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암 동산이 고려대학교 학문의 전당이 된 지 올해로 80주년.
- 이에 고려대는 10월 29~30일 안암캠퍼스에서 건축·문학·음악이 어우러진 기념 콘서트를 마련한다. 색다른 문화예술의 향연이 깊어가는 가을밤의 정취에 낭만의 향기를 더할 듯하다.
당시 30대 초반의 신진 건축가 박동진은 40대의 완숙한 인촌(仁村) 김성수 선생을 만나 본관 건축 구상에 곧바로 의기투합했다는데, 두 사람은 무슨 연유로 안암동에 이 아름다운 건물을 지었을까.
인촌은 1932년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했다. 일제가 1920년대 우리 고등교육을 독점하려고 식민지 관학으로 설립한 경성제대에 대항해 교육시설과 학술연구 기능 면에서 불리한 조건임에도 민족어로 고등교육을 탐구하는 민족대학으로서의 소명을 다하고자 한 것. 인촌은 보성전문학교를 민립대학운동의 전통을 계승한 학교이자 우리 민족의 최고 학부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안암동에 학교 본관을 건립한 것은 그런 노력의 결실 중 하나였다.
당시 종로구 송현동에 있던 교사(校舍)는 규모가 매우 작았다. 건물이 두 채뿐이었는데, 조금 큰 목조건물에 교장실, 사무실, 교원실, 1학년 교실과 합동교실 등을 갖춘 정도였다. 그래서 인촌이 찾아낸 곳이 안암동의 넓은 대지였다.
仁村, 매일 공사장 나와 감독
인촌은 박동진과 3개월에 걸쳐 설계도면을 작성했다. 본관은 당시 최대 550명의 학생 수용을 예상하고 교장실 1개, 사무실 2개, 응접실 2개, 회의실 1개, 강의실 15개, 중강당 1개를 포함한 것으로 설계됐다. 이때 인촌이 1년8개월간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컬럼비아, 하버드, 예일 등 유럽과 미국의 명문대학을 둘러보면서 찍어온 사진이 참고자료로 쓰였다. 건축양식으로는 석조 고딕을 선택했다. 학교 건물의 품격에 걸맞을 것이란 인촌의 생각에서였다. 총 연건평은 1144평.
인촌은 본관 건물이 견고하게 건축되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당시 거의 매일 공사장에 나와 직접 감독했다고 전한다. 마침내 건축이 완료되고 새로운 교사로 이전하던 날, ‘재단법인 보성전문학교’라고 붓글씨로 쓴 학교 명패를 떼어 두 학생이 앞장섰고 전교생이 이를 뒤따랐다. 안국동에서 종로를 거쳐 안암동 새 교사까지의 일대 행진엔 많은 시민이 참여했다고 한다.
안암동 이전 직후인 1935년 3월 1일 현재 보성전문학교 학생 수는 법과 291명, 상과 302명 등 총 593명이었고, 교원 수는 교수 8명, 전임강사 6명, 사서 5명, 촉탁강사 21명 등 40명이었다. 80년이 지난 2014년 4월 1일 현재는 학부생 2만90명, 대학원생 9297명, 단과대학 11개, 학부 5개, 대학원 17개에 이를 만큼 괄목상대하게 발전했다.
올해 4월 15일, 본관은 준공 후 80년 만에 처음으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마쳤다. 본관 건물은 근대교육 문화를 보여주는 건축물로서 사적 285호로 지정돼 보존 대상이다. 그 때문에 지난해 5월 시작한 공사는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인촌과 박동진은 80년 후 본관이 110여 개 건물을 거느린 거대한 캠퍼스의 제1호 건물로 당당히 설 것을 예감했을까.
