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에 공무원은 ‘실종’
- 새누리당, 토론회 이틀 전에야 참석 제안
- 연금 개혁보다 공적재정 개혁이 우선
- 사회적 협의체 구성 안 되면 언제든 거리로
공무원노조 조합원 300여 명은 9월 22일 연금학회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하려던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고성과 야유 등 실력행사로 무산시켰다. 그 여파로 개혁 초안 작성을 주도한 김용하 연금학회 회장(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은 9월 26일 회장직을 전격 사퇴했다.
여세를 몰아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조진호, 이하 공노총)은 9월 27일 서울역 광장에서 조합원 1만 명(경찰 추산 6000명)이 참가한 첫 대규모 집회인 ‘공적연금 복원을 위한 총력결의대회’를 열고 “공무원연금 개악 시도는 공적연금 살(殺)처분”이라며 새누리당의 연금 개혁 시도를 강력 비판했다. 공노총은 교육청·행정부·광역연맹과 지방자치단체 기초연맹 노조가 포함된 합법 노조. 조합원 수는 11만5000여 명에 달한다.
부글부글 끓는 공무원 사회
공노총은 이에 그치지 않고, 14만여 조합원을 둔 법외노조인 전국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이충재, 이하 전공노)과 함께 11월 1일 서울 여의도에서 공무원과 가족이 대거 참가하는 총궐기대회를 열기로 예고한 상태. 이들 양대 공무원노조는 이미 지난 5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사학연금 공대위 등과 ‘공적연금 개악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이하 공투본)를 결성한 바 있어 연금 개혁 반대 투쟁의 수위는 한껏 높아질 전망이다.
연금학회 개혁안의 골자는 재직 공무원이 매달 내는 연금 납입액을 현 수준보다 43% 인상하고 수령액은 34% 깎아 정부보전금을 40%가량 줄이는 한편, 장기적으론 납입액과 수령액을 국민연금 수준과 같게 맞추는 것. 지난해 2조 원에 달한 공무원연금 적자가 올해 2조5000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연금 충당 부채가 지난해 484조 원까지 불어났으므로 미래 세대의 재정부담 완화를 위해 공무원연금을 적정 수급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핵심 명분이다. 연금 개혁의 당위성으로 재정적자 문제를 들며 공무원연금을 현재보다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개편하려 하자 연금수급자인 공무원들로선 속이 부글부글 끓을 수밖에 없을 터.
대(對)정부 집단투쟁의 선봉에 선 오성택(48) 공투본 공동위원장을 10월 6일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에 자리한 공노총 사무실에서 만났다. 공노총 소속인 오 위원장은 중앙부처 공무원이 가입한 행정부공무원노조 위원장을 3선(選)째 맡고 있다. 행정부공무원노조는 공노총 산하 최대 조직. 오 위원장의 소속 부처는 미래창조과학부다. 그는 9월 27일 집회 당시 삭발한 데다 면도도 하지 않아 얼굴이 초췌해 보였다. 노란 조끼 앞면엔 ‘결사투쟁!’, 뒷면엔 ‘공무원연금 개악! 강력 저지!’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주먹구구식 ‘모수 개혁’
▼ 연금학회 개혁안을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는.
“공노총 처지에서 볼 때 일고의 가치도 없다. 원인 분석과 진단, 개혁 방향과 추진 방식 등 모든 면에서 반개혁적이다. 또한 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인 공무원이 철저히 배제됐다. 내용 면에서도 너무 과하다.
따라서 우리가 요구하는 건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하고 거기에 당·정·청을 포함시키라는 것이다. 한낱 용돈 수준으로 전락한 국민연금뿐 아니라 공적연금도 다 넣어 각각의 이해당사자, 학계, 언론계 등 각계각층이 전부 참여하는 협의기구를 만들어 이번만큼은 제대로 논의해보자는 거다. 2007년 국민연금 개정과 2009년 공무원연금 개정 때 일방적으로 더 내고 덜 받는 식의 이른바 ‘모수(母數) 개혁’을 해보니 세월이 흐르면서 다시 시끄러워지기만 했지 않나. 이런 식이면 앞으로 또 그럴 테니 이번엔 제대로 하자는 거다.”
