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만 명 → 110만 명, 광역시 기준 인구 위태
길거리 개도 1만 원 물고 다닌다던 好시절
“부자도시? 글쎄, 부모 덕 보는 애들이 많지”
일자리 없어 떠나는 청년들… “기업만 잘나간다”
“아버지 수준 정도론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국 위기 축소판, 해결해야 할 時代 과제
[영상] 울산의 오늘을 말하다
5월 8일 울산 북구 염포동 염포누리전망대에서 바라본 울산 시내 전경. [박해윤 기자]
7시 20분께가 되니 일몰이 시작된다. 문수산, 가지산, 고헌산 등으로 이어진 이른바 ‘영남알프스’ 산줄기에 해가 걸친다. 노을이 비쳐 태화강이 주홍빛으로 물든다. 산등성이 아래로 해가 자취를 감추자 강물은 검푸른색으로 다시 자태를 바꾼다.
5월 8일 울산 동구 방어동 울산대교 전망대 2층에서 바라본 울산 시내 전경. [박해윤 기자]
하지만 울산의 심장박동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기업은 견조하게 돌아가지만 지역으로 향하는 ‘낙수효과’가 적다. ‘노동 중산층’ 신화를 일궈낸 아버지를 보며 ‘나도 저렇게 살 수 있겠지’라는 믿음을 갖고 자란 아들들은 높아진 취업 문턱에 좌절한다. 어머니와 달리 이제 ‘전업주부’로 살 수 없게 된 딸들은 일자리를 찾아 나서지만 생산직 위주 ‘남초’ 회사의 벽은 높기만 하다. 기술직으로 취업한다 해도 연구소는 수도권에 있어 울산에 남긴 어렵다.
결국 이들의 선택은 울산을 떠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인구 감소세가 도드라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인구 대비 2050년 인구 증감률에서 울산은 –25.9%로 전국 최하 순위를 기록했다. 2020년 인구가 100명이라면 2050년엔 74명가량이 되는 셈이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울산 인구수는 2015년 약 117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줄곧 하향세를 기록했다. 올해 4월 기준 약 110만 명으로 9년간 6%가 줄었다. 이제 광역시 인구 기준인 100만 명도 위태로운 지경이다.
“예전 같지 않은 지 꽤 됐어”
5월 9일 울산 남구 삼산로 롯데호텔 앞에서 행인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박해윤 기자]
울산은 1962년 1월 정부에 의해 발표된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따라 특정공업지구로 선정됐다. 이후 고(故) 아산 정주영으로 대표되는 걸출한 기업인들이 속속 울산에 회사를 세웠고, 울산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북구엔 자동차산업, 동구엔 조선산업, 남구엔 정유·석유화학산업이 자리를 잡으며 울산의 3대 산업(자동차·석유화학 및 정유·조선)이 완성됐다. 현대차, HD현대중공업, 롯데케미칼 같은 각 지역의 대표적 기업 외에도 SK이노베이션, SK에너지, 삼성SDI, 풍산, 효성, S-OIL, 금호석유화학, 고려아연, LG화학, 한화솔루션, 애경케미칼 등 굵직한 기업이 모였다.
일자리가 생기고 산업이 흥하니 자연스레 사람이 모였다. 1966년 23만 명 수준이던 인구는 1980년 53만 명, 1990년 80만 명을 찍더니 1997년 100만 명에 이르렀다. 이에 같은 해 7월 울산은 광역시로 승격했다.
