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일본에서는 ‘하류사회’라는 말이 하나의 키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하류사회’ ‘하류지향’ ‘90%가 하류로 전락한다’ ‘총하류사회’ 같은 제목의 책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하류’라는 말을 유행시킨 주인공은 미우라 아쓰시라는 마케팅 애널리스트다. 그가 2005년에 내놓은 ‘하류사회’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하류’라는 말이 일종의 유행어가 됐다.
필자는 ‘하류사회’가 발간되던 시점에 일본에 체류하고 있었다. ‘하류사회’는 발간 초기부터 대형 서점들의 주요 매대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출판사에서도, 서점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고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발간된 ‘하류사회’는 문고판 판형을 세로로 2cm 늘인 변형 문고판이다. 통상 이런 판형은 전문적인 내용의 책을 3000부 정도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출간할 때 사용한다. 여백을 많이 주지 않고 빽빽하게 편집한다. 원고량은 보통 판형의 책에 못지않지만, 종이를 적게 사용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내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류사회’의 판매가는 780엔이었다. 통상적으로 베스트셀러를 목표로 만드는 책은 보통의 판형을 쓰고 가격은 1400~1500엔으로 책정한다.
역발상적인 마케팅이다. 통상적인 책 절반 가격의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것이 ‘하류사회’라는 제목과 맞물려 강력한 임팩트를 줬다. 앞으로는 ‘하류사회’가 도래할 것이며, 그때가 되면 책도 반값 정도가 아니면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자신이 ‘하류’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있었기 때문인지, 고도로 계산된 마케팅의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하류사회’는 사회현상으로 불릴 만큼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뒤를 이어 ‘하류’라는 말이 제목에 들어간 책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하류’ 관련 책은 국내에 세 권이 번역되어 나왔다. 하지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저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하류’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탓이 클 터다.
‘하류사회’에는 ‘새로운 계층집단의 출현’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일본 전체가 ‘하류사회’로 달려간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 36세 이하의 젊은이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왜 그들이 문제가 되는지 깊숙이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도 혹시 그런 것은 아닌지 우려가 앞선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우리와 무관한 일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특히 386세대와 그 이후 세대는 자기 자식들이 ‘하류’라는 흐름에 휩쓸려가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