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은, 고양이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갖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썼다.
- 고양이가 는 것은 자신만의 ‘내면 공간’을 갖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 아닐까. ‘내밀한 감정’이 다치지 않는 ‘나만의 공간’을 어떻게 찾을까.
오랜 습관이다. 국도변을 달리다 낡고 오래된 휴게소가 있으면 차를 세운다. 안에 들러 담배 한 갑 사고, 밖에 나와 자판기 커피를 뽑는다. 날씨가 흐려 잿빛이 들판에 물들어 있으면 차를 그 방향으로 세워두고, 의자를 조금 뒤로 젖힌 후, 미지근한 믹스 커피가 완전히 식어버릴 때까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잿빛 들판이 어둠으로 물들 때까지,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을 지켜본다. 그런 습관으로 춘천에서, 포항에서, 순천에서, 서산에서, 파주에서, 황량한 들판을 한참 응시하곤 했다.
지금은 지리산을 넘어 임실로, 다시 거기서 전주를 거쳤다가 서울로 올라가는 길. 지리산의 옛길을 넘어 달리다가 국도변 일대가 거의 쇠락해 이렇다 할 쉴 곳도 여의치 않은데, 간신히 낡은 휴게소 하나 발견해, 미지근한 커피 한 잔을 잠깐 입에 댔다가 녹슨 의자 위에 커피 종이컵 올려놓고 들판 저 먼 곳을 바라보는 중이다. 산야는 곧 어두워질 기세다.
왜 고양이가 늘었을까?
다시, 오래된 신문을 심드렁하게 훑어본다. 낡은 휴게소의 간이 벤치 위에 놓여 있던 것인데, 구독해 읽기보다는, 무슨 잡동사니를 싸기 위해 활용했다가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듯한 것이었다.
‘고양이가 늘고 있다’는 기사, 다시 생각해 본다. ‘그래, 그렇기는 하지, 길고양이 천국이 된 지 오래인 듯, 내 사는 아파트 단지의 지하 기계실 입구는 한겨울 매서운 추위를 피하려는 고양이 식구들의 안식처였지’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친김에 기사를 마저 읽고 검색도 해보니, 과연 고양이가 많이 늘었다.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가 2012년 말 발표한 ‘동물 보호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다섯 가구 중 한 가구는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운다. 전국 17.9%, 약 359만 가구, 인구로 환산하면 1000만 명가량, 개체 수는 개가 440만 마리, 고양이는 115만 마리다. 최근 추세는 고양이 급증이다. 2013년 9월 6일, 농림수산식품부가 한국사회경제연구원에 조사 의뢰한 결과에 따르면, 집고양이의 수는 2006년 47만 마리, 2010년 62만 마리, 2012년에는 115만 마리로 급증했다.
관련 산업도 급신장 추세다. 인간 육아 관련 시장은 2012년 기준으로 2조6600억 원대. 의류가 1조6500억 원으로 60% 좀 넘고 기저귀 4600억 원, 분유 4000억 원, 유아스킨케어·수유용품 1500억 원 등이다. 이 중 인간의 생장 특성에 따라 구입하는 ‘의류’ 항목을 제하고 계산하면 1조 원 정도. 옷을 ‘거의’ 사 입히지 않는 반려동물의 시장 규모 역시 2012년 기준으로 약 9000억 원, 곧 1조 원이다. ‘의류’ 특성을 제하고 보면, 인간 육아와 반려동물 시장 규모가 비슷하다. 저출산과 반비례하는 반려동물 산업 성장에 따라 곧 뒤바뀔 수도 있다.
신문은, 젊은 ‘애묘인’이 늘었다고 쓴다. 2012년 말 통계청 발표 ‘한국의 사회동향 2012’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1인 가구 비율은 23.9%. 1990년 9%, 2000년 15.5%에 비해 크게 늘었다. 이에 반비례해 4인 가구 비율은 줄었다. 1990년 29.5%, 2010년 22.5%다. 이 1인 가구 집에 고양이가 들어간다. ‘G마켓’이 2013년 1월 1일부터 10월 21일까지 반려동물 용품 구매자를 분석한 결과 여성과 남성 비율이 각각 78%, 22%다. 가장 높은 비중(33%)을 차지하는 것은 30대 여성이다. ‘11번가’의 반려동물 용품 구매자 분석에선 같은 기간 30대가 45%로 나타났다.
