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호

미국은 극단적 네거티브와 정파성으로 병들고 있다

미국 중간선거 방송 감상기

  • 김정기│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jkkim@hanyang.ac.kr│

    입력2010-12-01 16: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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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극단적 네거티브와 정파성으로 병들고 있다

    지난 11월2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중간선거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11월2일 실시된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는, 한국의 어느 노정치인이 “석양같이 한번 벌겋게 물들이고 싶다”고 한 말처럼 미국을 벌겋게 물들였다.

    빨간색의 공화당은 435석의 하원의석이 걸린 이번 선거에서 11월8일 현재 아직 확정되지 않은 9석을 제외하고도 과반인 218석을 훨씬 넘는 239석을 얻어 하원을 장악했다. 공화당 의석은 선거 전보다 60석이나 더 늘었다. 이처럼 큰 차이는 50여 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37석을 선출하는 상원에서도 당선자 확정에 시간이 더 필요한 알래스카 주를 제외하고 공화당은 6개 의석을 더 얻었다. 상원 100석 중 민주당이 53석, 공화당이 46석이 됐다.

    선거에는 늘 흥분과 우려가 교차된다.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인 오바마의 민주당정권은 집권 2년 만에 하원을 잃었다. 하마터면 상원까지 야당에 넘어갈 뻔했다. 또한 미국은 두 개의 다른 나라로 갈라졌다고 할 정도로 국론이 분열되는 듯했다.

    상대후보 험담에 450억달러 쏟아

    필자로선 레토릭(rhetoric·수사학) 공방으로 후끈했던 이 선거를 현지에서 지켜보는 것이 꽤나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텔레비전 선거광고는 특히 치열했다. 450억달러라는 천문학적 광고비가 지출되었다는데 광고에는 ‘앞으로 유권자를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한국의 정치판에서도 익숙해진 매니페스토 선거캠페인은 신기할 정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텔레비전 광고는 ‘상대 후보자는 이런저런 이유로 무조건 안 된다’는 네거티브 일색이었다. 이성과 정책은 실종되고 감정과 비난만 넘쳤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선거광고는 양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특히 이번 선거에서 광고물량이비약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그 배경에는 ‘기업이나 특정단체가 정치 광고를 직접 하거나 후보자의 광고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고 한 지난 1월의 미국 대법원 판결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어떤 단체가 누구를 후원했는지 밝힐 필요도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월가 등 특정 이익집단의 돈이 선거광고로 콸콸 흘렀다는 것이다. 후보자가 자신의 돈을 천문학적인 규모로 쓴 경우도 있었다. 이베이 CEO 출신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여성후보 휘트먼은 1억5000만달러 정도를 쏟아 부었다. 분석가들에 의하면 약 5%의 미확정 유권자를 대상으로 하루 1300개의 선거용 광고를 실었으니 하늘에서 돈을 뿌린 셈이다. 미국에선 선거자금이 당락의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된다. 돈의 힘을 믿는 후보자들이 선거판을 휘젓는 일이 가능하다. 이런 선거제도를 문제 삼는 언론이 별로 없는 것이 특이했다.

    개표가 진행되던 2일 밤 텔레비전 방송은 파란색의 민주당 의석이 빨간색으로 바뀌어가는 화면을 되풀이해 보여주었다. 그중 ‘폭스뉴스(Fox news)’는 신나는 표정이 역력했다. 폭스뉴스는 세계 최대의 미디어 복합기업을 소유한 루퍼트 머독이 24시간 보도채널로 1996년 출범시켰다. 보수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다국적 언론재벌이 소유한 방송답게 미국에서도 부시 정권의 보수주의 정책과 공화당의 이념을 뒷받침하는 편향성을 보인다. “공산당에는 프라우다(Pravda·러시아 국영신문)가 있고 공화당에는 폭스뉴스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머독의 자본에 속한 언론이 보수색채를 띠는 것은 자명한 일로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언론이 보수주의 혹은 진보주의 색채를 보이는 것 자체는 문제 삼을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폭스뉴스가 미국에서 일정수준 이상의 시청률을 확보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방송이 다른 방송에서는 얻을 수 없는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문제의 요지는 폭스뉴스가 방송을 불공정하게 도구화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미국사회의 분열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으로 비친다는 점이다.

