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은 나의 힘! 올 성적 기대돼요”
- 근력운동 + 매일 4km 달리기
- 비거리 늘리려 ‘도움닫기 스텝’
- “투어 힘들지만 한발 물러나서 보면 행복”
마지막 라운드가 열린 12일. 아침부터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초속 2.4m의 강풍은 선수들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렸다. 전날 10언더파로 1위를 차지한 김보경(29·요진건설)이 전반에서 2타를 잃으면서 8언더파로 내려앉았다. 그사이 보기 없이 1타를 줄인 김혜윤이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이런 흐름이라면 우승도 가능해 보였다.
“전체적으로 감이 괜찮았어요. 경기를 자주 해본 골프장이라 코스도 잘 알고 있었죠.”
오후 들어 강한 바람에 더해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김혜윤은 후반 첫 홀인 10번 홀에서 이날 첫 보기를 기록하면서 1타를 잃었지만 다행히 다음 홀에서 곧바로 회복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 12번, 14번, 15번 홀에서 잇달아 보기를 기록하면서 3타를 잃고 말았다.
그사이에 김보경은 1타를 줄여 9언더파로 다시 선두로 나섰고,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마지막 홀에서 1타를 줄인 김혜윤은 6언더파로 김보경에 이어 3타차 2위를 지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쉬운 승부였다.
“전반엔 강한 바람을 잘 견뎌냈는데 후반에 비까지 내리면서 집중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아요. 첫 대회에서 우승까지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좀 아쉽지만, 그래도 상위권에 올랐잖아요. 지난해보다는 훨씬 나아졌죠. 그래서 올해 성적이 더욱 기대돼요.”
여행에서 배운 것
김혜윤에게 지난해는 골프를 시작한 뒤 가장 힘든 한 해였다. 최고 성적이 4위에 그쳤고, 컷오프에서 탈락한 것도 4번이나 된다. 상금 순위도 27위로,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번 대회가 열리기 1주일 전 김혜윤은 ‘신동아’와 인터뷰를 했다. 그때도 경기 성적에 대한 자신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솔직히 우승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일단 상위권에 들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다. 어쨌거나 이번 대회 목표는 무난히 달성한 셈이다.
지난겨울 김혜윤에게는 심리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단짝친구인 이선화 프로와 단둘이서 난생처음 떠난 해외여행이 계기가 됐다.
“지난해 시즌 내내 여행을 가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지난해엔 주변에 적극적으로 여행을 추천하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로 많았어요. 그래서 1월에 2주 정도 이탈리아와 스위스 쪽으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 첫 여행이었는데, 어땠어요?
“마음이 정말 평온했어요. 골프 생각은 전혀 안 났어요. 여행 일정이 3일 정도 남았을 때에야 ‘이렇게 골프채를 안 잡아서 과연 공이 잘 맞을까’ 걱정이 되더라고요(웃음).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뭘 준비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걱정도 많이 했는데, 막상 여행을 다녀보니 왜 그랬나 싶었어요. 순간순간 어려움에 닥쳤을 때나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을 해결하면서 이런 게 여행이구나 싶기도 하고, 나중에 뒤돌아보면서 보람도 많이 느꼈어요. 올 시즌을 더 열심히 뛸 수 있는 원동력을 얻은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 매년 겨울에는 여행을 다니기로 친구와 약속했어요.”
김혜윤은 이번 대회가 끝난 후 전화통화에서 “전지훈련 때 훈련을 열심히 한 것도 도움이 됐겠지만, 무엇보다 여행을 다녀온 것이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 여행 다녀온 후에는?
“2월에 한 달간 태국으로 전지훈련 다녀왔어요. 이번 훈련 기간에는 매일 3~4km를 뛰었어요. 그동안에는 근력강화운동만 했는데 대회가 많아지면서 기본적인 체력훈련이 필요하더라고요. 여행 다녀온 기간을 감안해서 그만큼 연습 공도 많이 치고 훈련도 열심히 받고 그랬죠.”
김혜윤이 프로 무대에 입문한 것은 2007년. 올해로 8년차다. 난조를 보인 지난해를 빼놓고는 매년 상금 순위 20위권 이내를 유지할 정도로 꾸준한 성적을 보였다. 특히 데뷔 첫해 1승을 신고하고, 그 이듬해엔 왕중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초반 돌풍을 일으켰다. 매년 중국에서 열리는 현대 차이나 오픈에서는 2010년과 2011년,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 이후엔 우승이 없다.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이게 제 실력인 건지…. 제게 특별히 문제라고 생각되는 건 없고요. 김효주, 백규정, 고진영 등 신인들의 실력이 더 막강해진 것 같아요. 코스는 더 어려워지는데 오히려 점수는 더 잘 나오는 거죠. 그래서 우승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이게 우승이라는 거구나’
그나마 위안인 것은 지난해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생애 두 번째 홀인원을 기록한 것이다. 마침 그날이 25번째 생일이었다. 덕분에 고급 외제 승용차까지 부상으로 받았다.
