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금오공대 캠퍼스에 산학융합지구
- 학교 운동장 터에 경찰서 이전 결정
- 대학, 학생, 시민단체 반발…경찰은 강행
옛 금오공대 캠퍼스 운동장 터.
구미시 신평동 옛 금오공대 캠퍼스 터 9만432㎡.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현대식 건물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이곳은 국립 금오공대가 2005년 1월 구미시 양호동 새 캠퍼스로 이전한 뒤 국유재산으로 남았다. 구미시는 2011년 이 중 3만5000여㎡를 매입해 모바일융합기술센터, 구미시종합비즈니스지원센터, IT의료융합기술센터, 3D융합기술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이와 연계해 금오공대, 경운대, 구미대, 영진전문대는 옛 금오공대 캠퍼스 터 4만여㎡를 20년 무상 임차해 대학과 기업이 함께 배우고 일하고 휴식하는 산학융합지구(QWA 밸리)를 조성한다. 이 계획에 따라 교육관, 기업연구관, 평생교육원 등이 세워지고 있다. 또 경북산학융합본부도 이곳에 들어왔다. 최근 건물들이 완공되면서 4개 대학 관련 학과들이 통째로 옮겨오는 방식으로 학생 510여 명이 이곳에 상주하고 있다. 또 21개 기업도 입주해 1600여 명이 활동중이다.
구미지역 업계에 따르면 옛 금오공대 캠퍼스 일대는 미국의 실리콘밸리 같은, ‘금오테크노밸리’라는 연구거점지구로 변모한다. 여러 대학과 기업이 이곳에서 어우러져 미래의 먹을거리가 될 만한 고부가가치 기술·상품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이곳에 들어간 국책사업비는 4270억 원이다. 구미공단 입주업체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가 내건 ‘창조경제’의 대표 모델이 금오테크노밸리”라면서 “침체된 대구·경북 경제를 살릴 미래 성장동력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생뚱맞은 발상”
그런데 옛 금오공대 캠퍼스 터의 나머지 땅 1만4000여㎡의 활용 방식을 놓고 파열음이 나온다. 취재진이 현장에 가보니, 이 땅은 이미 건물들이 올라간 산학융합지구와 붙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땅은 옛 캠퍼스의 운동장 터고 산학융합지구는 이 운동장을 병풍처럼 둘러싼 대학건물들이 있던 자리므로 두 곳은 경계를 나누기 어려운 하나의 땅으로 비쳤다. 운동장 터와 산학융합지구는 도로에서 들어오는 입구도 함께 쓴다.
최낙렬 금오공대 교수회장은 “대학 캠퍼스 터가 산학융합지구로 탈바꿈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입주 기업들과 대학들로선 당연히 자기들이 운동장 터도 사용하는 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금오공대는 2013년 8월 이 터의 사용승인을 교육부에 신청했다.
반면 경찰은 이 터에 구미경찰서를 신축하고자 했다. 경찰이 사용승인을 요청한 시점은 금오공대가 사용승인을 신청한 뒤었다. 이 터의 처분권을 가진 기획재정부는 9월 5일 구미경찰서에 사용을 승인했다. 부동산등기부상 이 터의 소유권도 경찰로 이전됐다. 기재부가 경찰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구미지역 관련 업계, 대학, 시민단체에선 “정부가 창조경제를 한다면서 발등을 찍었다”는 반응이다. 이상재 경북산학융합본부 원장은 “산학융합지구엔 식당이라든지 휴게소 시설은 있는데 체육시설은 없다. 이 터가 운동장으로 남아 학생들과 근로자들이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 경찰서가 들어오면 어떤 문제가 있나.
“산학융합지구와 경찰서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더구나 운동장 터가 경찰서 부지로 쓰기엔 좁아서….”
▼ 경찰은 건축에 문제가 없다는 시각인 것 같다.
“경찰서 건물을 높이 올려야 한다. 주변 연구단지 위로 경찰서가 우뚝 서는 거니까 학생이나 연구하는 사람들로선 참 답답할 것 같다. 일반 시민도 ‘연구단지에 왜 경찰서를 집어넣나. 이상하다. 맞지 않다’고 말한다.”
▼ 운동장은 연구와 직접 관련된 용도는 아니지 않나.
“학생들과 기업체 직원들의 처지에선 가끔 운동도 해야 하고 최소한의 문화공간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배우고 연구하고 쉬는 정주(定住) 공간이 되어야 효율이 높아진다.”
