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호

제7회 북한인권 난민문제 국제회의 참관기

“北 인권, 유럽안보협력회의처럼 ‘다자 접근’으로 풀자”

  • 허만호 경북대 교수·정치학, 북한인권시민연합 연구이사 mhheo@knu.ac.kr

    입력2006-07-20 1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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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이 유엔 인권이사회 초대 이사국으로 선출되던 5월9일, 노르웨이 베르겐에서는 한국의 북한인권시민연합과 노르웨이의 라프토인권재단이 공동주최한 제7회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가 열렸다. 22개국 정부·비정부기구 대표들이 모인 이 회의의 준비과정에 참여했던 경북대 허만호 교수가 현지의 분위기와 토의내용을 소개한 글을 보내왔다.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유럽의 교훈을 새겨 북한인권 문제에도 다자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허 교수의 견해다.
    제7회 북한인권 난민문제 국제회의 참관기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열린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 참석자들.

    노르웨이 제2의 도시인 베르겐은 우리에게 친숙한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주최측이 제7회 북한인권·난민 문제 국제회의를 이 도시에서 개최하기로 한 것은, 5월10일부터 그곳에서 시작된 북유럽 5개국 미디어 페스티벌과 연계해 북한의 인권 상황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이념적 편향성을 극복하고 다양한 주제와 시각을 검토해 새로운 접근법을 찾기에 적합한 도시라는 점도 고려했다.

    북유럽 국가들은 그간 북한에 대해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들과 다른 접근자세를 견지해왔다. 북한 정부도 이 나라들에 대해 호의를 갖고 있으므로, 북유럽 국가들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중재자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그곳에서 대회를 열게 된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번 회의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삼았다. 회의 개최 전날인 5월8일 오후 필자는 미디어 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해 베르겐에 온 북유럽 언론인들 앞에서 ‘어둠 속의 침묵 : 북한에서의 의견 및 표현의 자유(Silence in Darkness : Freedom of Opinion and Expression in North Korea)’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고, 다음으로 탈북자들의 증언을 듣는 시간이 이어졌다.

    또한 정치·경제적 접근 외에 스포츠, 예술, 문학을 통해 인권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도 시도했다. 이를 통해 북한에서도 인간의 근본적인 자유가 보장되고 인류보편의 가치를 추구하며 자아실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명제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한 것은, 북한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 행위에 대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며 드러난 병리현상마저 외면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대북(對北) 인권정책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르겐 국제회의에서도 글린 포드 유럽의회 의원은 “아이들은 정치를 모른다” “그간의 대북지원이 북한을 변화시켰다”며 지속적인 대북지원을 강조했다. 한국의 박경서 인권대사는 인권의 보편성, 불가분성, 상호의존성 및 연관성을 강조하는 ‘비엔나 선언과 행동강령’을 들며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총체적 관점을 견지할 것을 천명했다. 그러나 박 대사는 북한의 식량권만 강조했을 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인권을 거론할 수 없다는 견해를 분명히 했다. 이는 필자에게는 ‘평화와 인권의 불가분성, 상호의존성 및 연관성’을 도외시하는 태도로 보였다.



    이러한 인식은 북한 정권의 극단적인 폐쇄·고립정책으로 인해 북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대안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그간 서방세계가 취해온 대북 인권정책이 북한의 인권 상황을 크게 개선시키지 못한 것은 북한의 문화와 특수성을 고려·수용하지 않고 서방세계의 주장만을 관철하려 했기 때문”이라며 “서방세계의 대북 접근자세를 수정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는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인질범의 편에 서서 자신들을 구출하려는 사람들이 인질범의 요구조건을 순순히 들어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인질범의 극히 사소한 ‘친절’에 매우 고마워하는 이른바 ‘스톡홀름 신드롬’의 일종이 아닐까 한다.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기본권

    베르겐 국제회의에서 강조된 지향점은 ‘인권에 기초한 대북지원’이었다. 최근 김정일 정부는 한국에 대해 지원자의 감시·감독이 수반되지 않는 ‘개발원조’를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는 남북한 간의 현안을 해결하고 관계를 경색시키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와무라 아키오 교수 등 참석자 다수는 반드시 인권개념에 기초해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7회 북한인권 난민문제 국제회의 참관기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씨의 연주 모습.

