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호

“실세들로부터 간접적으로 사퇴 압력 받았다”

퇴임 후 처음 입 연 정운찬 전 총리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0-11-18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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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시 원안 주장한 사람들은 거짓말쟁이
    • 대통령에게 당, 청(靑), 내각 인적쇄신 여러 차례 건의했다
    • 청와대 참모들, 여권 실세들과 갈등 없었다면 거짓말
    • 취임 초기 주변에서 박영준 바꾸라는 권유 많았지만…
    • 입학사정관제는 부자한테 유리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불리한 제도
    • 국민은 정부의 서민정책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실세들로부터 간접적으로 사퇴 압력 받았다”

    ●1947년 충남 공주 출생<br>●서울대 경제학과 졸업<br>●미국 마이애미대 경제학(석사), 프린스턴대 경제학(박사)<br> ●한국은행 근무<br>●미국 컬럼비아대 조교수, 영국 런던정경대 객원부교수,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br>●2002년 서울대 총장<br>●한국야구위원회 총재고문<br>●한국경제학회 회장<br>●2009년 국무총리<br>●저서 : ‘금융개혁론’ ‘거시경제론’ ‘가슴으로 생각하라’ ‘한국경제 아직 늦지 않았다’

    정운찬(63) 전 총리의 이미지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학자다. 우리는 공부 많이 한 사람들, 이를테면 학자나 교수에 대해 몇 가지 고정관념 또는 선입관을 갖고 있다. 고지식하고 고집 세고, 언변과 사고력은 뛰어난 반면 소심하고 우유부단하다는. 정 전 총리도 그런 범주에서 평가를 받아왔던 것 같다. 당사자는 억울해할지 모르지만. “총리로서 존재감이 없었다”는, 항간의 평을 전한 나의 지적에 대해 그가 정색하고 반박한 것만 봐도 그렇다.

    석 달 만에 성사된 인터뷰는 서울 모처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좁은 사무실엔 책이 넘쳐났다. 약간 상기된 표정의 그는 인터뷰 중 자주 물을 마셨다.

    그는 언론에 대해 피해의식이 있는 듯싶었다. “한두 번 당한 게 아니다”라며 자신이 말한 것과 다르게 기사가 나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녹음된 내용 그대로 쓴다고 해도 고개를 내저었다. 한마디로 언론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보도되기 전 기사 내용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야겠다고 했다. 나는 그의 태도가 못마땅했으나 오보가 ‘숙명’인 언론의 속성에 대한 그의 우려가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기에 적정선에서 타협하기로 했다. 전직 총리와의 인터뷰는 이런 불신 속에 불편하게 시작됐다.

    “착한 분이 왜 그런 데 들어갔냐”

    그는 9월28일부터 6일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나이지리아를 방문했다. 나이지리아 독립 50주년 기념행사에 이명박 대통령 대신 참석한 것이다.



    “나이지리아는 인구가 1억5000만명이고 석유나 천연가스 등 지하자원이 많은 나라이므로 곧 아프리카 최강국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를 나이지리아 대통령에게 전달했어요. 그리고 부통령, 국무차관, 과학기술부 장관 등을 만나 원자력발전 수주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그쪽에서 관심이 크더라고요. 전기가 부족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희귀광물 있잖습니까. 희토류. 그것을 공급받는 문제에 대해 과기부 장관과 구체적으로 얘기했습니다. 우리의 경제발전 경험을 그쪽에 전수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양국 간 교류를 활발히 하자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 총리 그만두고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서울대 총장을 그만두고 나서도 학교 발전에 도움을 준 분이나 단체에 애프터서비스 하느라 바빴습니다. 각종 강의도 하고 축사도 맡고. 총리 그만둔 후에도 재직시 이런저런 도움 준 분들, 특히 세종시 관련 단체들, 총리직 수행하느라 자유롭게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을 만났습니다. 그 과정에 혹시 제게 부담을 줄까봐 재직시 전화도 못 건 이가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전직 총리의 강의를 요청하는 곳도 많습니다. 모처럼 가족과 영화구경도 하고 쌓아둔 책을 읽느라 분주합니다. 택시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을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많은 사람이 알아보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빨리 그만두어 안타깝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착한 분이 왜 그런 데 들어갔느냐’고 하더군요.(웃음) 사인(私人)으로 돌아오니 정부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민심이나 정책이 보입니다.”

    ▼ 어떤 게 보이던가요?

    “거기서는 아무래도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만 만나게 되지 않습니까. 정부에 대해 비판적 시각이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 어떤 면에서요? 한두 가지 예를 든다면….

    “예컨대 4대강은 좋은데 규모나 속도를 조절해야 하지 않느냐는 거죠. 그 문제는 저도 정부 내에서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위공직자가) 민심 파악한다고 현장 찾는 것에 대해 그 진실성을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현장에 왔다가도 (문제점이) 고쳐지지 않는다는 불만이었습니다.”

    ▼ 학자로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다가 정부에 들어가 행정 책임자가 됐는데, 어떤 점에서 괴리를 느끼셨습니까.

