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흔한 유형은 ‘본체만체’형이다. 고객불만센터에 접수될 수도 있기에 형식적으로 “어서 오세요”를 날리곤 다시 VIP에게 발송할 DM에 ‘신상품이 입고되었으니 꼭 방문해주세요’라고 쓰는 일에 몰두한다. 세계 최고의 브랜드를 판매한다는 자부심이 과한 직원은 “손님이 찾는 디자인은 여기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일을 겪은 사람 중에 즉시 은행 예금을 몽땅 1만원권 현금으로 인출해 상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있으니 ‘쇼퍼홀릭의 객기’라 할 만하다.
추리닝 차림으로 물건을 이것저것 꺼내 보고, 가격을 묻고, “상품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다른 색이나, 이 부분이 이러저러하게 생긴 건 없느냐, 정말 아쉽다” 등등의 이야기를 하면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다신 오지 마세요”거나 “정말 쇼핑을 좋아하시네요”다. 마치 ‘솔메이트’를 알아보듯, 능력 있는 판매직원(대부분 숍마스터 혹은 숍매니저로 ‘샵마’라 부른다)은 쇼퍼홀릭을 알아본다.
쇼퍼홀릭과 샵마는 서로 ‘언니’가 된다. 손님도 샵마를 언니라 부르고, 샵마도 손님을 언니라 부른다. ‘찍히면 죽는다’고 소문난 언니도 꽤 있는데 이들의 연수입은 1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들은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과 스타일을 알아보고 기억하며, 대부분 그 자신이 쇼퍼홀릭이다. 쇼퍼홀릭의 ‘약한 고리’를 잘 아는 것이다. 이들이 권하는 모든 것은 ‘마지막 남은 하나’고, ‘머스트해브 아이템’이다.
쇼핑이 가장 내밀한 욕망이고, 사적인 즐거움인 까닭에 샵마 언니와 손님은 쉽게 고민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같이 쇼핑도 다니고, 여행도 간다. 샵마 언니가 남편(혹은 아내)보다 더 마음 맞는 상대가 되기도 한다. 샵마에게서 나온 연예인 혼사 ‘특종’만 해도 얼마나 많은가.
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소비자가 구매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 매장 직원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매출을 결정하는 건 디자인이나 브랜드가 아니라 ‘샵마’ 언니들이란 것이다. 사실 트렌드와 철학보다는 ‘샵마’ 언니 때문에 ‘사고 치는’ 일이 훨씬 많다. 생각해보면 요즘 내게 ‘손으로 쓴’ 편지를 보내주는 이들은 모두 샵마 언니들이다. 며칠 전 한밤중에 전화해 고민을 털어놓은 사람도 샵마 언니였다. 몇 년 만에 통화한 고교 동창과 나눈 어색한 대화를 생각하면 좀 슬프기도 하지만, 어쨌든 쇼퍼홀릭과 샵마 언니가 가장 현대적이고 새로운 인간관계 유형으로 자리잡은 시대는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