안암캠퍼스 80주년 의미를 새기고 자축하는 의미에서 고려대(총장 김병철)는 10월 29~30일 안암캠퍼스에서 건축·문학·음악이 어우러진 기념 콘서트를 연다. 행사 부제는 ‘요람에서 광야로.’ 송현동 시대의 교사 부지가 마치 포근한 ‘요람’과도 같았다면 고려대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해가는 드넓은 터전, 곧 ‘광야’는 광활한 안암캠퍼스임을 뜻한다.
■ 건축콘서트 : ‘건물에서 캠퍼스로’
10월 29일 오후 7시부터 20분간 백주년기념관 지하1층 원격회의실에서 열린다. 고려대 건축물의 예술적 조형미와 실용미를 고찰하고 그 역사적 숨결을 조망하며 미래 캠퍼스의 비전을 공유하기 위한 행사다. 1934년 단 한 개의 건물에서 시작해 80년 후 110여 개 건물로 구성된 캠퍼스(혹은 작은 도시)로 성장한 고려대의 물리적 환경이 형성돼온 시기별 건축 변화 과정을 현재 남아 있는 사진과 도면 등을 통해 설명한다.
“고려대의 몇몇 건물은 고려대 구성원만의 것이 아니다. 요즘 KBS 2TV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도 본관 건물이 배경으로 나온다. 아마도 많은 이에게 ‘대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자리 잡은 게 아닐까 한다.”
건축콘서트 해설자인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는 “안암동 주민과 연 수십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고려대 캠퍼스에서 독특한 정취를 느낀다고 말하지만, 정작 건물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건축콘서트를 통해 건축을 보다 더 이해하고, 캠퍼스를 잘 즐기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문학콘서트 : ‘문학에 비친 고려대학교’
10월 29일 오후 7시 20분부터 9시까지 백주년기념관 지하1층 원격회의실에서 열린다. 고려대 축시와 기념시를 비롯한 각종 행사시, 고려대의 풍물 및 캠퍼스의 정서와 추억이 녹아든 시, 고려대의 역사와 사건을 배경으로 한 수필, 콩트, 소설 등 교우들의 문학작품을 통해 고려대의 어제와 오늘을 되돌아보는 행사다.
해설자인 고형진 고려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문학평론가)와 4명의 대담 참석자인 강유정 강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및 영화평론가), 김재혁 고려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시인), 이희중 전주대 국어교육학과 교수(시인), 강연호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시인)가 문학작품을 대담 형식과 심포지엄 방식으로 고찰하며 그 속에 투영된 고려대인의 정서를 살핀다. 배경음악과 화면을 곁들인 시 낭송을 통해 작품을 청각적으로 감상하는 기회도 갖는다.
소개될 작품은 고려대의 역사를 기록한 ‘교지’ 같은 데서는 드러나지 않는 고려대 정신의 진정한 가치와 매력을 통찰한 것 위주로 선정됐다. 오탁번의 시 ‘고려대학교’, 조지훈 작사의 응원가를 개사한 ‘막걸리 찬가’, 조지훈의 시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강연호의 ‘제기동 블루스1’, 김재혁의 ‘다람쥐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작품의 저자 대다수는 고려대를 졸업했거나 고려대에서 근무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조지훈 작사의 ‘고대 응원가’를 노래로 만든 이흥렬, 오탁번 작사의 ‘응원의 노래’ 곡을 쓴 곽연같이 고려대 출신은 아니지만 고려대와 인연을 지닌 이들도 있다. 작곡가인 이흥렬은 고려대에서 객원교수를 지냈고, 서울대를 졸업한 곽연은 고려대 철학과로 편입해 졸업 후 고려대에서 정년까지 음악 강사를 지냈다.
콘서트 행사 후엔 해당 작품과 대담 내용을 묶은 기념문집도 발간할 예정이다.
