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산재보험법 개정으로 인정 범위 대폭 확대
‘통상적 출퇴근 경로’ 등 세 가지 요건 충족해야
친구 저녁 식사 이유로 출퇴근길 벗어나면 인정 X
식료품 되고, 명품 가방은 안 돼…이동 중 사고만 인정

출근길에 커피를 사기 위해 잠시 카페에 들렀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다칠 경우 출퇴근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 뉴시스
과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은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사업주의 지배·관리 아래에서 출퇴근하던 중 발생한 사고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이 때문에 통근버스를 이용하는 일부 근로자만 보호받고, 대중교통·자가용·자전거·도보 등으로 이동하는 대다수는 산재 혜택에서 배제된다는 비판이 지속됐다. 2016년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차별이 헌법상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산재보험법이 개정돼 2018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출퇴근 재해의 인정 범위가 대폭 확대됐다. 지금은 사업주가 제공한 통근버스뿐 아니라 지하철, 버스, 자가용, 도보 등 이동수단의 종류와 무관하게 출퇴근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 역시 산재로 인정되고 있다.
출퇴근 재해 인정되려면 세 가지 요건 충족해야
그러나 모든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가 산재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출퇴근 재해가 인정되려면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첫째, 주거지와 취업 장소를 오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여야 한다. 둘째, 이동이 취업 관련성을 가져야 한다. 즉 업무를 위해 또는 업무 후 이뤄지는 이동이어야 한다. 셋째, 출퇴근이 통상적 경로와 방법에 따라 이뤄져야 하며, 이 과정에서 일탈이나 중단이 없어야 한다. 대부분 근로자는 집에서 직장으로 출근하기 때문에 첫째와 둘째 요건은 큰 쟁점이 되지 않는다. 결국 핵심은 해당 이동이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통상적 경로’였는지, 그 과정에서 출퇴근과 무관한 ‘일탈 또는 중단은 없었는지’ 여부다.여기서 ‘통상적 경로’란 사회 통념상 출퇴근 시 이용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합리적 이동 경로를 뜻한다. 앞서 살펴본 A씨 사례처럼 지하철을 이용하려다 사고를 당한 경우가 대표적 예다. 이때 반드시 최단거리일 필요는 없으며, 교통 혼잡을 피하거나 좀 더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경우도 통상적 경로로 인정된다. 근로복지공단의 출퇴근 재해 업무처리지침은 통상적 경로를 “주거지와 취업 장소 사이를 사회 통념상 이용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로”라고 규정하고, 그 범위를 ① 최단거리 또는 최단시간이 소요되는 경로 ② 최단거리 또는 최단시간의 경로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로 ③ 공사, 시위·집회 등으로 인한 도로 사정에 따라 우회하는 경로 ④ 직장 동료 등과 카풀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친구 저녁 식사 등으로 일탈·중단 시 산재 인정 X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자. 평소 버스로 출퇴근하는 한 근로자가 도심의 대규모 집회로 도로가 막힐 것을 우려해 지하철을 타러 걸어가던 중 사고를 겪었다면 어떻게 될까. 평소와 다른 경로로 출근했지만 대규모 시위라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한 경로 변경이었고, 여전히 집과 회사를 오가는 합리적 경로에 해당하므로 출퇴근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 자가용을 이용해 고속도로로 출근하던 근로자가 도로 공사로 인한 심한 정체를 피하기 위해 국도로 우회하던 중 졸음운전 차량과 충돌한 경우는 어떨까. 이 역시 도로 공사라는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경로를 합리적으로 변경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출퇴근 재해로 인정된다.음주 운전과 같은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한 사고는 어떻게 판단될까. 원칙적으로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 또는 범죄행위가 원인이 된 부상 등은 산재로 인정되지 않는다. 실제로 한 근로자가 퇴근 후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진 뒤 친구 집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혈중알코올농도 0.082% 상태로 승용차를 운전해 출근하던 중 중앙선을 침범해 역주행하다 정면충돌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법원은 사고의 주된 원인이 음주 운전이라는 범죄행위에 있다고 보고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처럼 사고 원인이 근로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출퇴근 재해의 인정 여부가 결정된다.
반대 경우도 있다. 법원이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 발생한 부상은 ‘오로지 또는 주로 근로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야 하고, 중대한 과실은 되도록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인 만큼, 그 밖의 경우 산재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전동킥보드를 타고 출근하던 B씨가 보행 신호등의 녹색불이 깜빡이는 상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화물차와 충돌한 경우가 대표적 예다. 법원은 전동킥보드 운전 행위가 산재보험법의 보호 대상에서 배제될 정도로 위법의 정도나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어렵고, 자전거나 전동킥보드 운전자가 점멸 신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이 흔히 있는 점 등을 근거로 해당 사고를 산재로 인정했다.