울산은 ‘한강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한국 산업화 역사에서 ‘태화강의 기적’으로 그를 뒷받침했다. 호(好)시절이었다. 기업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성장의 과실을 급료로 나눠 가진 노동자의 주머니는 두둑했다. 1997년 외환위기(IMF 사태) 여파도 울산만은 비껴갔다. “울산에선 개도 1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는 말이 돌던 때다. 심지어 오히려 더 잘나간 곳도 있다. 제1호 현대백화점인 울산 동구점의 경우다. 1달러당 1952원까지 치솟은 고환율 덕에 수출액이 늘었다. 당시 현대백화점 울산 동구점에서 의류 가게 직원으로 일했던 50대 박수혜(울산 남구 거주) 씨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오전 10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저녁 8시 30분쯤 마무리했는데, 쉴 틈이 없었어요. 장사가 잘되는 게 좋긴 하지만 가끔 앉아서 쉬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좀 쉬려고 앉으면 엉덩이 닿기 무섭게 또 손님이 오고, 다시 앉으려고 하면 또 오고… IMF? 뉴스에선 다 죽어간다고 난리던데, 체감이 안 됐어요. 손님들은 항상 돈이 많았어요. 제가 있었던 가게 브랜드가 상당히 고가였는데, 가격표를 제대로 보지도 않았어요. 그냥 마음에 들면 사는 거죠. 돈 없으면 그렇게 못 하잖아요. 그때가 참 호시절이긴 호시절이었는데….”
5월 8일 오후 8시께 울산 남구 울산 디자인 거리 풍경. [박해윤 기자]
“나, 지금 거의 다 왔어. 어디야?”라며 발길을 재촉하는 여고생, 손을 잡고 걸어가는 젊은 연인이 눈에 띈다. 여자는 남자친구가 선물한 듯한 꽃다발을 쥐고, 오른손으론 남자친구의 손을 잡은 채 ‘셀카 스튜디오’로 향한다. 오늘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려는 듯하다. 우체국 옆 마라탕 가게에선 술을 몇 잔 걸친 듯 얼굴이 벌게진 남성 넷이 걸어 나온다.
“야, 이제 어디 가냐 우리. PC방 가서 롤 고?” “오늘 어버이날인데 집 안가냐. 불효자네.”
나누는 대화와 얼굴에서 앳된 티가 선명하다. 기껏해야 20대 초반으로 보인다. 두 명씩 갈라서더니 한 편은 PC방으로, 한 편은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평일 저녁임을 감안해도 거리가 퍽 썰렁하다. 앞선 풍경은 전반적으로 고요한 분위기 속에 드문드문 나타난 생기다. 삼산동 주민 김광덕(61) 씨는 “잘 나가던 건 옛말이지, 예전 같지 않은지 꽤 됐어”라고 했다.
“예전엔 젊은 사람들이 ‘큰손’이었는데…”
5월 9일 오전 11시께 울산 남구 삼산로 현대백화점 내부(위)와 현대백화점 사거리 모습. [박해윤 기자]
삼산동에서 현대백화점 사거리를 건너 달동으로 향했다. 오후 11시 달동 자두공원 인근 먹자골목. 삼산동보다 술집이 좀 더 많아 보인다. 선선한 날씨에 출입문과 창문을 개방한 가게가 많다. 가게 안엔 드문드문 손님이 있지만 빈자리가 더 많다. 일이 없어 한산한 듯 지루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아르바이트생도 흔치 않게 보인다. 달동 쪽도 그다지 사정이 나아 보이진 않는다.
15년째 요리주점을 운영해 온 40대 최주환 씨는 “10년 전엔 하루 매출 500만 원은 너끈했지만 이젠 300만 원쯤 번다. 물가 고려하면 반토막 이상 나빠진 것”이라며 “여기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인데,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식당을 한 지 23년 됐다는 60대 윤모 씨도 “삼산동이나 이곳이나 신(新)번화가인 건 마찬가진데, 똑같이 사정이 좋지 않다. 그나마 사정이 괜찮을 때 애들 대학을 보내놨으니 망정이지, 지금 애들이 학교를 다녔으면 빚을 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아한 일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울산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는 7751만 원으로 전국 1위다. 또 올해 1월 28일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시도별 근로소득 신고현황’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울산이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높은 4736만 원을 기록했다. 2위는 서울(4683만 원)이며 전국 평균은 4214만 원이다.
시민은 여전히 가장 부유한데, 도시는 활기를 잃어간다. 원인은 ‘청년 실업’에서 기인한다.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 발표에 따르면 2022년 하반기 울산의 15~29세 청년 실업률은 10.9%로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5.6%)을 2배 가까이 상회한 수치다.