고형진 교수는 “문학콘서트가 그동안 고려대가 지성의 전당으로서 꼿꼿이 간직해온 진리 추구의 자세를 돌아보고, 자유의 광장으로서 지성인들이 마음껏 펼쳤던 사회적, 정치적 상상력의 소중한 가치를 되새기며, 정의와 낭만을 동시에 추구했던 대학인의 기백과 풍류와 멋을 다시 한 번 찾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며 “대학의 세속화가 한없이 가속화하는 오늘날 대학의 본질이 과연 무엇이며, 대학은 이 땅에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음악콘서트 : ‘고려대학 사람들이 만든 명곡을 찾아서’
10월 30일 오후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인촌기념관 1층 강당에서 열린다. 이번 인천아시아경기대회 개회식 때 애국가를 부른 성악가(바리톤) 최현수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음악원 교수와 한예종 학생 및 교수들로 구성된 성악가와 연주자가 출연해 고려대 교우가 작사·작곡한 20여 개의 명곡을 연주하고 노래를 들려줌으로써 음악적 정서와 감동으로 충만한 시간을 갖는다. 또한 고려대 합창단과의 하모니도 선보이며, 류경선 고려대 교양교육실 교수와의 대담도 진행된다.
고려대엔 음악대학이 없다. 그럼에도 교우가 만든 명곡이 많다. 그중엔 창가, 동요, 애국가요도 있고, 예술가곡도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래도 있고, 지금껏 널리 사랑받는 노래도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라져간 노래도 있다. 그리고 한국 음악 발전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 노래도 있다.
음악콘서트 해설을 맡은 민경찬 한예종 음악원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창작동요의 효시인 방정환 선생의 ‘형제별’(작사), 일제치하에서 우리 민족에게 광복의 희망을 불러일으킨 이흥렬 선생의 ‘꽃구름 속에’(작곡), 애국가요라는 장르를 개척한 임학수 선생의 ‘아침해 고을씨고’(작사), 한국 예술가곡의 새 지평을 연 조지훈 선생의 ‘고풍의상’(작사), 불후의 명작 동요인 어효선 선생의 ‘파란마음 하얀마음’ ‘꽃밭에서’ ‘과꽃’(이상 작사) 등이 대표적인 예다.
국내 최고의 음악학자로 꼽히는 민 교수는 “고려대인이 만든 명곡은 콘서트 때 선보일 곡 외에도 많다. 이번엔 대중가요와 민중가요를 생략했지만, 그것까지 포함시킨다면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며, 또 다른 기회에 소개되길 기대한다”며 “명곡이 계속 탄생해 ‘음악과 고려대의 만남’이 지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려대 본관은 한국인 건축가와 민족자본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정의된다. 한 대학과 그 구성원을 넘어선 기념비적인 캠퍼스 이전은 어떤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지닐까.
문학콘서트 때 소개될 오탁번 시인(고려대 국어교육학과 명예교수, 영문과 64학번·대학원 국문학과 졸업)의 시 ‘고려대학교’를 인용, 발췌해 싣는다(고형진 교수는 이 시에 대해 “고려대 정문에 문패가 없다는 흥미로운 관찰을 통해 고려대의 특성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작품으로, 이는 고려대의 개방적, 민족적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고려대가 특정인의 대학이 아니라 우리 겨레 모두의 대학임을 고려대 구성원이 이심전심으로 느끼고 실천하는 것을 시사한다”고 평했다).
고려대학교 정문에는 문패가 없다/ 서울대학교나 연세대학교 정문에는/ 커다란 동판 문패가 구릿빛 찬란하게 붙어있어서/ 누구나 그 대학의 이름을 쉽게 알 수 있지만/ 고려대학교 정문에는 문패가 없으니/ 이 대학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것 참 이상하다 (…) 개교한 지 일백 년이 다 되는 대학교 정문에/ 동판으로 만든 문패 하나 없다니? (…) 고려대학교/ 이 무명의 콧대 높은 선비들의 갓끈/ 아침 점심 저녁 때의 우리나라 흰 쌀밥처럼/ 아무 빛깔 없으면서도 모든 맛을 다 지닌/ 고려대학교 우리 대학교 그냥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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