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자연을 벗 삼기는 어렵다. 돈이 많아 경치 좋은 곳에 그림 같은 별장을 지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주위의 꽃과 나무의 이름까지 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 집, 자연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이 남자, 진정한 ‘웰빙족’이다.
먹물에 젖은 큼직한 붓을 종이에 투박하게 문질러 앙증맞은 새를 그려내는 화가 박태후. 그는 원래 공무원이었다. 원예고를 졸업하자마자 광주고등법원 정원사가 되었고, 군대를 다녀와서는 광주농촌지도소에서 근무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야간대학에 편입해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내친김에 대학원까지 마쳤다. 국전과 서예대전에 줄줄이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정원의 꽃과 나무가 내다보이는 거실 창, 그 곁에서 오누이처럼 닮은 부부가 직접 덖은 차를 마시고 있다. 함께한 세월이 더해지면서 부부는 서로를 닮고 또 자연을 닮아가는 듯하다.
그 꿈을 이루는 데는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보다 더 긴 세월이 요구됐다. 원예고 시절부터 전남 나주에 있는 아버지의 밭 두 뙈기에 씨를 뿌려 꽃과 나무를 길렀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돈이 모아지는 대로 땅을 조금씩 넓혀 나갔다. 그리고 또 씨를 뿌렸다. 전남 장성의 백양사에서 단풍나무 종자를, 나주 불회사에서 호두와 산벚나무 종자를, 해남 대흥사에서 동백과 비자나무 종자를 옮겨왔다.
씨 뿌리던 소년이 중년이 되는 사이 작은 씨앗은 300여 그루의 고목으로 자랐다. 아이들 땅따먹기 하듯 조금씩 늘려간 그의 영역은 어느새 3000여 평이 되었고, 그 한가운데 살포시 들어앉은 집에선 바람에 댓잎 춤추는 소리, 뻐꾸기 우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죽설헌(竹雪軒)이라는 당호가 그럴듯하게 어울린다.
박태후씨가 봄날 가장 좋아하는 노랑꽃창포에 둘러싸였다. 인공 연못엔 각종 물풀과 메기, 가물치, 붕어, 그리고 황소개구리가 살고 있다.
“이게 뭔 꽃인 줄 압니까? 노래는 많이 들어봤을 텐데…. 해당화예요.”
집 주위를 구경시키던 그가 많은 꽃 중 ‘이 정도는 알겠지’ 하고 골라 물어본 모양인데, 대답이 없으니 자문자답한다. “아, 해당화가 곱게 핀….” 그가 속으로 웃지 않았을까.
“봄엔 철쭉과 노랑꽃창포가 참 예뻐요. 6월말이면 능소화가 곱게 피고, 상사화, 비비추, 옥잠화, 태산목도 여름에 예쁘죠. 가을엔 목서꽃이 피고, 겨울엔 눈꽃이 소복할 때 장작불에 고구마 구워 먹는 재미가 좋아요.”
나주 죽설헌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기와담장이 길게 늘어서 있다. 처음엔 돌이 귀한 지역 사정 때문에 기왓장으로 담을 쌓았는데, 지금은 기왓길의 운치에 매료돼 고가(古家)를 뜯어낸다는 소식이 들리면 어디든 달려가 기와를 공수해온다.
그가 가꾼 꽃과 나무, 불러 모은 새들은 그의 화폭에 옮겨져 그림이 된다. 직장생활과 병행하며 뒤늦게 시작한 그림 공부는 그에게 연금 외의 소득원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는 대학과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가르친다.
뒷모습이 그를 꼭 닮은 아내는 밥상에 올릴 찬거리를 텃밭에서 직접 기른다. 배추 상추 청경채 갓 고추 오이 가지…. 녹차도 직접 덖은 것을 내놓았다. 그는 “이렇게 살기까지 아내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고 말한다.
“결혼 3년 만에 이 집을 지었어요. 그때 제가 ‘10년 뒤면 배운 사람은 죄다 교외로 나올 것’이라고 아내에게 말했죠. 그런데 그게 현실로 나타나고 있잖아요.”
먹으로 그림을 그리는 박태후씨는 “내 예술의 가치는 사람을 즐겁고 기쁘게 하며 슬프게도 하고 생각하게도 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