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국인 출입이 허용되는 카지노, 일명 ‘오픈카지노’ 논란이 뜨겁다. 인천, 부산 등은 사실상 도입을 선언했다. 해외로 유출되는 카지노 자금을 끌어들인다, 대규모 해외 카지노 자본을 유치한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오픈카지노가 허용될 경우 도박중독 등 사회적 비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우리나라엔 17개의 카지노가 있다. 이 가운데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이른바 오픈카지노는 강원랜드 한 곳뿐이다. 서울, 부산, 대구, 제주에 산재한 나머지 16개는 모두 외국인 전용시설이다. 강원랜드는 2013년 1조2790억 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는 16개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전체 매출 규모(1조3684억 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강원도 산골이라는 지리적 약점을 감안하면 내국인 출입 여부가 카지노 실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짐작할 수 있다.
“10조 투자할 테니 허용하라”
강원랜드는 폐광지역 경제를 살리려는 목적으로 마련된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폐특법)을 근거로 해 만들어졌다. 폐특법과 관광진흥법엔 “2025년 말까지 내국인이 입장할 수 있는 카지노 영업장은 폐광지역 한 곳(강원랜드)만 허가한다”고 명시돼 있다. 법을 바꾸지 않는 한 오픈카지노 신규 허가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오픈카지노 도입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경기 부양에 목을 매는 정부와 지자체가 이를 부추긴다. 카지노를 유치해 침체된 지역경제를 단번에 일으켜 세우고픈 욕망 때문이다. 때마침 MGM, 시저스, 샌즈 같은 세계적인 카지노 기업들이 서울, 인천, 부산 등에 추파를 던졌다. 이들 카지노 기업은 우리 정부와 지자체에 “거액을 투자할 테니 내국인 카지노의 빗장을 열어달라”고 요구한다.
다른 한편에선 오픈카지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갈수록 커져간다. 카지노 수익금의 해외 유출, 도박중독 같은 사회적 폐해를 우려한다. 강원랜드 관계자는 “카지노를 통한 외자유치를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데, 외국 카지노 기업이 국내 오픈카지노에서 벌어들여 해외로 유출할 수익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그 규모는 해외로 빠져나가는 국내 도박자금의 수십 배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카지노 기업들이 한국 진출을 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카지노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중국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카지노와 관련된 몇 가지 규제만 풀린다면 한국이 지리적 여건상 마카오나 싱가포르에 뒤질 게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들 기업 대부분이 겉으로든 속으로든 내국인 출입이 허용되는 오픈카지노 허가를 요구한다는 게 문제다. 큰돈은 중국인에게서 나오지만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선 국내 고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오픈카지노 논란에 제일 속이 타는 건 강원랜드다. 강원랜드 측은 “폐광지역 경제 지원이란 강원랜드의 설립 목적이 달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픈카지노 도입이 논의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애덜슨 회장은 부산에도 비슷한 제안을 했는데 투자 규모는 6조~7조 원이었다. 부산시는 애덜슨 회장이 다녀간 뒤부터 노골적으로 오픈카지노 도입을 주장했다. “1000만 원 이상의 보증금을 맡긴 내국인만 출입을 허용하면 도박중독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논리도 만들어냈다. 부산시 관계자는 “오픈카지노 허용에 따른 부작용보다 대규모 외국인 투자 유치라는 긍정적 효과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시저스 한국 진출의 의미
오픈카지노는 아니지만, 해외 카지노 기업의 국내 진출은 올들어 물꼬가 터졌다. 인천시가 세계적인 카지노 기업 시저스에 카지노 사업권을 허가한 것. 시저스는 그동안 한국 진출에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저스는 경쟁사인 MGM, 샌즈와 달리 라스베이거스보다 7배나 큰 마카오에도, 설립 4년 만에 라스베이거스 규모로 성장한 싱가포르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그래서 시저스는 한국을 아시아 진출의 마지막 교두보로 여겨왔다.
시저스가 허가받은 카지노는 외국인 전용시설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시저스의 한국 진출이 오픈카지노 허용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외자 유치를 기대하는 정부와 인천시, 오픈카지노를 바라는 카지노 기업의 이해관계가 어느 지점에선가 만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로 배국환 인천시 정무부시장은 사견임을 전제로 “경제가 살아야 지방세도 많이 걷힌다. 인천 경제를 살리려면 관광산업이 발전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오픈카지노가 들어와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오픈카지노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경제 활성화 외에도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 등 해외 카지노로 도박자금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도박산업이 가져오는 사회적 비용이 더 크다고 반박한다. 오픈카지노가 도입될 경우 국가 경제에 미칠 부작용과 사회적 비용은 수치로도 나와 있다. 국무총리실 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지난 2월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도박중독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사회적 비용은 연간 78조 원에 달하는데 그중 상당부분이 카지노에서 발생한다는 것. 샌즈가 서울에 투자하겠다고 한 금액의 8배에 가까운 규모다. 오픈카지노 반대론자인 전종설 이화여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도박중독자의 실직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나 치료비용 같은 직접비용은 차치하고, 도박중독자로 인한 가정 파괴 등으로 발생하는 간접비용은 규모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78조 원이 넘는 피해가 예상된다. 인천이나 부산처럼 접근성이 좋은 곳에 오픈카지노가 생기면 강원랜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외자 유치라는 기준으로만 이 문제를 봐선 안 된다. 싱가포르의 경우 카지노를 허가하는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국민적 반발을 어느 정도 무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관련해 사회적 합의를 얻어내려는 노력이 전혀 없다. 지자체와 정부가 경제적 필요성만 앞세워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식이다.”
오픈카지노 도입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가장 속이 타는 건 강원랜드다. 인천·부산처럼 접근성이 좋은 곳에 내국인 카지노가 들어설 경우 커다란 타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 강원랜드 측은 “폐광지역 경제 지원이라는 강원랜드의 설립 목적이 아직 달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픈카지노 도입이 논의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강원랜드 “역차별받고 있다”
강원랜드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인근 시·군의 시각도 비슷하다. 최경식 정선·고한·사북·남면지역살리기 공추위원장은 “강원랜드는 그동안 매출의 일정 부분을 폐광지역 지원에 썼다. 하지만 폐광지역이 경제적 자립 능력을 충분히 갖추기 전에는 강원랜드의 존립 기반이 흔들려선 안 된다. 만약 오픈카지노 도입이 공식적으로 논의된다면 모든 힘을 다해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랜드는 현재 연 순이익의 25%(1000억~1200억 원)를 폐광지역 경제 지원에 쓴다. 강원랜드가 폐광지역에서 고용을 창출하는 효과도 크다.
이경우 강원랜드 홍보팀장은 “강원랜드는 현재 고객 유치, 광고·선전 등 마케팅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지리적인 제약 외에도 이런 규정 때문에 해외 카지노와의 경쟁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라며 역차별 문제도 거론했다. 이 팀장은 “정부가 강원랜드에 대해 규제 일변도의 정책만 쓰는 것은 부당하다. 강원랜드가 도박중독과 같은 부작용은 줄이고 내·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을 수 있는 레저 공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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