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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총론 아닌 각론으로 시작해야”

“남북통일, 총론 아닌 각론으로 시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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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 흔히 ‘김정일 체제를 붕괴시키는 것이 통일의 지름길’이라고 믿고 있지만 권오기 전 통일부 장관은 한마디로 부정한다. 자금, 사람, 기술 등 다양한 교류를 통해 북한 스스로 문을 열도록 해야 한다는 것.
  • 전회에 이어 한일 언론인의 대담 두 번째 편을 게재한다(편집자).
“남북통일, 총론 아닌 각론으로 시작해야”

김일성 출생 70주년을 기념해 세운 평양의 주체사상탑.

와카미야 1980년 9월 김일성 주석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자민당에 ‘아시아·아프리카연구회(AA硏)’라는 비둘기파 그룹이 있는데 이들이 초청을 받아 북한에 갈 때 동행기자단의 한 사람으로 저도 방북했습니다. 일주일의 체류기간 동안 대표단이 김일성과 만나는 일정이었는데, 꽤 애를 태웠습니다.

많이 기다리게 하지요.

와카미야 네. 안절부절못하게 만들고는 간신히, 그것도 갑작스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회담 때는 김일성이 직접 마중을 나와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했습니다. 숙청을 반복하며 독재체제를 구축해온 인물이기에 권위적이고 냉혹한 지도자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풍모가 대단히 솔직하고 지도자다워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자잘한 것은 아랫사람에게 맡기고 어려운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태도였지요. 20년 후인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을 맞이했을 때의 태도가 아버지를 꼭 닮아서 감탄했습니다.

김일성은 공산주의자라고 하지만 ‘자본론’ 같은 것은 읽지 않았으리라 생각해요. 당시 한국어로 된 ‘자본론’은 없었으니까.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났을 때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여서 좌익 인사들 중엔 중국공산당에 들어간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김일성입니다. 공산주의자라기보다 반일민족주의자였죠. 그후 치열한 권력투쟁 끝에 권좌에 올랐지만, 김일성의 북한체제는 옛날 한국의 유교적 정치체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라고 하기에는 좀 이상하지요.

와카미야 해방 전 천황제를 본보기로 한 것 같아요.



그것도 직접 통치의 천황제처럼 된 것이 북한의 불행이지요.

와카미야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본 정치가들은 김일성과 만나면 한순간 반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사회당의 아스카다 이치오(飛鳥田一雄)씨가 대표적이고 자민당에서는 우쓰노미야 도쿠마(宇都宮德馬)씨라든지 구노 마사하루(久野忠治)씨가 친했죠. 가네마루 신(金丸信)도 김일성과 대면한 후 홀딱 반해버렸죠. 1980년 방북단 회담에서 김일성이 일본 의원에게 담배를 권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의원이 ‘그런데 주석, 여기에 중국제 담배와 소련제 담배가 있다면 어느 걸 피울 겁니까?’라고 물었어요. 김일성은 ‘저는 조선 담배 이외에는 안피웁니다’라고 했죠. ‘만약 조선 담배가 없다면 어느 걸 피우죠?’ 하니 ‘그때는 안 피웁니다’하더군요. 김일성이 자주노선과 소련과 중국과의 등거리 외교에 매우 신경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김일성은 자주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소련과 중국은 원조의 대가로 북한에 종종 성가신 부탁을 했어요. 사정이 괜찮을 때는 들어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거절하죠. 그때 김일성은 항상 자주성이라는 말을 합니다.

북한은 적이면서 형제

와카미야 김영삼 정권에서 부총리 겸 통일부 장관을 지내셨습니다만 당시 대북정책의 기조는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북한을 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적이면서 형제라는 복수의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지금 한국에는 김정일 체제가 붕괴하면 곧 남북통일이 실현된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있어요.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분단은 우리 민족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국제정치의 결정이므로 통일방법도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국제적인 맥락에서 통일을 논의하되 결정은 우리 판단으로 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주적 통일입니다. 남북한끼리 악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방식은 곤란합니다. 그리고 통일을 위한 준비를 해야죠.

와카미야 세 번째군요.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치가는 거창하게 말하지만 총론은 별 의미가 없어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통일 준비는 각론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 전염병이 퍼졌다고 합시다. 인천 주변은 38선에서 가까워요. 그러니 한국의 보건복지부도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또 식량 부족을 겪고 있는 북한에 대해 한국의 농림부가 나서서 북한 식량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을 저는 ‘각론화’라고 말합니다. 통일은 ‘내가 한다’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한다’가 아니라 그것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죠. 영어로 말하면 ‘Do unify’가 아니라 ‘Let unification come true’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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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권오기 전 동아일보 사장,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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