9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공무원노조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다.
“더 내고 덜 받는 식으로 수치만 주먹구구식으로 바꿔가는 걸 그렇게 일컫는다. 그런데 이젠 그런 개념이 아니라 다 까발려놓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자는 거다. 국민연금과 형평성이 맞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그럼 국민연금이 잘못됐는지, 공적연금이 잘못됐는지 따져보자. 그리고 공적연금 도입 당시의 취지도 살리면서 제대로 된 안을 만들어 향후 몇 십 년을 내다보는 안을 만들어 더 이상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번 안은 연금학회가 불과 몇 개월 만에 뚝딱 만들어 내놓은 것 아닌가. 그것도 현 시점의 상황만 반영해서. 게다가 연금학회가 전문가 집단을 자처하지만 그중 상당수가 사적연금에 연관돼 있는데, 어떻게 그들이 만든 안을 우리가 수용할 수 있겠나. 그래서 이해당사자가 포함된 사회적 협의체에서 논의하고 거기서 합의안이 도출되면 그 안을 수용하고, 공무원이 고통분담을 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는 거다.”
▼ 새누리당이 왜 연금학회에 급히 개혁안을 의뢰했다고 보나.
“가장 큰 이유는 공무원연금 개혁이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기 때문일 거다. 이해당사자를 배제한 이유로 국민 정서를 든다. 개혁안 마련 과정에 공무원이 참여하면 이른바 ‘셀프 개혁’이니 해서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거란 생각에 새누리당이 앞으로 전국단위 선거가 없는 1년6개월 동안 연금 개악을 밀어붙이는 것 같다. 우리로선 공적연금을 선거와 연계해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참 웃기다고 본다.”
▼ 연금 문제와 관련해 공무원노조가 바라는 건 뭔가.
“공적연금은 퇴직 후 기본적인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건데, 이미 국민연금을 용돈 수준으로 전락시켜놓고 거기에 맞춰 공무원연금까지 하향평준화하자고 한다. 이에 대해 우리는 국민연금부터 원상복원하라고 주장한다. 물론 100% 복원은 쉽지 않을 거라고 본다. 그 때문에 국민연금과 모든 공적연금을 같이 다룰 수 있는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거다.”
▼ 새누리당이 연금학회를 통해 개혁안을 내놓은 게 어차피 그 수준까지는 실현되지 않을 거라 보고 ‘애드벌룬 띄우기’를 한 건 아닐까.
“그렇게 툭 던져놓고 여론이 괜찮으면 ‘Go!’ 해서 추진하고, 여론이 나쁘면 철회하는 게 정책인가.”
▼ 비슷한 행태가 반복돼온 측면이 있기에….
“그런 사례가 많긴 했다. 이번 연금학회 안도 틀림없이 어떤 목적성을 지녔다고는 생각한다. 그런데 공무원노조 반발이 워낙 거세지니 김용하 교수가 회장직을 사퇴하고, 새누리당도 일단 발을 빼면서 공을 다시 정부로 넘겼지 않나. 정책이란 건 몇 십 년을 내다보고 만들어야지, 그냥 한번 툭 던져보고 반응이 좋으면 하고 아니면 말고 하는 게 아니다. 정말 개혁이 필요하다면 이해당사자를 포함해 모두가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툭 던지는 게 정책인가”
▼ 이해당사자가 배제됐다? 당초 새누리당이 9월 22일 토론회 개최 이전에 공노총 측에 패널로 참석해달라고 제안하지 않았나.
“연금학회 측에서 조진호 공노총 위원장에게 연락하긴 했다. 그런데 토론회 날이 월요일인데 전주(前週) 금요일에야 연락이 왔다. 그것도 공문 한 장 없이. 토론 준비 시간이 워낙 촉박한 데다, 패널 면면을 보니 딱 구색 맞추기 하려는 거구나 싶더라. 생각해보라. 토론이라면 찬성과 반대 의견을 동수(同數)로 놓고 해야 형평성에 맞는데, 달랑 한 자리 비워놓고 참석하라니…. 들러리 서기 싫어서 참석지 않았다.”