    “특정 부처의 장관이 아니라 부처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라서 큰 틀에서 나라를 보는 공부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업 문제에서 국방 문제까지 두루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저에 대해 세종시가 다인 줄 알지만 성폭력피해 어린이를 치유하는 해바라기센터 방문, 천안함 사건 유족 위문 등 전국을 다니면서 지난 11개월을 정말 청년시절 못지않은 열정으로 보냈습니다. 정쟁에 정치가 묻혀 아쉬움이 많았습니다만, 냉정한 현실에서 큰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든지 다시 국가에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난 경험이 좋은 약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입학사정관제, 말씀하지 마십시오”

    그는 취임할 때 “할 말은 하는 총리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유감스럽게도 그가 약속을 실천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비쳤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그런데 그는 이 점에서 자신을 후하게 평가했다.

    “A학점을 주고 싶습니다.”

    ▼ 세간의 평가와는 다르네요.

    “총리로서 대통령과 처음 독대할 때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할 말을 다합니다. 그렇다고 밖에 나가 까발리고 다니지는 않겠습니다’라고.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대통령께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한 예만 들겠습니다.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대통령께서 ‘입학사정관제만 잘되면 대학은 잘될 것’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지난해 9월29일 취임했다. 취임 초 대통령에게 입학사정관제와 관련해 이렇게 진언했다고 한다.

    “입학사정관제 잘못하면 큰일 납니다. 우선 공정성을 담보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잠재적 인재를 길러낸다고 하는 건데 입학사정관제 한다니까 이른바 스펙을 키운다며 이 활동 저 활동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부자들한테 유리하고 가난한 사람들한테 굉장히 불리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잘못되면 공정성 때문에 시비가 일어나고 소송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스펙과 관련해 부자들은 계속 잘되고 어려운 사람은 더욱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또 입학사정관제 실시는 대학의 자유인데 그것을 권장한다고 대학에 지원금까지 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께서는 앞으로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말씀하지 마십시오.”

    그에 따르면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입학사정관의 평가 기준이 뭔지 아무도 모른다”며 “누가 입학사정관이 되는 거냐”고 꼬집었다. ‘입학사정관’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드러냈다.

    “‘관(官)’은 좋은 표현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관을 연상케 하잖아요. 대학 자율화 취지와도 안 맞죠. 입학사정원이라면 또 모를까. 하여간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할 제도입니다. 섣불리 막 늘리는 건 위험합니다.”

    “지나치게 보수화되지 않도록”

    ▼ 총리로서 존재감이 없었다는 평이 있었죠.

    “존재감이 무엇입니까. 매번 큰소리를 내고 이것저것 일하는 척하거나 인사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이 존재감입니까. 저는 높은 자리일수록 몸을 낮추고 경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 총장 시절 교수들의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는 것이 제 일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자신을 내세우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남의 의견을 듣고 조정·화합하고 반영하는 것이 제 성격에 맞습니다. 국무위원들의 의견을 조정하고 대통령께 반영시키는 역할만큼은 역대 어느 총리한테도 뒤지지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좀전에 입학사정관제를 예로 들었습니다만, 인사문제를 비롯해 모든 문제를 대통령과 의논했습니다. 반영된 것도 있고 반영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만 저만큼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한 총리도 없을 거라고 자부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열기를 띠었다. ‘자부한다’는 자기 과시나 강한 자신감의 표출이다. ‘존재감 없는 총리’라는 평에 대한 서운함이 강한 표현을 촉발했는지도 모른다.

    “제가 취임사에서 ‘이 사회의 균형추 노릇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실제로 이 정부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가지 않도록 노력했고 경제정책도 균형을 이루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중 하나가 감세(減稅)정책 아니겠습니까. 저는 ‘소득세를 감면해주는 것은 경기부양에도 별로 도움 안 되고 세금을 안 내는 사람이 50~60%나 되기 때문에 소득분배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 따라서 감세 아이디어는 철폐하는 게 좋다’고 대통령께 말씀드렸고, 그것이 금년도 예산에 반영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정말 꼭 하고 싶었던 얘기인 양 장황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언론에 대한 섭섭함도 내비친다.

    ▼ 그러고는 또 만나 식사하신 겁니까.

    “식사는 한 번밖에 안 했고요. 방배동 카페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서울대 공대 교수 여러 명이 함께한 자리였죠. 부끄러운 일은 없습니다.”

    ▼ 신정아씨에 대한 느낌이 어땠습니까.

    “참 우수한 재원이라고 생각했지요. 예일의 아티스트 박사라면 대단하겠구나 싶었죠.”

    널리 알려졌다시피 그는 야구광이다. 두산 팬이다. 두산이 올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 데 대해 “경험이 풍부한 선수가 부족해서”라고 진단했다. 한마디로 노련미 부족이라는 것이다.

    “신구(新舊) 조화가 없죠. 두산이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시리즈에 나가지 못한 게 그래서예요. SK는 김재현이라는 선수가 찬스마다 점수를 내잖아요. 그게 무섭습니다. 아주 노련한 선수가 타석에 서서 딱 붙으면 투수가 못 던져요. 안경현이나 홍성흔이 남아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요. 그런데 그 베테랑들을 다 팔아버렸잖아요.”

    “운찬이는 공부해도 되는데…”

    그는 중학교 때 야구선수였는데 2학년 때 주전으로 뽑히지 않자 그만뒀다.

    “중3 7명에 중2 2명이 선발됐는데 저는 빠졌어요. 코치 선생님에게 ‘언제 주전시켜주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아, 참 멋있는 분이야―운찬이는 공부해도 되는데, 이러시는 겁니다.(웃음) 그길로 그만뒀죠. 그런데 동네야구는 고3까지 했어요.”

