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호

압력관 전부 교체하고도 반핵 여론에 엉거주춤

월성 1호기 ‘계속운전’ 논란

  • 이정훈 │편집위원 hoon@donga.com

    입력2014-10-22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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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력관 전부 교체하고도 반핵 여론에 엉거주춤
    “원자력은 위험하다”는 말은 삼척동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위험하지만 다룰 수 있다. 다뤄서 이익을 얻어내야 한다”는 말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 원자력에 정통한 전문가만이 할 수가 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삼척동자도 할 수 있는 말에 휩쓸릴 것인가, 전문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평화 목적의 원자력 시설도 사고가 나면 핵폭탄이 터진 것과 같은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그로 인해 반핵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그러나 원전 사고 때 피해를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원전 종사자들은 그곳에서 묵묵히 제 일을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국과 싸워가며 건설한 월성 1호기가 후쿠시마 사고 여파로 2년간 낮잠을 자고 있다. 월성 1호기는 농축하지 않은 천연 우라늄을 연료로 쓰는 중수로다. 미국이 핵연료를 제공하지 않아도 국내에서 나온 우라늄을 가공해 발전(發電)할 수 있다.

    그런데 중수로에서 타고 나온 사용후핵연료는 플루토늄 추출 재처리에 적합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 때문에 미국은 한국의 중수로 도입에 강력히 반대했고, 박정희 정부는 ‘유사시 에너지원을 확보하려면 꼭 필요하다’고 맞섰다. 당시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았다. 미국은 NPT 가입을 조건으로 한국의 중수로 도입에 동의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주재관을 파견해 월성 원전을 상시 감시한다(다른 원전은 감시카메라만 설치하고 감독관은 방문 조사만 한다).

    고리 1호기만큼이나 사연이 많은 월성 1호기는 2012년 11월 20일부터 잠자고 있다. 설계 당시 30년으로 정해놓은 상업운전 기한이 그때까지였기 때문이다. 상업운전 기한은 사람으로 말하면 정년과 같다. 정년을 맞았다고 해서 평생 일해온 사람이 하루아침에 기술을 잃는 것은 아니다. 젊게 사는 게 대세인 요즘은 정년 후에도 ‘2막 인생’을 살지 못하면 ‘바보’ 소리를 듣는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상업운전 기한을 넘겼다고 원전이 하루아침에 고물이 되는 게 아니다. 기계는 위험한 것일수록 안전계수를 높여 제작하기 때문에 설계수명을 넘겨도 더 사용할 수 있다. 원전도 위험시설이긴 하지만 관계기관으로부터 철저한 검사를 받아 합격하면 ‘계속운전’이라는 2막을 열 수 있다.

    2년째 잠자는 ‘새 原電’

    압력관 전부 교체하고도 반핵 여론에 엉거주춤

    월성 1호기엔 작은 핵연료를 넣은 압력관이 370개 있다. 월성 1호기는 압력관을 전부 새것으로 교체하고 계속운전 승인을 기다린다.

    계속운전은 원전 대국인 미국에서 시작돼 원전을 보유한 거의 모든 나라로 확산됐다. 현재 세계에서 가동되는 원전은 435기인데, 이 중 34%인 150기가 계속운전 승인을 받았다. 2008년 한국 정부도 고리 1호기를 10년간 더 운전하도록 허가한 적이 있다. 그리고 월성 1호기가 계속운전 검사를 받게 됐는데 후쿠시마 사고를 의식해선지 정부는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원전의 핵심은 원자로다. 보통 원전(경수로)은 큰 원자로를 한 개 갖고 있으나, 중수로는 ‘압력관’이라는 아주 작은 원자로를 수백 개 갖고 있다. 경수로의 원자로에는 아주 큰 핵연료를 300개 이상 집어넣는다. 중수로의 압력관에는 아주 작은 핵연료를 수 개 집어넣는다. 이 때문에 경수로에서는 원자로 교체를 생각할 수 없지만 중수로에서는 교체할 수 있다.

    상업운전 기한이 다 돼가던 2009~2011년 월성 1호기는 370개 압력관 전부를 새것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계속운전 승인을 신청했는데 2011년 터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여파로 ‘다시 검사’와 ‘추가 검사’를 거듭하며 지금까지 가동 중단 상태다. 이는 반핵단체와 주민의 반발을 지나치게 의식한 검증기관의 책임회피성 태만일 수 있다.

    월성 1호기 계속운전 문제는 ‘목소리 큰 반핵 여론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침묵하는 친핵 여론과 과학을 수용할 것인가’를 묻는다. 정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증세 방안을 짜내고 있다. 이러한 때 새것처럼 고쳐놓은 원전을 여론에 밀려서 버리는 결정을 내릴 것인가. 월성 1호기 계속운전 검증에 참여한 인사는 “정부가 결정을 하지 않고 자꾸 보고서만 내라고 해서 같은 내용을 표현만 바꿔서 쓰는 지겨운 일을 거듭한다”고 하소연했다.

    10월 9일 강원 삼척시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주민투표에서 원전 유치 반대가 85.4%로 나왔다. 이것에 영향 받아 정부가 월성 1호기 계속운전에 대한 결정을 더 뒤로 미룰 가능성이 커졌다. 소신 없는 정부가 행동에 나서지 않는 사이에 간접비용 지출만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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