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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군사전문기자의 심층 리포트

미 2사단, 중국 팽창 견제하는 군단급 파워

비밀자료로 본 주한미군의 힘

  • 글: 이정훈 군사전문기자

미 2사단, 중국 팽창 견제하는 군단급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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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은 6·25전쟁의 부산물이다. 1950년 6월25일 전쟁이 터졌을 때 한국에는 주한미군이 없고 소수의 고문단만 있었다. 당시 한국 육군은 여덟 개 사단을 갖고 있었는데, 열 개 사단으로 편성된 인민군이 공격해오자 맥없이 무너졌다. 개전 사흘 만에 인민군의 공격으로 2사단과 5사단은 ‘완전 해체’되었고, 1사단과 7사단 및 수도사단은 지휘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패퇴를 거듭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1950년 7월14일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미국 극동군 사령관인 맥아더 원수에게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위임한다’는 서한을 보냈다. 이로써 한국 방어는 한국군이 아닌 미국군의 몫이 되면서, 대거 미군이 건너와 인민군과 싸우게 되었다. 이것이 지금의 주한미군을 만들어낸 단초였다.

1953년 7월 휴전이 성립될 당시 한국군은 30만 정도였는데, 한국에 파병된 미군 병력은 30만2483명이었다.

에서처럼 휴전 시기 한국에 있던 미군 부대는 2·3·7·24·25·40·45사단과 해병대 1사단 등 여덟 개 사단과 1·9·10의 세 개 군단, 한 개 군사령부(8군), 그리고 한 개 공군 작전사령부(5공군)였다. 그러나 1955년이 가기 전에 미국은 일곱 개 사단과 두 개 군단, 한개 공군을 철수해 한국에는 7사단과 1군단, 그리고 8군만 남게 되었다.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가장 경악했던 것은 1954년 11월, 6·25전쟁을 지휘한 8군을 일본 자마(座間)로 철수했을 때였다. 이러한 안보 불안은 1955년 7월1일, 8군이 다시 서울 용산으로 이전해옴으로써 해소되었다.



미군의 신속한 철군은 북한에 들어왔던 중국군의 철수와 궤를 같이하는 측면이 있었다. 1954년 9월18일 중국은 북한에 있는 중국군 중 40만명을 철수시킨다고 발표하고 1955년 말까지 19개 사단을 철수시켰다.

철수했다 다시 돌아온 2사단

에서 주목할 것은 8군뿐만 아니라 주한미군의 대명사인 2사단도 한국을 떠났다가 되돌아온 역사가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그들의 세계전략에 따라 부대를 이동시키기 때문에 한국이 강력히 붙잡지 않으면 쉽게 부대를 빼내는 경향이 있다.

전쟁은 끝났지만 휴전선 일대에서는 크고 작은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국민의 불안감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휴전선에서의 충돌을 거의 보도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1950년 7월의 이승만 편지 이후 한반도 안보를 떠맡은 미국은 이 문제를 간과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1957년 12월7일 ‘기동력이 뛰어난’ 1기병사단을 파견해 주한미군은 한 개 군·한 개 군단·두 개 사단이 되었다. 휴전 이후 최초로 주한미군이 증강된 것이다. 1964년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베트남에 개입했다. 베트남의 위기가 높아지자 1965년 6월30일 미국은 ‘기동력이 뛰어난’ 1기병사단을 베트남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한국 방어를 위해 전략군단 소속으로 미국에서 훈련을 해오던 2사단을 바로 다음날 한국에 파견했다.

한 개 군-한 개 군단-두 개 사단의 주한미군 체제에 큰 변화가 닥친 것은 베트남전 말기인 1971년이었다. 1969년 7월25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괌에서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의 힘으로 하라”는 독트린을 발표하고 약 42만명의 미군을 아시아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에 할당된 숫자는 ‘2만명’이었다.

1971년 3월21일 미국은 동두천에 주둔해온 7사단을 철수하고 판문점 일대 휴전선을 지키던 2사단은 인계철선 역할을 할 두 개의 GP 부대만 남긴 채 7사단이 머물던 동두천 지역으로 이동케 했다.

그때까지 미 1군단은 2사단과 7사단을 작전통제하고 있었다. 그런데 7사단이 빠져나갔으니 1군단은 더 이상 한국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군단은 한 개 사단을 통제할 수도 있으나 보통 2∼5개의 사단을 통제한다). 그로 인해 1군단의 철수도 거론되자 놀란 박정희(朴正熙) 정부가 묘안을 짜냈다. 미1군단을 한국군과 미국군이 함께 근무하는 한미1군단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한미1군단은 미 2사단은 물론이고 한국 육군의 1사단과 25사단, 해병대 5여단, 그리고 세 개 사단을 통제하는 한국군 6군단을 작전통제케 하자고 제의했다. 이 아이디어를 미국이 수용함으로써 1971년 7월1일 미 1군단은 한미1군단으로 개편되었다.

미 2사단, 중국 팽창 견제하는 군단급 파워

<표1>6·25전쟁 이후 현재까지의 주한미군 변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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