    교수가 된 후에도 야구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미국에서 교수 하던 시절 한국인 학생들을 모아 야구를 했다. 서울대 총장 시절엔 다른 대학 보직교수들과 시합을 했다.

    야구말고 좋아하는 운동을 묻자 등산을 꼽았다. 중·고등학생 때 북한산과 도봉산을 2주에 한 번꼴로 올랐다고 한다. 그때 다진 체력이 지금의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란다. 골프는 배운 적이 없다고 했다.

    ▼ 아까 ‘국가를 위해 봉사할 기회’를 언급하셨는데….

    “아, 특사라도 또 하겠다는 뜻이죠.”

    ▼ 큰 자리도 생각하고 계시나요?

    “(웃음)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누리고 있어 당장은 좀 더 쉴 생각입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는 게 가장 보람 있는 일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내년 상반기에는 미국 대학과 연구소에서 강의를 할 예정입니다. 세미나 일정도 잡혀 있고요. 석좌교수로 가는 거지요.”

    ▼ 내년이 되면 차기 대선 얘기가 슬슬 나올 텐데요. 정치권이나 지지하는 사람들이 대선 출마를 권유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 총리를 해보셨으니 국가행정에 자신감이 생길 만도 한데요.

    “사회봉사의 의미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지식이나 경험을 축적했지요.”

    ▼ 2007년의 문제점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 아닌가요?

    “그런 문제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묻지 마세요.(웃음) 대답하는 게 적절치도 않고요.”

    인터뷰가 끝나고 그가 사진 포즈를 취하는 동안 나는 수북이 쌓인 그의 책들을 일별했다. 정말 우연히도 이런 제목의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통령은 아무나 하나’ ‘대통령이 된 기자’ ‘대통령님, 그냥 내버려 두시죠’….

    “실세들로부터 간접적으로 사퇴 압력 받았다”

    2010년 6월30일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것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그밖에도 제가 선전을 안 하고 다녀서 그렇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도 제 아이디어입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건데, 작년 가을과 금년 봄에 일류 대기업에 수천억원어치 물품을 납품하는 중견기업 소유주가 저보고 이민을 가겠다는 거예요. 무슨 얘기냐고 물으니 ‘납품가를 너무 후려쳐 과거처럼 장사 못 하겠다’며 이민 가겠다는 겁니다. 거기에 자극받아 제가 대통령께 ‘대기업이 납품가를 후려쳐 일시적으로 잘될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이 잘 돼야 대기업이 잘될 수 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에 대해 각별히 신경 써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중소기업도 많이 찾아가고 6~7월에 많은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런 건 전혀 보도 안 해요. 그저 세종시 문제만 보도하고 다른 활동은 보도하지 않아 안타까웠습니다.”

    ▼ ‘존재감이 없었다’라는 평에는 세종시 문제뿐 아니라 총리가 청와대나 당의 이른바 실세그룹에 눌려 제 역할을 못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담겨 있죠.

    “실세그룹에 눌린 적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대통령과 얼마나 자주 만났는데요. 밖에 다니면서 얘기를 안 해서 그렇지요.”

    ▼ 대통령을 만나고 싶을 때마다 만날 수 있나요?

    “거의 원할 때마다 만납니다.”

    ▼ 바로 됩니까?

    “국무회의라는 공식 만남도 있고, 주례보고도 있습니다. 주례보고에는 3~4명이 배석합니다. 그게 끝난 다음 따로 만날 때도 있고.”

    ▼ 누가 차단하는 일은 없었습니까?

    “그런 적 없습니다. 이런저런 통로로 부지기수로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세종시, 총리 내정조건 아니었다”

    다 끝난 일이긴 하지만, 세종시 때문에 사퇴했다는 그를 만나 그 일에 대해 안 물어볼 수는 없다. 그가 총리에 내정되자마자 느닷없이 세종시 수정안을 언급했을 때 위태롭다고 느낀 사람이 나뿐이었을까.

    ▼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셨죠? 그게 총리가 물러날 사안인가요?

    “그럼요.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책임감은 투철한 사람이라고 자부합니다.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부결됐다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종시 문제의 중차대함을 감안할 때 내각을 책임지는 총리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 총리에 내정되기 전에 대통령과 사전에 세종시와 4대강 사업 문제를 조율하지 않았냐는 게 일반적 시각입니다.

    “제가 거짓말은 안 하는 사람 아닙니까. 잘 알려져 있지요. 너무 솔직해서 문제인데…. 세종시 수정안과 4대강 사업이 총리 내정조건이었다는 말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100% 거짓말입니다. 제가 서울대 총장까지 지냈습니다. 그런 제가 구차하게 어떤 약정을 하고 총리직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세종시 수정안은 평소 제 소신이었습니다.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지난해) 9월3일이었습니다. 총리 지명을 받은 직후 기자들의 질문에 평소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을 뿐입니다. 충청도 출신이라 세종시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국가경제 등 여러 가지를 감안했을 때 수정안이 옳다고.”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그는 자신의 소신임을 강조했다.

