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에 목숨 건 사람에게 대안 제시한 ‘슈퍼스타K’
- 대중음악 시상식 ‘MAMA’로 아시아 시장 겨냥
- ‘케이블도 하는데 지상파가 왜 못하느냐’ 식 접근은 위험
- ‘4억 명품녀’ 사건… 거짓, 조작은 없었다
- 끊임없는 이노베이션의 산실, ‘20대 연구소’
- “사원이 법인카드로 클럽 가는 보기 드문 회사”
색다른 음색과 스타일을 지닌 도전자들의 무대는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대형 기획사가 기성품처럼 찍어낸 음악과는 다른, 날것의 순수와 독특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의 시청자라면 기억할 것이다. 장재인과 김지수가 통기타를 들고 서인영의 댄스곡 ‘신데렐라’를 바꿔 부르는 순간 느꼈던 짜릿한 전율을.
숫자는 ‘슈퍼스타K’의 영향력을 보다 객관적으로 설명한다. 올해로 시즌2를 맞은 ‘슈퍼스타K’의 최초 오디션에는 134만명이 참여했다. 국민의 2.7%가 오디션에 참여한 셈이다. 최후 우승자를 가린 마지막 회의 시청률은 18.1%(AGB닐슨미디어)로 케이블TV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이는 같은 시간대 지상파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크게 앞지른 수치다.
그뿐인가. 출연자가 이 프로그램에서 부른 노래들이 음원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강승윤이 부른 윤종신의 노래 ‘본능적으로’가 대표적이다. 프로그램의 성공과 함께 엠넷의 주가도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7월23일 첫 방송 당시 1690원이던 주가는 11월8일 3130원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지평을 바꿔놓고 있다. 메이저 기획사가 장악하던 가요계에 ‘새로운 스타 등용문’을 연 것은 물론, 음원 시장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지상파 채널에만 관심을 갖던 광고주가 케이블 방송에 눈을 돌리게 만든 것도 바로 ‘슈퍼스타K’다. 이러한 혁신적 프로젝트의 성공 뒤에는 박광원(43) 엠넷미디어(이하 엠넷) 대표의 발 빠른 판단과 과감한 지원이 있었다.
80억원 투자의 결실
10월26일 서울 상암동 엠넷 본사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훤칠한 키에 슬림한 피트의 브라운 슈트를 입은 그의 모습은 트렌드에 민감한 엠넷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했다. ‘트위터’로 대중과 폭넓게 소통하는 이 젊은 최고경영자(CEO)는 듣던 대로 달변가였다. 언변이나 논리에는 자신감과 확신이 넘쳤다. 민감한 질문에는 솔직하면서도 노련한 어법으로 적절한 수위의 답변을 내놓았다. 50분이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속도감 있고 효율적인 대화가 오고 갔다.
▼ ‘슈퍼스타K’ 최종회는 어떻게 보셨나요?
“그날 저는 프로그램을 다 못 봤어요. 최종회 때, 시상자로 나선 배철수 선생님을 비롯해 많은 손님이 오셨죠. 그분들이 불편하신 것은 없나 챙기고, 프로그램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체크하느라 계속 뛰어다녔거든요. 프로그램은 재방송을 통해 제대로 봤습니다.”
▼ 최종회 시청률이 케이블 방송 사상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그 성공요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시청률은 여러 가지 지표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10월22일까지 235일간의 대장정이 시청률로만 평가받기에는 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 얘기는 꼭 하고 싶었는데. ‘슈퍼스타K’ 열풍이 드라마 ‘모래시계’가 만든 신드롬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금요일 밤 11시 전에 모든 사람이 집에 들어가 ‘슈퍼스타K’를 봤으니까요. 마지막 회 시청률이 18.1%, 순간 최고 시청률이 21.5%가 나왔는데, 사실 그것보다 훨씬 더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봤는데요. 수많은 분이 각자의 시각으로 ‘슈퍼스타K’의 성공에 대해 축하해주시고, 아쉬운 부분도 지적해주셨습니다. 이런 반응을 보면서 ‘우리가 이렇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 ‘이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허각이 데뷔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슈퍼스타K’가 가요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시나요?
