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 한마디 못하던 희찬이는 1년 만에 영국 아이들과 엇비슷한 수준의 영어를 구사한다.
- 다 TV 덕분이다. 엄마도 아들 따라 하기에 나섰다.
- TV 보는 값으로 1년에 40만원을 내니 본전 생각도 났다.
- 그래서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3대 드라마와 친해지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 아, 그러나 영국 드라마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가 아니었다!
희찬이의 영어 선생님 구실을 한 영국 인기 드라마 ‘닥터 후’.
한국에서 초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온 희찬이는 영국 학교에 4학년 1학기로 편입하던 때까지 영어를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했다. 선생님의 수업 내용이나 친구들의 이야기를 전혀 못 알아들은 것은 당연지사. 영국에서의 첫 6개월 동안 우리 세 식구 모두 무진장 고생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아마 희찬이었을 것이다.
영국에 온 지 1년 하고도 2개월이 좀 지난 지금, 희찬이는 영어로 듣고 읽고 말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아직까지 영어로 글을 쓰는 데는 약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최소한 듣고 읽는 데는 또래 영국 아이들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 듯싶다. 요즘에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1권인 ‘해리포터와 철학자의 돌’(미국과 한국에서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지만 원제목은 ‘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이다)을 읽으면서 “엄마, 나는 영화 해리포터가 제일 재미있는 줄 알았는데, 책을 읽어보니까 책이 더 재미있는 것 같아”라고 평하기도 한다.
사실 희찬이는 언어 감각이 좀 둔한 편이어서 한글도 1년 가까이 고생해가면서 간신히 익혔고, 영어도 한국에서부터 꾸준히 배웠건만 영국에 오기 전까지는 전혀 깨치지 못했다. 그러던 아이가 1년 조금 넘는 기간에 해리포터 시리즈를 영어로 읽게까지 됐으니 ‘고생 끝에 낙이 왔나’ 싶을 정도다.
희찬이가 영어를 실제적으로 접하고 이해하게 된 매개체는 다름아닌 TV다. 어떻게 해서 그리 됐는지는 몰라도 희찬이는 지난해 연말 무렵부터 BBC의 공상과학 드라마 ‘닥터 후(Doctor Who)’의 열광적인 팬이 됐다(어느 날 갑자기 팬이 됐기 때문에 이 녀석이 어떤 경로로 이 드라마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됐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희찬이는 토요일마다 방송되는 ‘닥터 후’ 본방송은 물론이고 BBC3의 재방송이나 과거 시즌의 앙코르 방송까지 ‘닥터 후’라면 모조리 찾아서 봤다.
50년 최장수 드라마
그것도 모자라 매주 나오는 ‘닥터 후’ 잡지도 꼭꼭 사서 닳아 떨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영어책 한 번 읽히기가 그렇게나 어렵던 아이가 전자사전을 찾아가며 ‘닥터 후’ 잡지를 읽는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6개월 정도가 지나자 어느새 아이는 ‘닥터 후’는 물론이고 웬만한 TV 프로그램은 대부분 알아듣는 수준이 됐다. TV가 아이의 영어 선생님 노릇을 해준 셈이다.
사실 이번에 이야기하려는 주제는 희찬이가 아니라 희찬이의 영어 선생님이 되어준 영국 TV에 대한 이야기다. 희찬이가 영어를 익히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다 ‘나도 영국 TV 드라마를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많은 영어 전문가가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영어를 익히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리스닝, 바로 듣기다. 그리고 듣기 실력을 늘리는 데는 TV 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나는 밤 10시에 방송되는 BBC 뉴스를 매일 보는데, 기왕이면 딱딱한 뉴스말고 드라마도 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가 재미있어봤자 뉴스일 뿐이고, 더구나 BBC 뉴스에는 ‘보수당 정부의 공공예산 삭감으로 인해 평균적인 영국인의 은퇴연금(pension)은 얼마나 줄게 되나?’ 같은, 영국의 내부 사정을 잘 알지 못하면 알아듣기 어려운 뉴스가 꽤 많이 나온다. 어떤 때는 지루함을 참으면서 의무적으로 간신히 뉴스를 보기도 한다. 그래서 기왕이면 영국에서 인기 있는 드라마를 한두 편 찾아내서 보는 재미를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영국 TV는 한국 못지않은 ‘드라마 왕국’이다. 일전에 영국의 공식 시청률 조사 사이트인 BARB(Broadcaster′s Audience Research Board, barb.co. uk)에서 영국 공중파 방송의 시청률 순위를 분석했는데, 2010년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프로그램 톱 5 중 1위부터 3위까지가 모두 드라마, 그것도 일일 드라마였다. 시청률 1위를 차지한 ITV의 ‘코로네이션 스트리트(the Coronation Street)’는 장장 50년 동안 계속 방송된 일일 드라마다. 공식적인 기록을 잠깐 살펴보자면 ‘코로네이션 스트리트’가 시작된 것은 1960년 12월이라고 한다. 첫 방송 이래 주 2회에서 주 5회 사이로 편성은 다양하게 바뀌었지만, 드라마가 중단된 적은 한 번도 없다. 현재까지의 방송 횟수는 무려 7000회가 넘는다.
