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알렉산드리아에서 조선까지 1400년의 문명 대이동

프톨레마이오스와 황도12궁

알렉산드리아에서 조선까지 1400년의 문명 대이동

2/4
알렉산드리아에서 조선까지 1400년의 문명 대이동
고대인은 황도12궁에 따라 달과 별의 이동 경로를 계산해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알았기에, 농사를 짓고 사막을 건넜으며 바다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이 체계가 실생활에서만 이용된 것은 아니다. 각각의 별들은 곧 그들이 믿는 신을 상징해, 별자리의 움직임은 곧 신의 뜻을 대변한다는 종교적 의미를 갖게 됐다. 이 때문에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12궁에 그리스와 로마 신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12궁은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아주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로(기원전20~ 기원후 50)는 ‘모세의 생애에 관하여(De Vita Moysis)’에서 대선지자의 에봇(사제복)에 있는 12개의 보석이 황도12궁을 상징한다며 이렇게 진술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조선까지 1400년의 문명 대이동

<그림4> 유대인 회당에 새겨진 황도12궁(팔레스타인에서 발굴된 유대인 회당 바닥에 새겨진 모자이크, 6세기).

“대제사장의 흉부에는 각기 다른 색을 가진 12개의 보석이 4줄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황도12궁을 상징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황도12궁은 12 동물로 구성돼 있으며, 이 동물은 1년 사계절에 각각 3마리씩 할당된다.”

팔레스타인의 베트 알파(Beth Alpha)에서 발굴된 유대인 회당 바닥에 장식된 모자이크는 분명히 황도12궁이다. 이 모자이크가 상징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12지파였을 것이다. 시리아어로 기록된 초대 유대 기독교 문헌이 이를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당시의 기독교 문헌들은 예수의 열두 제자와 요한계시록에 적힌 성곽 주춧돌의 12보석도 황도12궁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황도12궁을 상징하는 숫자 12는 고대 문헌들 속에 숨은 신비를 풀 수 있는 열쇠 구실을 한다. 12의 3배수인 36과 6배수인 72도 같은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의 황도12궁이 주변 문명국들에 전해지게 됐다.



인도·중국 문명과의 만남

알렉산드리아에서 조선까지 1400년의 문명 대이동

<그림5>인도화한 황도12궁.

기원전 4세기 이후 인도는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대제국의 영향으로 그리스 문명과 군사적이고 상업적으로 교류하면서 그리스 천문점성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스인들은 인도와 국경이 맞닿은 곳에 박트리아 왕국을 세웠는데, 박트리아 왕국은 인도에 그리스 문명을 전하는 매개체였다. 그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인도의 간다라 미술이다.

그리스의 황도12궁 명칭이 등장하는 문헌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서기 270년경 작성된 ‘야바나자타카(Yavanajataka)’이다. ‘야바나’는 ‘이오니아 사람’ 즉 그리스 사람을 가리킨다. 이 책의 그리스어 원전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서기 1~2세기 프톨레마이오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의 천문점성술을 바탕으로 번역된 책인 것은 분명하다. 중요한 용어들은 그리스어를 그대로 음역해 기록해놓았다.

6세기에 작성된 힌두교 점성술의 기본서인 ‘브리하트 자타카(Brihat Jataka)’도 그리스어 황도12궁 명칭을 음역해 제시하고 있다. 양자리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크리오스(Krios)는 산스크리트어로 Kriya, 황소자리인 타우로스(Tauros)는 Tavuri, 쌍둥이자리인 디두모이(Didumoi)는 Jituma로 음역돼 있다. 이러한 예들은 인도 천문점성학의 뿌리가 그리스임을 보여준다. 서양 천문점성학은 인도를 통해 중국으로 전해진다.

서양 천문점성학 서적들은 인도에서 번역됐다. 그러나 인도어 번역본이 중국으로 전해지기 전 소아시아(아나톨리아)의 동남부 지역에서 서양 고전문헌 전반에 대한 연구와 번역이 시도되었다. 니시비스(Nisibis·현재 터키의 누사이빈)와 에뎃사(Edessa·현재 터키의 우르파) 지역이 그곳이었다.

350년 니시비스에는 오늘날 대학과 비슷한 ‘니시비스 학교’가 설립됐는데, 이 학교는 363년 페르시아의 침공 때 에뎃사로 이동했다. 에뎃사는 아랍어의 방언인 시리아어를 사용하던 동방기독교의 중심지였다.

이 언어가 바로 비옥한 초생달 지역 전체에서 쓰이던 ‘링구아 프랑카’(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만났을 때 사용하는 제3의 보조언어)였다. 니시비스와 에뎃사의 학자들은 시리아어로, 그리스의 문학 종교 철학 그리고 과학 서적들을 연구하고 번역했다.

이들이 남긴 수많은 서적이 필사본 형태로 세계 유수의 도서관 서고에 쌓이게 됐다. 그리고 20세기 들어 하나씩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는 신·구약 성경주석과 사도들에 관한 기록뿐만 아니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서적 등 수많은 번역서와 연구서들이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와 ‘테트라비블로스’ 등도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이 서적들이 페르시아와 아랍문명권에 전해졌고, 다시 중앙아시아의 링구아 프랑카어였던 소그드어를 통해서 중국에 전해졌다.

6세기 후 서양의 황도12궁은 인도 불경 번역 과정을 통해 중국에 전해지기 시작했다. 이 불전들을 모아 편찬한 대장경에는 경전뿐만 아니라 당시 인도에 들어온 천문점성학 서적들이 들어갔다. 밀교부(密敎部)에 포함된 ‘일장경(日藏經)’ ‘수요경(宿曜經)’ ‘칠요양재결(七曜攘災決)’ ‘범천화라구요(梵天火羅九曜)’ 등이 그것이다.

2/4
곽문석|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genrev@daum.net
목록 닫기

알렉산드리아에서 조선까지 1400년의 문명 대이동

댓글 창 닫기

2023/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