“쫑파티 때도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슈퍼스타K’는 꿈이 있는 이에게 희망을, 국민에게는 음악의 소중함을, 기존 음악 산업과 기성 가수들에게는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를 선사했습니다. 음악에 목숨 건 사람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한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죠. 세대를 초월해 가족들이 모여 앉아 음악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든 것도 중요하고요. 이것이 ‘슈퍼스타K’가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성과죠.”
▼ ‘톱 11’에 오른 후보 모두 화제를 모았는데요. 개인적으로 응원했던 출연자가 있습니까.
“‘누가 1등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는 매회 탈락자들에 대한 걱정이 더 많았어요. ‘저들이 탈락을 또 다른 실패로 여기지 말아야 될 텐데’ 싶었죠. ‘톱 11’이면 이미 국민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뭔가를 이뤄낸 것이니까요. ‘저들의 꿈이 접히지 않으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했습니다.”
▼ ‘슈퍼스타K’가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과감한 투자입니다. 이번 시즌2를 제작하는 데 80억원을 투자하셨죠? 케이블 방송으로서는 적지 않은 규모인데, 잘될 거란 확신이 있었습니까.
“‘슈퍼스타K’ 시즌1을 시작할 때 제작비 40억원을 쏘겠다고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당시 경제위기가 와서 많은 방송사가 프로그램을 줄여갈 때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엠넷이 과감한 투자를 결정 할 수 있었던 건 콘텐츠 산업에 대한 CJ의 철학과 문화 때문입니다. 엠넷 대표의 과감한 투자 결정이 용인될 수 있는 곳이 바로 CJ라는 거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어떻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겠어요.”
이미경 부회장의 제안
엠넷은 CJ E·M(Entertainment · Media)의 계열사 중 하나다. 엠넷이 어려울 때 더욱 과감히 베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미경 CJ E·M 부회장의 지원도 한몫했다.
▼ 이미경 부회장이 ‘슈퍼스타K’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기획안은 부회장님이 주신 거예요. 제가 이 프로젝트를 처음 들은 것이 2004년입니다. 당시 미국에서 기획된 ‘아메리칸 아이돌’ 얘기를 하시며, ‘음악방송인 엠넷이 이런 걸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하나의 상품이 성공하면 ‘미투 제품(Me too product·원조 제품을 따라 한 유사품)’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MBC가 11월 초 선보인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은 ‘슈퍼스타K’와 흡사하다. 이 프로그램은 멘토제를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웠지만, 첫 방송 후 “급조한 티가 역력하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미투 제품’이 원조를 위협하는 경쟁자로 떠오르기도 한다. ‘위대한 탄생’의 등장을 박 대표는 어떻게 바라볼까.
“사실 ‘오디션’이란 포맷은 그 누구도 주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오디션 프로그램 ‘배틀신화’를 2005년 시작했어요. 그렇게 때문에 (‘위대한 탄생’이) ‘슈퍼스타K’를 모방한다고 폄하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슈퍼스타K’가 프로그램으로서의 성공뿐 아니라 ‘국민과 음악 산업에 어떤 메시지를 던졌느냐’ ‘음악 산업 발전의 선순환 고리로 역할을 했느냐’로 평가받았으면 해요. 이 프로그램이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고, 단순히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만든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이 생기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오히려 환영하는 입장이죠.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강호에 숨어 있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가 많이 등장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기득권적인 시각에서, ‘케이블이 이런 걸 만드는데 지상파가 왜 못하겠느냐’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겠죠.”
