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잡았지만 운용할 중심 세력 안 보여
국민이 배척한 舊정치 질서 바로잡을 책무 있어
반년 동안 입법 완료된 尹 정부 정책 ‘0’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이 9월 7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청사에서 대통령실 조직 개편과 관련한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 취임 넉 달 만에 대통령비서실장이 전체 직원을 모아놓고 심기일전을 주문한 것은 9월 초 단행된 대규모 인적쇄신에 따른 어수선한 분위기를 바로잡기 위함이었다.
인적쇄신 도화선, 내부 정보 유출 사건
용산 대통령실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숨 가쁘게 달려왔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전광석화처럼 이동해야 했기에 그에 따른 업무 강도는 두 배 이상이었다. 정권 출범 초기 대통령실에서 일한 한 인사는 “인부들이 분주하게 집무실 공사를 하는 와중에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회고했다.윤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실은 한차례 인적쇄신 파동을 겪었다. 도화선은 몇몇 인사들의 내부 정보 유출 사건이었다. 새 정부 출범 직후 대통령 일정 등 대외비 정보가 외부에 유출된 정황이 잇달아 발생했고, 그 배경을 추적하는 과정에 몇몇 인사가 외부 인사와 정보를 공유해 온 사실이 드러난 것.
국정 운영의 컨트롤타워인 대통령실에서 어떻게 그 같은 정보 유출 사건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는 윤 대통령 탄생 배경과 무관치 않다. 윤 대통령은 정치 경험 없이 검찰총장에서 대통령으로 직행한 특이한 경우다. 반(反)문재인, 반(反)조국, 반(反)이재명 정서가 윤석열 후보에게 쏠리면서 대통령 당선으로까지 이어졌다. 반대 정서로 윤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것은 기존 정치 질서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신호다. 즉 윤 대통령은 새 정치의 첫 주자가 돼야 할 책무가 있다. 여권 한 인사는 “구(舊) 정치 질서가 무엇이 잘못됐는지, 국민이 배척한 지점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지금 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정치 경험이 없는 윤 대통령이 갑자기 대통령에 당선하면서 여권 내에는 핵심이라고 할 만한 세력이 뚜렷이 형성되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나온 용어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이다. 대선 승리 이후 윤핵관 중심으로 대통령실이 꾸려졌고 그 과정에 능력과 충성도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인사들이 특정 인사와의 인연으로 대통령실에 대거 들어왔다는 것. 이른바 ‘내부 정보 유출’ 사건은 대통령에 충성하지 않고 자신을 대통령실에서 일하게 해준 누군가를 위해 일한 몇몇 인사의 일탈로 여겨진다. 포렌식까지 진행한 감찰 과정에 일부 인사들의 일탈행위가 적발됐고, 그 일을 계기로 직원 전체에 대한 감찰로 확대돼 대대적 인적쇄신으로 이어졌다는 게 당시 대통령실 분위기를 잘 아는 인사들의 전언이다.
대통령실은 추석 연휴를 앞둔 9월 초 행정관급 실무 인사 중 50여 명에 가까운 직원에 대한 대대적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국정 수행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한 시점과 맞물려 당시 인적쇄신은 대통령실 기강 잡기로 해석됐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당시 대통령실에서 나온 인사 가운데에는 이른바 윤핵관과 관련된 이들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실과 한 몸처럼 움직이려는 경향성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현재 여권은 대선 승리로 권력은 잡았지만, 그 권력을 운용할 핵심 세력이 확실하게 형성되지 않은 상태라는 게 정치권 인사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실 등 국정 운영의 세 축인 당·정·대 사이에 역할과 기능이 모호하게 중첩돼 있어 현안에 대응하는 움직임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따금 여권 전체가 대통령 의중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운용되는 듯한 모습은 검사동일체 원칙에 익숙한 윤 대통령의 검찰식 사고가 국정 운영에도 그대로 투영됐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현안이 발생했을 때 누구 책임인지를 가리고, 내각은 물론 당까지도 대통령실과 한 몸처럼 움직이려 한다는 경향성이 느껴진다는 것.
일반적으로 대통령실과 여당은 국정 파트너로서 건강한 협조와 견제 관계를 유지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비친 여권의 모습은 대통령실 뜻을 당이 좇는 모습이 적지 않았다는 것. 여권 한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여권은 지금 코어가 생겨나는 과정”이라며 “비대위 체제에서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당대표가 선출되면 여권의 구심점 구실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1월 10일로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꼭 반년이 지났다. 5년 임기 중 10분의 1이 지난 것이다. 2024년 총선은 1년 반 뒤에 치러진다. 22대 총선 결과에 윤석열 정부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현재 소수 여당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반년 동안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77건의 법안 중 국회 문턱을 넘은 정책 관련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윤석열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의욕적으로 추진한 감세 관련 법안은 국회 상임위에 계류돼 있거나 심지어 상임위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입법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정부 정책은 실효성 없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2024년 총선까지 최소 1년 반 이상 지속될 여소야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국정을 어떻게 끌고 가려는 것일까. 윤 대통령은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기며 ‘새 출발’을 알렸다. 이제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피부로 느낄 만한 정책 효과다. 윤석열 정부가 시작은 미약했으나, 갈수록 성과가 크게 늘어 성공한 정부가 되느냐, 아니면 집권에는 성공했으나 내세울 성과가 마땅치 않은 그러저러한 정권으로 기억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신동아 12월호 표지.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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