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호

이명박 정권 100일과 쇠고기 파동 비화

‘30개월 이상’ 포함된 건 버시바우 대사 작품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8-07-10 17: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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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당초엔 ‘30개월 이상 수출’ 기대도 안했다
    • 버시바우, MB정부의 ‘다 내주겠다’ 입장 감지
    • 버시바우 보고로 미 협상단 ‘전면 개방’ 강력 요구
    • ‘쇠고기는 재협상 안 되고, 전작권은 된다’ 이상한 기준
    • ‘뉴욕타임스’의 역설 “MB와 버시바우는 반미주의자”
    • “동아·조선·중앙이 ‘OUT'이라고 하면 못 버틴다”
    이명박 정권 100일과 쇠고기 파동 비화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100일 만에 지지율이 10%대로 급락한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6월10일 8만명(경찰 추산)의 시민은 광화문 네거리를 가로막은 컨테이너 장벽 앞으로 뛰쳐나와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했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가 한 손에는 촛불을, 다른 한 손에는 ‘이명박 OUT’이라고 적힌 카드를 들고 있었다. 시위대는 “이·명·박·은·물·러·나·라”를 외쳐댔다. 청와대 수석과 내각의 총사퇴 표명도 효과가 없는 상황이다.

    이는 불과 석 달여 전인 2월25일 정오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날 오전 대통령 취임식을 치른 이 대통령은 자신이 만든 서울시청 광장에서 수많은 시민으로부터 축하의 인사를 받았다. 그는 시민들이 내미는 손을 일일이 받아줬다. 그가 청와대로 향하는 리무진 승용차의 지붕 위로 상체를 내밀고 손을 흔들 때 광화문 네거리의 시민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이렇던 그가 어쩌다가 지금과 같은 처지가 됐을까.

    부패·무능·오만의 ‘삼위일체’

    지난 100일은 돌이켜 보면 부도덕과 무능의 연속이었고 오만과 독주의 경연장이었다. 부패와 무능과 오만의 ‘삼위일체’ 앞에선 어떤 정권도 견뎌내지 못한다는 점을 이명박 정부는 잘 보여줬다. 청와대와 내각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중용) 인사와 ‘강부자’(강남 부자 중용) 인사, 참모와 각료의 각종 부정부패 전력, ‘명계남’(한나라당에는 이명박계만 남았다) 공천, 박근혜계에 대한 옹졸해 보이는 보복, 일방적 국정 운영과 아마추어리즘(대운하 강행, 영어몰입교육, 환율정책 등), 실세들의 권력 다툼은 국민을 실망시켰다. 이 정권 사람들의 기상천외한 발언은 서민의 복장을 뒤집어놓았다. 유류가 급등, 고물가, 수출 부진 등 나빠진 경제 사정도 많은 사람의 신경을 날카롭게 했다. 국민의 불만이 좁은 방안의 가스처럼 꾹꾹 누적되고 있는 가운데 마침내 이를 한꺼번에 터뜨리게 한 불꽃이 미국과의 ‘쇠고기 협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과 버시바우의 관계



    이명박 정부는 ‘한미관계의 복원’을 외교의 최우선순위에 뒀다. 쇠고기 수입에서 미국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였다. 이와 관련, 정가에서 주목하는 인물은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다. 역사적으로 역대 한국 대통령과 미국대사는 특별한 관계였다. 이 대통령과 버시바우 대사의 관계도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대선 전 이명박 후보와 버시바우 대사는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매우 우호적이었다. 이는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 가장 먼저 면담한 사람이 버시바우 대사였다는 점이 입증하고 있다. 미국은 반미성향 좌파정권의 종식을 고대했고 이 대통령은 미국과의 우호를 원했다. 이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알아온 채널로서 버시바우 대사를 신뢰했다”고 말했다.

    대선 이후 한미 현안의 변화와 관련된 중요한 예측은 버시바우 대사의 입을 통해 나왔으며 그의 예측이 얼마 뒤 실제로 실현되는 일이 잦아졌다. 이는 대선 후 미국 정부의 입장을 이명박 당선자와 한국 정부 측에 전달하고 조율하는 비중이 현저히 커졌다는 의미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대선 직후인 지난해 12월21일 “한미동맹은 세계적인 차원의 동맹이 돼야 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평화유지, 팔레스타인과의 중동 문제, 기후 변화, 질병 퇴치 등 세계무대에서 함께 할 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명박 당선자 측은 12월25일 “한미동맹은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처하는 전통적 동맹을 뛰어넘는 미래·가치·인간안보를 지향하는 포괄적 동맹체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버시바우 대사의 말에 대한 화답인 셈이었다.