그가 자신감에 넘치는 이유는, 엠넷이 지난 4~5년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한국식 오디션 포맷을 연구했기 때문이다. 과거 대중에게 주목받지 못했던 ‘배틀신화’를 통해 엠넷은 오디션 프로그램 연출과 제작 노하우를 얻었다. 미국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과 달리, 합숙을 통해 본선 진출자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슈퍼스타K’만의 매력이었다. 비슷한 포맷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슈퍼스타K’의 경제효과
‘슈퍼스타K’의 진가는 광고 매출에서도 드러났다. 지난해 ‘슈퍼스타K’ 시즌1의 협찬사는 모기업인 CJ뿐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코카콜라, 다음, 르노삼성, 모토로라, 랑콤 등 대기업이 협찬사로 참여했다. 올 초 이미 최종회 분까지 광고가 다 팔릴 정도였다.
▼ ‘슈퍼스타K’의 경제효과가 얼마나 될까요.
“슈퍼스타K는 애초에 단위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의 프로젝트로 기획됐습니다. 프로그램이 TV, 온라인, 모바일을 통해 전달되고, 오프라인 공연도 이어졌습니다. 각지에서 치러진 현장 오디션은 ‘지역의 축제’가 됐죠.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는 출연자들이 기획사에 들어갈 수 있게 연결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경제적 효과라고 하면, 엠넷만이 그 수혜자는 아니라고 봐요. 오히려 더 큰 수혜가 산업계로 돌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난해에는 40억원의 제작비를 우리가 쏟아 부었다면, 올해는 두 배 가까운 제작비를 광고 매출로 상당 부분 충당할 수 있었습니다.”
‘슈퍼스타K2’ 우승자 허각(왼쪽)과 포옹하고 있는 박광원 대표. 그는 ‘슈퍼스타K’ 출연자들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온라인에서의 반향, 공연 수익 등은 아직 집계해봐야겠지만, 부가가치를 만들어냈다는 측면에서 성과라 할 수 있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케이블 방송이나 뉴미디어를 바라보는 광고주의 시각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앞으로는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케이블 채널이 분명 수혜자가 되겠죠. 장기적으로는 뉴미디어업계에 이익이 폭넓게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슈퍼스타K3’는 시즌2와 또 어떻게 달라지나요. ‘10개국에 생방송된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슈퍼스타K’는 내년 아시아를 공략할 생각입니다. 이미 올해 미국 LA 예선을 거쳤죠. 해외 지역 공략을 위한 신호탄은 쏘아졌어요. 그저 의욕만 있는 게 아닙니다. 탄탄한 시스템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엠넷재팬은 이미 설립돼 있고, 엠넷US가 올해 개국해요. 이어 엠넷태국, 싱가포르, 베트남이 올해부터 내년 초까지 순차적으로 설립됩니다. 엠넷은 더 이상 국내 케이블 방송사가 아니라 글로벌 방송 네트워크로 진화하고 있어요. 재밌게 얘기해볼까요. ‘슈퍼스타K2’ 최종회 시청률이 한국에서는 18.1%를 기록했지만, 내년 브루나이에서는 60%가 나올 수 있다는 거죠. 태국에서는 40%를 넘길 수도 있고요. 굉장히 흥미로운 일들이 아시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해외 진출의 아이콘 ‘MAMA’
아시아 음악시장을 겨냥한 엠넷의 거침없는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엠넷의 해외 진출을 상징하는 또 다른 아이콘은 2008년 시작된 대중음악 시상식 ‘MAMA(Mnet Asian Music Awards)’다. 2008년 처음으로 한국, 중국, 일본에서 3원 생중계를 시도한 MAMA는 지난해 아시아 주요 10개국에 방송됐다. 올해는 이 시상식이 국내 최초로 해외에서 열린다. ‘2010 MAMA’가 11월28일 마카오에서 오후 6시(현지시간)부터 4시간 동안 진행된다. 홍콩 TVB, 중국 상하이미디어그룹 등 아시아 전역 주요 지상파 방송에서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것은 물론 북미, 오세아니아, 유럽지역에서도 위성을 통해 전파를 탄다. “MAMA는 마카오에서 진행되는 사상 최대 규모 행사”라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이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위해 많은 사람이 밤을 새우고 있어요. 궁극적으로는 향후 5년 이내에 미국이 주도하는 시상식 시장과 유럽이 주도하는 음악 마켓을 가져오는 것이 목표입니다.”
