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성장 가도를 달리던 기업도 성장이 정체되는 시기를 맞는다. 하지만 한번 꺾인 성장세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 부활에 성공한 기업 사례들을 통해 ‘다시 성장하려면 무엇을 지켜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본다.
소니의 부침(浮沈)에서 보듯, 한때 고성장 가도를 달리던 기업도 쇠락은 불가피하다. 더구나 한번 꺾인 성장세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소니만이 아니다. 과거에 성공했던 많은 기업이 부진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지만 소수만이 부활에 성공할 뿐, 나머지 대다수 기업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그 차이는 어디에 기인할까.
많은 원인이 분석되고 회자된다. 특히 그중 과거 성공 요인에 대한 상반된 접근이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위기에 빠진 기업이 자사를 간판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강점만큼은 끝까지 붙들어야 할지, 아니면 벗어던져야 할지에 대한 찬반 논란이다. 사전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겠지만, 재기에 힘쓰거나 성장세를 이어가려는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끊임없이 받는 질문은 ‘무엇을 지킬 것인가’이다. 재기의 갈림길에서 성패를 달리한 기업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그 판단 기준에 대한 단서를 찾아보고자 한다.
스톨 포인트와 역성장
과거 50년간 포춘(Fortune) 100대 규모 기업들의 매출 추이를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매출이 상당히 둔화되기 시작하는 성장 한계점이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른바 ‘스톨 포인트’이다. 기업생태학에 따르면, 기업도 생물체와 같아서 성장과 쇠락의 과정을 되풀이하다 결국 소멸에 이르게 된다. 성공 기업도 예외가 되기는 어렵다.
더 주목할 만한 사실은 스톨에 빠진 기업의 절반 이상이 스톨 이후 10년 이내 2% 미만의 저성장 내지 역성장을 경험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10년 이내 저성장에 빠진 기업 중 열에 아홉은 장기적으로 쇠퇴 및 소멸의 길을 걸었다. 스톨 이전의 높은 성장률을 회복한 기업은 11%에 불과했다.
크게 성공한 기업일수록 회복이 어려운 이유는 성공 체험이 축적된 기업일수록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 패턴에 안주해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데 있다. 조직이론의 대가인 제임스 마치 교수가 말한 ‘성공의 함정(Success Trap)’, 즉 조직관성(Inertia)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소비자 니즈나 외부 환경이 급변했는데도 이전의 성공 방정식과 핵심역량에만 집중하다 위기를 맞는 상황을 말한다.
이는 성공 기업을 서서히 몰락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재기를 어렵게 만드는 주요 방해물로 작용한다.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최초로 개발해놓고도 단기적 이윤을 위해 주력인 필름사업에 집착하다 결국 후발 기업에 밀려 시장지배력을 상실한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피처폰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장을 외면하다 추락을 거듭한 것도 성공의 자만심으로 과거에 안주하려는 관성이 혁신을 더디게 한 대표적 사례다.
그렇다고 변화 그 자체가 재도약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성급한 변신을 추구하다가 과거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자신만의 존재 이유에 소홀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워크맨 신화로 시작해 가전업계의 대표기업이 되었던 소니의 추락 과정이 이에 해당한다. 탄탄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IT하드웨어의 강자로 군림하던 이 회사는 단단함 내지 내구성으로 대표되는 제조사로 소비자에게 각인돼 있었다. 이것이 바로 소니의 정체성인 ‘소니다움’이었다.
성공 가도를 줄곧 달려와 자신감이 넘쳤던 것일까. 소니는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 하드웨어 기술력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하에 너무 서둘러 콘텐츠 사업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1995년 소니의 4대 회장인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은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에도 강한 기업을 목표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소니의 강점 분야였던 TV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은 뒷전으로 밀렸다. LCD나 PDP 등은 외부에서 충분히 조달 가능하다고 판단해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를 등한시하고 투자 시기도 놓쳐버렸다. 대신 미국 컬럼비아픽처스와 유니버설 스튜디오 인수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분야의 성과가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자 재무 상황이 급격히 악화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하드웨어의 진화는 빠르게 일어났지만 자금 압박으로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 축소가 불가피했다. 결과적으로 소니는 자부심이던 ‘기술력’까지 상당부분 잃게 됐다. 고객에게 소프트웨어를 덧붙여 새로운 소니로 인정받기도 전에 제조사로서 소니다움을 놓쳐버렸다. 이제는 고객의 마음속에 ‘이전과 다른 소니다움’으로 자리 잡아야만 부활이 가능한, 힘겨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과거 성공 요인이 재기의 버팀목이 돼준 기업들이 있다. 품질경영으로 대표되는 도요타, 애니메이션의 시작을 상징하는 디즈니, 장난감 블록 하면 떠오르는 레고, 자신만의 디자인 철학을 고수하는 애플 등이 대표적 사례다. 한때 업계를 대표하는 성공 기업으로 영예를 누렸던 이 기업들은 쇠락의 위기를 자사만의 존재 이유와 강점을 기반으로 극복했다.