    실제로 4월에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양국은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과 당선자 측의 발표내용을 그대로 담은 ‘21세기 전략동맹’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한 미국 소식통은 “버시바우 대사는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와 같은 양국의 중요한 현안도 이 대통령 측에 직접 전하고 조율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 100일과 쇠고기 파동 비화

    6월10일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 8만여 명(경찰 추산)이 서울 세종로, 태평로 일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한미간 최대 경제현안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한미FTA 국회 비준에 있어서도 버시바우 대사는 한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막후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버시바우 대사는 1월31일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 해결을 한미FTA의 미국 의회 승인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미국 측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이끈 이명박 대통령 취임 경축 특사단에 엔디 그로세타 미국 축산육우협회 회장을 포함시켰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5월13일 한미FTA 청문회에서 “라이스 국무장관은 나를 만났을 때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문제를 제기했다”고 증언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본국 정부가 이처럼 심혈을 기울인 최대 현안인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의 ‘쟁점’에 정통했다고 한다.

    지난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제출된 외교통상부 업무보고 문건은 “쇠고기 문제는 한미FTA가 아니더라도 국제 기준에 따라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기술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외교통상부가 미국 쇠고기 문제의 조기타결을 추진한 것이다. 이는 인수위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 백서는 “당선인의 방미, 한미FTA 비준 문제 등이 있기 때문에 쇠고기 수입 문제는 인수위 차원에서 정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돼 있었다. 미국 쇠고기 수입과 관련 외교통상부와 인수위가 미국 측에 우호적 입장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30개월 이상 수입’의 전모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 쇠고기 협상 당시 농림부는 ‘30개월 이상 미국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농림수산식품부의 인수위 업무 보고에 따르면 이런 방침은 2008년 1월까지 이어졌다. 미국 측도 노무현 정부와 협상할 때는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은 강하게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30개월 미만의 뼈가 포함된 쇠고기(LA갈비 등) 수출만 재개되어도 성공이라는 태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와의 쇠고기 협상에서 미국 측은 한국 측에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까지 요구했고 한국 측이 이를 전격 수용한 것이다.

    이와 관련 미국 정부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미국 측이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한국 수출’까지 얻어낸 건 버시바우 대사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소식통의 설명이다.

    “미국 정부는 처음에는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은 기대도 안했다. 그런데 버시바우 대사가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 정부 측을 접촉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요구하면 다 내어주겠다’는 입장을 감지한 것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이 같은 점을 본국에 보고해 미국 협상단에도 전해졌다. 이에 미국 협상단은 한국에 30개월 이상을 포함한 쇠고기 시장의 전면 개방을 강하게 요구했다. 한국 농림수산식품부는 한미정상회담 직전 이를 수용했다.”

    미국통으로 알려진 김종인 전 통합민주당 의원은 ‘버시바우 대사가 현 정부 출범 초기 미국 쇠고기 수입에 대한 정부의 상당히 완화된 입장을 감지하여 본국에 전달했다는 얘기가 있다’는 질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어본 적은 없고, 미국대사관 자체가 새 정부 들어선 다음 그런 분위기를 파악해서 본국에 보고를 해줬겠지. 당연한 건데 뭐”라고 말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공개한 농림수산식품부의 내부 문건에 따르면 한국 측은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을 앞두고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수입될 수 있도록 내부 방침을 변경했다.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이후 한국에서 광우병 파동으로 시위가 들끓고 ‘30개월 이상 미국 쇠고기의 수입만은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폭주하자 버시바우 대사는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6월3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면담한 뒤 기자들에게 “한국인들은 미국 쇠고기에 관한 사실과 과학에 대하 좀 더 배우게(learn) 되기를 희망한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무능한 동맹’은 미국에도 골치