▼ 엠넷이 초기에는 미국 MTV 포맷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제 고유의 정체성을 찾으며 해외에 역진출하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어디에 있나요?
“음. 글쎄…. 엠넷이 초기 MTV의 포맷에서 벗어나지 못했나요? 사실 한국 영화가 10년 전에는 시장점유율이 굉장히 낮았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많은 사람이 팝음악을 듣고 자랐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한국 영화 점유율이 50%를 넘고, 가요 점유율은 70~80%에 달합니다. 엠넷의 발전은 전반적으로 높아진 우리 문화수준을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의 크리에이티브 전형이 무엇인지에 대해 엠넷 PD들에게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져요. 주로 음악이나 엠넷의 아이덴티티와 관련된 질문이요. 우리가 시청률 지상주의로만 갔다면, 재미를 강조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제작에 주력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담B의 살롱’이나 ‘스트리트 사운드 테이크원’ ‘디렉터스 컷’ 같은 음악성 위주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명을 계속 얘기합니다. 주 시청자인 20대에 대한 고민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엠넷에는 ‘20대 연구소’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20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디 가서 밥을 먹으며, 어떤 음악을 듣는지 끊임없이 연구합니다. 이런 노력이 종합적으로 반영돼 우리의 경쟁력이 나오지 않나 싶습니다.”
올해 엠넷에 뜨거운 찬사만 쏟아진 것은 아니었다. ‘4억 명품녀’를 등장시킨 엠넷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텐트 인 더 시티’는 거짓·조작 방송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9월 이 방송에 출연한 김경아(23)씨는 “지금 4억원어치 명품을 걸치고 있다” “특별한 직업 없이 부모가 준 돈만으로 수억원대 명품을 산다”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후 김씨는 “나의 발언은 엠넷이 제공한 대본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고 나섰다. 엠넷은 이에 대해 “김씨가 말하는 것은 대본이 아니라 구성안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파장은 컸다. 이 사태로 박 대표는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의 참고인으로 채택됐다.
‘4억 명품녀’ 사건의 진실
▼ ‘4억 명품녀’ 사건으로 시끄러웠습니다.
“지난주 국정감사의 참고인으로 출석했습니다. 국회에서도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제 답변은 이랬습니다. 엠넷은 어떤 채널보다 콘텐츠에 투자를 많이 합니다. 우리는 프로그램을 사다 트는 채널이 아니라, 많은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하죠. 20대를 타깃으로 하다보니 가장 트렌디하고 새로운 포맷의 시도를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불가피하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 핑계 아닙니까.
“아니요. 이건 기본적으로 ‘이 일이 왜 발생했느냐’에 대한 배경을 말씀드린 거고요. 제가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유는 ‘텐트 인 더 시티’가 조작, 거짓 방송이었다는 혐의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위)로부터 ‘거짓과 조작의 증거가 없다’는 판결을 받았고요. 국감에서도 그 부분을 주장했습니다. 일부 의원들께서 ‘대본이 있었던 게 아니냐’고 질문하셨는데요. ‘나는 이런 가방을 갖고 있어요’ ‘이 목걸이는 얼마짜리예요’라고, 일반인 출연자가 방송에서 얘기할 수 있게 답변을 정리해주는 것은 대본이 아닙니다. 진행안일 뿐이죠. 있지도 않은 얘기를 대본화해서 ‘이대로 읽으세요’라고 준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 대목에 대해 많은 의원이 공감하셨고요. ‘국감장에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데 와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받았습니다.”
▼ 인터넷에는 박 대표께서 ‘해외 출장 관계로 국감에 불참했다’는 기사만 뜨더군요.
