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대형마트, 해외 체인 막아내며 승승장구
정치권 규제로 대형마트 주말 및 심야 영업 제한
규제 틈새 노리고 성장한 이커머스 대표주자 쿠팡
‘새벽배송’으로 노동자 심야 휴식권 오히려 후퇴
쿠팡 엄벌해도 ‘규제 실패’ 반성 없다면 폐단 반복
2025년 12월 11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한 말이다. 같은 해 11월 20일 발표된 쿠팡 고객 약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을 두고 강경 대응을 요구한 것이다. 정부 업무보고 생중계 첫날이 바로 기획재정부였는데, 그 자리에서 쿠팡을 처벌해야 하며 그 방법은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것이어야 한다”라는 구체적 지시가 내려졌다.

2025년 12월 11일 서울역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기관별 업무보고(기획재정부·국가데이터처) 모두 발언 생중계 화면이 나오고 있다. 이날 기재부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은 쿠팡 처벌 필요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뉴스1
이 대통령의 업무보고 이후 쿠팡을 향한 십자포화가 개시됐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2025년 12월 17일 오전 쿠팡 개인정보 유출 관련 청문회를 열었다. 과방위는 쿠팡의 창업자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과 박대준, 강한승 쿠팡 전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했지만 모두 불출석했다. 그들을 대신해 증인으로 나온 건 청문회 일주일 전 쿠팡 대표의 자리에 오른 해럴드 로저스로 미국 쿠팡Inc 최고관리책임자 겸 법무 총괄을 맡고 있던,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외국인이었다.
쿠팡 청문회는 이 대통령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국회의원이 증인을 향해 호통치고 꾸짖는 광경을 연출할 수 없었다. 통역을 통해 한 문장씩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로저스 대표는 여느 한국 기업인처럼 국회의원들에게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쿠팡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며, 오히려 자신을 나무라는 국회의원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취지로 항변을 이어나갔다.
‘미국 기업’ 쿠팡, 매출의 90%는 한국서 발생
쿠팡 사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쿠팡은 회사에서 정보가 유출된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제3자의 손에 넘어가지는 않았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론과 국회가 반발하자 한국 정부와 협조하에 자체 조사가 진행됐다며 그 주체로 국정원을 지목했다. 국정원은 로저스 대표의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며 지난해 12월 30일 국회에 위증 혐의로 고발을 요청했고, 다음날 과방위가 고발을 의결했다.
쿠팡 사태와 그 여파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업의 힘은 국경을 넘어 점점 더 커지면서 단일 국가의 통제력을 벗어난 지 오래다. 정작 국가는 점점 더 무능하고 무기력해지고 있다. 그것은 기업의 힘이 상대적으로 커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가의 공적 의사를 확인하고 결정하는 과정, 즉 정치가 제 기능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이다.
쿠팡에서 유출된 개인정보는 약 3360만 건. 대한민국의 인구를 5000만 명이라고 봤을 때, 경제 활동을 하는 성인 중 절대다수가 쿠팡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들 전부가 쿠팡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고객일 것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쿠팡이 온라인 유통업체로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쿠팡은 한국이 아닌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이다. 그런데 매출의 절반 이상이 한국에서 발생한다. 특히 소매 유통업을 기준으로 본다면 90% 이상의 매출을 한국에서 벌어들인다. ‘어디서 돈을 버느냐’를 묻는다면 한국 기업이라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쿠팡은 한국의 온라인 소매 유통업을 과점하고 있는 기업이다. 그런데 쿠팡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 상장된, 법적으로 따지자면 미국 기업이다. 이 두 사실이 결합해 만들어진 결과는 분명하다. 쿠팡은 한국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의 영향력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그만큼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며 기업을 키우기는 국내 대기업보다도 쉽다. 말하자면 ‘독점 기업의 악순환’에 들어선 셈이다.
