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하는 섹슈얼리티’ <br>다자키 히데아키 외 지음/김경자 옮김/삼인/ 343쪽/1만5000원
노동하는 인간, 노동하는 기계, 노동하는 가축도 아닌 ‘노동하는 섹슈얼리티’라니. 섹슈얼리티가 노동을 할 수 있다고 바라보는 이 책의 시각은 현실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어떠한 생산력을 제공하며 동시에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을까.
성매매 여성, “우리도 노동자다”
2004년 9월23일. 한국에서는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되었다. 이 법은 단순히 새로운 법적 처벌 조항을 만들어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성매매 특별법을 둘러싸고 한국사회는 성매매에 대한 많은 말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성매매를 여성의 성과 몸에 대한 착취로 이해하며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성매매라는 지하경제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들이 성매매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리고 이제껏 한국사회에서 공식적으로 등장하지 못했던 성매매 노동권을 주장하는 ‘권리담론’이 시작되었다.
이 권리담론의 중심에 성매매 당사자 여성이 서 있다. 성매매 여성들은 2005년 세계여성학대회에서, 2005년 서울올림픽공원에서 개최된 ‘성노동자대회’에서 성매매는 일종의 노동이며, 자신들은 노동하는 노동자임을 ‘공식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노동으로,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받으려는 이들의 목소리는 한국사회에서 지속된 성매매 담론의 지형을 급격하게 바꾸어놓고 있다.
여성주의는 성매매를 여성과 남성, 여성과 여성 사이에 성적 위계를 만들어낸 가부장제와, 성을 교환 가능한 자원으로 만든 자본주의에 의해 생산된 사회구조적 문제로 보고, ‘비판적’으로 인식해왔다. ‘필요악’이라는 수사에서도 드러나듯 가부장제 사회는 성매매를 열렬히 필요로 하면서도 그것에 ‘악’이라는 자리만을 내주었다. 여성의 인권이라는 여성주의 맥락에서도, 여성의 성적 대상화라는 가부장제 맥락에서도 성매매 여성은 의미 있게 자신을 읽어 낼 공간을 갖지 못했다.
자신을 ‘성노동자’로 명명하는 여성들 앞에서 그 목소리를 ‘허위의식’이라고 치부해버리거나 포주와 결탁해서 나온 강요된 목소리라고 단정짓거나 문제 당사자(하위주체)의 발언이니 무조건적으로 승인해야 한다고 간주해버리기에 앞서 던져보아야 할 질문이 있다. 한 번도 이 사회에서 의미 있는 정체성을 갖지 못한 성매매 여성이 자신을 모든 사람으로부터 혐오스러운 존재로 낙인찍히게 했던 바로 그 성매매에 ‘노동’ 이라는 단어를 붙이기 시작했을 때, 그 변화는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건강한 노동의 핵심 ‘선택권’
이 책은 만일 성매매가 부정적인 것이라면 성을 사고 파는 행위 그 자체가 비천한 것이 아니라 성을 사고 팔 수 없도록 성을 전인격과 동일시하며 신성화하는 시각과, 성을 판매하는 여성의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노동은 신성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이 책은 노동의 신성성까지는 아니지만 노동의 건강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노동의 종류 그 자체가 아니라 노동하는 자가 그 노동에 대해 갖는 선택권의 유무 혹은 정도라고 이야기한다. 핵심은 ‘선택권’에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 이주해서 성산업에 종사할 것을 ‘선택’한 태국 여성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는 이들 여성이 이 일을 어떠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경험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글로벌 경제체제하에서 경제 발전 정도가 다른 국가들 사이를 횡단하기 시작한 여성들은 이주의 경험을 통해 고국의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와 문화를 체험한다.