    “잘 아시겠지만, 저는 대운하는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은 대운하와 다릅니다. 치수(治水)와 수질 개선, 친환경. 지역민을 위한 강 유역 개발이므로 찬성합니다. 지난 50~60년간 우리는 산림녹화에 성공했습니다. 치산(治山)을 했으면 치수를 해야 하고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또 기후변화가 예측불허이기 때문에 물을 충분히 가두어뒀다가 가뭄이나 홍수에 대비해야 합니다. 친환경적인 사업이기도 합니다. 다만 대통령께 ‘사업의 규모와 속도는 조금 조절하자는 게 일반여론’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 어쨌든 총리로 내정되기 전에 대통령과 그런 문제에 대해 전혀 얘기한 적 없다는 거지요?

    “전혀 없습니다.”

    ▼ 중요한 국가사업에 대해 총리 지명자와 사전에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지 않습니까.

    “사전 조율은 없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9월3일 서울대에서 마지막 강의를 끝내고 나왔을 때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 세종시 얘기가 나왔을 뿐입니다. 제가 전해 듣기로는 그때 청와대 참모들이 아주 좋아했다고 합니다. 자기들 의견과 같으니까.”

    “충청도민을 속였다”

    ▼ 총리 제안을 받았을 때 좀 고민하지 않으셨나요?

    “제가 일생 남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늘 사회에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를 키워주신 스코필드 박사도 저보고 ‘나중에 나이 들면 사회에 건설적인 비판을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서울대 총장이 돼 대학을 운영하면서는 이것도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총리직 제안을 받아들일 때)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보수화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라 내가 (정부에) 들어가 균형추 노릇을 하면 그것도 사회에 봉사하는 게 아니겠느냐 생각했습니다. ‘같은 서민 출신으로서 서민을 위해 같이 일해보자’는 대통령의 말씀도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 한나라당 정권인데, 정치철학이나 경제정책 등에 동의해야 총리를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제가 정부에 대해 건설적 비판을 많이 해오지 않았습니까. 그 덕분에 노태우· 김영삼 정부 때는 좌파 소리를 듣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보수 우파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늘 중도의 길을 걸었다고 자부합니다. 한나라당이 너무 오른쪽으로 가지 않도록 균형추 노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중도실용을 하겠다고 했고.”

    ▼ 어쨌든 세종시 문제는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에 의해 원안대로 추진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수정안이 옳다고 보시는 건가요?

    “그럼요.”

    ▼ 핵심적인 논리 몇 가지만 말씀해주시죠.

    “원안대로 행정부처를 두 군데로 나누어두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따로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세계 역사를 봐도 행정도시, 입법도시, 사법도시가 따로 있었던 예는 있지만 행정도시가 두 군데였던 예는 없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독일의 본과 베를린인데 그마저 지금 통합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좀 더 기술적으로 말씀드리면, 도시의 자족기능을 고려하지 않은 원안의 문제점은 지금 시장에서 냉엄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정기관이나 랜드마크가 들어선다고 도시가 발전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과 상권이 움직여야 합니다. 보십시오, 지금. 건설사가 아파트 건축을 미루고 있습니다. 제가 총리 할 때 세종시에 가겠다고 약속했던 기업들과 대학들이 방침을 바꾸는 등 시장에서는 기존 안(案)의 잘못을 실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종시 논의과정에 선국후당(先國後黨)의 관점이 아쉬웠습니다.”

    ▼ 자족기능은 원안에도 충분히 들어있고, 행정부처 이전에 따른 편익도 크지 않습니까.

    “말이 안 되는 얘깁니다. 원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충청도민을 속였습니다.”

    ▼ 대기업 투자도 원안에 있지 않습니까.

    “뭐가 있어요? 땅도 부족하고 땅값도 비싸서 안 들어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게 원형지 개발입니다. 땅은 그냥 두고 들어오는 사람이 개발하는 거지요. 우리가 공단을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땅값을 싸게 해서 들어오도록 유도하는 거지요.”

    “행정부 쪼갤 바에야 다 가는 게…”

    ▼ 국회 표결시 원안 찬성론을 편 의원들이 거짓말한 건가요?

    “그분들은….”

    ▼ 일부러 거짓말한 건가요?

    “몰라서 거짓말했는지 알고도 거짓말했는지 모르지만 결과는 거짓말입니다.”

    ▼ 지역균등발전 논리에도 전혀 동의하지 못하시나요?

    “저는 형평을 강조하는 경제학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균형발전을 제가 왜 싫어하겠습니까. 경제학은 효율을 중시하지요. 효율이 없으면 형평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효율과 형평의 조화를 주장해왔습니다. 그런데 도시가 잘되는 것이 균형발전이지 정부 관청을 지어놓고 사람들을 좀 옮겨놓는다고 균형발전이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균형발전을 원한다면 행정부처를 서울과 세종시에만 둘 게 아니라 국방부는 파주, 지경부는 울산, 법무부는 부산에 갖다놓는 게 더 낫겠지요.”

    ▼ 그러면 행정의 비효율성이 크겠지요.

    “두 군데로 나눠놓아도 비효율성은 마찬가지예요. 화상회의? 안 돼요.”

    ▼ 세종시의 원 개념은 수도 이전이었지요. 비대화된 중앙집권제의 폐해를 없애고 지방과 수도권의 균형발전을 이룬다는 의미가 있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나쁜 것은 행정부처만 둘로 나누는 것이고, 두 번째 나쁜 것은 행정부처 전체가 세종시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그보다 나은 것은, 갈 거면 행정뿐 아니라 입법, 사법부가 다 함께 가는 거죠. 수도 이전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요.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옥중서신’을 보면, 역사적으로 수도는 그 나라가 확장하고 팽창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정해졌다는 글이 나옵니다. 저는 통일 후를 대비해서라도 수도가 북쪽으로 올라가면 몰라도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행정부가 다 가면 몰라도 부분적으로 가는 것은 최악이라는 거지요.”