“이미 방통심위에서 판결이 났고, 김씨가 어떤 사람이냐에 대해 언론에서 낱낱이 밝혀졌으니까요. 전 남편이 나타나고, 보석세공사가 나타나고 이래서. 저도 국감 갔다 오면 스타가 돼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기사화가 안 돼서(웃음). 농담입니다.”
국내 최초 트위터 공채
엠넷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이슈 메이커’로 떠오른 이유는, 끊임없이 혁신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지난 6월 업계 최초로 트위터에 공채 공지를 올렸다. 20~30대 지원자들에게 박 대표의 트위터를 통해 엠넷 공채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것이다. 이는 ‘20대의 모든 것(All About 20?s)’을 모토로 내세운 엠넷다운 발상이다. 국경 없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각광받는 트위터는 글로벌 인재를 선발하는 최적의 통로이기도 하다.
▼ ‘트위터 공채’의 효과는 어땠나요. 기억에 남는 지원자가 있습니까?
“올해 트위터를 통해 사원을 1명 뽑았습니다. 지금 글로벌 사업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죠. 140자로 자기 성과나 역량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당차게 자기소개를 했더군요. 뽑힌 친구보다 더 기억에 남는 지원자가 하나 있어요. 자신의 트위터 팔로어들이 제게 추천 트윗을 보내도록 한 친구인데요. ‘A라는 사람을 잘 아는데 추천합니다’라는 메시지를 100건 넘게 받았어요. 트위터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 엠넷이 선호하는 인재상은 어떤가요.
“음악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일단 서류통과가 안 됩니다. 음악을 시리어스(serious)하게 듣고 개똥철학이라도 자기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최소한의 소양이죠.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한 근성, 열정, 치열함, 스피드 이렇게 네 가지가 중요합니다. 엠넷 사원이라면 트렌드를 팔로(follow)하기보다는 반 발짝 앞서가야 해요. 사원이 법인카드로 클럽 다녀온 것을 결제해주는 기업은 거의 없을 거예요. 저는 클럽도 많이 다니라고 독려합니다.(웃음).”
▼ 트위터를 보니, 대표께서 ‘슈퍼스타K’ 김태은 PD를 ‘태은아’라고 부르시더군요. 회사 대표가 PD의 이름을 부를 만큼 친밀한 것도 엠넷의 조직문화 특성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저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멘션이니까 조금 감정을 얹어서 표현하려고 노력한 거예요. 엠넷 사람들은 이 일이 좋고, 연봉보다는 등 한 번 토닥거려주는 것에 꽂혀서 가는 이들이에요. 개인적 특질일 수도 있고, 제가 PD 출신이다보니 그들의 감정을 이해해서 그런 것이기도 합니다.”
혼자 노는 괴짜
그래서일까. 박 대표는 최고경영자 자리에 있지만, ‘크리에이터(creator)’의 면모를 풍긴다. 그는 한국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그는 ‘혼자 노는 괴짜’였다. 남이 수업에 들어갈 때, 그는 개가식 도서관에서 ‘가’부터 ‘하’라인까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때론 강의실 밖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고성방가도 했다. 축제 때는 기타를 들고 나가 노래를 불렀다.