    미국 정부는 미국 쇠고기를 너무 풀어준 것으로 인해 이명박 정부가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위기에 처한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민간자율규제 방식이 제시됐고 한미 추가협상도 이뤄졌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30개월 이상 미국 쇠고기가 한국에 반입되지 않게 하는 일에 최종적으로 어느 선까지 성의를 보일 지는 미지수다. 일단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재협상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버시바우 대사는 1월11일 KBS TV ‘단박인터뷰’에 출연해 한미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합의’와 관련해선 ‘재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버시바우 대사는 인터뷰에서 “이미 합의된 결정일지라도 모든 면에서 새 정부와 재검토할 여지가 있으며 상호 합의에 따라 전환 시기를 변동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면 추후 논의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 100일과 쇠고기 파동 비화

    청와대는 목가적인 풍경이지만(좌) 2008년 6월 한국 경제는 화물연대 파업(우)에 따른 물류정지로 몸살을 앓았다.

    비슷한 시기, 이명박 정부도 재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수위는 1월10일 국방부 업무 보고에서 “전작권 전환 문제는 미국과의 충분한 협의를 전제로 시기 등에 대한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미국 쇠고기 수입은 국익과 관련된 중대한 사안이고 한미 정부간 공식 합의였다는 점에서 같은 성격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와 미국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해선 재협상이 가능하다고 해석하면서 미국 쇠고기 수입은 재협상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해석한 것이다. 쇠고기 재협상을 해선 안 되는 ‘현실론’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한·미 정부가 보여준 ‘재협상 가능과 불가의 기준’이 지나치게 ‘임기응변식’이고 ‘자의적’이라는 의구심이 든다.

    이명박 정부가 이번 쇠고기 협정을 통해 미국에 큰 선물을 안겨줬다고 해서 한미 간 결속이 더 굳건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상황은 오히려 반대로 흐르고 있다.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는 ‘반미감정의 확산’ 직전까지 와있다. 내치(內治)를 통제 불능 상태로 만들고 미국 쇠고기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무능한 동맹’은 미국 정부에도 오히려 골치인 것이다.

    미국 내 여론이 이명박 정부에 “쇠고기 많이 사줘 고맙다”며 감사해 하지도 않는다. ‘워싱턴포스트’ 기사에는 “쇠고기를 재협상하면 한국 자동차의 미국 수출을 못하게 해야 한다”는 미국 네티즌들의 댓글이 달렸다. 한국 내 반미감정의 책임을 이 대통령과 버시바우 대사에게 묻는 기사도 게재됐다. 버시바우 대사는 자국의 국익을 위해 노력했지만 ‘learn’ 한 마디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6월12일자 인터넷판 기사에서 한국 대학교수의 말을 인용해 “한국에는 두 사람의 반미주의자밖에는 없다. 한 명은 이명박 대통령이고 다른 한 명은 버시바우 대사다. 이 두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과 자신이 한 발언으로 반미감정을 촉발시켰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심지어 “이완용은 한국의 넘버1 배신자”라는 설명과 함께 ‘이명박은 이완용’이라는 촛불시위대의 구호를 소개하기도 했다.

    광우병 파동과 함께 나라를 마비시킨 두 번째 사건은 화물연대의 파업이다. 10조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정부의 ‘고유가 대책’은 파업을 막는 데 소용이 없었다. 파업 후 언론은 “수출에 적신호가 켜졌다. 매일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야당은 파업에 이른 책임을 이명박 정부로 돌렸다. 차영 민주당 대변인은 “고유가 땜질 처방의 결과가 극단적 상황을 불렀다. 정부의 무능이 빚은 대란이다. 정부는 적반하장으로 유가보조금 중단이라는 칼을 뺐다. 잔인한 협박”이라고 비판했다. 이선희 진보신당 대변인은 “화주의 불공정거래를 제한하자는 것이 불법인가”라고 했다. 박선영 선진당 대변인은 “정부는 화물유통시장의 개혁, 경유세 감면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권영갑 한러문제연구소 소장은 국민들에게 최대 24만원씩 나눠주는 ‘10조원 고유가 대책’을 듣다가 분노와 실망감이 일어 눈시울까지 붉혔다고 한다. 권 소장은 “10조원이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허공에 뿌리는 것도 아니고…새 내각이 구성되면 이 대책은 즉각 철회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고기 잡는 법’, ‘경제 살리는 법’을 얘기해야 한다. 고유가로 나라가 위기다. 석유는 자동차 운행과 전기발전에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그러면 고유가 대책도 거기에 맞춰야 한다. 단기 처방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석유를 사용하지 않는 ‘전기자동차’ 개발에 국가 역량을 모아야 한다. 1조원만 투자해도 큰 성과가 날거다. 원전 개발, 대체 에너지 개발, 해외 자원 확보도 구호성이 아닌 구체적 계획과 가시적 성과가 있어야 한다. 시간이 필요한 과제이더라도 ‘석유 문명 이후 시대’에 대비하는 길, 미래의 성장엔진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진지한 고민 없이 돈만 나눠주는 대책은 안 된다.”

