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호

대기업이여, 20세기에서 벗어나라

  • 김국현 / IT평론가 goodhyun@live.com

    입력2011-06-22 09: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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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이여, 20세기에서 벗어나라
    최근 대기업 계열사의 소모성자재 구매대행(MRO) 사업 확장이 문제가 됐다. MRO는 Maintenance(유지), Repair(보수), Operation(운영)의 약자로, 기업 내 일상적으로 소모되는 비품 및 자재를 대신 구매해 납품, 관리하는 것을 뜻한다. 초기에는 계열사에 필기구나 복사용지 등 일회성 용품을 공급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으나, 점차 소프트웨어, 통신장비, 공장 설비 등으로 영역이 확대됐다. 그런데 최근에는 MRO가 ‘대기업의 수직 계열화된 공급 조달’을 뜻하는 듯하다.

    MRO는 전자상거래의 개방성과 유연함을 이용해 기업의 비품 및 자재 구입비용을 줄이기 위해 생겨났다. 기업 입장에서는 각종 비품이 다양한 업체로부터 부정기적으로 소량 조달될 때는 비용 협상이 힘들었다. 그런데 온라인 장터는 중간 마진을 최소화해 비교적 저렴하다. 기업은 MRO를 통해 기업 간 전자상거래로 비품 및 자재를 구입하면, 경제적이고 유기적으로 물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한국형 MRO는 개방된 장터를 만드는 것보다 제 계열사 챙기기에 초점을 맞췄다.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된 격이다.

    MRO뿐 아니다. 한국의 ‘시스템통합(SI)’업 역시 같은 오류를 범한다. 현재 대부분 기업은 자회사나 지주회사로 SI 회사를 가지고 있다. SI회사는 정보통신(IT)이라는 직능을 다시 하도급업체에 통합 발주하고, 이를 전체적으로 조달해 통제한다. 역할이 MRO와 아주 비슷하다.

    그간 SI업은 수직 계열화된 먹이사슬이 수평분업의 생태계를 어떻게 궤멸시키는지 보여줬다. 물론 기업의 수직계열화는 20세기 후반 고도성장기 때까지는 의미가 있었다. 제조업에서는 계열회사들이 서로 빚어내는 중간재 보완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 지식산업 시대는 표준화된 모듈이 세계시장에 유통되고, 기득권이 아닌 창조자가 이를 지휘해 상상 못했던 것을 만들어내는 시대다.

    아무리 작은 혁신이라도 모듈이 돼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 기득권이 없어도 창조력만 있다면 모듈을 재조합해, 거대한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 최근 IT업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혁신의 근원은 이러한 ‘열린 모듈화’에 있다.



    한국형 MRO는 21세기가 아닌 20세기 산물이다. 정부 부처까지 20세기적 계열 구조에 빠져 대기업 MRO에 특혜를 주며 거래를 했으니 정말 문제다. MRO, SI에서 대기업은 껍데기일 뿐이다. 정작 중요한 가치를 공급하는 것은 영세 중소사업자들이다. MRO, SI의 역할은 중소기업이 창조한 가치가 대중에게 합리적으로 전해지도록 돕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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