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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 1000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 우수작

北으로 간 밀사

  • 글: 최세희

北으로 간 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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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수인들 사이에서 수색변전소 공사장에 가는 날이 가장 행복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공사 감독이 느슨해 수인 노무자들은 때때로 눈을 속이며 쉴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장총을 든 간수들도 한국인이었으므로 현인겸 총감독은 그들에게 담배 등을 권하며(당시 담배는 귀중품이었다) 적당히 구슬려 노무자들에게서 눈을 돌리게 했고 조감독들도 총감독의 이런 뜻을 알고 있었다. 아라시마 소장도 모든 걸 총감독에게 맡긴다며 공사현장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또 다른 이유는 공사현장에 가면 배부르지는 않더라도 양에 찰 만한 현미쌀밥과 구수한 된장국(일본 된장국)을 점심으로 얻어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식량사정이 극도로 악화되어 너나없이 배불리 먹어보지 못하는 형편이었으므로 수인들에게 제대로 식량을 줄 리 만무했다. 하지만 공사장에는 상당량의 식량이 비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수색변전소 프로젝트는 조선총독부가 가장 중요시하는 공사였으므로 지구헌병대장에게도(당시 지구헌병대장의 권한이 막강했다) 최대한 지원하라는 지령이 있었다. 워낙 많은 인원에게 줄 밥과 국을 끓이다보니 그 냄새가 근방에 퍼져 주변 주민들이 철조망 밖에서 기웃거리곤 했다.

터널 굴착공사가 꽤 진척돼가던 8월6일 일본의 군사도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8일 소련군이 두만강을 건너 침공했다. 곧이어 9일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됐다. 이제 일본이 손을 들 수밖에 없다는 추측이 난무했지만 공사는 여전히 강행됐다. 그러나 총감독과 조감독을 비롯해 수인 노무자들까지 모두 일본의 최후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천지개벽같이 찾아온 8·15

1945년 8월15일 아침, 천황이 정오에 교쿠온(玉音, 임금의 육성) 방송을 한다는 예고가 있었다. 수인 노무자들은 일을 손에서 놓은 채 구석에 모여 웅성거렸다. 드디어 정오가 됐다. 현인겸은 아라시마 소장 방에 일본인 간부사원 몇몇과 함께 있었다.



라디오에선 비장한 느낌을 주는 일왕의 성명이 흘러나왔다.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내용이었다. 아라시마와 다른 간부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바깥 공사현장에서는 어느새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울려퍼졌고 그 외침은 소장 방의 창문을 뚫고 밀려들었다. 일본인들은 망연자실해 있었다. 아라시마는 간부사원들에게 각자 자기 위치에 돌아가 있으라고 명했다. 현인겸도 나가려 하는데 아라시마가 “잠깐 남아 있으라”고 했다.

“구로다케상!”

갑자기 군(君)이 상(樣)으로 격상돼 있었다.

“언제 군인 소집령(아라시마는 젊은 퇴역군인이었다)이 나올지 몰라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냈는데 이젠 되었소!”라고 그는 말했다. 신명을 바쳐 ‘덴노헤이카(日王)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외쳐대던 압제자의 모습도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까지 일본과 일본인이 한 짓은 모두 미몽 속에서 저질러졌어요! 그게 확실합니다. 멀쩡한 정신으로는 저지를 수가 없는 짓이에요.”

이는 현인겸에게 하는 사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가 현인겸이나 다른 조선인 부하직원들을 대하는 태도는 평균적인 일본인의 태도에 비해 상당히 유화적이었다.

아라시마 방에서 나오니 밖은 완전히 천지개벽이었다. 수인 노무자들은 만세를 부르며 모두 뿔뿔이 흩어져버렸고 간수들은 장총을 내린 채 서둘러 트럭에 올랐다. 현인겸은 같이 일하던 조선인 직원들을 불렀다. 누군가가 어느새 정종(正宗, 일본 술)과 명태포(당시는 명태가 흔했다)를 준비했다. 직원들은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한동안 잊었던 평양고보 시절의 독서사건을 떠올리며 현인겸은 목청껏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곧 좌중이 일제히 따라 외쳤다.

이튿날 현인겸은 경의선 열차에 몸을 싣고 꿈속에서도 잊지 못하던 남천의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남천개폐소 스기모토 소장은 현인겸이 돌아오자 모든 업무를 그에게 인계했다. 현인겸은 일주일간 남천에 머물면서 평양변전소에서 송출된 전기가 남천개폐소를 중계지점으로 해 한반도 중심 수색변전소까지 원활하게 송전되고 있는지 관리했다.

광복이 되자마자 여운형(呂運亨)을 중심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建準)가 결성되고 애국지사를 포함한 정치범은 모두 석방되었다. 서울 거리는 감격에 들떠 환호하는 군중들로 시끌벅적했다. 이범석(李範奭) 장군이 급거 귀국해 대환영을 받았다는 소식과 소련군의 원산(元山) 상륙 소식도 들려왔다. 이윽고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북은 소련군이, 남은 미군이 진주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렸다. 세상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빠르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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