물론 이주한 사회에서 그 여성들은 마이너리티다. 그러나 이주를 통해 태국에서 찾지 못한 기회와 가능성을 만나기도 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수동적 희생자에 머물지 않고 국제 이동을 이용해 자신과 가족의 생활을 개선하고자 자율적으로 투쟁하는 여성들이다. 그들은 태국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조건을 거부하고 자신의 의지로 일본에 돈 벌러 가기로 결정했다. 비록 100%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닐지언정 각종 정보에 근거해 나름대로 검토해서 일본에 돈 벌러 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 책은 성매매에는 본질적인 피해자와 희생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매매를 올바르지 않은 것으로, 성매매 여성을 피해자로 만드는 ‘규정’이 있을 뿐이라고 누누이 이야기한다. 이론가들에게는 성매매가 개념일 수 있지만 직접 이 일을 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성매매는 현장이며 삶의 문제다. 현재 성매매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닌 ‘새로운 질문’이다. 이 책은 성매매를 다양한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생산적이다.
다른 임노동과 성매매의 차이
그러나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노동’으로서의 성매매, 성매매 여성의 ‘선택권’에 대한 논의는 성매매가 놓인 맥락-노동시장의 성차별, 성적 이중규범, 여성들의 성적 등급화-과의 결합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모토로 내세우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유연성의 지배를 받는다. 정년이 보장되는 직종은 거의 사라졌다. 많은 샐러리맨은 40대 중반이면 퇴출되는 처지에 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성매매가 노동이 될 수 있다면 그건 수요와 공급이 있다는 소리다. 사람들은 성매매 여성의 정년을 몇 살 정도로 생각할까? 30대? 20대? ‘티켓’ 다방에서 20대 중반이면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는 나이다. 성매매 여성의 ‘정년’은 성매매에서 무엇이 교환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책이 지적하듯 자본주의에서 임노동은 노동력으로부터 노동을 분리해 상품화한다. 그것이 발생하는 가치에 따라 교환의 정도가 결정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한다. 교육을 더 받고 영어 공부에 목숨을 걸고 인턴십을 하며 토익 점수 올리기에 혈안이다. 어떤 개인이 가진 토익점수와, 어떤 개인이 가진 몸은 무언가를 교환할 수 있는 자원이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토익 점수와 몸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간단하다. 토익 점수는 약간의 노력으로 계속해서 지속 가능하게 유지할 수 있는 자원이 되지만 몸이 가치를 창출하는 기간은 현저하게 짧다. 노력으로 유지하거나 기간을 연장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토익점수와 성매매 여성이 가진 몸의 차이는 성매매가 다른 임노동과 동일선상에서 취급될 수 없는 특수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아직까지 성매매를 하는 많은 여성은 낮은 계급 출신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다른 질문 하나. 그 여성들과 비슷한 계급 출신 남성들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비슷한 계급의 여성과 남성이 다른 경로의 일을 선택하는 것은 이들에게 열려 있는 노동시장의 종류가 다르게 구성돼 있음을 의미한다.
‘선택권’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조건이 갖추어진 뒤에 이야기해도 늦지 않다. 예컨대 반찬이 세 가지 차려진 밥상에서 하나를 집을 때의 선택권과, 반찬이 10가지 차려진 밥상에서 하나를 집을 때의 선택권은 같을 수 없다.
성매매를 ‘노동’의 문제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여성과 남성 각각에게 열린 노동시장 간의 불균형을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성매매 여성이 가질 수 있는 현재의 ‘선택권’은 남성에 비해 제한된 조건에서의 선택권이다.
성매매를 하는 여성과 하지 않는 여성 사이의 구분-매춘 여성/어머니-은 존재하지만 남성들 사이에 성을 사는 남성/아버지의 구분은 없다. 남성은 권력이 강할수록 섹스할 수 있는 여성의 숫자가 많아지지만 여성은 권력이 약할수록 많은 남성과 섹스하게 된다. 이렇듯 성매매는 여성과 남성에 대한 이중적 성규범을 기반으로 작동된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도 이 책이 지닌 미덕은 성매매 여성의 행위를 타자화하지 않고, 그렇다고 성매매를 지속시키고 싶은 남성 중심적 욕망에 동원되는 것도 아니면서 진지하게 성매매 문제와 결합시키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