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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중년’ 5人의 뜨거운 삶

‘도전하는 중년’ 5人의 뜨거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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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 24시간을 48시간처럼 사는 사람들.
  • 요리, 사진, 연극, 패션, 와인, 만화, 문학….
  • 일을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하는 중년 남성들의 자아 찾기 프로젝트. 그 ‘또 하나의 삶’을 만난다.
‘도전하는 중년’  5人의 뜨거운 삶
“저는 낭만파는 아니에요. 한 마디로 ‘몸부림과’죠. 로맨틱한 인생은 좀 고루한 것 같고, 전 좀더 전위적인 중년이고 싶어요.”

환경디자이너로 일하는 KDA그룹 박기태(52) 대표는 지인들로부터 ‘문화 마피아’라 불린다. 짧은 머리와 넓은 어깨, 아기 머리통만큼 큰 주먹 때문에 그런 별명을 얻은 것은 아니다. 그의 전공인 환경디자인 이외에도 패션, 요리, 영화, 가구, 여행 등 다방면에 예민한 촉수를 깊숙이 뻗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미식가이자 요리사다. 친구의 생일날이나 집들이 때는 직접 칼과 프라이팬을 챙겨 들고 출장 요리사를 자처한다.

“얼마 전 친구 집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정찬 요리 8가지를 만들어 대접했어요. 세계 각국에서 먹어본 맛있는 요리를 혼합해 퓨전 스타일로 만드는 게 주특기죠. 이번에는 전채요리로 프랑스식 양파 수프를 만들고 일본식 생선모듬과 청경채소스를 곁들인 야채샐러드를 준비했어요. 메인요리는 닭 날개를 튀겨 맵고 달콤한 타이소스를 곁들였고, 소 갈비살 스테이크와 리조토(이탈리아식 밥요리)도 만들었죠.”

그의 말에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짓자 박대표는 사무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같은 건물 5층에 마련된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게스트 하우스는 말 그대로 외국에서 온 손님들을 위해 그가 특별히 마련한 공간이다. 2개의 침실, 샤워실, 다락방까지 갖췄는데 무엇보다 부엌이 인상적이다. 기분 내키면 마음에 맞는 지인들을 초대해 현란한 요리솜씨를 뽐내는 사교 공간이 되기도 한다. 언젠가 탤런트 최불암씨는 이 부엌에서 탄생한 그의 요리를 맛본 후 ‘영혼을 먹고 간다’는 찬사를 남겼을 정도라니 그 솜씨를 알 만하다. 그는 마치 전업주부처럼 부엌 싱크대의 찬장을 하나하나 열어 보이며 살림 자랑을 늘어놓았다.



“음식에 어떤 소스를 넣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그래서 저는 항상 굴소스, 칠리소스를 포함해 한 70가지 소스를 준비해두죠. 차 맛도 한 방울의 소스가 결정해요. 여기 티소스만 해도 10가지가 넘어요. 그런데 진짜 좋은 차 맛을 즐기려면 좋은 물을 쓰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래서 ‘볼빅’이나 ‘에비앙’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14가지 생수를 늘 준비해두고 있죠.”

그는 생수의 국적만 따지는 것이 아니다. 쌀의 국적도 따진다.

“어떤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 쌀의 출신성분에 차별을 둡니다. 일본 쌀, 스페인 쌀, 미국 쌀 등을 골고루 먹긴 하지만 볶음밥을 만들 땐 태국에서 수입한 ‘자스민 쌀’을 사용해요. 자스민 쌀은 밥알끼리 서로 달라붙지 않아 볶아놓으면 정말 맛있거든요.”

부엌에 걸려 있는 칼만 12가지. 빵칼에서 생선회를 뜨는 칼까지 용도와 모양새도 다양하다. 그는 도마 밑에 쿠션처럼 행주를 깔더니 그 반동을 이용해 칼질하는 솜씨도 보여주었다. 과연 강호의 칼잡이라 해도 좋을 만큼 대단한 솜씨였다.

‘푸아 그라’와 ‘원숭이 골’

“뉴욕에서 공부할 때 프랑스 식당에서 2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접시 닦는 일로 출발했는데 주방장이 예쁘게 봐줘 이런저런 요리를 배울 수 있었죠.”

그는 “남에게 요리를 잘한다고 말하려면 1시간 안에 최소한 13가지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만큼 자신만만하다는 뜻일 게다. 더구나 세계의 미식가들이 가장 맛있다고 꼽는 3대 진미, ‘푸아 그라(프랑스 거위 간)’ ‘트뤼프(서양 송이버섯)’ ‘캐비어(철갑상어의 알을 소금에 절인 식품)’가 냉장고에서 늘 그의 손놀림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정작 까다로운 미감을 가진 그는 세계 3대 진미에 그리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그가 평생을 살면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은 중국에서 만난 ‘원숭이 골’이라고 했다.

“원숭이 머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뇌 부분을 칼로 도려내 먹습니다. 특징적인 향이나 맛이 없는데 하여튼 제가 먹어본 음식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그가 평소 자주 가는 식당은 서울 역삼동에 있는 ‘한 술 더 맛집’. 이 식당은 100% 천연 양념을 사용하고 모든 음식의 재료가 무공해 농법으로 재배된 것이다. 미식가인 그 역시 맛도 맛이지만 건강을 고려한 식단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바다냄새가 그리울 때는 단 한 끼 점심식사를 위해 강원도 속초로 차를 몰기도 한다. 속초 ‘팔팔구이집’에서 지인들과 갓잡은 생선을 숯불에 구워 먹는 일도 그가 누리는 일상의 여유다.

“모든 음식이 비싸야만 맛있는 것은 아니에요. 1년에 한 번씩 꼭 찾아가는 서울 인사동 국밥집이 있는데, 주인 할머니가 우거지 넣고 끓여주는 2500원짜리 국밥이 정말 맛있어요. 가난한 화가이던 아버지와 대부호의 딸인 어머니의 피가 동시에 흘러 그런가 봐요. 아무튼 음식 취향도 극과 극을 달려요.”

그에게 ‘맛있는 집’ 고르는 요령을 묻자 식탁이 5개 미만인 집, 한 자리에서 10년 이상 영업한 집, 주인이 요리와 서브를 같이 하는 집을 고르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고 귀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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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윤희 자유기고가 gogh10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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