▼ 개혁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새누리당과 공무원단체 간에 사전 교감이 없었나.
“전혀 없었다. 공노총 차원에서 요청해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을 만난 적은 있는데, 그때 관련 자료를 내달라고 해서 주긴 했다. 근데 그 자료는 연금학회의 개혁안에 대해 반박하는 내용이었지, 우리의 구체적 요구사항과 관련한 게 아니다.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외치는 판에 우리 안이란 걸 지금 제시할 수는 없지 않나. 또한 실제로 우리 안은 아직 없다. 공무원연금을 현행대로 유지하자는 게 우리 주장이니까.”
▼ 토론회 무산은 누가 주도했나.
“당초 공투본 의결사항은 토론회 무산이 아니었다. 진행 과정을 지켜보고 공투본 측이 질의도 해가면서 연금학회 안이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는데, 정작 그 자리에 갔던 조합원들이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공투본 내에서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다.”
▼ 이번 개혁안이 ‘안종범 안(案)’이라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는.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실제로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 공적연금개혁분과의 핵심으로 활동했다. 우리도 관련 모니터링을 하고 기자들 만나 얘기도 자주 듣는데, 청와대로 옮겨가서도 압박을 했다더라. 빨리빨리 진행하라고. 그래서 ‘안종범 안’이라고 이름 붙인 거다.”
공복(公僕) vs ‘영혼 없는 공무원’
▼ 9월 27일 집회 당시 공노총이 직접 국가 재정 낭비 사례를 수집해 국민에게 알리겠다고 선언했는데, 어떻게 추진하나.
“공노총 홈페이지에 구멍 난 재정적자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국가재정낭비신고센터’를 운영한다. 또한 공무원인 우리가 정부 정책 현장에서 직접 일하므로 사례는 충분히 수집할 수 있다. 세금 바로 쓰기를 감시하는 시민단체와도 연대할 수 있다. 흔히 복지 비용이 임자 없는 돈이라고들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현장의 우리 조합원이 직접 감시할 것이다. 그런 사례들을 근간으로 정부 정책의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를 제시하고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만일 정부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국민에게 죄다 공개할 생각이다.
공무원은 정권을 잡은 이들의 부하직원이 아니라 국민의 공복(公僕)이다. 요즘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자조가 많이 나온다. 왜 그럴까. 공무원들이 소신 있게 일하려다보면 정권을 잡은 이들과 생각이 다르기도 한데, 거기에 따르지 않으면 인사발령 조치를 하고 말 잘 듣는 다른 공무원과 일을 추진하곤 한다. 그렇게 하면서 영혼 없는 공무원이 양산되는 거다.
공무원을 소신 있게 일하게 해줄 주체는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민과 공무원이 교감하고 정치권이 그런 꼼수를 부리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린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바보가 아니다.”
▼ 새누리당이 표심(票心)의 향방을 의식해 선거가 있기 전에 연금 개혁을 해야 한다는 거나, 공무원노조 측이 ‘새누리당은 선거에서 우리 표는 의식하지 않느냐’고 압박하는 거나 국민 눈에는 두 쪽 다 표 갖고 장난치는 걸로 비친다.
“그건 새누리당 측에서 그렇게 나오니 우리도 대응한 거다. 물론 그런 식으로 맞받아친 것도 공무원으로서 실수라고 생각한다. 연금 개혁은 표심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니까. 국민과 공무원이 갈등하지 않는 안을 제대로 만들어야 하는 게 기본이다.”
▼ 새누리당이 연금 개혁을 정부 쪽으로 떠넘긴 건 어떻게 보나.
