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오쩌둥 콜렉션 앞에서. 시계, 시가, 넥타이 수집도 빠뜨릴 수 없는 취미다
“마오쩌둥이 중국의 12억 인구를 핸들링했다는 것 자체가 매력이죠. 1989년 중국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마오쩌둥 배지를 비롯해 마오쩌둥의 초상이 새겨진 다양한 소품을 한 500개 정도 모았어요.”
그의 손목에는 최초로 만들어진 오메가 알람시계가 채워져 있다. 전세계적으로 몇 개 안 남아 있다는 명품이다. 단지 복고풍의 알람 소리가 좋아 구입했다고 한다. 주로 해외여행을 할 때 기념품으로 시계를 구입하는데 그의 서랍장 속에서 잠자는 시계만 해도 300개가 넘는다. 최저가 30만원부터 최고가 1500만원까지 가격대와 모양새도 다양하다.
시가 수집은 고등학교 시절 도둑 담배를 피면서부터 시작했다. 화가인 고 박고석씨가 그의 부친인데 그는 아버지의 시가를 훔쳐 피다 다양한 국적의 시가를 수집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케이스만 해도 몇백 만원이 넘는 터라 지금은 보류한 상태다.
그의 이야기를 하면서 ‘패션’을 빼놓을 수 없다. 오십을 넘긴 나이에 쫄티, 패딩 롱코트, 힙합 바지 등 패션실험으로 이미 업계에선 베스트 드레서 반열에 올라 있다.
“보보스의 특징이 무조건 비싼 옷만 선호하는 것은 아니에요. 유행을 타지 않는 자기만의 라인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죠. 주로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무채색을 좋아하고 차가운 색조보다는 따뜻한 색을 선택합니다. 따뜻한 계열의 색이라 해도 ‘대비’가 되어서 멋있는 색인가, ‘조화’를 이루어서 멋있는 색인가를 따져 패션 연출을 하지요.”
그는 백화점 쇼핑보다 동대문, 남대문 쇼핑을 더 좋아한다. 1개월에 3번 꼴로 새벽시장을 찾아 그때 그때 유행도 파악하고 5000원짜리 남방도 구입해 그만의 개성을 표출한다.
“1960∼70년대 남대문에 구제품 시장이 크게 섰어요. 그때 아버지랑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패션을 알게 된 것 같아요. 괜히 멀쩡한 청바지 사다가 수십 번씩 빨아 구제품을 만들어 입기도 했죠.”
그는 넥타이 수집광이기도 한데 옷장을 열면 살아생전 부친이 매던 것까지 포함해 무려 500개가 걸려 있다.
“그동안 감옥살이만 빼고 모든 일을 다 해보고 산 것 같아요. 사람들은 30대는 30평 아파트, 40대는 40평 아파트, 50대는 50평 아파트 뭐 이런 식의 삶의 규모와 욕망을 따르잖아요. 그런데 50대부터는 다시 10평 아파트로 되돌아가서, 사는 공간은 물론이고 재산, 욕망을 조금씩 축소하고 정리해나가야 할 시기라고 생각해요. 이제 제가 가지고 있는 수집품도 남한테 줄 것은 주고 슬슬 정리해나갈 생각입니다.”
대신 젊은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좀더 광범위하게 구축해 ‘재미있는 공간’만은 늘려가고 싶다고 한다.
‘본성 지키기’의 중요성
“젊은이들의 문화를 알고 싶어 요즘 인터넷 채팅을 자주 하는데 31세라고 속이고 채팅방에 들어가요. 그런데 한 10분 정도 채팅방에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상대방으로부터 ‘당장 나가!’라는 문자가 날아와요. 타이핑 속도가 느리니 나이가 들통날 수밖에요.”
하지만 ‘소리바다’에서 최신 음악을 다운받아 들을 만큼 ‘젊은 감각’이 살아 있다.
그는 숨겨진 ‘본성’을 확인해보기 위해 스크린에 얼굴을 내민 적도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2’ 카메오 출연이 그것인데,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며칠 동안 임권택 감독 꽁무니를 쫓아다닌 끝에 겨우 단역을 하나 따냈다고 한다. 그의 역은 종로 시장통에서 물방개를 파는 장사꾼. 이 일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무엇이든 저질러놓고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인생 최고의 자산은 자기 자신이죠. 자산을 지키려면 다양한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흡수력’을 최대한 늘려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껏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어요. 자는 것은 죽는 것이니까…. 살아 있는 동안 자기 본성대로 원형을 지키며 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낭만 아닐까요?”
그는 친분이 두터운 탤런트 유인촌씨가 바쁜 중에도 악을 쓰며 ‘스노보드’를 배우는 것에 자극받아 3년 전부터 산악자전거를 타고 있다. 이쯤에서 멈출 법도 하련만 박기태 대표는 앞으로 헬리콥터 조종에도 도전장을 던질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