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국방위원회와 南 국가안보실의 기싸움
- 경호실장보다 못한 ‘안보 부총리’
- 남재준의 길, 김병관의 길, 그리고 김관진의 길
- ‘레이저 김’은 왜 시들시들한 나무가 되었나
10월 4일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에 참석한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겸하는 황병서는 북한의 2인자다. 김관진 실장은 그에 버금가는 안보 총책임자 역할을 하고 있는가.
한반도 문제는 군사와 정보, 통일, 외교, 치안,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제기된다. 그 때문에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다뤄야 하는데, 그는 경제와 복지, 교육 등 내치에도 집중해야 하므로 대신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대행자로는 대통령 직속의 국가안보실장이 적격이다. 국가안보실장은 외교안보수석을 2차장으로 거느리고 국정원장, 국방부 장관,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 안전행정부 장관,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국가안보회의(NSC)의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으니 안보를 총책임진 ‘부총리’라고 할 수 있다.
육사 28기 3人이 만든 드라마
국가안보실장이 한국의 안보·안전 문제 총책임자라는 평가는 오히려 북한이 해준다. 북 국방위원회는 오래전부터 국가안보실을 카운트파트너로 찍어왔다. 국방위 부위원장을 겸하는 황병서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을 ‘콕’ 찍어 만나자고 했다. 10월 7일의 연평도 NLL 교전 직후와 대북전단을 띄운 10월 10일 연천 교전 직후에도 국방위원회는 ‘오로지’ 국가안보실 앞으로만 전화통지문을 보내왔다. 왜 북한 국방위원회는 한국 국가안보실을 물고 늘어지는 것일까.
국가안보실은 대한민국의 안보·안전을 책임진 사령탑 구실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이는 세월호 참사 때 입증된 바 있다. 세월호 침몰 같은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대통령을 대신한 안보·안전 분야 총책임자가 나서서 여러 부처의 업무를 종합 조정, 통제하며 이끌어야 한다. 과거에는 국가정보원이 음지에서 그 역할을 했으나 국정원법이 개정된 이후로는 불가능해졌다.
세월호 참사 때 국정원이 정보 수집만 하고 부처 간 업무 조정을 해주지 않자, 청와대의 일부 실세들은 국정원법이 바뀐 것을 무시하고, “국정원이 아무 일도 안 한다”고 질타해 남재준 원장을 교체할 빌미를 만들었다. 마땅히 컨트롤타워 구실을 했어야 할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며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는데, 청와대 실세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대처가 엉망이 돼버리자 박 대통령은 김장수 안보실장과 남재준 국정원장을 모두 퇴임시키고, 연평도 사건 직후 국방부 장관에 임명돼 평판이 좋았던 ‘레이저 김’ 김관진을 국가안보실장으로 불러들였다. 때문에 김 실장은 국가안보의 고삐를 틀어쥘 것으로 기대됐으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이에 대해서는 그의 동기생들도 의아해한다.
지금 청와대에는 육군사관학교 28기의 예비역 대장이 2명 있다. 박흥렬 경호실장과 김관진 안보실장이다. 박 실장은 참모총장만 지내고 전역했으나 김 실장은 3군사령관과 합참의장을 하고 전역했다. 동기생들은 여기에 김병관 전 연합사 부사령관을 보태 ‘3인의 드라마’를 자주 입에 올린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군 인사 때 김병관 1군사령관, 김관진 3군사령관 둘 중 하나가 참모총장에 오를 것이라는 게 거의 정설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부산 출신으로 인사 특기인 박흥렬 참모차장이 임명되자 많은 사람이 놀랐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했던 김병관씨가 많은 이로부터 질시를 받아 낙마하고 김관진씨가 계속 장관을 하게 되자 사람들은 “지장(智將)보다는 역시 운장(運將)·복장(福將)”이라는 평을 했다.
그때 박흥렬씨가 대통령경호실장에 취임한 것에 주목한 이는 적었다. 김관진, 박흥렬 두 동기는 김관진이 국가안보실장이 되면서 청와대에서 다시 만났는데, 여기에서 또 한 번 역전이 일어났다.
경호실에 밀리는 국가안보실
경호실은 대통령직을 만들 때 같이 생긴 유서 깊은 조직이지만, 국가안보실은 박근혜 정부에서 신설된 조직이다. 경호실은 역사와 전통이 있기에 청와대 안에 별도 건물을 갖고 있다. 자체 예산을 편성해 집행할 뿐 아니라 독자적으로 직원을 선발하니 강한 응집력을 갖는다. 부속실보다도 더 가까이에서 대통령을 모신다는 ‘결정적인 파워’도 가졌다.