    ▼ 쪼개서 갈 바에야 전체가 가는 게 낫다?

    “반드시 가야 한다면. 세종시 원안보다는 낫죠. 바꿔 말하면 가장 좋은 건 수정안이고, 그 다음 좋은 건 행정·입법·사법이 다 가는 겁니다.”

    ▼ 원안을 고집한 박근혜 전 대표는 지역균등발전 못지않게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신뢰 문제를 강조했지요.

    “단기적으로는 그분 말씀이 옳을지 모르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잘못된 약속은 바꾸는 게 나라 발전에 좋습니다.”

    그는 “세종시 수정안은 당연히 국민투표 대상이었다”고 주장했다. 자체 여론조사 결과 수정안 지지율이 60%였다고 한다. 하지만 투표율이 50%를 넘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서 포기했다는 것이다.

    “경질 아닌 사퇴”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총리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하자 한때 정 전 총리에 대한 동정여론이 일기도 했다. 김 전 지사의 청문회에 대한 소감을 묻자 그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 짧게 답변했다.

    “좀 안타깝데요. 박연차씨를 만났으면 만났다고 하지…. 더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 정 총리께서는 경질된 겁니까, 사퇴하신 겁니까.

    “사퇴인데 경질로 보였는지도 모르지요. 제가 국회에서 ‘세종시가 안 되면(수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물러나겠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청와대 참모들이나 정치인들이 다 나를 지지한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제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해줬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의사와 상관없이 두 번 이상 국민에게 사퇴의사를 밝혔습니다. 그것은 국회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사퇴가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절대로 경질된 게 아닙니다. 대통령께서는 제가 서너 번 사의를 표명할 때마다 ‘나가실 때가 아닙니다’라고 말렸습니다.”

    ▼ 공식 사퇴의사를 표명하기 전에 청와대나 당 쪽에서 사퇴를 압박하는 듯한 발언들이 나오지 않았던가요? 그게 부담이 된 게 아닙니까.

    “아닙니다. 저를 임명한 사람은 대통령이지 비서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 이른바 실세들이 직·간접적으로 물러나라는 신호를 보내지는 않았습니까.

    “직접 들은 건 없습니다.”

    ▼ 간접적으로는 많이 느끼셨습니까.

    “7월6일인가 청와대의 어떤 사람이, 제가 7월8일에 사퇴 발표를 한다는 말을 한 적도 있지요. 참으로 터무니없는 말이었습니다.”

    “실세들로부터 간접적으로 사퇴 압력 받았다”

    정운찬 전 총리는 “경질이 아니라 사퇴였다”고 말했다.

    ▼ 누군지 아십니까.

    “짐작은 가지만 뭐 알 필요도 없고요. 보도가 나온 다음날 대통령이 노발대발해 정정길 실장한테 ‘어디서 이런 얘기가 나왔느냐’고 야단치면서 ‘총리한테 해명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건 모종의 압력이 있었다는 얘기죠. 그렇지만 나한테 직접 ‘당신은 그만둬도 좋다’고 얘기한 사람은 없었어요.”

    ▼ 청와대 참모 및 여권 실세들과 갈등을 빚었고, 권력투쟁에서 패했다는 관측이 있습니다.

    “갈등이 없었다면 거짓말입니다. 뒤에서 저에 대해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정치적 계파가 없기에 그 사람들이 저를 대하기가 힘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교수생활만 30년 하다가 총리직을 맡으니 전혀 다른 세상이어서 저 자신이 매순간 갈등을 겪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누구와도 잘 어울릴 수 있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저의 임명을 반대했던 청와대 일부 참모나 내각 사람들이 나중에 저를 찾아와 오해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떠날 때쯤이었습니다만.”

    “천천히 생각해보자”

    ▼ 인적쇄신론을 펴다가 역공을 당했다는, 이른바 거사설의 진상은 무엇입니까.

    “그런 얘기가 나올 때 정말 답답했습니다. ‘거사’는 음모적이고 정치적인 표현입니다. 제가 무슨….”

    ▼ 총리로서 뭔가 승부수를 던졌다는….

    “인사에 관해선 대통령과 자주 얘기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께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시 인적쇄신에 대해선 많은 사람이 공감하지 않았습니까.”

    ▼ 지방선거 이후에 말이지요?

    “예. 대통령을 위하기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권력의 오만과 어두운 면을 직접 목격한 셈이지요. 저는 인적쇄신의 필요성을 느꼈고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정치하는 이들이 나오기를 바랐습니다. 다만 그것이 특정인을 겨냥한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고 마치 내분이라도 난 것처럼 알려져 저의 인적쇄신론의 의미가 반감되고 괜한 오해를 빚었습니다. 그 시점에 정부, 당, 청와대에 대한 쇄신이 필요했던 건 사실입니다.”

    ▼ 구체적으로 일부 수석들의 교체를 대통령께 건의한 사실이 있지요?

