논쟁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세계화와 정보사회의 도래라는 전지구적 상황을 우리 현실에 접목할 때 우리 사회가 여전히 20세기의 이념 구도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말하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특정한 정치 국면이 전개되면 어김없이 이념 논쟁이 벌어졌다. 대한민국의 정통성, 6·25전쟁의 본질, 박정희 시대의 성격 등을 중심으로 논란이 불거지고 상대방에게 이념적 낙인을 찍어왔다. 최근에는 북한 인권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더해졌지만, 우파 대 좌파의 기본 구도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물론 우리 현대사 해석을 둘러싼 이슈들은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고,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역사에서 비약이 없듯이 이 이슈들은 대한민국의 현재를 이루고 있는, 다시 말해 ‘살아 있는 과거들’이다. 문제는 이런 쟁점들이 진지하게 토론된다기보다 정략적으로 이용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데 있다. 자기 집단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서라면 이념 논쟁을 부추기고 거기에 안주하려는 세력들이 존재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이념논쟁에서 한국적인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이른바 색깔론이다. 학문적으로 볼 때 색깔론이란 좋은 의미의 말이 아니다. 남과 북이 나눠진 상황에서 이념적 지형은 협소할 수밖에 없었으며, 색깔론은 상대방이 갖는 이념의 색깔을 문제시함으로써 상대를 정치적 곤경에 빠뜨리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분단체제라는 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조건을 이용해 상대방의 이념을 공격하는 색깔론은 건강한 이념 논쟁을 활성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극우세력과 극좌세력의 목소리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설득력 있는 대안 제시
국민 다수가 원하는 것은 현재의 진단과 미래의 비전을 놓고 벌이는 생산적인 논쟁이다. 생산적인 논쟁은 자신의 이념에 대한 내재적인 비판, 그리고 상대 이념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을 통해 가능한 법이다. 시장의 자유와 사유재산 제도만을 반복해 강조한다면 그것은 결국 사회 양극화와 기득(旣得) 이익을 옹호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민주화 과정에서 나타난 집단이기주의와 도덕적 해이에 대해 눈감고 있다면 그것은 결국 인간해방과 노동해방이라는 이상(理想)을 내적으로 침식시킬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이념 구도는 세계화와 정보사회의 도래라는 새로운 시험대 위에 올라서 있다. 한편에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탈(脫)이념적 성향이 강화되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화와 정보화가 미치는 영향과 이에 대한 대응을 둘러싼 이념 사이의, 그리고 이념 내부의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가 전지구적인 영향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오늘날 이념 논쟁의 새로운 축을 이루고 있으며, 이런 경향은 갈수록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생산적인 이념 논쟁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거시적인 비전과 구체적인 정책대안에 대한 토론이 활성화돼야 한다. 세계화와 정보사회의 도래는 기존의 이념 구도와 이와 연관된 정책 구도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제 금융자본의 영향력 증대, 고용 없는 성장, 사회적 양극화의 확대, 청년실업의 증가 등은 세계화와 정보화가 가져오는 결과들이며, 이는 고전적인 발전국가 전략이나 복지국가 정책 같은 해법으로는 풀기 어려운 과제들이다. 우파든 좌파든, 뉴라이트든 뉴레프트든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이슈들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논쟁을 활발히 벌임으로써 생산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둘째, 공론장(公論場)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론은 특정한 이념적 지향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공공적 특성을 고려해 이념 논쟁을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다뤄야 한다. 이념논쟁에 편승해 특정 이념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다른 이념은 과도하게 비판하는 것은 언론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공론장이 사적인 이익 추구에 좌우될 때, 이념 논쟁은 언제든지 색깔 논쟁으로 후퇴할 가능성이 있으며, 오히려 사회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공론장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생산적인 이념 논쟁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광복 60년 결산하는 大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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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은 지난 산업화 30년과 민주화 20년을 결산하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파와 좌파, 뉴라이트와 뉴레프트 사이에, 그리고 내부의 이념 및 이와 연관된 정책 논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이 논쟁은 아마도 광복 60년을 진정으로 결산하는 토론이자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일대 토론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주의 역사가 시사하는 바는 논쟁이 활발히 전개될 때 그 사회는 더욱 발전한다는 데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제대로 된 이념논쟁을 벌일 만큼 성숙했다. 부디 생산적인 이념논쟁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