한 드라마를 50년간 쉬지 않고 제작하는 방송사도, 그리고 그 드라마를 50년간 보고 있는 시청자 모두 참 대단하다. ‘코로네이션 스트리트’는 전세계 방송 역사를 통틀어 최장수 드라마로 기록돼 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세계 어느 나라 방송사가 한 드라마를 50년간 개편 없이 계속 방송하겠는가. 그리고 설령 그렇게 오래도록 방송한다 해도 어느 시청자들이 50년이나 같은 드라마를 줄기차게 보고 있겠는가. 뭐든지 바꾸는 건 죽도록 싫어하고 ‘안 하던 현명한 행동보다는 늘 해오던 바보짓을 계속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영국 사람들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1등 비결은 일상성과 평범함
이 드라마는 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정답은 우습게도 ‘간단히 말할 수 없음’이다. 드라마 속 ‘코로네이션 스트리트’는 맨체스터 외곽에 있는 가상의 동네 이름이다. 드라마의 기본 구조는 코로네이션 스트리트에 이웃해서 사는 버로 일가, 오그돈 일가, 돕스 일가, 블랑쉬 헌트, 샐리 웹스터, 제드 스톤, 토니 고든 등 수많은 인물이 얽히고설키며 만들어내는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굳이 요약하자면 ‘보통 사람들의 보통 사는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주제다.
늘 시청률 1위라는 이 드라마의 정체가 좀 궁금해서 일부러 시간을 내 시청한 적이 있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스토리인지, 누가 드라마 주인공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연구실 동료인 영국 아가씨 코트니에게 물어보니 “10년 이상 본 사람이 아니면 내용을 알 수 없을걸?” 하고 대답한다.
‘코로네이션 스트리트’가 묘사하는 스토리는 영국의 중산층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일상들이다. 재미있게도 이 드라마는 1961년 처음 시청률 1위에 오른 이래 시청률 1위를 놓친 적이 거의 없다. 1961년에는 무려 75%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이 드라마의 주요 등장인물인 힐다 오그돈은 1982년의 한 통계에서 퀸 마더(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뒤를 이어 영국에서 네 번째로 유명한 여성에 선정되기도 했다.
‘코로네이션 스트리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은 특이하고 과장되기보다는 영국 중산층의 평균적 성격에 가깝다. 이 같은 일상성과 평범함은 이 드라마가 50년 이상 시청률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영국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강력한 요인으로 손꼽힌다. 다시 말해 영국 시청자는 ‘코로네이션 스트리트’를 TV에 등장하는 가상의 상황과 인물이 아니라 실제 자신의 이웃이나 친구처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참 어렵다, 영국 드라마
‘코로네이션 스트리트’와 시청률 수위를 다투는 BBC의 ‘이스트엔더스(Eastenders)’는 ‘코로네이션 스트리트의 가난한 사람들 버전’쯤 된다. ‘이스트엔더스’의 역사는 ‘코로네이션 스트리트’만큼 오래지 않아 겨우(!) 25년밖에 안 된다. 1985년 시작돼 지금까지 4000회쯤 방송된 ‘이스트엔더스’에는 런던 이스트엔드 지역에 있는 가상의 동네 알버트 스퀘어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코로네이션 스트리트’가 평범한 영국인의 일상을 담담한 시각으로 보여준다면 ‘이스트엔더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노동계급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중요한 차이점.