    현재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국 기업의 고용주들은 북한 일반노동자의 월급으로 미화 57.5달러(사회보험료 7.5달러 포함)를 지급한다. 그런데 북한정부는 사회문화시책비로 30%를 공제하고 나머지 40달러 남짓 되는 돈은 공식환율인 150원으로 계산해 6000원 정도를 노동자에게 지급하고 있다. 이는 시장에서 교환되는 실제 환율(약 3100원)로 계산하면 2달러도 채 안 되는 돈이다.

    최근 평양을 다녀온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애나 파이필드 기자는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조치로 최근 북한의 암시장 환율이 1달러에 북한 돈으로 3500원에서 6000원으로 올랐다”고 전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개성공단에서 북한 정부는 엄청난 노동착취를 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런 지적에 대해 “편파적이고 왜곡된 시각이며 있을 수 없는 내정간섭이다. 일방적이고 단선적인 사고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서 부분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식량배급은 과거와 같은 무상배급이 아니라고 한다. 북한 주민들은 식량을 시장가격과 별 차이 없이 고가에 구매해야 된다. 북한당국은 새로운 식량배급제를 실시하며 시장에서 쌀과 옥수수 판매를 금지했는데 그로 인해 오히려 비싼 암거래 시장이 형성됐다는 전언이다.

    북한 당국은 가구주(家口主)가 직장에 출근하는 경우 쌀 1kg을 45원, 옥수수 1kg을 22원에 구입할 수 있게 했다. 그가 부양하는 가족 중에 노동력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식량을 시장가격보다 100원 싸게 구입할 수 있지만, 이것으로는 식량이 크게 부족해서 암시장에서 추가로 구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올해 초에 평양, 원산, 온성, 회령 등 북한 주요도시에서 암거래되는 쌀 1kg의 가격은 800~900원이고 옥수수 1kg의 가격은 220~500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5월 중순 평안북도 일대의 쌀값은 1kg에 1300원에 달했다고 한다. 3월에 비해 무려 500원이나 오른 것이다. 장마당에서는 쌀값이 2000원까지 뛸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제까지의 전례에 비춰볼 때 쌀값이 2000원으로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따라서 개성공단 일반노동자의 월급은 가장 낮은 암거래 가격으로도 쳐도 쌀 7kg 혹은 옥수수 12~27kg을 살 수 있는 금액에 불과하므로 기본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러한 노동착취는 일차적으로 북한 정부가 자행하는 것이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용인한 한국 정부 당국자들의 책임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신포 경수로 건설부지와 개성공단 조성과정에서 원주민의 기본권에 대해 우리가 충분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은 큰 죄를 지은 것이 된다. 앞으로 대북지원 실행단계에서는 이러한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외부의 개입’이 필요한 이유

    북한은 외부에서 식량지원을 받는 나라로서 반드시 준수해야 할 국제규범을 위반하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이 2004년 북한에 37만t의 식량을 지원하면서 4800여 회의 모니터링을 했는데, 한국 정부는 50만t의 식량을 지원하고도 단 10회만 실시했다. 한국 정부는 인도적 지원 공여국으로서 서명한 관련 국제규범을 준수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행동은 WFP 등 다른 국제지원단체들이 북한당국에 분배의 투명성과 감독을 요구하는 데 한계를 낳는 상황을 유도했다고 본다.

    2004년 미국이 ‘북한인권법’을 채택하자 노무현 정부는 이른바 ‘대북인권정책 4원칙’을 밝혔다.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인정하지만 각 나라가 처한 특수상황을 고려하여 다양한 접근방식을 검토·선택해야 하고 ▲남북한 간에 긴장완화와 화해협력을 통해 북한인권 문제를 점진적·실질적으로 개선해야 하며 ▲특히 북한 스스로 인권 상황을 개선하도록 지원해야 하고 ▲북한의 인권 문제가 남북한 관계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산국가의 인권 문제는 압박한다고 해결된 적이 없다”는 주장도 곁들여졌다.

    제7회 북한인권 난민문제 국제회의 참관기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위팃 문타폰(왼쪽)의 이야기를 듣는 필자(가운데).