무엇을 지킬 것인가
몰락의 길로 들어선 기업은 당장의 생존에 급급해 비용과 불어난 몸집을 줄이려서두르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지속성장에 없어서는 안 될 성공 요인마저 자칫 잃어버리기 쉽다.
위기에 빠진 기업들이 우선적으로 취하는 활동은 비용절감과 사업 구조조정이다. 성장은 고사하고 일단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부터 대폭 절감한다. 고도 경제성장 시절 일본의 최대 자동차업체로 부상했던 닛산은 1990년대 중반부터 판매부진 등으로 2000년 한 해 적자가 62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그러나 ‘코스트 커터(Cost-Cutter)’라는 별명을 가진 카를로스 곤을 CEO로 영입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함으로써 적자 공장을 폐쇄하고 계열사 및 부품 메이커를 매각하고 나서야 닛산의 회생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용절감이 강도 높게 이뤄졌다고 해서 곧바로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는 건 아니다. 기업 위기의 핵심 중 하나는 고객이 떠나는 것인데, 결국 고객 니즈를 반영한 혁신이 수반돼야 한다. 1990년대 초반 수십억 달러의 적자에 허덕이던 IBM은 단순히 비용절감 및 구조조정에만 그치지 않고 고객이 진실로 원하는 기술과 서비스를 가능한 한 신속하게 제공할 수 있는 회사로 변신을 시도했다. IBM은 하드웨어 중심의 회사에서 IT서비스 회사로 완전히 탈바꿈해 되살아날 수 있었다.
반면 추락한 HP는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추진한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창업자 빌 휴렛의 인본주의 경영철학이자 이 회사 성공의 근간을 이룬 ‘HP Way’마저 흔들리면서 재도약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제는 레노버에 밀리는 신세가 됐다.
비용절감? 그 이상의 것!
비용절감과 사업 구조조정의 처방만으로 재기가 어렵다면, 근본적으로 어떤 방향의 혁신이 필요할까. 더구나 섣부른 혁신이 오히려 쇠락을 가속화할 수 있는 위험 속에서 과거 성공 기업의 면모를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을 지켜야 하며 어떻게 이를 판단할 수 있을까. 기업 특유의 정체성, 미션에 대한 자문으로부터 해답을 찾은 기업들을 차례로 살펴보자.
① 창업 정신으로 복귀한 도요타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로 승승장구하던 도요타도 위기를 피해갈 순 없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어 2010년 차량 안전 결함에 따른 1000만 대 규모의 리콜 사태, 거기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의 악재 속에 추락했다. 외부적 요인도 있었지만 도요타의 자존심인 품질에도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재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도요타는 창업 이래 최대 실적이자 전 세계 자동차 업체 판매량 중 최고 기록인 998만 대를 판매하며 부활의 날개를 완전히 펼쳤다. 때마침 엔저 환율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지만, 재기의 주요 동인은 ‘품질경영’이라는 창업정신으로의 복귀에서 찾을 수 있다. 위기의 원인을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도요타 경영진은 자신들이 성공에 도취해 ‘품질’이라는 가치 대신 생산대수 같은 가시적인 성과에 과도하게 집착해왔음을 인정했다.
일차적으로, 부품을 더 규격화하고 관리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심지어 건물 엘리베이터 운행 시간까지 단축하는 고강도의 비용절감 노력이 있었다. 근본적으로는 소비자가 원하는 안전한 차를 만드는 게 ‘도요타다움’이라는 미션을 다시금 강조하며 모든 경영활동을 품질이라는 가치 중심으로 재정렬한 결과다. 이를 입증하듯, 향후 3년간 신규 공장을 증설하지 않겠다는 회사 방침에도 기존 공장의 생산효율성 제고를 통해 확대된 생산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한다.
