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일반적인 계약에서는 간단하게만 보이는 계약 당사자란 채워 넣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계약과 관련된 분쟁 중 당사자란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사건을 해결하려면 계약의 사실관계를 증명해야 하므로 난이도도 높은 편이다.
계약의 상대방을 누구로 할 것인가
사례 1: A는 절친한 친구의 소개로 B에게 1억원을 빌려주기로 했다. A는 담보를 확보하기 위해 B에게 보증인을 세워줄 것을 요구했고, B는 좋은 회사에 다니는 삼촌을 보증인으로 세우기로 했다. A와 B는 공증사무소에서 만나기로 했고, B는 보증인이 될 삼촌의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들고 왔다. A는 B와 B가 들고 온 보증인의 서류를 믿고 채무증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나중에 B의 삼촌은 자신의 위임장이 위조됐다며 보증채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펄펄 뛰었다. A는 B의 삼촌에게 보증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사례 2: 갑은 OO아파트를 사기로 하고 공인중개사 사무실로 집주인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부동산 사무실에 가보니 집주인 을은 호주에 살고 있다며 집주인의 동생이라는 병이 나와 “내가 을의 대리인”이라며 위임장을 보여주고는 자기와 계약을 하자고 했다. 갑은 위임장을 잘 살펴본 후 집주인 을과 통화를 해 사실을 확인한 후 병과 아파트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나중에 을은 “나는 병에게 아파트 매매권한을 위임한 사실이 없고 갑이 통화했다는 사람도 내가 아니다”라며 매매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사례 3: X는 대성공작소 대표라는 Y에게 자신이 만든 기계를 팔기로 하고 매매계약을 체결하려 했다. X는 Y의 명함을 본 뒤 Y가 업체 대표라고 믿고 별다른 확인을 하지 않고 Y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Y가 업체의 실질적 주인이기는 하지만, 업체의 명의는 Y의 아내인 Z의 이름으로 돼 있었다. 그래도 Y가 실질적 운영자인 것은 사실이므로 Y와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맞다고 여겼다. 그런데 Y가 기계 대금을 주지 않았다. 이에 X가 Z에게 대금을 청구하자 Z는 Y가 체결한 계약에 대해 자신이 책임질 이유가 없다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위 사례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계약의 진정한 상대방과 직접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A, 갑, X 모두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쉽지 않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사례 1의 A는 B에게 돈을 꿔주면서 안전장치를 확보하기 위해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신중하게 노력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A는 B의 삼촌에게 보증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다. B가 삼촌의 허락도 없이 위임장을 작성하고 인감증명서를 무단으로 제출한 것이라면 B의 삼촌에겐 위임장이나 B의 금전대차계약 효력이 미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사례 2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매수인 갑은 집주인 을과 통화까지 했다고 항변할지 모르나 통화의 상대방이 을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은가.
사례 3의 경우 Y가 대성공작소의 실질적인 운영자가 맞다 해도 Z가 책임을 부인하는 이상 Z에게 책임을 지우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더욱이 Y가 실질적 운영자가 아니라면 X는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거래를 하다보면 이런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계약서를 쓰는 자리에 계약 당사자를 무조건 나오라고 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당사자 본인과 계약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대비책을 꼼꼼하게 마련해둔다면 걱정을 덜 수 있을 것이다.
계약 상대방에 관한 정보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부동산 거래의 경우: 부동산을 매매, 임대차할 때는 부동산 소유자를 확인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부동산의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은 각지의 등기소나 인터넷 등기소(www. iros.go.kr)에서 떼어볼 수 있다. 먼저 등기부등본의 표제부에서 해당 부동산의 지번 등을 보고 원하는 부동산의 등본인지를 확인한다. 그 다음엔 등기부등본의 ‘갑구’에서 맨 마지막으로 소유권 이전등기가 된 사람이 현 소유자이므로 부동산 소유자의 주민등록증을 달라고 해서 주민등록증의 사진과 계약 상대방의 얼굴이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등본상의 소유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앞 6자리, 주소가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사례 2와 같이 집주인과 직접 계약을 체결하지 못할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때는 위임장에 인감증명서를 첨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공증된 위임장을 받아오도록 해야 한다.
상거래의 경우: 상거래의 상대방이 법인인 경우에는 법인 등기부등본을 부동산 등기부 등본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떼어본 뒤 그 법인의 대표자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사업자는 등기부가 없기 때문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개인사업자와 계약할 때엔 상대방의 사업자등록증을 떼어달라고 해서 등록된 사업자와 거래 상대방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게 가장 좋다. 그런데 거래관계에서, 특히 이른바 ‘갑’이 아닌 ‘을’의 처지에서는 다짜고짜 사업자등록증을 달라고 하면 상대방이 불쾌하게 여길 수 있다. 이럴 때는 세금계산서 발행(매도인의 경우)을 위해서라고 하거나, 거래처 등록을 위해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하고 돈을 입금하기 위해 주거래 은행의 통장 사본을 보내달라는 식으로 요청하는 수완을 발휘하자. 주거래 은행의 통장사본을 받아두면 나중에 상대방이 돈을 안 줄 경우 어느 은행의 계좌를 압류할지 알아볼 필요 없이 신속하게 예금 채권 가압류를 할 수 있다.
사례 3의 경우 X가 대성공작소의 사업자등록증을 확인하고 계약서에 Y의 이름과 함께 Z의 이름도 같이 넣어달라고 요구했다면 위험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계약의 상대방을 어떻게 쓸 것인가
법인의 경우: 주식회사, 유한회사, 합명회사, 합자회사와 민법상 비영리법인을 모두 일컬어 ‘법인’이라고 한다. 법이 인정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계약 당사자가 이와 같은 법인인 경우, 예를 들면 ‘주식회사 사랑인쇄’의 대표이사 김사랑과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다음과 같이 쓴다.
주식회사 사랑인쇄
대표이사 김사랑 (법인 인감도장)
계약을 위해 교섭을 하고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자연인인 법인 대표이기는 하지만, 계약 당사자가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법인이지 법인의 대표가 아니라는 데 주의해야 한다. 이것을 혼동해 회사의 대표와 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대표이사 김사랑’이라고만 쓰거나 ‘주식회사 사랑인쇄 김사랑’이라고만 쓰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보통의 계약에서 이렇게 쓴다고 법인에게 계약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원칙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렇게 대충 쓰는 것이 습관이 되면 어음이나 수표의 거래에서도 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어음, 수표의 경우에는 기재 내용 그대로 엄격하게 판단하기 때문에 낭패를 보지 않으려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개인사업체의 경우: 개인사업체 ‘평화인쇄소’를 운영하는 김평화씨가 계약 당사자인 경우 계약 당사자는 해당 업체가 아니라 대표 개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 개인의 이름과 개인의 도장이 꼭 들어가야 한다.
평화인쇄소 대표 김평화 (김평화 도장)
평화인쇄소가 계약의 주체는 아니지만, 평화인쇄소라는 상호는 그 계약이 평화인쇄소의 상거래와 관련된 것임을 의미한다. 또한 평화인쇄소의 주인이 바뀌었을 경우 그 상호를 계속 사용한 주인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하므로 개인사업자라 해도 업체의 이름을 함께 명기하는 것이 좋다.
이런 사실을 잘 알지만 막상 계약을 하러 가서 당사자 본인만을 상대하겠다고 하거나 깐깐하게 자료를 요구하면 ‘사람을 그렇게 못 믿느냐’는 비난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야박하다고 욕을 먹는 것은 순간이고, 그 순간을 조금만 참고 원칙을 지키면 자기 재산을 영원히 지킬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