    일견 타당성이 있지만, 인권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고 말하면서도 이를 남북한 관계의 종속변수로 설정한 것은 모순이다. 평화번영정책을 통해 남북한 관계가 개선되면 그 결과로 북한 인권 상황이 개선되도록 하자는 것은 일정 부분 합리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 일반 주민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가 3계층 51개 부류로 나뉘어 차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 스스로 인권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자는 것은 북한인권 문제의 원인과 속성을 간과한 것이고, 한국 정부 스스로 자기주장의 한계를 긋는 일이 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가 북한을 아무리 도와줘도 북한의 정치체제가 ‘사유화한 전체주의적 독재체제’로 남아 있는 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결코 해체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산국가의 인권 문제가 압박으로 해결된 적이 없다는 주장 또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것이다. 과거 중·동부유럽 공산주의 체제에서 인권의 신장됐던 것은, 1975년 서방국가들이 헬싱키협정에 공산국가들을 가입시켜 인권조항 준수를 요구하고 내부의 저항세력이 이를 인권운동의 공간으로 활용했기에 가능했다. 베트남의 정치범 수용소인 ‘노동개조장’이 폐쇄된 것도 이른바 도이모이 정책을 실시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해준 서방국가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설령 한국의 지원으로 북한이 개혁·개방정책을 취하고 경제상황이 개선되더라도 그것이 인권 신장의 공간이 되고 인권 개선으로 연결되려면 끊임없는 외부 관찰과 개입이 필요하다.

    북한인권 문제의 가장 큰 난점은 공식적인 선언과 현실 간에 현저한 괴리가 있고, 이를 북한당국이 인정하지 않아 개선방법을 강구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국제사회가 개선에 나서야 할 부분은 바로 이 간극을 줄이는 일이다. 북한 정부가 1998년 신소청원법을 채택하고 다음해 수정·보완한 것, 사회주의노동법을 1986년 이래 1999년 처음 개정한 것, 1990년대 들어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각각 3회, 5회 수정·보완한 것, 2003년 말에 장애인보호법을 제정한 것 등 일련의 조치는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의 5대조약 운영체계에 따라 북한이 가입한 4대 조약상의 의무를 이행한 결과이다.

    북한인권 운동은 과연 쓸모없는가

    인권을 논할 때는, 인권을 유린당하는 사람들의 처지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베르겐 국제회의의 모토이기도 한 “우리의 자유를 신장시키기 위해 당신의 자유를 사용해주세요!”라는 아웅산 수지 여사의 간청은 바로 북한 주민의 절규가 아닐까.

    계급차별정책, 김일성·김정일 권력 창출과정에서 생겨난 정치범수용소에서 만행이 자행되고,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한 뒤 북한에 송환된 탈북여성이 강제낙태와 영아 살해를 경험해야 하고 초등학생들에게 공개처형 장면을 집단 관람시키는 것이 북한의 인권현주소다. 이러한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는 국제사회의 경악과 비난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북한에서 지속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인권 유린은 북한당국의 전체주의적 통제와 체제의 비효율성에 기인한 것이므로 외부의 개입 없이는 상황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신언상 통일부 차관은 4월14일 한 강연회에서 “세계 각국의 인권단체들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떠들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이 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피켓 들고 데모하고 시위하고 성명 낭독한다고 인권 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면 우리(통일부)도 100만장의 성명서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북한 인권 운동의 무용론인 셈이다.

    북한인권의 개선이 매우 어려운 일임은 틀림없지만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다. 베르겐 국제회의에서 소개된 ‘7인 탈북자 사건’의 경우를 보자. 1999년 11월 러시아에서 탈북자 7명이 체포됐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연해주정부는 러시아 연방정부로부터 이미 망명비자를 받은 이들을 1999년 12월30일 중국으로 강제송환했다. 중국 정부는 이들을 2000년 1월12일에 다시 북한으로 강제송환해, 당시 13세이던 김성일은 구류장에서 사망했고, 김광호는 ‘특별독재대상구역’에 수감되었으며, 허영일·방영실·이동명·장호영·김은철은 2000년 7월4일에 요덕수용소 ‘혁명화대상구역’에 수감됐다.

    북한인권시민연합과 국제인권단체들은 이들에 대해 정기적으로 유엔난민고등판무관사무실과 관계당국에 청원서를 제출하고 보고서를 작성해 여론을 환기시켰다. 그 때문에 요덕수용소에서 사망한 방영실과 특별독재대상구역에 수감된 김광호를 제외한 4명은 결국 생환할 수 있었다. 비정부단체가 유엔 인권기구와 연계하여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감시 활동에 나서면 어떠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보여준 일이었다.