“말도 안 된다. 처음부터 정부가 주체가 되어 연금 개혁을 준비해왔다. 안전행정부의 공무원연금제도발전위원회를 올해 3월 공무원연금제도개선전문위원회로 바꿔 연금 개혁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계속 논의해오던 중이었다. 당초 지방선거가 끝난 후인 7월 말쯤 개혁안을 발표한다고 했던 건데, 새누리당이 중간에서 치고 나온 거다.”
▼ 그럼 안 수석이 개입해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 안이 나온 거라 생각하나.
“그렇다. 정부가 추진하면 정부입법 발의로 가는데 새누리당이 치고 나온 건 의원입법 발의로 가자는 것 아닌가. 선거 없는 기간 안에 공무원연금을 손보겠다는 건데, 이렇게 시끄러워질 줄은 예상 못한 것 같다. 이젠 새누리당이 부담스러워 총대를 메기 싫으니 공을 다시 정부로 던진 거지.”
▼ 안행부가 9월 29일 공무원연금 개혁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기획재정부, 국무조정실, 고용노동부 등 4개 부처가 참여하는 ‘공무원연금 개선 추진 협의체’를 구성했다.
“공이 넘어왔으니 이젠 정부가 추진해야 하는데 새누리당이 자꾸 연금 개혁안과 함께 공무원 사기진작책까지 내놓으라고 하니 그런 협의체를 구성한 걸로 안다. 어떤 안을 제시하는 협의체가 아니라 노동부는 임금·근로조건 등 공무원 처우 면에서 민간기업 직원과 얼마나 차이 나는지 조사하고, 기재부는 연금기금에 대한 재원 부담 및 조달방법 등을 세부적으로 검토하는 걸로 안다. 안행부는 연금제도 담당 부처로서 연금 개혁 관련 제도개선을 준비하고, 국조실은 이 모든 작업을 총괄·조정하는 처지다. 어쨌든 실제로 안을 제시하는 주체는 안행부가 될 것이다.”
“줄줄 새는 세금만 손봐도…”
▼ 그런데 일반 국민은 쥐꼬리만한 국민연금보다 1억 원 내고 5억 원 받는 현행 공무원연금 제도가 훨씬 유리한 것 아니냐는 정서를 갖고 있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은 제도의 성격부터 다른데,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자체가 잘못이다. 국민연금은 노후소득보장 제도로서만 도입됐고, 공무원연금은 거기에다 인사정책적 요소까지 가미된 것이다. 후불임금 성격도 지닌다. 공무원들이 신분상 제약을 굉장히 많이 받지 않나. 노동3권이 제약되고, 정치활동을 하지 못한다. 겸직과 영리활동도 못한다. 징계를 받으면 연금도 2분의 1로 감액된다.
더욱이 이제 곧 연금수급자가 될 이들은 모두 과거에 박봉을 감내한 이들이다. 그런 건 감안하지 않은 채 현 상황만 보고 국민연금과 단순비교하면 안 된다. 공무원연금엔 퇴직금 성격도 가미돼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조합원들이 9월 27일 서울역 광장에서 ‘공적연금 복원을 위한 총력결의대회’를 열었다.
“그래서 연금 개혁 이전에 공적재정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실질적으로 우리나라 정책은 친기업 성향이 매우 강하다. 기업에 대한 세금 혜택, 부자 감세 등이 그렇지 않나. 반면 재정이 어려워지면 서민 증세를 통해 재정을 충당하려 한다. 바로 그런 부분을 개혁해야 한다. 세수가 부족하면 부자 감세를 없애야 한다. 우리 국민 상위 10%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50%의 자산을 갖고 있다는데 이게 정당한 건가. 그런데도 그들에게 계속 혜택을 준다. 이걸 개혁한다면 공적연금뿐 아니라 국민연금과 기초연금까지 충분히 재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거다.