왜 그럴까. 왜 고양이가 늘고 젊은 애묘인도 늘까. 짐작해 보니, 고양이는 개에 비해 외로움을 덜 타고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 강아지에 비해 잔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홀로 견디고 버티는 동물이다. 그래서 대도시 20~30대가 선호한다. 그들의 현재적 삶과 겹치는 상황이다. 핵가족화 및 1인 가구 급증, 반려동물 인구 증가, 집고양이 급증 등은 서로 맞물린 현상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들판 저 너머를 바라본다.
국도변의 풍경
지리산 굽이굽이 옛길은 거의 폐쇄된 지역 같았다. 오래된 그 길을 대신해 시원스레 19번 국도가 뻗어 있고 또 그 위로 여수엑스포로 인해 연장 확장된 직진의 완주·순천 고속도로가 쾌주의 차량들을 떠받치니, 지리산 옛길은 인근 주민 말고는 거의 이용하는 사람이 드물다.
지리산 중턱의 거대한 휴양 시설은 공사가 중단돼 흡사 프란시스 고야의 그로테스크한 그림에 나오는 괴신처럼 산중에 버티고 서서 수십 개의 퀭한 눈으로 산의 위와 아래를 응시한다. 그 옛날에 굽이굽이 길 오르던 차량들이 잠시 쉬어 가던 휴게소도 기능을 다해 아예 출입구조차 폐목재로 단단히 막혔다. 간이식당들, 선물가게들, 주유소들도 길의 운명이 쇠한 탓인 듯 더 이상의 영업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문을 닫았다. 경치 좋은 곳을 바라보며 서 있던 모텔들도 오래된 사랑의 흔적마저 다 지운 채로 낡은 흉가로 변해간다.
그 길을, 그 길가의 쇠락한 건물들을 보면서 한참을 달리다가, 오히려 나는 문득 이러한 풍경이 주는 느닷없는 황량함의 기운을 못 이겨 겨우 낡은 휴게소 한 곳을 발견해종이컵 커피 하나 들고 서푼어치 감상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런 쇠락한 도로, 이렇게 기울어져 가는 풍경에 대해 사실 지나친 감상은 불필요하다. 이러한 풍경은, 나처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현실감 있게 해석돼야 하고 행정적 판단이 내려져야 한다. 그럼에도, 어찌 스쳐 지나가는 사람으로서, 한순간의 감상 또한 금지돼야 할 것인가, 그것을 핑계 삼아 나는 쓸쓸한 국도와 낡은 신문의 한 뼘짜리 기사와 저물어 가는 들판을 이렇게도 보고, 또 저렇게도 보면서, 한두 가지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신문은 고양이가 늘고 있다고 썼다. 고양이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갖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했다. 달리 말해, 이는 도시인들이 자신만의 내면 공간을 갖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 아닐까, 자신만의 내면세계, 자신만의 감정 말이다.
최근 학계에서는 ‘감정’ ‘정서’ ‘마음’ ‘열정’ 등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좀더 학문적으로 검토하건대, 서구에서 근대 세계란 중세의 종교적 열정과 강력했던 세습 권력에 대한 부정과 저항의 연속이었거니와 그것은 합리적 사회관계의 성립으로 귀결됐다. 근대의 제도, 질서, 구조 등은 중세적 열광을 억제하는 것, 즉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출하기보다는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것,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적 약속에 따라 그 감정을 억제하는 것, 그것이 서구의 근대였다. 서구의 근대를 ‘합리화’로 설명한 막스 베버는 “비합리적 충동의 절제, 적어도 이 충동의 합리적 조절”을 서구 합리성의 요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꽤 오랫동안 서구의 근대, 혹은 그것을 해명하려는 학문적 시도는 일단 감정을 학문적 대상에서 배제하거나 최소한 괄호 안에 넣어두었다. 또한 서구의 근대는 일정한 규범과 제도가 행위를 산출하며 일정한 변수와 측량으로 사람의 사회적 행위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감정 생산’과 ‘내면 연기’
그랬는데, 배제했던, 적어도 괄호 안에 넣어두었던 감정이 강력한 변수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는 상식적 제언이 아니라 감정 노동, 감정 규칙, 감정 생산, 감정 통제 같은 말이 주목할 만한 학문적 탐사 대상이 된 것이다.