    최근 유엔 인권위원회와 총회는 대북결의를 채택했고, 미국 의회와 정부는 수년간 검토해오던 대북 인권개입조치를 비교적 온건하고 생산적인 ‘2004년 북한인권법’으로 완결지었다. 이러한 성과가 나타나는 데는 국제캠페인을 통해 여론을 환기시키면서 유럽 의회, 유엔 인권위원회, 미국 의회 등에 로비활동을 펼쳐온 비정부단체들의 기여가 적지 않았다.

    제7회 북한인권 난민문제 국제회의 참관기

    아웅산 수지 여사가 “우리의 자유를 신장시키기 위해 당신의 자유를 사용해주세요”라고 한 말을 새긴 티셔츠를 입고 펼친 퍼포먼스.

    유엔이 더욱 관심 갖게 하려면

    필자가 판단하기에 이 시점에서 북한인권과 관련해 관심을 가져야 할 우선적인 과제는, 유엔 인권위원회와 총회에서 채택한 기존의 대북인권결의가 실행될 수 있도록 하고,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인권 문제가 지속적으로 다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3월15일 유엔 인권위원회가 개편되면서 출범한 인권이사회는 정기적으로 회합을 가지며 1년에 최소 3회 이상 소집돼 10주일 이상 가동하고, 필요한 경우 특별회의를 소집할 수 있게 되었다. 인권이사회의 이사국을 포함한 모든 유엔 회원국의 인권 상황이 보편적·정기적 점검(universal periodic review) 대상이 된다.

    인권이사회는 ‘특별절차’ ‘전문가의 조언’, 경제사회이사회 결의 1503호에 따른 ‘인권과 근본적 자유의 침해에 관한 통보의 처리절차’를 유지하기 위해, 기존에 인권위원회가 수행하던 모든 권한, 기제, 기능, 책임을 떠맡고 검토하며 필요할 경우 개선하고 합리화하기로 했다.

    올해 하반기에 인권이사회의 운영절차가 확정되면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겠지만, 인권위원회의 결의와 이에 따른 주제별 특별보고관 및 실무단, 국가특별보고관의 활동이 무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간 경험한 한계들이 이사회 체제에서 극복되도록 최대한의 외교역량과 비정부단체들의 로비력이 모아져야 한다.

    가장 어려우면서 가장 절실한 문제는 북한의 위정자들에게 인권의식을 심어주고 일반 주민들이 권리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베르겐 회의에서는, 자국민에 대한 철저한 정보 차단으로 ‘진실에 대한 왜곡과 거짓’이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국경지역을 넘나들며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를 북한 내로 자연스럽게 전달해주는 탈북자들을 운동의 중심에 포함시켜 북한 주민들이 자신의 현실과 인권 상황을 깨닫게 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북한 정부관리들을 유럽으로 초청해 인권교육을 받게 하고, 이때 탈북자들을 같은 비율로 초청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다자간 협의체의 필요성

    이런 제안들이 결실을 보려면 지속적이고 다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국제사회와 연대가 절실하다. 유네스코의 평화교육 프로그램이나 국제 비정부단체들의 인도적 지원활동을 적극 지원·활용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200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쉬린 에바디 여사가 이란에서 성공시킨 것처럼 국제협약에 따라 어린이와 관련된 인권운동을 펴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 될 것이다.

    북한인권 문제에는 여러 측면이 있지만,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채택한 대북결의는 정치범 수용소와 아동권 문제를 지적하는 것 외에도 식량권, 고문 등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우, 종교 및 신념의 자유, 자의적 구금, 강제적·비자발적 실종, 의견 및 표현의 자유,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해 주제별 특별보고관과 실무단으로 하여금 조사해 보고토록 하고 있다. 물론 유엔 인권위원회의 결의문에 기술된 세부 지적사항은 북한의 정치적 민주화와 체제변혁이 선행되지 않는 한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몇몇 인권 유린 현상은 굳이 정치변동이 없어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베르겐 국제회의에서 필자와 유럽연합 관계자들이 강조한 것처럼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북한인권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국가들이 논의하는 것이다. 유럽안보협력회의(OSCE)와 같은 다자적 형태를 통해 과학·교육협력, 경제·통상 문제 등을 함께 논의하며 해결하고, 헬싱키 프로세스와 같이 지역 국가들이 인권과 근본적 자유를 존중하는 데 공동으로 노력하는 한층 진전된 형태의 대북 인권대화 구도를 마련하는 방안이 유용할 것으로 판단한다.