    대선 이후 여권은 이명박계와 박근혜계가 1차적으로 분열됐고 그 뒤엔 이명박계 내에서 이상득 대 이재오·정두언으로 나뉘어 권력투쟁을 벌였다.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4분의 1 토막이 난 것과 여권의 사분오열은 미묘하게 오버랩된다.

    ‘4분의 1 토막’과 ‘사분오열’

    이명박 정권 100일과 쇠고기 파동 비화

    5월11일 이명박 대통령이 오찬 회동을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경선 승복과 이명박 후보 지지 선언은 이 대통령의 당선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지난해 경선 이후부터 지난 총선 이후까지 정치적 고비 때마다 박 전 대표를 만났지만 만남은 늘 성과 없이 끝났다. 상대인 박 전 대표 측은 이 대통령을 만나고 와서는 ‘왜 보자고 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청와대는 박 전 대표에게 총리직을 제안했지만 박 전 대표는 거부했다. 박 전 대표 측은 “이 대통령과는 신뢰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나라당 한 의원은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만나 다음과 같은 정도의 대화를 나눴더라면 박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을 흔쾌히 도왔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 : 박 대표. 여기 좀 앉아봐요. 내가 그때는 정말 너무 화 나더라고. 아니 박 대표는 나보다 나이도 어리면서 BBK다, 도곡동이다, 어떻게 그렇게 심하게 해요?

    박 전 대표 : 저만 그런 건 아니었죠. 언론도…. 전 원칙대로 했을 뿐인걸요. 이 대통령 쪽도 정수장학회다, 최태민 목사다 하시면서….

    이 대통령 : 아. 좋아요. 사실 지난 일이니 서운한 거 있으면 다 털어냅시다. 그런데 내가 요즘 좀 어려워요. 나를 좀 도와줘야겠어요. 나야 대통령 짧게라도 해봤지만 우리가 잘못되면 박 대표는 대통령 한 번 못해보고 훨씬 손해잖아요. 총리 한번 맡아줘요.

    박 전 대표 : 근데 대운하는요?

    이 대통령 : 그거 접지 뭐. 박 대표가 멋있게 들어오도록 그 정도는 내가 해드려야지. 그리고 참 작년 경선 때 박 대표 캠프에 있던 남재준인가, 그 육참총장 했던 양반. 그 양반 국방장관 어때요? 난 괜찮아 보이던데.

    박근혜계인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친이명박 실세가 제기한 ‘권력 사유화’ 의혹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이명박 대통령을 위하는 길이 아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서로 싸우면 안 된다. 그 파문에 휘말려 사임한 박영준 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은 100% 억울하다고 본다. 내가 듣기로 그는 인사전횡을 할 만한 위치도 아니고 대통령이 시키는 일만 열심히 했다. 근본적인 치유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 정부의 모든 위기는 한 마디로 ‘신뢰’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지율을 회복하고 국정을 정상화하는 유일한 해법은 ‘신뢰 회복’이다. 이 대통령은 이제 ‘탈(脫) 여의도’ 대신 ‘여의도 프렌들리’로 바꿔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국민과의 소통, 여야 정치권과의 협력, 지지 세력의 확충, 정책의 안정적 실행도 신뢰 회복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동아’ 지난 6월호 인터뷰에서 “‘노무현의 옥동자’ 정연주 KBS 사장을 퇴임시키지 못하면 이명박 정부는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해 화제를 모은 김우룡 전 방송위원회 방송위원(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교수)은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보통 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 전 위원과 나눈 대화.

    ▼ 왜 ‘보통 위기’가 아니라는 겁니까.