어쩌다가 쿠팡은 이런 위치에 오르게 되었을까. 쿠팡이 창업했을 무렵 다양한 이커머스 기업이 출현했다. 많은 업체가 문을 닫거나 흡수됐지만 쿠팡은 최후의 승자로 남았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물주로 삼아 끝없는 적자를 감수해 가며 한국 소매 유통 시장의 지분을 늘리는 전략이 결국 결실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만약 정부가 전통시장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대형마트를 규제하지 않았더라면 쿠팡의 현 위치는 지금 우리가 아는 그것과 크게 달랐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대형마트 야간영업 규제 틈에 등장한 ‘새벽배송’
많은 이들이 잊고 있는 사실을 되짚어 보자.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까르푸, 월마트 등 해외 유명 대형마트가 한국 시장을 두드렸다. 해외 대형마트는 인테리어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하고 저가의 상품을 공급해 시장의 우위를 차지하는 전략을 택했다. 경제적인 눈으로 보면 합리적이지만 쇼핑이란 그저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한 결정이기도 했다.반면 한국 기업은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영업 방식으로 대응했다. 주요 소비층의 심리를 잘 알고 대응할 수 있는 여성 인력을 대거 고용하여 계산대와 시식코너 등을 채웠다. 가족이 함께 와도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실내 디자인과 동선도 고려했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3대 대형마트 브랜드가 한국 시장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성공담은 2012년에 이르러 변곡점을 맞이했다. 몇 번의 선거를 거치며 대형마트는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의 삶을 위협하는 악마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정치권은 앞장서서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시켰다.
대형마트의 주말 영업을 금지하면 사람들이 전통시장으로 갈 것이라는 주장은 실증적 연구를 통해 몇 차례나 반박됐으나 규제 일변도로 정해진 정책 방향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대형마트를 규제하면 전통시장, 소상공인, 아무튼 대기업이 아니고 푸근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상점이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란 막연한 기대 아래, 대형마트의 경쟁력은 서서히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 규제에는 또 하나의 함정이 있었다. ‘마트 노동자의 새벽 수면권’을 보장한다며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시간 제한을 뒀다. 선의로 시작된 규제가 예상 밖 결과를 낳았다.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충분한 구매력을 갖고 있으며 지금보다 질 좋은 다양한 상품을 원하는, 하지만 직접 마트에서 장을 볼 시간이 없는 중산층 이상의 주부들을 노린 새로운 서비스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출현했다. 그것이 바로 ‘새벽배송’이다.
애초에 새벽배송은 쿠팡이 만든 게 아니다. 마켓컬리의 작품이다. 본인 스스로가 워킹맘이었던 창업자 김슬아 대표의 경험이 낳은 아이디어였다. 21세기 한국인, 특히 일하면서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워킹맘에게는 돈보다 시간이 더 귀중한 자원이라는 사실과 그로 인한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켜 주는 서비스가 출현한 것이다.
새벽배송은 분명한 수요가 있었다. 다만 마켓컬리는 자금과 조직의 한계가 있었다. 그것을 쿠팡이 ‘전국구’로 키웠고, 그리하여 쿠팡은 지금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한국의 온라인 소매 유통업을 사실상 과점하는 공룡 기업이 될 수 있었다.
대형마트 영업 제한, 명백한 정책 실패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보자. 대체 누가 쿠팡을 괴물로 만들었나. 답은 분명하다. 정치가 문제다. 자신들이 내놓는 규제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무슨 나비효과를 발생시킬지, 큰 고민 없이 여론에 따라 되는대로 법을 만들며 정의 구현을 한다고 착각하는 정치가 이 모든 사달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21세기 한국 소매 유통업의 발전 경로를 되짚어 보자. 국내 업체들은 한국 시장에 맞는 역량 강화와 적극적 대응을 통해 외국에서 온 공룡들을 막아냈다. 국산 대형마트가 외국 대형마트를 막아낸 사건은, 한국에서 월마트 같은 초대형 유통 글로벌 기업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사례였으나 한국 정치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국내 기업 성장보다 자신의 표밭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게 더욱 중요한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2012년 6월 24일 오후 전국유통상인연합회 회원들이 강동구 천호동 이마트 천호점 앞에서 대형마트 강제 휴무 위법 판결에 항의하며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도 영업시간을 제한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아DB
명백한 정책 실패다. 그러나 정치권의 성찰과 반성은 없었다. 어설픈 경험과 지식으로 현실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원하던 효과를 얻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금까지 형성된 균형이 허물어지면서 더 큰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
그러한 역효과의 대표 사례가 바로 ‘대형마트 규제’다. 전통시장을 살리고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억지로 단축해도 전통시장의 사정은 나아지질 않았다. 반대로 쿠팡은 미국에 상장한 한국의 대기업이 되어 국회가 호통을 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가 각성하지 않으면 폐단은 반복될 공산이 크다. 지금 쿠팡을 엄벌하는데 성공하더라도 ‘제2의 쿠팡’은 언제든 또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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