이를테면 엘리 혹실드는 ‘감정노동’에서 현대사회가 감정을 관리한다는 점, 단순히 감정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감정을 느끼고 불러일으키도록 구조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어빙 고프먼이 말한 ‘내면 연기(deep acting)’와 같은 맥락이다. 인간은 부지불식간에 사회적 규칙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내면 연기’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인간적 감정은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한 상황 속에서 공식적 프레임이 요구하는 적절한 감정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에 따른 연기까지 스스로 이행한다.
공사가 중단돼 지리산 중턱에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서 있는 휴양 시설.
지리산 옛길 쇠락한 주유소.
도시의 익명성이 주는 자유
이렇게 요약하고 보니, 한순간에 내가 저 거대한 대도시에서 나름대로 이행했던,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 돌이켜보니, 꽤나 진지하게 수행했던, 수많은 감정 연기가 떠오른다. 나의 눈빛, 나의 말투, 나의 행동, 나의 걸음걸이, 나의 시선 등은 나 스스로 생산한 것이면서 동시에 어떤 사회적 프레임이 요구한 것일 수도 있었다. 사회가 나를 디렉팅(연출)했고 나는 그것을 연기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허름한 휴게소에서 한 줌 뽑아낸, 미지근한 믹스 커피가 오히려 쓰디쓰다.
나는 올 초 ‘신동아’의 이 지면에서 서구 근대의 ‘감정’에 대해 쓴 적 있다. 그때, 나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 ‘센스 앤드 센서빌리티’를 인용하면서, 서구의 근대인들이 ‘솔직한 감정’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를 설명하려 했다. 이를테면 그 소설에서 “내 감정이 더 강하다고 믿으렴”이라는 대사는, 오늘의 대한민국이라는 감정주식회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정치적 명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게오르그 짐멜 또한 주목했던 현상이다. 19세기 유럽이 본격적으로 대도시로 급성장할 때, 짐멜은 ‘대도시와 정신적 삶’(1903)이라는 짧은 강연록을 통해 이 새로운 문명의 속살을 날카롭게 들여다보았다.
그에 따르면 전통 사회란 개인이 오랜 관습으로 굳어진 사회적 질서와 위계에 복속될 수밖에 없는데, 도시는, 도시의 익명성은, 도시의 숨 가쁜 속도는 개인에게 일정한 자유를 부여하게 된다. 짐멜은 “대도시는 인간 존재의 발달에 무한한 의미를 가진 매우 중요한 장소”라고 생각했으며 이 “대도시는 인간의 삶을 포괄하는, 서로 대립적인 조류들이 동등한 권리를 갖고 회합하고 전개되는 위대한 역사적 산물 중 하나”라고 썼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마을 공동체를 떠나 도시로 몰려든다.
대도시에 들어선 개인은, 그러나 엄청난 도시 이미지의 현란한 홍수에 휘말린다. “급속도로 이미지들이 교체되면서 밀려오거나, 하나의 이미지 안에서 포착되는 내용의 변화가 급격하거나, 밀려오는 인상들이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이어서 도시인은 ‘신경과민증’에 시달리게 된다고 짐멜은 썼다. 그는 “대도시에서는 건물과 교육 시설들, 공간을 뛰어넘는 기술의 기적과 편의시설들, 공동체적 삶의 형태들, 그리고 국가의 제도들 안에 엄청난 양의 정신이 비인격적인 결정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개인은 그것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도시의 현란한 이미지들, 그리고 개인이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구조들로 말미암아 신경과민증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도시 이미지의 홍수에 무방비로 노출된 도시인은, 일차적으로 과도한 신경과민증에 시달리지만, 그러나 곧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외부의 자극을 “인격의 심층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정신적 기관”, 즉 이성이 적절히 통제하도록 노력한다. 그리하여 ‘인격의 심층’, 곧 내면세계, 짐멜의 용어로는 ‘주관 문화’, 오늘 우리의 용어로는 내밀한 ‘감정’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고자 한다.