    “이 대통령의 주변에 그를 지켜줄 사람과 세력이 없어요. 동아, 조선, 중앙이 이 대통령에 대해 ‘NO’, ‘OUT’을 얘기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컨테이너 벽을 아무리 높게 쌓아올려도 못 버텨요.”

    “컨테이너로는 못 버틴다”

    ▼ 일부 네티즌들이 보수 신문의 광고주들에게 광고 중단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데요.

    “보수신문의 그간 보도 논조에 대해 솔직하게 한번 얘기해 봅시다. 보수신문은 ‘지난 10년의 좌파 정권이 나라를 잘못 이끌어왔다’고 봅니다. 그건 틀린 견해가 아니죠. 대다수 국민도 똑같이 생각했어요. 지난해 대선 결과로 증명됐죠. 보수신문은 이명박 정부가 10년의 국정난맥을 걷어내고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이끌어주기를 기대했겠죠. 그래서 이명박 정부를 한편으로는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구세력들에 의해 흔들리지 않게 격려하며 시시비비를 가려준 측면이 있었을 겁니다. 보수신문이 방송사를 얻기 위해 이명박 정권과 딜하고 있다는 일부의 시각은 완전 난센스예요. 보도전문 케이블 채널 얻어내봐야 초기 투자비용이 막대하고 수익모델도 불투명해요. ‘친(親)MB’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보수신문의 논조에는 언론으로서 나름의 역사적 사명과 공익적 판단은 있었다고 봅니다.

    이명박 정권 100일과 쇠고기 파동 비화

    6월10일 경찰은 촛불시위대가 청와대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위해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컨테이너를 갖다 놓았다.

    그런데 광우병 파동 이후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협상을 엉터리로 했으리라고는 보수신문도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국민의 감정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 수준을 넘어 적개심 단계로 올라갔어요. 그중 일부는 감정이 격앙되면서 이명박 정부의 실정(失政) 책임을 보수신문에 함께 뒤집어씌우고 있는 거죠. 그런데 사실을 말하자면 보수신문은 협상을 한 것도 아니고 인사를 한 것도 아니고 정부를 운영한 것도 아니죠. 문제는 앞으로는 보수신문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을 거라는 점입니다.”

    ▼ 왜 바꿀 수밖에 없는 거죠.

    “신문은 ‘저널리즘’과 ‘사회에 대한 책무’를 함께 생각하죠. 보수신문이 지금까지는 후자를 다소 더 고려했다면 앞으로는 전자를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거예요. 말하자면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더 강화하는 논조가 될 겁니다. 정권은 망하더라도 신문은 살아야 해요. 비록 오해나 선동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독자의 신뢰를 조금이라도 잃으면 안 되니까요. 이 대통령은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신뢰를 회복하는 길을 찾아야 해요. 지금의 방식이 반복된다면 아무도 그를 도와줄 수 없고 도와주지도 않을 겁니다.”

    해법은 ‘신뢰의 회복’

    이명박 대통령은 ‘이완용’이라는 얘기까지 들었다. 이제 더 내려갈 곳도 없다. 더 갈 데라고는 ‘청와대에서 내려오는 길’ 뿐이다. 지난 경선 때부터 지금까지 길게 보면 이 대통령만큼 무수히 까발려지고 모욕 받은 사람도 드물다. 이제 웬만한 정치인이나 국민은 이 대통령에 대한 ‘정보’와 ‘분석’을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면 일단은 의심부터 한다. 그리고 이내 그 진의가 무엇인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국민적 불신에 제대로 데었다면 앞으로는 무조건 솔직해야 한다. 언행을 철저하게 일치시켜야 한다. 사람의 신뢰를 얻는 데는 ‘솔직함’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밑바닥까지 내려가보는데서 신뢰 회복의 실마리가 나올 수 있다. 이는 이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BBK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발표를 앞둔 가장 큰 위기의 순간에 다음과 같이 연설하며 성공을 성취하기 위한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자신의 승리가 국민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그때의 각오와 약속을 스스로 되새기며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때다. 임기는 아직 4년8개월이나 남아 있다.

    “우리 앞에 수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이제 하나하나 극복하면서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우리가 승리하는 것은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소명입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가 나아가는 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이명박 후보, 2007년 11월16일 서울 잠실 학생실내체육관, 국민성공 대장정 서울대회 연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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