다만 출퇴근 과정에서 ‘일탈’이나 ‘중단’이 있는 경우에는 산재로 인정되지 않는다. 여기서 일탈이란 출퇴근 중 통상적 경로를 벗어나는 행위를, 중단은 출퇴근 경로에서 출퇴근과 관계없는 행위가 이뤄진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우 사고의 원인이 근로자 개인의 사적 활동에 있기 때문에 출퇴근 재해로 보지 않는다. 퇴근길 집 근처 음식점에서 친구와 식사한 뒤 귀가하다 넘어져 팔을 다친 경우가 대표적이다. 출퇴근 경로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친구와의 식사는 출퇴근과 직접 관련이 없어 중단에 해당한다. 다만 출근길에 커피를 사기 위해 잠시 카페에 들렀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다친 상황은 다르다. 출퇴근 경로 내에서 이뤄지는 30분 내외의 경미한 행위(커피나 음료의 테이크아웃, 차량 주유, 신문 구입, 간단한 생리현상 해결 등)는 일탈이나 중단으로 보지 않는다.
일탈이나 중단이 있었다고 해서 모든 사고를 산재에서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출퇴근 경로를 잠시 일탈하거나 중단하더라도 그것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라면 그 행위 중 발생한 사고는 예외적으로 산재에 해당한다. 이는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다. 구체적으로 △마트, 전통시장 등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품을 구입하는 행위 △학교, 직업교육훈련기관에서 교육이나 훈련을 받는 행위 △선거권, 투표권 행사 △보호하는 아동 또는 장애인을 보육기관 또는 교육기관에 데려주거나 데려오는 행위 △의료기관 등에서 질병의 치료나 예방 목적으로 진료받는 행위 △가족 중 요양 중인 사람을 돌보는 행위 등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로 인정된다. 즉 출퇴근 중 경로에서 잠시 벗어나거나 중단이 있더라도, 그 사유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로 인정된다면 산재로 보호받을 수 있다.
식료품 되고, 명품 가방은 안 돼…이동 중 사고만 인정
예외에 해당하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품을 구입하는 경우다. 식재료를 저렴하게 구입하기 위해 통상의 퇴근길 경로를 벗어나 대형마트에서 식료품을 구입하고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가 대표적 예다. 퇴근길 식료품 구입은 생활필수품 구매에 해당하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로 인정돼, 이 과정에서 사고를 겪으면 출퇴근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 반면 퇴근길 백화점에 들러 평소 갖고 싶던 명품 가방을 구입한 후 귀가하다 사고를 겪은 경우는 출퇴근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 명품 가방 구입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둘째, 학교나 직업교육훈련기관에서 교육이나 훈련을 받는 행위다. 업무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퇴근길에 직업교육훈련기관에서 수업을 받고 귀가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면 이는 산재로 인정된다. 그러나 퇴근길에 취미 활동인 필라테스를 배우기 위해 이동하던 중 발생한 사고는 출퇴근 재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셋째, 보호하는 아동 또는 장애인을 보육기관 또는 교육기관에 데려주거나 데려오는 행위다. 출근길에 고등학생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주기 위해 우회해 이동하던 중 사고가 발생한다면 출퇴근 재해로 인정된다. 그러나 같은 고등학생 자녀라도 교육기관이 아닌 아르바이트 장소에 데려다주다 사고가 나거나, 아동으로 볼 수 없는 대학생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주다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는 산재로 인정되지 않는다.
넷째, 의료기관 등에서 질병의 치료나 예방 목적으로 진료받는 행위다. 퇴근길에 두통으로 병원에 가기 위해 이동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면 출퇴근 재해로 인정된다. 그러나 퇴근길에 피부과에 들러 미용 목적으로 보톡스를 맞고 귀가하던 중 발생한 사고는 산재에 해당하지 않는다.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예외적으로 일탈이나 중단이 인정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보호 범위는 이동 중에 발생한 사고로 한정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형마트에 들러 장을 보던 중 진열된 물건이 떨어져 다치는 사고나, 의료기관 내부에서 치료를 받던 중 건물 화재로 부상을 당한 경우는 이동 과정에서 발생한 재해가 아니므로 출퇴근 재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즉 산재보험의 보호는 출퇴근과 직접 관련된 구간에서 일어난 사고에만 적용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정리하면, 출퇴근 경로에서의 일탈이나 중단은 원칙적으로 산재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유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만을 보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근로자가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 행위를 폭넓게 인정하겠다는 제도의 취지를 반영한 것이다. 식료품 구입, 자녀의 등·하원, 질병 치료 목적의 의료기관 방문 등은 이러한 필수 생활 행위에 해당해 산재 인정의 여지가 있다. 반면 명품 구매나 미용 목적의 진료처럼 생활 필수성과 거리가 먼 행위는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한 예외가 인정되는 경우라도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에 한해 산재로 인정된다는 점은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2018년 산재보험법 개정으로 출퇴근 재해의 인정 범위가 확대되면서 이동수단의 종류와 관계없이 대부분의 근로자가 산재보험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는 근로자의 안전과 일상적 삶을 폭넓게 보장하겠다는 사회적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그럼에도 여전히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가 산재보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근로자가 적지 않다. 제도가 현장에서 실질적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 통상적 경로의 의미, 일탈·중단의 기준, 예외 인정 요건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해가 뒷받침될 때 출퇴근 재해 보상 제도는 근로자의 일상과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제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 1986년생
● 前 수원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청원 심의위원회 위원
● 삼성화재해상보험㈜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