    “일부 수석이라기보다는 당, 청, 내각 전반에 대해 이렇게 바꾸면 좋겠다고 6월 이전에도 몇 번 말씀드렸습니다.”

    ▼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론하시지 않았습니까.

    “인적쇄신이 필요합니다, 하면 저쪽에서 물어보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는 거지요. 봄에 몇 차례 건의했고 6월 지방선거 이후에도 말씀드렸습니다.”

    ▼ 대통령의 반응은요?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하셨습니다. 일이란 건 순서가 있다며.”

    ▼ 당시 요직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 총리가 상당히 불편했겠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아무한테도 얘기 안하고 대통령께만 말했으니. 제가 그만두기 전에 국무위원들 부부동반 모임이 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대통령께서 ‘나는 총리하고 못한 얘기가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제가 존재감이 없었다? 참 너무 심하다. (웃음)”

    그는 국무회의에서 이재오 당시 국가권익위원장에게 면박을 당했다는 중앙일보 보도에 대해 “오보”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6월2일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열린 국무회의에서 정 총리가 선거결과를 화제로 올리자 이 위원장이 “그건 국무회의 의제가 아니다”라며 반대하는 바람에 논의가 무산됐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이 그런 말을 한 것은 맞지만 아주 예의바른 태도였습니다. 당시 참석자들한테 확인해보면 그날 회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제 말에 따라 두세 사람이 손을 들어 선거패배 원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어 이 위원장이 그런 발언을 해서 나중에 다른 자리에서 논의하기로 하고 끝냈던 겁니다. 그 보도는 아주 악의적인 오보입니다. 이재오씨는 저와 가까웠어요. 그리고 권익위원장이 총리한테 어떻게 면박을 줍니까. 말도 안 되지.”

    “박영준은 유능하고 순박한 사람”

    ▼ 박영준이라는 실세가 국무총리실 차장이라는 점도 정 총리가 허세가 아니냐는 세간의 인식에 영향을 끼쳤지요. 총리실의 중요한 일은 다 박씨가 처리한다는 거죠.

    “(웃음) 사실과 달라요.”

    ▼ 나중에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사찰 사건이 터지고 영포라인 의혹이 제기되면서 실세들의 비선(秘線)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불법사찰과 박영준씨가 무슨 관계가 있어요?”

    ▼ 박영준씨가 실제로 힘이 세지 않습니까.

    “박영준씨는 굉장히 유능하고 순박한 사람입니다.”

    ▼ 인사에 깊이 관여한다고 소문 나 있죠.

    “총리실 인사와는 전혀 관계없었습니다.”

    ▼ 두 분 사이가 불편하지는 않았습니까.

    “취임 직후 여기저기서 박영준 차장을 바꾸라고 권유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적어도 총리실의 어떤 자리가 뭘 하는 자리이고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서 인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액션을 취하지 않으니까 총리실장이나 차장을 바꾸라고 권유한 사람들이 저를 무능한 사람으로 오해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사를 못한 게 아니라 몇 개월 지켜보고 업무를 파악한 다음에 하려고 했던 겁니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이 터진 거예요. 그때도 대통령께 제 생각을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 ‘천안함 사건이 마무리되고 선거가 끝난 뒤에 한번 봅시다’ 하더군요. 박영준씨와는 어떤 갈등도 없었습니다.”

    ▼ 박영준씨를 바꾸라고 주변에서 권유한 사람들은 어떤 이유를 대던가요?

    “뭐 인사에 깊이 관여한다던가? 그것과 총리가 무슨 관계가 있어요?”

    ▼ 좀 위험한 인물로 본 모양이지요?

    “세상에서 알고 있는 박영준 차장의 흠이 뭔지 저는 잘 몰라요. 영포라인이나 선진국민연대에 대해서는 몇 달 전까지 총리였던 사람으로서 발언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다만 박 차장에 대해선 전혀 불만이 없었습니다.”

    ▼ 청와대 참모가 정 총리의 대통령 독대를 가로막았다는 보도도 있었지요.

    “다 소설입니다.”

    ▼ 왜 그런 보도가 나왔지요?

    “잘 몰라요. 하여간 제가 대통령을 만나려고 할 때 차단당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요일을 바꾼 적은 있지만.”

    ▼ 정두언·정태근·김성식 의원,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등과 가깝고, 이동관·박형준·박재완·권재진 등 당시 청와대 수석들과는 불편했다는 얘기도 나왔었지요?

    “추측입니다.”

    ▼ 실제로 정두언 의원과 가깝지 않습니까.

    “정두언 의원과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이 없어요, 총리 되기 전에는. 총리 된 후에 한두 번 만난 적이 있을 뿐입니다.”

    ▼ 개인적 친분은 없다는 말씀이죠?

    “고등학교, 대학교 후배라는 것밖에 모르지. 오해가 많았던 것 같아요.”

    “실세들로부터 간접적으로 사퇴 압력 받았다”

    2009년 10월3일 용산 사태 유족들을 찾은 정운찬 총리.

    ▼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뒤늦게 보고받으셨다고요?

    “그럼요. 제가 취임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든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국민을 편안하게 해줘야 할 국가최고기관의 의무를 저버린 범죄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지하자마자 즉각 진상조사와 함께 법적인 책임을 묻도록 조치했고 조직도 바꾸어 재발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 이후 드러난 정황을 보면 비선을 통해 청와대 쪽으로 지속적으로 사찰 활동이 보고되지 않았습니까. 그쪽에서 지시도 있었고. 그리고 검찰은 지금 부실수사로 비판받고 있고요.