▼ 정부가 이미 경찰서 사용 승인을 했는데.
“정부, 정치인, 지자체의 의지에 따라선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으로 안다. 경찰서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 된다.”
한 구미지역 업계 관계자는 “기재부가 편의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안다. 구미경찰서를 이전하고 그 토지를 팔아 빨리 국고에 편입하려고. 거기가 땅값이 좀 더 비싸니까….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혜택은커녕 도로 뺏어”
구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600여 명이 상주하는 교육연구복합단지 안에 경찰서를 이전하겠다는 것은 생뚱맞은 발상이다. 활용도가 낮은 공원과 구미경찰서를 교환하면 갈등 당사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했다.
최근 금오공대는 경찰서 이전 대상부지로 검토된 공원부지의 지주 매매 동의서를 받아 구미시와 시의회에 대체부지 확보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구미시의회 지역구 시의원을 부정적 입장 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핵심기관이 뒷짐을 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금오공대 학생들은 양호동 새 캠퍼스가 넓고 쾌적해서 금오테크노밸리로 학과를 옮기는 것을 내심 꺼렸다고 한다. 결국 산학융합이라는 좋은 취지를 살려야 한다는 차원에서 광시스템공학과와 메디컬아이티융합학과가 가는 것으로 결정 났다. 학교 측도 두 집 살림을 하는 것이라 예산이 훨씬 많이 든다고 한다. 금오공대 교수회는 “산학융합사업이 시작될 때부터 (운동장 터는) 마스터플랜에 포함돼 있었고 기획재정부의 권고로 사용 시기가 닥치는 시점에 사용 승인을 요청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낙렬 금오공대 교수회장은 “나라에서도 산학융합이 필요하다고 하니 우리가 조금 희생하는 차원에서 참여했다. 없는 운동장이라도 만들어줄 줄 알았는데 경찰서로 쓰겠다고 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요즘 구미의 공장이 수도권으로, 해외로 빠져나간다. 젊은이들도 공단을 떠난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을 산학융합지구로 보내기로 한 거다. 거기서 기업과 같이 배우고 연구하다보면 공단에 끈이 생길 것이고 안착할 것이라고 봤다. 공단의 직원들도 직장과 배움터가 함께 있으면 일에 도움이 되고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여겼다.
우리 처지에선 학과를 통째로 옮기는 것이므로 산학융합지구를 교육기관, 즉 학교로 본다. 학교엔 운동장이라든지 문화시설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체육활동이나 문화활동을 새 캠퍼스까지 가서 할 순 없지 않나. 20년 동안 쓸 목적으로 산학융합지구를 조성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학생과 연구자가 끊임없이 유입될 만한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융합이 대세라지만…
구미지역 업계 일각에선 향후 금오테크노밸리로 대기업이나 외국기업을 유치하려면 유휴 토지를 남겨둬야 한다고 본다. 당장 이곳에서 대학생활을 보내야 하는 학생들은 정부와 경찰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정지원 금오공대 총학생회장은 “학생들은 경찰서가 산학융합지구 내 운동장 터에 들어오는 것에 강하게 반대한다”고 말했다.
▼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학교에 운동장이 없는 게 이상하다. 거기엔 체육 공간이 전무하다. 학교는 공부나 연구만 하는 곳이 아니며 인성도 함양하는 곳이다. 경찰서와 맞지 않다.”
▼ 반대 의사를 전달했나.
“기재부에서 시위도 해봤지만 안 만나 주고 불통이다.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왜 거기 경찰서를 둬야 하는지 설명도 별로 없다. 대통령이 미래 산업을 육성하라고 했고 학생들이 설득돼 거기로 가기로 한 것인데 혜택은커녕 도로 뺏고 있다.”
정부와 경찰은 예정대로 경찰서 신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사용 승인을 해줬기 때문에 그 결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미경찰서 관계자는 “확정됐다. 국가사업으로 정해져 예산을 배정받았고 등기 이전됐고. 현재 설계용역을 줬다. 더 왈가왈부할 필요 없다”고 했다.
요즘 융합이 대세인 건 맞지만, ‘산학융합지구와 경찰서의 융합’은 어떻게 봐야 할까. 기재부는 부동산테크를 위한 ‘신의 한 수’라고 자평할지 모른다. 반면 연구자들은 “헐~”이라는 반응이다. 박근혜식 창조경제의 진정성이 이곳 금오테크노밸리에서도 시험대에 오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