    다자적인 접근방식은 북한의 인권문제라는 현안을 해결하는 데만 유용한 것은 아니다. 유럽, 미주, 아프리카에 모두 존재하는 ‘지역 인권보호 체계’가 아시아에는 없다. 특히 동북아에서는 정부 차원의 지역 인권 메커니즘뿐만 아니라 비정부단체들 간의 네트워크도 발달하지 못했다. 북한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간 협의는 인적인 접촉을 더욱 빈번하게 만들 것이므로, 장차 동북아에 필수적인 지역 인권보호 체계를 만드는 훌륭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

    동북아에 국가주권주의가 팽배해 있어 다자간 협의체를 통해 북한의 인권 문제를 논의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이를 감안하면 유엔 인권위원회가 권고한 대로 북한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도록 독려하여 이 기관을 활동 주체로 삼아 비정부단체들이 감시하고 정보·자료제공 등을 통해 협력, 보완해 나아가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인권이 곧 안보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참사를 초래하고 온갖 ‘인도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른 나라는 자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비민주적 독재국가였다. 그런 까닭에 서유럽인들은 종전 이후 인권 문제를 대내외 정책 수립의 근간으로 삼았다. 그 같은 노력은 유럽안보협력회의와 헬싱키 프로세스를 낳았고, ‘77헌장’ 같은 중·동부유럽 지식인들의 인권 존중 촉구와 헬싱키 선언 지지운동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이 지역에서 인권 신장과 민주화를 가능하게 한 셈이다.

    북한의 전쟁도발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인권을 우선적으로 신장시킬 필요가 있다. 근본적 자유와 권리에 대한 침해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 독재권력이 최후의 순간에 전쟁도발을 결정하면 주민들은 저항할 수 없어 전쟁에 동원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유럽안보협력회의의 경우, 다른 국제기구들과는 달리 안보에 대해 포괄적으로 접근했고, 그 바탕 위에서 안보문제가 군사부문뿐만 아니라 정치·경제·환경·인권과도 관련이 있다는 공감대가 회원국 사이에서 형성됐다. 따라서 회원국 내부의 인권부문 현안에 대해 다른 회원국이 정당하게 관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중·동부유럽에서 체제변동을 촉발하는 요인이 되었다.

    유럽은 ‘안보에 대한 협력적 접근’이라는 특이한 방식을 발전시켜 공동의 항구적인 제도를 만들어냈다. 동북아에서도 역내 국가들끼리 ‘안보에 대한 협력적 접근’을 할 수 있다면 인권 현안에 대한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위팃 문타폰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언급했듯, 북한의 인권 신장을 위해서는 강조점이 다르더라도 여러 분야에서 협력적이고 다각적으로 접근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세계 인권사를 통해 확인되는 교훈이다.

    제7회 북한인권 난민문제 국제회의 참관기
    許萬鎬

    1957년생.

    연세대 정외과 졸업

    프랑스 그랑제콜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졸업, 정치사회학 박사

    現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북한인권시민연합 연구이사, 아시아인권센터 소장



    이러한 의미에서 베르겐 국제회의의 다양한 프로그램에는 깊은 의의가 담겨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각종 지원정책을 통해 북한의 일반 주민들과 관료들에 대한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개발·실시할 수 있게 하고, 여러 출처로부터 정보를 얻고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시청각 자료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의 메시지를 정치적 왜곡 없이 전달하는 방법을 논의했다. 또한 클라이더만의 노래, 입센의 희곡, 탈북자 피아니스트 김철웅씨의 아리랑 연주, 조너선 반브룩의 북한에 관한 그래픽디자인 작품 등을 통해, 문학과 예술의 보편성은 인권의 보편성과 일맥상통함을 공감했다는 점도 큰 진전이었다. 훌륭한 예술이 모두에게 감동이듯, 북한의 인권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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