인생의 전환기는 미국 유학 시절 찾아왔다. 그는 미국 보스턴대에서 영화방송학 석사학위를 받고 WABU TV에서 2년간 근무했다. 영상매체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된 계기였다. 이후 1997년 삼성영상사업단에 PD로 입사했다. 지금의 엠넷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백범 50주년 다큐멘터리’ ‘황장엽 다큐멘터리’ ‘역도산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보는 현대사 100년’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주로 역사적인 인물을 다뤘죠. 당시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던 조연출이 얼마 전 트위터로 말을 걸어와 ‘축하한다’고 하길래, 제가 ‘십수 년 전 우리가 시청률 0.1%를 만들려고 생고생하던 생각이 난다’고 답했어요.(웃음)”
박 대표는 1999년부터 3년간 야후코리아, 두루넷 등 정보기술(IT) 기업에서 근무한 독특한 이력도 갖고 있다. 그는 “초기 테헤란로에 IT 바람이 불 때 온라인 기업에서 일하고, 두루넷이란 통신사에서 새로운 플랫폼에 대해 고민해본 것이 엠넷의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엠넷은 현재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다양한 플랫폼에 프로그램을 서비스하고 있다. 이른바 ‘N스크린’ 전략이다. 케이블 TV 가입자가 아닌 기자는 엠넷 온라인 회원으로 가입해 월 3300원을 내고 스마트폰으로 ‘슈퍼스타K’ 전편을 감상했다. 엠넷은 실시간으로 영상을 볼 수 있는 국내 최초의 아이패드용 애플리케이션 ‘엠넷 TV’를 출시하기도 했다. 모바일 환경에 대한 발 빠른 대비로 케이블 TV의 한계를 극복한 셈이다.
엠넷의 사업 영역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현재 엠넷은 음악과 연관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기획, 제작, 방송, 유통, 판매한다. 반면 3~4년간 이어왔던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은 올해 접었다. 엠넷 소속 연예인으로는 이효리, 티아라, 씨야 등이 있었다. ‘슈퍼스타 K’를 통해 수많은 신인가수를 배출하면서도, 정작 매니지먼트 부문을 정리한 이유는 무엇일까.
“매니지먼트 사업은 애초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어요. 엠넷이 인수합병(M·A)하는 과정에서 GM기획이라는 회사가 딸려온 것뿐이죠, 우리가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차를 두고 그 회사를 분리해낸 겁니다. 엠넷의 존재 가치를 볼 때, 우리가 모든 음악 사업 영역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어요. 매니지먼트 사업은 대기업의 큰 스케일보다는,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의사결정과 업무 진행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엠넷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드는 등 우리 콘텐츠를 밖으로 끌고 나가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데 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아시아 대표 음악 기업을 꿈꾸다
▼ 케이블업계가 아직 높은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수익 모델에 대한 고민도 있을 텐데요.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632억원, 영업이익은 34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흑자로 전환된 이래, 매출과 수익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물론 SM엔터테인먼트와 비교해보면 수익 폭이 크지 않죠. 하지만 우리는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큽니다. 매출액 2000억~3000억원 달성이 아니라, 아시아 대표 음악 기업이 되는 것이 저희 목표입니다. 당장의 작은 수익보다는 미래의 큰 성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할 계획입니다.”
▼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의 등장은 케이블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종편이 다양한 시각과 해석을 보여주는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면 국민후생을 위해서 당연히 좋은 일 아니겠어요.”
▼ 한정된 광고 시장을 놓고 과당 경쟁을 벌일 거라는 우려는 없습니까?
“그것은 방송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종편 그 자체가 과당경쟁을 잉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싶은 데요. 종편의 등장이 지상파에 편중된 광고 집행이나 지상파 위주의 미디어 정책을 멋지게 깨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마치 ‘슈퍼스타K’가 그랬던 것처럼.”
▼ ‘슈퍼스타K’는 엠넷이 만든 최고의 이노베이션이겠죠?
“제가 CJ라는 조직에 조인(join)한 지 9년째 되는데, 이곳에서 배운 것이 바로 이노버티브(innovative)한 생각이었어요. CJ는 1998년 당시로서는 생소한 멀티플렉스 극장을 처음 만들었죠. 밥을 용기에 담아 판다는 생각을 아무도 못했는데 ‘햇반’을 선보였고요. 엠넷이 혁신적인 성과를 낸 것은 비단 ‘슈퍼스타K’뿐만이 아닙니다. ‘불끈운동(불법음원근절운동)’이 그랬고, MAMA라는 시상식이 그렇고,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이 그렇습니다. 여기에 ‘슈퍼스타 K’가 방점을 찍지 않았나 싶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권장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살아남지 못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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