사실 ‘이스트엔더스’라는 드라마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한 상징성을 띤다. 템스 강의 동쪽을 의미하는 이스트엔드는 런던이 세계 제1의 대도시로 급부상하던 빅토리아 여왕 시대(1837~1901)에 형성된 런던의 서민 지역이다. 이스트엔드-웨스트엔드는 말하자면 서울의 강북-강남 같은 지역구분인데, 런던에서 웨스트엔드와 이스트엔드의 빈부 격차는 서울 강남과 강북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크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의 이스트엔드는 콜레라가 창궐해 수많은 아이가 죽어나가던 빈민가였고, 유명한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가 흉기를 휘두르던 치안 부재의 지역이었다. 요즘도 이스트엔드엔 파키스탄, 인도, 동유럽 등지에서 온 이민자가 많이 산다.
런던 시는 상대적으로 낙후한 이스트엔드 지역을 새로운 문화특구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런던의 국제적 금융가 ‘카나리 워프’는 런던 시가 이스트엔드 지역에 의도적으로 조성한 신시가지다. 2012년 런던올림픽 메인 스타디움도 이스트엔드에 건설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웨스트엔드=중산층 동네, 이스트엔드=빈민가’라는 의식은 런던 시민의 의식 속에 뚜렷이 남아 있다. 이 같은 의식이 자리하는 데 ‘이스트엔더스’가 한몫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이스트엔더스’는 이스트엔드에 대한 런던 사람들의 의식을 드라마로 만들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스트엔더스’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부분 가게 점원, 노점상, 식당 종업원 등 전형적인 노동계층 직업을 갖고 있다. 드라마의 여성 캐릭터들은 수다스럽지만 생활력 강한 아줌마들이고, 남자들은 무능력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마초 스타일이다. 그러나 한동네에 사는 수많은 등장인물의 삶을 크고 작은 에피소드로 끝없이 엮어간다는 기본적인 구도에서 ‘코로네이션 스트리트’와 ‘이스트엔더스’는 큰 차이가 없다.
‘코로네이션 스트리트’를 보려다 실패하고 ‘이스트엔더스’로 채널을 돌려본 나는 이 드라마 역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조와 스토리라인을 가졌다는 사실에 낙담하고 말았다. 대사를 알아들을 수 있는지의 문제를 떠나서 어떤 등장인물들이 있는지, 이 남자와 저 여자는 어떤 관계로 연결돼 있는지, 이 가족과 저 가족의 연관성은 무엇인지 등등을 이해할 수가 없으니 드라마를 보려야 볼 수가 없는 것이다.
TV 시청 비용 연 40만원!
1960년 시작해 50년째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코로네이션 스트리트’.
1972년 시작했을 당시에는 실내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대부분의 드라마와는 달리, 실제 농장을 배경으로 야외 촬영을 고수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972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에머데일 농장을 물려받은 잭과 조, 페기 세 남매가 장례식에 참석하는 장면으로 드라마가 시작됐으며, 현재도 에머데일 농장 일가의 이야기가 드라마의 주된 줄거리라고 한다. 이쯤 되면 영국은 가히 ‘장수 드라마 왕국’이라고 할 만하다.
그나마 ‘에머데일’은 앞의 두 드라마와 약간 다른 점이 있다. ‘에머데일’은 영국인들이 ‘재난 드라마’라고 말할 정도로 격렬하고 극단적인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드라마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38년 동안 거의 매년 산불, 비행기 불시착, 살인, 납치, 홍수 등 사건·사고들이 드라마의 소재로 등장했다.
이처럼 극단적인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구조와 빠른 극 전개(그래 봤자 다이내믹한 한국 드라마들에 비하면 정말 형편없이 느리지만)가 ‘에머데일’의 장점으로 꼽힌다. 나 역시 ‘에머데일’은 그나마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옆에서 TV를 보던 희찬이 역시(세 드라마는 모두 평일 저녁 7시대에 방송된다) “그래도 이 드라마는 좀 재미있어 보이네”라고 한마디 했다. 앞으로 ‘에머데일’을 봐야 하려나?
