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호

헌재·대법원 사법 불일치 혼란 제한적 도입 고려할 시점

재판소원 도입

  •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 KAIST 겸직 교수

    입력2013-07-23 10:0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헌재·대법원 사법 불일치 혼란 제한적 도입 고려할 시점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최근 헌법재판소(헌재)는 법원의 재판도 헌법소원 대상이 돼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독일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재판소원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이 문제를 두고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재판소원은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구제 절차를 뜻한다. 법원의 재판권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청구인의 기본권이 침해당한 경우 청구인의 헌법소원심판청구에 따라 헌재가 행하는 심판이다.

    헌재는 헌법에 합치되는지 아니면 위헌인지 여부를 심리 판단하는 사법기관이다. 헌재법 제68조 제1항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행사 등에 의해 헌법상의 기본권이 침해당한 경우 이에 대한 구제를 요청하는 헌법재판 절차다. 여기에는 입법작용이나 행정작용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러나 유독 사법작용인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는 예외가 인정돼왔다. 최종 법률해석기관으로서 법원의 권위를 인정해왔기 때문이다.

    독일, 스페인, 프랑스 등 채택

    재판소원 도입 문제는 법조계에선 오래된 숙제 중 하나였다. 헌재가 법원에 대해 헌법적 통제를 할 필요가 있느냐, 없느냐가 논란의 핵심이다. 역사적으로 헌법소원은 독일의 히틀러 시대에 사법부의 독립이 형해화(形骸化)하고 사법부에 의한 인권유린이 자행된 것에 자극 받아 만들어져 발전한 제도다. 1951년 연방 헌재에 의해 법체계로 확립됐다. 독일, 체코, 스페인, 프랑스 등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다.

    반면 오스트리아 같은 국가는 재판소원을 인정하지 않는다. 민·형사 최고법원, 행정법원, 헌재가 각각 독립적이고 균등한 헌법기관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연방대법원이 헌재의 기능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어 상호 간 충돌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재판소원의 도입 문제가 논란이 되지 않고 있다. 도입한다 해도 실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헌재법이 헌법소원 대상에서 법원의 판결을 제외한 점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대립한다. 먼저 위헌론(재판소원 찬성론) 측은 입법·행정작용과 마찬가지로 공권력의 행사 중 하나인 사법작용에 의한 기본권 침해 사항도 평등권 보장 차원에서 당연히 헌법소원심판 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원의 판결이나 결정도 헌법정신과 배치될 수 있기 때문에 헌법소원을 통한 구제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우선 법원의 재판 결과를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볼 것인지 여부는 입법자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며, 우리 헌법의 해석상 재판 절차에 관한 최종적인 판단권은 대법원에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을 인정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3심제를 채택한 우리의 법질서와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를 도입할 경우 ‘소송 공화국’이 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우려도 내놓고 있다. 논란의 당사자인 대법원도 비슷한 이유로 재판소원 도입에 반대한다. 찬성하는 쪽의 논리, 반대하는 쪽의 논리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논쟁을 촉발시킨 헌법재판소는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심사 대상에서 제외한 법규정이 헌법에 위반되진 않지만, 예외적인 경우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기속력을 담보하기 위해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해 나온 재판 결과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어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제한적 찬성론이다.

    사법 불일치 사례 속출

    재판소원 문제로 인한 갈등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실제로 문제가 된 사건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1996년 구 소득세법 제23조 제4항 단서 등에 따라 양도차익을 기준시가가 아닌 실거래가액으로 산정해 양도소득세를 부과한 국세청의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요구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헌법소원 청구자는 국세청이 실거래가 기준으로 세금을 산정한 데 불복해 법원에 재판을 청구했지만 1심과 2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고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위 법 규정(구 소득세법 23조 4항)에 대해 한정위헌결정을 내렸다. 실거래가가 아닌 기준시가를 기준으로 양도소득세를 내는 것이 헌법정신에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구 소득세법이 조세법률주의와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은 헌재의 판단에 따르지 않았다. 대법원은 헌재의 한정위헌결정은 법률 문안은 그대로 둔 채 내용과 적용범위만을 정하는 법률 해석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법원의 판단에는 어떠한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고 밝히면서 청구인의 청구를 기각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인해 최종 법률해석기관인 대법원의 권위가 훼손될 수는 없다고 판단해 내린 결정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두 사법기관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서 상당한 혼란이 빚어졌다.

    이런 사례는 헌법재판소가 만들어진 1988년 이후 수도 없이 많았다. 헌재가 도로교통법의 특정 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같은 날 이 법 조항을 합헌으로 해석한 일도 있다. 최근에는 정부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민간위원에 대해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법원이 민간위원도 공무원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본 데 반해 헌법재판소는 아니라고 판시해 논란이 됐다. 이와 같은 사법 불일치는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해왔다. 사법기관들이 제각기 다른 법해석을 내놓는다면 국민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 것인가. 대법원이 법률 해석에 최종적인 해석권자라고 해도, 그 법 해석이 헌법위반 여부와 관련된 사항이라면 헌법재판소의 해석과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는 게 당연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헌재·대법원 위상 재정립도 필요

    많은 법조인은 재판소원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관한 최종 해석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한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실효성을 갖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앞서 언급한 사례와 같은 헌법재판소의 변형 위헌결정이다. 헌법재판소가 법률 자체는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하자 대법원이 헌법으로 보장된 최종 법률해석권한을 내세워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무력화하는 경우다.

    사법 불일치를 막기 위해서라도 재판소원은 인정될 필요가 있다. 다만 소송의 남발 같은 문제점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 역시 충분히 검토돼야 한다. ‘헌재의 위헌결정으로 효력이 상실된 법률’이 적용된 재판결과로 청구 요건을 최대한 한정하는 것 등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재판소원을 채택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헌법소원의 90% 정도가 재판소원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일정한 기준을 설정해 대부분의 청구를 각하한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차제에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사이의 위상도 합리적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최상위 개념인 헌법의 가치를 다루는 기관이 헌재이므로 이를 중심으로 사법계에서 상호 불일치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법체계를 합리적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최고 사법기관에 걸맞게 구성과 체계를 갖추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다.



    논점 2013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