    “거기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다만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무리한 감찰을 문제 삼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걸 고치려 노력했어요. 권재진 민정수석과 함께. 감찰도 좋지만 사무실에 가서 책상 막 뒤지고 물건 빼앗아오는 건 잘못 아니냐. 고치려 했는데 결과적으로 잘 안 됐어요.”

    “대통령에게 용산문제 해결 건의”

    ▼ 총리실 통제를 받는 조직이 아니라 청와대에 직보하는 조직이니 그런 것 아닙니까.

    “제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는 “잘 몰랐다” “바꾸려 했는데 잘 안 됐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 엊그제 제가 어떤 벤처기업가와 밥을 먹었는데, 그분이 정 총리에 대해 이렇게 평하더군요. 참 훌륭하신 분인데 총리 해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다고. 제 주변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얻은 게 많아요, 잃은 것보다. 정말 많은 경험을 하고 교훈을 얻었어요. 일도 많이 했고요. 과거 총리들이 저보다 잘한 게 있다면 한번 얘기해보세요.(웃음)”

    ▼ 우리나라 총리는 사실….

    “의전총리, 대독총리, 허수아비총리라고 하지요. 그런데 제가 우선 용산문제를 처리하지 않았습니까. 지난 6월 경찰청 고위간부가 총리공관에 와서 식사를 했는데 ‘정말 고맙다’고 하더군요. 제가 총리 되자마자 용산을 방문하지 않았습니까. 그 후 신문에 안 났지만 무지하게 노력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 찾아가고 대통령께도 서너 번 얘기했습니다. ‘대통령님. 진정 서민을 위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얘기지만, 정치적으로 볼 때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굉장한 어려움에 처할 겁니다’라고.”

    ▼ 그때는 존재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수년 동안 ‘성숙한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 ‘지속적 성장이 이뤄져야 한다’ ‘국가의 품격을 더 높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습니다. 총리 할 때 이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일했습니다. 성숙한 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회의할 때 정말 민주적인 방법으로 진행하려 노력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외부위원들한테 격려의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교육이 향상돼야 합니다. 그래서 서울대 총장 시절에 추진했던 대학 자율화를 비롯해 고교 다양화, 학력요건 완화라는 3화(化)정책을 제시했습니다. 지난해 12월 공교육 경쟁력 강화와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민관합동위원회를 만들어 매달 회의를 열었습니다. 서너 시간씩 정말 신나게 토론했습니다. 설동근 현 교육부 차관도 거기 출신이죠. 보고서도 많이 나왔어요. 일부는 정책에 반영도 됐고. 당시 교육부 차관이던 이주호 현 장관도 자주 참석했죠.”

    그는 1693년 존 로크가 펴낸 ‘교육에 관한 몇 가지 단상’이라는 책을 소개하며 “기사 쓸 때 꼭 언급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책에 따르면 교육의 첫째 목표는 체력입니다. 둘째는 위기극복 능력, 셋째는 창의성, 넷째는 담대함입니다.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지식을 가르치라는 거죠. 오늘날 영국의 교육철학, 교육제도의 기초는 전부 이 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강 때마다 이 얘기를 하는데 보도가 잘 안 되더라고요. 그저 세종시 문제만 보도하고.(웃음)”

    그는 ‘세종시 총리’로 낙인찍힌 것이 무척 아쉬운 듯했다.

    “국무회의나 국가정책조정회의 때 저의 단골 메뉴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환경, 사회적 낙오자에 대한 구제장치, 서민복지의 재정 확대, 공교육 활성화 등이었습니다. 내세울 만한 치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를 내실 있게 만드는 데 상당한 노력을 했습니다. 기자들이 세종시와 관련된 것은 아주 사소한 일도 보도하면서 정작 사회를 바로잡고 복지에 도움이 되는 업무에는 관심을 안 보여 서운했습니다.(웃음)”

    민주당은 그가 총리가 되자 “연애는 민주당과 해놓고 결혼은 한나라당과 한다”고 비꼬았다. 2007년 대선 때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선다는 관측이 나올 정도로 한때 그는 민주당과 가까웠다. 그런데 당시 사정을 들어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연애는 무슨? 연애를 하려면 손이라도 한번 잡아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민주당이 언제 저한테 정식으로 대통령 나오라고 한 적이 있나요? 그래서 제가 2006년에 ‘내가 무슨 불쏘시개냐’라는 발언도 했잖아요.”

    ▼ 진정성이 없었군요.

    “적어도 그쪽에서 저하고 연애할 생각은 없었다는 얘깁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친한 분은 많았지만.”

    “감세에 찬성하지 않아”

    ▼ 2007년에 실제로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있으셨지요? 국민적 여론도 있었고.

    “하도 여러 어른이 말씀해서 2월 중순부터 4월말까지 고민했던 게 다입니다.”

    ▼ 주변사람들에게 ‘대통령 하고 싶다’고 얘기하셨다면서요?

    “그거, 오보입니다. 제 지인이 잘못 말했을 겁니다. 정말 아닙니다.”

    ▼ 만약 민주당에서 정식으로 대선후보로 모셨다면 상황이 달라졌겠네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할 필요는 없지요.”