② 다시 ‘브릭’으로 돌아온 레고
‘재미있게 놀다’라는 뜻의 덴마크어 ‘leg godt’에서 회사 이름이 유래한 레고는 아동용 완구의 대명사로 수십 년간 성장을 거듭해 2000년까지만 해도 세계 5위의 완구 회사로 성장했지만 2003년에 이어 2004년 대규모 적자에 빠졌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다음 해 실적 전환에 성공해 지금까지 승승장구한다. 급기야 올해 상반기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 장난감 회사에 올랐다.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레고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 액션 피겨나 비디오 게임 같은 분야에 진출해 시장점유율을 높이려 했다. 아이들이 점차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몇 시간이고 끈기 있게 브릭 쌓기를 하는 어린이들에게 얽매여서는 경쟁에서 밀릴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새로운 제품 라인을 확대했다. 미소를 머금은 노랑머리 캐릭터 대신 2000년대 초반 나온 레고의 상징은 미군 복장에 험상궂은 얼굴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기존의 핵심 고객층인 아이뿐 아니라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레고를 사주던 부모도 떠나기 시작했다.
레고가 이 위기에서 그토록 빨리 반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애초의 존재 이유에서 해답을 찾았기 때문. 미래를 만들어나갈 아이들이 좋아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어 성공한 회사임을 다시금 깨달은 것이다. 레고는 분명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놀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레고 놀이에 기꺼이 전념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더구나 레고를 가지고 놀던 꼬마들은 자녀를 둔 부모가 됐고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 손에 다시 레고 브릭을 쥐여주게 된다. 물론 성인이 된 후에도 레고에 정열을 불태우는 어른도 많다. 이러한 레고의 정체성은 회사 로고를 가려도 알 수 있는 핵심 역량인데 스스로 이를 없애려고 애썼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매출과 수익을 더 올릴 수 있을지 대신에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에게 영감을 준다는 미션에 도움을 줄지의 관점에서 제품 전략을 대폭 수정하고 나서야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③ 애니메이션에 올인한 디즈니
지난해 겨울 전 세계 어린이는 물론이고 어른 마음까지 사로잡은‘겨울왕국’의 대성공으로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왕국의 위상을 다시 확인했다. 디즈니의 역사에도 암흑기가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핵심 자산을 회복함으로써 지속성장을 누리게 됐다.
1923년 설립 이래 디즈니는 명확한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성장해왔다. “만화영화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역량을 개발해 캐릭터와 이미지를 지원함과 동시에 가치를 끄집어낼 수 있는 만화책, 테마파크, 음악 같은 엔터테인먼트 자산을 모아 가치 창출로 성장을 지속한다”고 창업자 월트 디즈니가 일찍이 규정해놓았다.
이는 경영전략 분야의 프라할라드 교수가 주장한 ‘지배적 논리(Dominant Logic)’와 일맥상통한다. 사업에 대한 복잡한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게 해주는 단순화된 원리나 규칙을 당대와 후대의 경영자에게 제공해 전략 실행을 촉진할 수 있다. 특히 이 지배적 논리는 사업 영역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방향타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회사는 어떻게 가치를 창출하는지에 대한 일관성 있는 비전맵을 기반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창업자 사후, 확장된 사업들이 애니메이션이라는 핵심 역량에서 점차 벗어나면서 디즈니는 위기를 맞는다. 영화 수익은 감소하고 디즈니랜드의 입장료 수익도 정체되고, 캐릭터 인기가 차츰 시들해지면서 캐릭터 라이선스 로열티도 떨어졌다.
1984년 해체까지 거론되던 디즈니의 CEO로 부임한 마이클 아이스너는 위기의 타개책으로 월트 디즈니가 1957년 고안한 비전맵을 중심으로 핵심 자산인 애니메이션에 다시 집중했다. “만화영화에 올인하라!”는 사업 전략으로 ‘인어공주’(1989)를 성공시킴으로써 디즈니는 암흑기를 마감하게 된다. ‘미녀와 야수’(1991), ‘라이온 킹’(1994), ‘뮬란’(1998) 등의 연이은 히트로 4%까지 곤두박질쳤던 박스오피스 점유율도 10년 사이 19%까지 상승했다. 이는 다시 주인공 캐릭터 라이선스 증가, 음악 및 비디오 판매 증가, 테마파크 수익 증가로 이어져 1940년대 디즈니 황금기를 재현했다. 이후 다시 위기가 있었지만 최신 애니메이션 트렌드의 강자인 픽사와 마블, 루카스필름 등 콘텐츠 업체들에 대한 M·A로 핵심 자산을 회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④ Designed by Apple
아이팟과 아이폰으로 ‘그들이 만들면 문화가 된다’는 명성을 얻은 애플이지만, 1996년과 1997년에 각각 13억8300만 달러와 10억7000만 달러의 순손실로 파산 지경에까지 몰렸던 회사다. 한때 매킨토시로 명성을 날리던 애플이 이 위기를 극복하고 거듭난 것은 혁신의 중심축을 PC와 기술에서 고객 중심으로 과감히 바꾸면서부터다. 스티브 잡스가 창업 초기부터 가졌던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디자인을 최우선 고객 가치로 하는 애플의 정체성을 더 공고히 했다. 즉, 자사의 PC와 기술에 대한 자만심에서 자칫 빠지기 쉬운 ‘관성’을 버리고 동시에 고객이 기대하는 자사만의 독특한 가치인 디자인 철학의 ‘일관성’을 고수했기에 애플이 되살아날 수 있었다.