    “사회주의자” “인종주의자” “나치”

    예를 들어 앵커들의 진행, 전문가 패널 구성, 사실에 대한 설명과 해석이 매우 편파적이다. 세계 언론사에서 부정적 사례로 거론되는 당파 언론(partisanship press)의 유령이 부활해 TV 화면을 누비는 느낌이다. 사건에 대한 보도가 발생원인, 진행, 결과에 대해 객관적으로 설명할 때 시청자가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완성도 높은 정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관점에서 폭스뉴스는 조악한 불량품이 많았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입장을 균형 있게 반영하지 않고 민주당에 적대적인 의견을 강화하는 식이다.

    실업률, 일자리, 감세, 정부 재정적자, 의료보험 등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제공에는 소홀했다. 반면 과학적인 방법으로 조사되지 않은 여론조사의 결과를 인용해 상대방을 비판하는 일이 흔했다.

    폭스뉴스의 뉴스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앵커들은 뉴스 일탈의 전령사였다. 폭스뉴스의 성공 요인으로 방송내용의 인간화를 꼽지만 ‘워싱턴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의 말처럼 ‘명예롭고 신성한 직업으로서 민주주의의 발전과 번성에 기여한다’는 저널리스트로서의 품격 대신 폭스뉴스의 앵커들은 ‘말발 센 독설가’의 역할에 자족하는 것으로 보인다.

    핵심 앵커인 오라일리는 우리나라에 그의 책이 번역되어 꽤 팔린 사람인데 그가 진행하는 시사토크 프로그램의 출연자와 토론 패널은 보수주의자 일색이다. 다른 의견을 가진 출연자가 등장할 땐 발언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거나 발언을 가로막거나 앵커 자신의 의견을 더 길게 얘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방송은 방송사와 앵커의 개인적인 신념을 전달하기 위해 활용되는 형식일 뿐 그 밥에 그 나물인 주장으로 일관한다.

    폭스뉴스의 앵커들은 오바마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심지어 백인과 백인문화에 반감을 가진 인종주의자, 독재적인 나치라고도 한다. 인터넷 공간도 아닌 방송을 담당하는 앵커들이 누리는 이러한 언론의 자유는 한편으로는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사회의 분열을 가속화하는 징조로 비친다. 자본주의 이외에는 살아가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믿는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라는 용어가 주는 함의는 과거 한국 독재정권 시절의 색깔론을 연상시킨다. 인종주의자라는 호칭도 노예제도라는 야만적인 역사를 운영해온 미국의 역사적인 콤플렉스 때문에 사회에서 매장당할 수 있는 치명적인 용어다. 미국 국민의 20%는 오바마가 케냐 출생이고 이슬람 신자라고 잘못 알고 있다. 폭스뉴스는 이러한 국민의 무지를 오바마 비판에 교묘하게 활용한다.

    언론이 부패한 권력에 당당하게 맞설 때, 지도자의 잘못된 의사결정을 날카롭게 비판할 때, 우리는 박수를 친다. 그 박수는 저널리스트의 직업정신에 대한 찬사이고 민주사회로 성숙시키는 것에 대한 감사다. 이때 언론 자유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된다. 그러나 과학적인 현실감과 균형감이 없는 언론자유는 흉기가 될 수 있음도 사실이다.

    언론자유 넘어 사회분열로

    공화당이 이기든 민주당이 이기든 미국 국민은 위대한 선택을 한 것이다. 다른 나라의 민주적인 투표결과는 언제나 존중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시청률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이번 선거 개표일 밤 폭스뉴스의 시청자는 700만명으로, CNN의 250만명과 MSNBC의 200만명 이하를 압도했다는 후문이다. 낄낄거리며 영향력을 자부하는 폭스뉴스의 일부 앵커들을 떠올리며 이런 괴물 방송은 미국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곤란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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