5월 9일 울산 남구 삼산동 롯데호텔 인근 거리 모습. [박해윤 기자]
“20여 년 전만 해도 ‘큰손’인 20~30대 젊은 손님이 많았어요. 살펴보면 거의 현대, 롯데 등 대기업 직원이더라고요. 대부분 연봉이 억대거나 그와 비슷한 수준이니까 뭐. 이젠 젊은 손님 가운데 주머니를 ‘펑펑’ 여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울산이 부자도시라는 말은… 글쎄요. 부모 세대가 부자인 거지, 젊은 세대는 아닌 것 같은데요. 부모 덕 봐서 부족한 거 없이 사는 정도지, 본인들이 돈이 많은 건 아닐 거예요.”
“대학원까지 나왔는데 왜 고졸 아버지만큼 못 벌까요”
“부모 덕 본다.”경제 사정이 좋은 부모를 둔 자식이 듣는 말이다. 복이자 압박이다. 부모보다 더, 적어도 부모만큼은 살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기가 더 어렵다.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2024)의 저자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한국이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공업 인력이 필요하다 보니 공고·공대를 급격히 늘렸고, 여기서 자란 인력이 대거 울산 공단의 생산직으로 취업했다. 산업화·노동 쟁의가 성공을 거두며 이들은 ‘노동 중산층’으로 성장하는 데 성공했다. 고등학교까지만 나왔지만 공장에 들어가 땀 흘려 일하면 억대 연봉을 받으며 처자식을 건사할 수 있었던 세대다.
하지만 이제 기업은 정규직인 생산직을 뽑지 않고, 자동화 시스템을 이용하거나 하청업체를 써서 틈을 메운다. 하청업체 근무 조건은 위험하고 열악한데, 연봉은 3000만~4000만 원 수준이다. 심지어 그것도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다. 이제 울산 청년들은 ‘부모만큼’ 살 수 없는 세대가 됐고, 그래서 울산을 떠난다. 현대차, HD현대중공업 등 기업은 잘나가지만 고용 창출은 잘 안 된다. 낙수효과가 거의 없다.”
5월 9일 울산 중구 태화동 태화강 국가정원에서 시민들이 여가를 보내고 있다. [박해윤 기자]
중구 태화동에 사는 김세준(32) 씨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걷다가 잠시 대나무숲 속 한 벤치에 앉아 지긋이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취업준비생이다. 운동도 할 겸, 집이나 인근 카페에서 공부하다 지칠 때면 이곳으로 나와 강을 따라 30분쯤 걷는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현대차에서 일하는 게 목표다. 그는 “혼자 가족을 건사한 아버지는 내게 ‘큰 산’과 같았다”고 했다.
대구가 고향인 그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졸업 후 현대차에 생산직으로 입사했다. ‘대학 안 나온 아버지’는 흠이 되지 않았다. 벌이가 좋았기 때문이다.
“저야 자식이라 정확힌 모르지만 제가 중학생쯤 이미 월 600만~700만 원 정도는 벌어 오셨던 것 같아요. 성과급은 따로 있고….”
아버지의 능력 덕분에 어머니는 일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집에서 김 씨와 그의 동생까지 자식 셋을 돌봤다. 어머니는 때때로 “남자라면 아버지같이 생활력 있는 사람이 돼야 해. 아버지만큼만 살아”라고 가르쳤고, 이는 곧 김 씨의 목표가 됐다.
부산에 있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지만 현대차에 들어가진 못했다. 배움이 부족한 탓이란 생각에 서울에 있는 대학원으로 가 공학 석사학위를 땄다. 그럼에도 안 됐다. 생산직을 노리자니 뽑질 않고, 기술직을 노리자니 ‘스펙’이 달리는 것 같단다.