선거가 닥칠 때마다 복지 공약도 하나둘씩 내놓는데, 그런 공약을 선거에 이용하지 말고 대신 용돈 수준에 불과한 국민연금을 실제 생계를 꾸리는 데 적합하도록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해야 소비 진작을 통한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고 경제가 발전한다. 그게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길 아닌가. 따라서 국가가 세금을 걷어 재정을 어떻게 운용하고 어디에 쓰는지 모든 부분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줄줄 새는 세금만 잘 집행해도 연금적자를 모두 보전할 수 있다.”
▼ 정부가 어떤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보나.
“해법을 정부가 만들어선 안 되고, 각계각층이 참여해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누누이 강조하는 게 사회적 협의체 구성이다.”
▼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상당수 국민이 공무원연금 개혁에 찬성하는데.
“언론이 특정한 팩트(fact)에 치중해 보도하다보니 그걸 접하는 많은 국민이 왜 내 혈세로 공무원들 먹여 살려야 하느냐는 선입견을 갖게 된다고 본다.”
▼ 결국 공무원연금뿐 아니라 공적연금 전반, 국가 재정 문제까지 연계해 큰 틀에서 논의하자, 그건가.
“그렇다.”
▼ 11월 1일 다시 대규모 집회를 계획 중인데.
“공투본이 주관한다. 그때도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해 공적연금 전반을 논의하자는 기조로 갈 거다.”
▼ 연금 개혁과 관련해 최근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공무원이 많다던데.
“명퇴를 하면 퇴직수당과 함께 잔여기간을 일정 부분 산정해 명퇴금을 줘야 한다. 이걸 정부 예산으로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공무원이 명퇴 신청을 했다고 보면 된다. 대략 2만 명이다. 그래서 명퇴 신청을 안 받아주는 상황마저 벌어진다.”
▼ 공무원은 정년이 보장되는 등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냐고들 한다.
“공무원의 직업안정성을 자꾸 거론하면서 우리를 ‘철밥통’이라고 폄훼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을 통해 10만 명 이상의 공무원이 퇴출당했다. 당시 전체 공무원 90만 명의 15%가량이다. 이후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퇴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보직 안 주고 3개월씩 교육 보내버리고 하다보면 자연히 잘려나가게 된다. 민간 기업에서만 밀어내기를 하는 게 아니라 공무원 사회에서도 한다. 그런데도 직업안정성이 있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소통 안 되니 가두行”
▼ 삭발은 처음인가.
“그렇다. 그래서 아내와 애들이 낯설어한다. 솔직히 나도 아침마다 거울 보면서 내가 다른 사람처럼 낯설다. 앞으론 삭발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 앞으로의 투쟁 계획은.
“이젠 안행부 쪽과 소통할 것이다. 이미 정종섭 안행부 장관과 간담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향후 사회적 협의체가 만들어진다면 우린 그 테두리 내에서 대화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언제든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다. 10월 중 정부 안이 나올지 여부와 무관하게 11월 1일 집회는 예정대로 한다. 박근혜 정부가 외치는 정부 3.0의 가장 큰 기치는 소통이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박 대통령은 ‘불통’이라고 욕을 먹는다. 소통이 된다면 왜 우리가 애써 거리로 나가겠나. 영국은 6년 걸려 사적연금을 공적연금으로 전환했다. 가까운 일본도 논의 과정에 30년 가까이 걸렸다.
우리가 단 한 번이라도 그렇게 제대로 논의한 적 있나. 우리도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하는 문제에 대해 제로(0) 베이스에서 검토해보자. 그 과정에서 공무원연금법을 폐지하고 국민연금과 통합하되 공무원한테도 공무원법 대신 근로기준법을 적용해 제약사항을 풀어준다면 우리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공무원은 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으면 안 되나. 그런 부분들까지 사회적 협의체에서 다 논의하자는 거다. 그래야 제대로 된 안이 만들어진다.”
연금 개혁에 강력히 반대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공무원들. 가뜩이나 어지러운 국정으로 흉흉한 민심. 순민심(順民心·민심을 따름) 하면서 공무원의 고충에도 공심(恭心·존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묘책은 과연 없는 걸까. 꼭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 거리여야만 ‘첩혈가두(?血街頭)’인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