내가 굳이 드라마를 하나 정해놓고 보려고 하는 건 ‘본전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이 영국에서 TV를 보는 데 들이는 돈은 한 해에 무려 40만원쯤 된다. 영화도 아니고 TV를 보는 데 이렇게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은 BBC의 엄청난 시청료 때문이다. 공영방송인 BBC는 프로그램 전후는 물론이고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에도 전혀 광고를 하지 않는다. 광고 수익이 없으니 거대 방송사 BBC를 운영하는 예산은 전부 시청료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시청료가 1년에 145파운드, 우리 돈 26만원이 넘는 거액이다. 이것도 매달 내는 게 아니라 한 해에 한 번씩 목돈으로 내야 한다.
영국에서 25년째 방송중인 드라마 ‘이스트엔더스’는 노동계층 사람들의 진솔한 삶을 다룬다.
판타지는 ‘실제 상황’
우리 생각으로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큰돈을 시청료로 꼬박꼬박 낼까 싶지만, 놀랍게도 영국 사람들은 아무 불평 없이 시청료를 낸다. 나는 이 점이 너무 궁금하고 의아해서 우리 과 레이먼드 교수에게 “영국 사람들은 어째서 그 비싼 시청료를 불만 없이 내느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영국인들은 BBC를 영국의 중요한 전통이자 문화유산의 하나로 생각하기 때문에 광고 대신 비싼 시청료를 감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광고를 시작하면 방송의 공정성은 필연적으로 훼손될 것이고, 그렇게 해서 BBC의 공정성이 훼손된다면 정치, 사회, 경제 등 여러 면에서 국민 모두가 손해를 보는 사태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얘기를 말로 하기는 쉽다. 그러나 전 국민이 ‘BBC의 전통과 공정성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에 합의하고 매달 2만2000원쯤 하는 시청료를 기꺼이 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안 그래도 갖가지 세금에 허리가 휘는 영국 사람들이 말이다.
영국에서 TV를 보기 위해 들이는 돈은 시청료가 전부가 아니다. 웬만한 집에서는 공중파 채널이 잡히지 않아 케이블 방송을 수신해야 하고, 케이블 방송 수신료가 한 달에 6파운드, 즉 1만원쯤 들어간다. TV를 적극적으로 보지 않으면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기껏 마음먹고 보려고 한 3대 장수 드라마가 하나같이 재미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아무튼 같은 드라마 왕국이라고 해도 영국 사람들이 TV에서 기대하는 바는 한국과 조금 다르다. 한국 사람들이 화려한 상류층이나 멋진 전문직, 잘생긴 선남선녀들의 러브스토리를 다룬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영국 사람들은 그런 판타지보다는 드라마를 통해 일상생활의 평온함을 다시금 확인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영국은 한국과 달리 왕실과 귀족계급이 실재하는 계급사회다. 이 점도 인기 드라마들의 성격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연회나 기숙학교, 고성(古城)에서의 생활, 승마와 요트 등 왕족이나 상류층의 화려한 생활은 영국에서는 판타지가 아닌 실제 상황이다. 이런 왕실 소식이 뉴스와 신문에서 실시간으로 보도되기에 굳이 드라마에서까지 그런 화려한 생활을 목도할 이유가 없는 게 아닐까. 사실 ‘상류층의 화려한 생활’은 드라마가 아니라 여러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들이다. 올겨울 사교계에 정식으로 데뷔하는 귀족 아가씨들의 무도회 준비 과정 같은 이야기가 그런 예다. 이런 스토리들이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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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는 왜 이렇게 재미있는 드라마가 없냐?”고 툴툴대는 내게 영국 친구들은 ‘멀린’(아서왕 이야기를 드라마화한 작품)이나 ‘닥터스’ 등 젊은 층을 겨냥한 드라마들을 추천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들은 방송 시간대가 대개 6시쯤이라 아이들 저녁을 차려야 하는 내 처지에선 보기가 어렵다. 결국 나는 늘 하던 대로 10시 뉴스만 보고 ‘섹스 앤 더 시티’나 ‘프렌즈’ 같은 철지난 미국 시트콤들을 좀 보다가 본전 생각에 입맛을 다시면서 TV를 끄곤 한다. ‘과연 재미있는 영국 드라마는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하고 궁금해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