“그래도 가끔 속상하긴 해요. 솔직히 어릴 땐 고등학교만 나와도 잘살 수 있는 줄 알았어요. 적어도 아버지만큼은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대학원을 나와도 잘 안 풀리네요. ‘명문대’를 나올 만큼 공부를 잘했어야 한 건지…. 예전엔 ‘공부하기 싫으면 공장 가서 일해’라는 말이 통했다는데, 이젠 아닌 것 같아요.”
울산에선 김 씨 어머니와 같은, ‘전업주부 엄마’가 흔하다. 남성 혼자 일해 가정을 건사하는 게 가능했고, 44.7%로 절반에 가까운 일자리가 생산직으로 전국 1위 수준(통계청, 2020년 12월 기준)이다 보니 여성이 일할 동기가 부족했다. (양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산업 가부장제’ 확립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여성 일자리의 질도 개선되지 못했고, 여성들은 울산에서 취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울산의 여성 고용률은 47.1%로 전국 최저다. 태화동에 사는 이민지(29) 씨는 울산을 떠나는 여성 가운데 하나다. 그의 아버지는 석유화학 회사를 다니고 있고, 어머니는 전업주부다. 이 씨는 경기도에 있는 연구소에 화학 분야 엔지니어로 취업했다. 그는 “여기 내 또래 남자들은 이제 취업 잘 안 돼서 돈 별로 없다. 이제 엄마처럼 살 수 없다. 여자도 일해야 한다”면서도 “울산의 직장들은 워낙 ‘남초’ 문화가 강하다. 수도권으로 올라가는 게 낫겠다 싶던 차에 구인 공고가 떠서 가게 됐다. 내 주변 또래 여자들은 대개 나랑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어 “울산이 살기 나쁜 도시는 아닌데, 살고 싶어도 살기 어려운 도시가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애들 보면 괜히 미안한 마음 들어”
5월 9일 울산 남구 신정동 태화교 아래에서 노인들이 장기를 두고 있다. [박해윤 기자]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자녀들은 서울의 명문대로 진학했고 졸업까지 했다. 하지만 취업이 잘 되지 않았고, 울산으로 돌아와 공부를 더 하고 있다. 장 씨의 말이다.
“큰애가 남자, 작은애가 여자예요. 둘이 ‘스카이’ 대학 들어갔을 때만 해도 날아갈 듯 기뻤죠. 그런데도 취업이 잘 안 되더라고. 가족끼리 다 같이 울산에서 살고 싶어서 한 명은 울산 롯데케미칼, 한 명은 SK그룹 쪽 가고 싶어 하는데 쉽지 않나 봐. 워낙 취업하기가 어려운 세상이라곤 하는데, 좀 마음이 그래. 우리 때야 솔직히 일자리 구하기는 쉬웠거든. 요즘은 좋은 일자리도 다 수도권에 있고 지방은 점점 하청업체 일자리만 늘어나는 것 같아요. 거기는 대우가 너무 안 좋아요. 이제 예전 우리처럼 애들이 고등학교만 나온 것도 아닌데 가게 되진 않지. 정 애들이 취업 안 되면, 정들었지만 울산을 떠야지 뭐 별수 있나. 다 같이 서울 가서 같이 사는 게 방법일 수도 있겠다 싶고 그래요.”
울산의 문제는 곧 한국이 맞닥뜨린 ‘시대 과제’다. 성장 속도가 더뎌진 산업, 그로 인해 정체된 고용, 부모보다 잘살 수 없게 된 자식 세대, 지방 소멸까지 산적한 문제가 얽혀 있다. 시민들은 ‘살고 싶어도 살기 힘든’ 울산을 떠나고, 도시는 쇠락해 가고 있다. 양승훈 교수는 “울산이 봉착한 문제는 모든 산업 도시, 한국 전체 문제의 표상”이라고 말한다. 꺾여버린 한국 제조업, 제조업으로 지탱되는 한국 산업의 기세는 결국 한국의 어두운 미래를 예견한다. 산업수도 울산의 붕괴는 한국 사회에 “이대로 괜찮으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한 답을 구할 시점이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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