    ▼ 자신이 없으셨던 거죠?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 마시고요. 모든 일에는 준비가 필요한데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서였지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 좋게 얘기하면 심사숙고하신 거고….

    “그런 거지요.”

    ▼ 나쁘게 얘기하면 결단성이 없었던 거네요.

    “맘대로 하세요.(웃음)”

    ▼ 우유부단했다는 평도 있지요?

    “아니요. 결심을 하고나서 안 나왔다면 모르지만 결심을 하기 전이었는데요, 뭐.”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지자였다. 1971년 장충단 연설 때 감명을 받은 이후 대선 때마다 그를 찍었다. 그 영향인지 몰라도 그는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을 우호적으로 평가했다. 외환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열심히 했고 성과도 컸다고 했다. 지금 대기업이 튼튼해진 것도 그 덕분이라는 것이다. 반면 노무현 정부에 대해선 “의지는 있었는데 비현실적인 정책을 내세워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뜻밖에도 그가 쓴소리를 했다.

    “대통령께서는 무슨 정책이 나올 때마다 그게 서민들한테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제게 꼭 물어보곤 했습니다. 대통령은 서민을 위하고 싶어하는데 참모들이 뒷받침을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부는 서민정책이라고 내놓지만 국민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 무늬만 서민이라는 거죠?

    “나와서 보니 여론이 그래요. 안타깝죠. 손발이 부족하거나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이 장단을 못 맞추는 거죠.”

    “실세들로부터 간접적으로 사퇴 압력 받았다”

    정운찬 전 총리는 최근 논란이 된 감세정책에 대해 “경기부양에도 분배에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 한나라당과도 잘 안 맞죠?

    “예. 대통령이 지금보다 당과 더 많은 대화를 하면 좋겠습니다. 그에 대해서도 대통령께 여러 차례 진언했습니다. 당과 청와대의 관계가 긴밀하지 못했어요, 제가 보기엔.”

    한나라당은 최근 이른바 ‘부자 감세’ 논란으로 내홍을 겪었다. 2012년부터 적용되는 대기업과 고소득층 감세방침에 대해 당내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감세 철회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청와대가 감세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천명하자 당 지도부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 공리주의 철학자들은 부의 재분배를 주장합니다. 부자들에게 높은 세금을 매겨 어려운 사람들을 도움으로써 사회 구성원 전체의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는 거죠. 감세 문제를 어떻게 보시죠?

    “저는 감세가 경기부양에도 분배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금을 깎아주면 소비가 늘어나 경기부양에 도움이 된다는 이론이 있는데, 그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의 세금을 감면해주는 것이니 분배에도 도움이 안 되고요. 그래서 저는 감세에 찬성할 수 없습니다.”

    학자 출신이라 그런지 교육에 대해 얘기할 때 가장 열성적이고 표정도 밝았다. “세종시 문제 때문에 정원 감소, 지역균형선발제 등 교육개혁을 실현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술집에 관해선 부끄러운 일 없다”

    ▼ 가벼운 질문 몇 가지 하고 끝내겠습니다. 즐겨 찾는다는 방배동 카페는 요즘도 가십니까.

    “총리 할 때는 한 번도 안 갔고요. 최근에 갔어요.”

    ▼ 거기 가면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

    “좀 유치하게 보지 마세요. 초기 비용이라는 게 있잖아요. 개발비용. 모르는 집을 뭐 하러 가요, 아는 집 가지. 저도 소개받아 간 집인데, 소박해요. 10명이 가서 아무리 마셔도 20몇만원이면 돼요.”

    ▼ 양주 마시면 더 나오겠죠?

    “될 수 있으면 양주 안 마시지요. 양주 마실 때도 있는데, 두 병 마시면 40만원 가까이 나와요.”

    ▼ 여자 종업원이 옆에 앉는가요?

    “서브하지요, 서브.”

    ▼ 옆에 앉아 말 상대도 해주는가요?

    “뭐 전혀 아니라고는 말 못하지만, 일반적인 카페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는 “술집에 관한 한 전혀 부끄러운 일이 없다”고 힘줘 말했다.

    ▼ 거기서 스무고개 게임을 즐기신다면서요?

    “난 스무고개 처음 들어요. 스무고개가 뭐예요?”

    ▼ 뭐 이래저래 말 맞추는 것 아닙니까?

    “제가 농담은 잘합니다만, 스무고개는 해본 적이 없어요.”

    ▼ 신정아씨 사건이 불거졌을 때 신씨와 두 번인가 만나서 식사했다는 얘기가 나왔었죠?

    “예. 식사는 한 번 했던 것 같은데….”

    ▼ 그 자리에서 서울대 미술관장 자리를 제안하셨고요?

    “무슨 제안을 해요? 서울대 미술관은 삼성 홍라희 여사가 굉장히 많은 돈을 들여 지어준 겁니다. 예전엔 그런 기관이 생기면 서울대 교수들이 다 차지했거든요. 그래서 미술관장만큼은 서울대 교수를 시키지 말자고 생각해 아는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았어요. 그 리스트에 신정아씨가 있었습니다. 예일대 박사 출신이라고 해서 한번 보자고 했지요. 이력서를 갖고 왔는데 30대 초반인 거예요. 아무리 잘났어도 30대 초반은 서울대 미술관장 못합니다. 소개한 사람한테 고맙다고 밥 샀는데 여럿이 같이 저녁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 신정아씨도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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