국가안보실은 정반대다. 신생 부서인 만큼 다른 부서 건물에 들어가 있다. 여러 부서에서 파견된 직원들로 구성돼 있어 단결력이 약하다. 파견된 이들은 친정 부서에 충성하는 ‘스파이’ 노릇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힘을 끌어와야 하는데 아웃소싱할 기관도 없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안보실의 뿌리를 내리게 하려면, 대통령이 임무를 주며 힘을 실어줘야 하는데, 그러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 소식통은 “국가안보실은 체제가 짜여져 있지 않아 부족한 것이 많다. 김 실장이 청와대로 발령 났을 때 박 실장은 ‘동기생이 왔다’고 반가워하며 사무실 부품 등 아쉬운 것들을 지원해주었다”고 말했다. 국가안보실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허방이었던 것이다. 육군 참모총장 인사 때처럼 두 사람 관계가 다시 역전된 데 대해 이렇게 설명하는 이들이 있다.
“얼마 전 박 실장이 호스트가 돼 김 실장도 참석한 가운데 동기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일이 있다’며 박 실장은 인사만 하고 가고, 김 실장이 그 자리를 주재했다. 우리도 공직에 있어봤기에 그 상황이 무슨 의미인지는 금방 알아차린다. 경호실장은 대통령이 자주 찾는 실세이고 안보실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 아니겠는가. 셋만 놓고 봤을 때 진짜 운장·복장은 박흥렬이다.”
국가안보실장의 실체는 ‘얕은 뿌리’(역사)와 ‘빈약한 가지’(조직)를 가진 ‘연약한 나무’에 불과하다. 새로 심어서 그렇다면, 주인(대통령)은 물을 자주 주고 볕이 잘 들게 해줘야 하는데, 그런 일도 없어 ‘시들시들’하게 서 있다는 것이다. ‘안보부총리’는 경제부총리보다는 국무총리에 가까운 모습으로 비친다.
이러한 한계는 김장수 전임 안보실장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실장일 때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있었다. 남재준은 육사 25기, 김장수는 27기, 김관진(국방부 장관)은 28기이니, 남재준은 ‘선배의 끗발’로 안보를 컨트롤할 수 있었다. 그가 전화를 걸어 “김 장군, 이건 이렇게 해야 하지 않소”라고 하면, 두 김 장군은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안보는 일관성을 갖고 통제됐다.
남재준의 소신
국방과 정보, 외교, 통일, 치안을 종합 컨트롤하는 국가안보실을 만들어 통일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은 남 원장의 발상이었다. 그는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자신이 안보실장을 맡고, 자신이 생각해둔 인물을 국방부 장관에 임명해 군을 통일에 대비한 조직으로 개혁하려 했다. 그런데 그와 그가 이끈 조직의 ‘강성(强性)’이 부담스러웠는지, 박 당선인은 ‘부드러운’ 김장수 씨를 안보실장에 임명했다.
그 후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해 안보가 위태롭다는 판단이 들자, 박 당선인은 ‘제쳐둔 인물’인 남재준을 뒤늦게 국정원장에 임명했다. 남재준은 대통령이 자신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됐기에, 오히려 소신대로 나갔다. 2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해 NLL 논쟁을 마무리 짓고, 이석기 의원을 체포해 통합진보당과 RO(지하혁명조직)를 와해시켰다. 그렇게 남 원장이 밀어붙일 때 박근혜 대통령의 인기는 오히려 치솟았다.
그러나 그 반작용으로 남재준과 국정원은 많은 적에게 둘러싸였다. 반대세력은 남재준과 무관한 국정원 댓글사건과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을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으로 많은 것이 엉킨 가운데 지방선거가 다가오자, 박 대통령은 ‘공공의 적’이 된 남재준을 퇴출시켰다. 남재준은 1년 1개월 만에 물러났지만, 보수파의 숙원(宿願)은 해결해주고 떠난 인상을 남겼다.
남재준 퇴출 후 이병기 국정원장-김관진 국가안보실장-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들어서면서 ‘안보 통제’는 사라졌다는 평가다. 남 원장이 안보 문제를 리드할 때 외교·통일 쪽에서는 “국가안보를 왜 군인 출신들이 독점하느냐”고 반발했지만, 남 원장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기에 끌려갔다. 결국 외교·통일 라인은 국가안보실장에 다시 군인 출신이 임명되는 것은 수용했지만, 국인 출신이 안보 문제를 독점하지 못하게 했다.
