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목회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북부지검.
“우리 의원님한테 10만원 후원해줘.”
그 정도쯤이야. 불러주는 후원계좌로 노타임으로 입금해준다.
12월이 되면 해당 의원실에서 ‘소득공제용 후원금 영수증’을 보내준다. 미리 보내면 혹시 분실할까봐 연말정산 시점에 맞춰 발송하는 게 의원실 관행이다. 참 친절하다. 국세청에 신청하면 얼마 뒤 월급계좌로 10만원을 돌려준다.
‘국회의원에게 10만원 후원하고 세금으로 돌려받기’는 이렇게 의원실이 친분 있는 사람들에게 부탁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유권자가 개인적 인연이 없지만 특정 국회의원에게 호감이 가서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입금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유권자는 스스로 후원계좌를 알아내야 하고 자기 신상정보를 알려주어야 한다. ‘이런 수고를 마다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다. 더구나 ‘여의도 정치’에 대한 ‘묘한 냉소’가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현실에서 말이다.
후원금 환급액 연 313억원
국세청에 부탁해 국회의원에게 후원금을 내고 연말정산으로 돌려받는 인원수 및 액수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봤다. 이런 통계가 공개된 적은 없다고 한다. 2007년에 29만8456명이 국회의원들에게 정치후원금을 내고 250억원을 세금으로 환급받았다.
2008년엔 37만3935명이 313억원을 돌려받았다.
예상보다 인원수나 액수가 많았다. 국회의원 1인당 연 평균 1200여 명의 후원자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들 중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후원자가 얼마나 되느냐는 거다.
이런 가운데 ‘청목회 사건’이 터졌다. ‘그럼 그렇지’라는 탄성이 나올 법한 일이다. 검찰에 따르면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가 2억7000여만원의 로비자금을 소액으로 나눠 국회의원들에게 후원금으로 냈고 그 대가로 국회의원들은 이들에게 유리하게 청원경찰법을 개정해줬다는 거다. 한 의원은 500명으로부터 10만원씩 50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검찰은 ‘뇌물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거대 기업이나 이익단체가 불순한 입법 의도로 자기 조직원들을 대거 동원해 쪼개기 소액후원을 해온 의혹 사례가 이 뿐일까 싶다.
농협중앙회도 지난 8월 ‘국회 농림수산위 의원 18명에게 개인명의 후원금을 내라’는 문건을 지역본부에 전달한 바 있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쪼개기 소액후원으로 로비를 해온 것으로 의심되는 기업, 이익단체가 20곳은 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가장 고약한 일은, 로비자금을 의원들에게 뿌려 사욕(私慾)을 챙기면서 그 로비자금을 국민의 세금으로 돌려받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구속된 청목회 간부 3명의 변호를 맡고 있는 변호사에게 ‘이 고약한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이 변호사는 “기자의 말이 아주 설득력이 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청목회뿐만 아니라 소액 후원금 전부를 조사해야 한다. 그래서 특정 직종의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유관 상임위 의원들에게 후원금을 낸 것은 다 문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로비자금을 세금으로 돌려받는 추함
국세청 관계자는 “검찰이 동원된 사람들의 명단을 밝혀오면 이들에게 돌려준 세금을 다시 추징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검찰이 법률의 과잉해석으로 민주주의의 보루인 국회의원의 대의권을 침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시급한 사회 정의는, 마치 조폭처럼 조직원들을 일사불란하게 동원해 로비자금을 뿌려놓고 이 자금을 세금으로 돌려받기까지 하는 우리 사회의 힘 있고 거대한 기업-이익단체의 세기말적 행태가 더는 발을 못 붙이도록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