“생일인데도 그날 경기가 잘 안 풀렸어요. 전날 잘 맞아서 선두권에 올라와 있었는데 전반에만 4타를 잃은 거예요. 정말 침울했죠.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홀인원이 나온 거예요.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아마 가장 기억에 남는 생일이 될 것 같아요. 홀인원 이후에 연속 버디를 했는데, 역시 기분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날 많이 깨달았어요.”
▼ 골프를 처음 시작한 게 언제인가요.
“초등학교 2학년 때예요. 골프를 좋아하는 아버지께서 승부욕이 엄청나서 경기에서 지고 들어오면 방에서 연습을 많이 하셨거든요. 옆에서 그걸 보다가 골프채를 처음 잡았어요. 제가 어렸을 때에는 또래들보다 키도 크고 뚱뚱하고 그랬거든요. 욕심도 많았고(웃음).”
▼ 원래 운동을 좋아했나요.
“운동신경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승부욕이 정말 강했어요. 피구 같은 걸 할 때 주장도 하면서 무척 활동적인 성격이었어요.”
▼ 골프 말고는 하고 싶은 게 없었나요.
“너무 일찍 골프를 시작하다보니 다른 꿈을 가져본 적은 없어요. 어릴 때는 ‘어떤 선수가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마지막 대회에서 최종 승리하면서 ‘아, 이게 우승이라는 거구나’라는, 뿌듯함을 느끼게 됐죠. 그때부터 계속 열심히 해서 고등학교 때 우승 세 번하고, 2년 정도 국가대표 상비군 활동을 했어요. 그때 아시아태평양대회에 나갔는데, 대만의 청야니가 우승을 하고 제가 준우승을 했죠. 좀 더 잘해서 국가대표를 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프로로 전향한 겁니다.”
▼ 프로 생활을 시작하면서 세운 목표는?
“다른 친구들보다 체력도 약하고, 비거리가 적게 나가고, 그렇다고 딱히 뛰어난 것도 없고 그래서 목표가 크지 않았어요. 몇 등을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열심히 뛰어야겠다고만 생각했죠. 그러다 신인 때 덜컥 우승했고, 그 뒤로 우승을 더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이미 제가 목표하던 것 그 이상을 달성한 거예요.”
▼ 골프를 시작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어요.
“고등학교 시절인데요. ‘아빠는 왜 나한테 골프를 시작하게 해서 이렇게 힘들게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다른 친구들처럼 학교생활을 하면서 여행이나 미팅 그런 것을 하나도 못해보고 시간을 보낸 거잖아요. 그런 추억이 없는 게 굉장히 아쉬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골프를 시작하기를 잘한 것 같아요. 지금 KLPGA 투어가 가장 활발한 시기잖아요. 이 시기에 프로골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골프란, 인생 같아요”
김혜윤은 세계 유일의 ‘스텝 골퍼’다. 백스윙 할 때는 오른발이 살짝 오른쪽으로, 다운스윙을 할 때는 왼발이 살짝 왼쪽으로 이동한다. 일종의 ‘도움닫기’처럼 발을 옮기면서 스윙의 폭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드라이버 비거리가 너무 안 나가서 이것저것을 해보다가 이 스윙을 해보니 비거리가 늘더라고요. 그렇게 치지 않으면 15m쯤 덜 나가요. 그러다보니 계속하게 된 거죠.”
▼ 장단점이 있을 것 같은데.
“비거리가 늘어나긴 하는데, (클럽 헤드에) 임팩트가 정확하게 맞지 않는 게 단점인 것은 사실이에요. 다행히 열심히 연습을 하다보니 지금은 문제가 해결됐어요. 또 드라이버샷과 아이언샷의 스윙 폼이 완전히 다른데요, 그것도 이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 골프란 어떤 운동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릴 때는 힘들고, 다른 운동에 비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운동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프로생활 8년차에 접어 드니 골프가 재밌는 것 같아요. 순간순간 짜릿함도 있고, 필드에서 잔디를 밟고 있는 것 자체가 행복해요.”
▼ 그럼 본인에게 골프란?
“인생 같아요.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하죠.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는 그만두고 싶지만, 막상 채를 놓으라고 그러면 절대 못 놓을 것 같아요.”
▼ 언제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싶나요.
“재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스물아홉 살까지만 하고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실력만 된다면 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래하고 싶어요. 투어를 뛰고 있을 때는 힘들지만, 한발 뒤로 물러서서 보면 행복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