‘주관적인 공간’을 찾아서
쓸쓸한 국도변에 터 잡은 레포츠 시설이 망한 후 방치돼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게 이뤄질 수 있을까. 고백하건대, 나는 9월 중순, 내 작업실의 오디오를 좀 더 강력한 것으로 교체했다. 스피커의 외형이나 크기가 음질이나 음장이나 음감을 더욱 확장하거나 밀도 있게 만드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동안 사용하던 소형 북셸프 스타일에서 어른 눈높이만한 덩치의 근육질 스피커로 교체하고, 이를 구동하기 위해 앰프도 적절한 펀치력을 지닌 것으로 교체한 후, 나는 내 작업실을 웬만하면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날마다 새벽에 집에 들어갔다. 내 작업실이 있는 건물, 그 4층의 입주자들은 7시쯤이면 대개들 퇴근했고 10시쯤이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서, 나는 그 시간 이후 새벽까지 허용 가능한 최대 음량으로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를 새로 들었고 말러의 대편성 교향악들을 모조리 암기하듯 들었다.
오래된 사랑의 흔적마저 지운 채 서 있는 빛바랜 ‘아담’과 ‘이브’ 모텔.
이를테면, 영원히 되새길 수밖에 없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감정 통제 방식을 보자. 몇몇 언론과 방송은 지속적으로 ‘이성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썼다. 전혀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당장 그렇게 해야 한다는 주문은 대단히 정치 편향적으로 들린다.
자유와 부자유
어느 신문은 영국의 재난 사례를 언급하면서 “합리가 감정을 눌러 이겼다”고 쓰고는 “이 마지막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선진국”이 된다고 썼다. 그런데 누군가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면서, 그 나머지 사람들이 선진국에 진입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인가, 침통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런 선진국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
문학평론가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인 유종호 선생은 “누구를 탓할 문제가 아니고 각자가 우리 사회의 허점을 극복하고 정말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각자가 ‘나는 내 위치에서 내 몫을 다 했는가’라는 자기 성찰을 하고 다 같이 힘을 모아 우리 서로가 의지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반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원로의 고견이긴 하다. 그러나 이러한 담화, 즉 ‘내 탓이오’ 식의 충고는 사태의 원인과 과정을 해변에 밀려든 파도처럼 다 휩쓸어버린다. 게다가 어떤 시점에서,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이런 말이 발화됐는지를 살펴보면 이는 매우 편향적이며 위험한, 품위와 교양과 성찰이라는 근사한 말들의 ‘공격’이 될 수밖에 없다.
정확히 세월호 상황에 대한 언급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비극 이후에 문광훈 교수가 “감정이 적절하게 제어되지 못할 때, 그래서 쉽게 흥분하거나 도취될 때, 그것은 현실의 개선에 기여하기보다는 그 표면에 머무르기 쉽다. 분노와 원한의 감정이 의미 있는 에너지로 결집되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은 사회 전체, 그리고 구성원 모두를 위해서도 좀 더 정제될 필요가 있다”고 썼을 때, 이러한 발언은, 자식을 진도 앞바다에 묻은 부모들의 애통한 절규를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제압하는 역효과를 빚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내 노동의 밀도를 가파르게 더하고 그리하여 지친 몸을 위로하려고, 내가 마련한 공간(쉼 없이 읽고 써야 하는 노동의 공간)에 오디오를 새로 들여놓고는, 압도적인 음향의 추상적 세계를 승인한다. 그래봤자 웬만한 골프채 하나 값도 안 하는 소박한 만족이지만 말이다.
이 연재를 위해 전국 곳곳의 ‘힐링 장소’를 찾아다니고 있지만, 내게는 내 작업실만한 힐링 공간은 달리 없다. 그리하여 나는 자유로워졌는가. 글쎄, 단언할 수 없다. 솔직히 내면이 온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일하는 공간 한 켠에 오디오가 새로 들어왔을 뿐, 그리하여 잠시 멈추고는, 작업실을 풍만하게 채우는 선율 속에서, 다만 한두 시간이고 아늑한 피로에 젖을 뿐이다.
사회가 자유롭지 않은데 어찌 개인의 자유가 가능하겠는가, 그 비대칭적 자유는 누구의 부자유 위에서 누리는 호사인가, 이 같은 투쟁적 발언을 스스럼없이 할 만한 용기는, 내게 없다. 다만 이 거대한 도시를 살아가는 개인의 내적 자유는, 서재나 북카페 같은 물리적 공간의 유무가 아니라, 그 사회의 자유가 가진 크기와 넓이에 연관돼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나는, 이젠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무치고 있는, 남원과 임실 사이의 국도변 들판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