물론 과거에도 애플은 혁신적인 기업이었다. ‘애플 II’라는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었고, 마우스나 USB를 보편화한 주인공이다. 그러나 과거 애플의 혁신은 최고 사양의 기술과 절제된 고급 디자인으로 무장한 제품에 치우쳤다. 일부 마니아층에는 어필할 수 있었지만,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해 위기에 내몰리게 됐다. 잡스 이후 애플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슈퍼경영자들은 구조조정과 가격인하, 오픈 시스템으로의 변경 등을 시도했지만 애플을 살려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애플을 떠나 컴퓨터 회사 넥스트(NeXT)를 세운 잡스는 여전히 훌륭한 기술로 최첨단 컴퓨터를 만들면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결과적으로 넥스트는 정육면체의 멋진 디자인에 고성능이었지만 고작 5만 대밖에 팔리지 못한 상업적으로 엄청난 실패작이었다.
잡스가 애플의 CEO로 복귀한 2000년대 초부터 기술 중심의 혁신보다는 시장 지향적 혁신에 무게 중심을 두었다. 기존의 맥 마니아를 위한 전문가용 고가 중심에서 일반 대중을 위한 ‘아이북’과 500달러의 ‘맥미니’까지 다양하고 저렴한 제품 라인으로 폭넓은 고객층을 끌어안으려 했다. 기술 자체보다는 고객 가치 혁신을 통해 아이팟, 아이폰의 연이은 성공을 거두고 회사 이름도 아예 ‘컴퓨터’를 버리고 간단하게 애플(Apple Inc.)로 줄였다. 애플다운 디자인을 여전히 혁신의 중심에 두었다. 애플의 부활 사례를 통해, 위기의 순간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고수할지에 대한 판단은 그 무엇이 고객이 해당 기업에 그것을 통해 차별적 가치를 느끼고 수용할 만한 것인지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관성과 일관성 사이
재기에 성공하려는 기업이 과거의 성공 요인을 끝까지 고수해야 하는지, 아니면 버려야 하는지에 대한 선택은 직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 이유가 약화됐음에도 과거 패턴에 안주한다면 부활은 고사하고 생존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반면 앞서 소개한 기업들은 각각 품질, 브릭, 애니메이션, 디자인을 통해 자신을 대표하고 고객도 공감하는 ‘자기다움’과 ‘존재 이유’를 되찾으며 성장세를 회복한 사례다.
관성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애초의 존재 이유가 여전히 유효한지를 자문해봐야 한다. 신시아 몽고메리 하버드대교수는 저서 ‘The Strategist’에서 “전략이란 기업에 유리한 포지션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고정된 것으로 생각할 수 없으며, 발전하고 움직이고 변화하는 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 자신만의 강점이나 존재 이유가 희석돼 시장에서 보편화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면 또 다른 차별화의 길을 나서야 할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전략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기업의 목적이 경쟁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중요한 차별성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속성장을 꿈꾸는 성공 기업은 과거 성공 요인의 관성과 일관성 사이에서 더 나은 가치를 줄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매력적일지라도 자신의 존재이유가 유효하지 않은 사업들에서 철수하고 나머지 4대 사업으로 성장을 이어나가는 지멘스가 좋은 예다. 2000년대 중반 기업을 최대 위기에 빠뜨렸던 부패 스캔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외형적 성장을 이어가기보다는 고객 가치 관점에서 냉철한 자기 성찰을 우선시한 결과다.
“우리 기업이 사라지면 세상에 구멍이 생기고, 우리 기업을 대신할 다른 기업을 찾지 못한 고객이 우리를 그리워할까?”
이 질문으로부터 우리 기업이 세상에 필요한 차별적인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일관되게 가져가야 할 것은 무엇이며 떨쳐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