박근혜 정부의 2기 안보체제에서는 김관진 실장이 군인으로서는 제일 선배이고, 국가안보실장을 맡았으니 선임이다. 그러나 그는 남재준처럼 치고 나가지도, 안보를 총괄하지도 못한다는 평가다. 그 결과 안보 파트에서는 “이병기 국정원장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부딪친다”는 둥 파열음이 나왔다. 김 실장이 육사 후배인 한민구 국방부 장관하고만 소통하면서 군 인사 문제만 다룬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김 실장에게 남재준 원장을 예로 거론하며 ‘안보실장 위는 대통령뿐이다. 그 자리는 하늘이 정해줘야 가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갈 데까지 왔다고 보고, 물러나도 여한이 없도록 남재준 선배처럼 소신껏 해봐라’라고 했더니, 그는 ‘그게 말처럼 쉬우냐’고 하더라”고 전했다.
목표 없이 열심히만…
그는 “김 실장은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 능한 사람이지 도전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창조적인 발상으로 난관을 돌파하는 것은 김병관 씨가 훨씬 낫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가안보실은 비유해서 말하면 창설부대다. 창설부대는 모든 것이 불안정해 강력한 리더십이 있는 이가 부대장이 돼야 이끌 수 있다.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을 할 줄 아는 이가 필요한 것이다. 오랜 세월 김 실장을 봐왔지만 그는 리스크 테이킹을 하는 인물이 아니다. 최고 지도자의 신임을 받아내는 데 노력하고, 신임을 받으면 그것을 토대로 일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청와대에서는 견제가 많아 그것이 잘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주어진 일만 하겠다며 조용히 있는 것 아니겠는가.”
박근혜 정부는 통일 대박을 이루기 위해 대중(對中) 외교를 중시한다. 이에 대해 러시아 무관을 지낸 한 인사는 “실속 없는 친중외교”라며 이렇게 비판했다.
“노태우 정부는 목표를 갖고 북방정책을 추진했다. 그때는 소련이 더 중요했기에 대소 외교에 전력을 기울였다. 북한과 소련을 분리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구체적으로는 북-소 우호협력조약에 명기된 자동 군사개입 조항을 없애는 것이었다. 우리는 구소련 해체 후 등장한 러시아를 집요하게 설득해 1996년 이 조약 개정 때 이를 삭제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때 그 일을 진두지휘한 인물이 노태우 정부에서는 김종휘 외교안보 수석이고 김영삼 정부에서는 권영해 국방부 장관이었다.
북-중 우호협력조약에도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 있는데 박근혜 정부는 그것을 없애겠다는 목표를 갖고 중국을 설득하고 있는가. 그러한 목표 없이 관계만 좋게 해 북한을 고립시키겠다는 것은 ‘편한 외교’를 하겠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는 국가안보실을 만들었는데도 안보 컨트롤타워가 없다.”
시진핑 방한 이후 미국에서는 한국이 지나치게 중국에 경도됐다며 박근혜 정부를 반기지 않는 눈치다. 9월 김관진 실장은 미국을 방문했으나 척 헤이글 미국 국방부 장관과 케리 국무부 장관을 만나지 못했다. 김 실장은 수전 라이스 미국 대통령안보보좌관만 만나 IS(이슬람국가) 격퇴 등을 논의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뒤 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다. 이 방문 기간에 박 대통령은 미국 7개 연구기관 대표들과 만났는데, 사전에 배포한 자료에는 있는 내용을 빼놓고 연설했다.
박 대통령이 빠뜨린 부분은 ‘한국이 중국에 경도됐다는 견해는 오해’라는 것 등이었다. 이 해프닝은 대미관계도 원활하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미군의 THAAD(고고도미사일) 배치를 놓고 한미 간에 이견이 드러났다. 이는 대중·대미를 중심으로 한 외교가 국방과 정보, 통일 등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보의 종합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의미다.
勇將임을 증명해야
운 좋다고 하는 김관진 실장은 안보의 컨트롤타워가 될 수 없을까. 한 동기생은 이런 주문을 했다.
“청와대는 그가 반평생을 보낸 군과는 문화가 전혀 다른 곳이라, 군에서 해온 방법으로는 실권을 잡기 어려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절대로 권력을 몰아주지 않는다. 그가 박근혜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과 국가안보실장을 하게 된 것은 박 대통령이 밀어줬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군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지휘 통제이듯, 안보는 원맨이 책임지고 이끌어야 한다. 유능하다는 이유로 여러 사람이 각기 제 주장을 펼치게 하면 안보는 엉망이 된다. 지금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증세를 하며 많이 움직이는데,‘안보부총리’인 그는 왜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가. 안보 수요가 급증한 이 시기에…. 이제 그는 운장만이 아니라 용장임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박근혜 정부를 살리고 그도 역사에 족적을 남기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