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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본 정치

17일짜리 국회의원 탄생…한국정치사의 ‘블랙 코미디’

  • 글: 정용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ongari@donga.com

17일짜리 국회의원 탄생…한국정치사의 ‘블랙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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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례대표 순위가 착착 앞당겨진 데다 민주당 분당 과정을 거치며 신당 창당에 참여한 비례대표 의원들이 무더기로 금배지를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원들의 신당행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해 국정감사가 끝난 직후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던 열린우리당 창당주비위원 박양수, 이미경, 이재정, 허운나, 오영식 의원 등은 사퇴하지 않고 시간을 끌다가 11월 초가 되어서야 비로소 민주당을 탈당했던 것. 이에 안상현, 황창주, 박종완, 한충수, 양승부 의원이 비례대표직을 승계했다.

한때 이들의 탈당이 늦어지자 여의도 옛 민주당사에는 “이곳은 정통 민주세력의 성스러운 전당이니 이들(신당파 비례대표)의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리기도 했다.

조배숙 의원은 앞의 5명이 탈당할 때까지도 합류하지 않고 의원직을 유지했다. 조 의원은 나중에 “성매매 관련 법률개정작업을 매듭짓기 위해 사퇴서를 내지 못했다”고 해명했으나 친지들에게는 “신당에 갈 의지는 확고하지만, 솔직히 말해 원내에 남아 있어야 의정보고서도 낼 수 있고 선거운동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탈당하지 못했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튼 조 의원이 떠밀리다시피 그해 12월말 탈당했고, 박금자 의원이 비례대표직을 이어받았다. 이어 김운용 의원이 비리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자 지난 1월 의원직을 포함한 모든 공직을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열린우리당 창당주비위에 참여한 김기재 의원도 2월초 탈당할 것으로 보도되면서 점차 금배지가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례대표 29번 송희섭 후보가 2002년 대선 때 국민통합21로 당적을 바꿨고, 34번 최홍건 후보도 일찌감치 열린우리당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4개월의 임기가 남은 비례대표 의원직을 승계할 수 있었던 것. 그때는 당 고위관계자들로부터 “축하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의원직을 내놓겠다며 보도자료까지 돌린 김운용 의원은 끝내 금배지를 내놓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면담한 뒤 부산시장 재보선 출마와 부산 연제구 총선 출마 사이에서 고심하던 김기재 의원도 끝까지 탈당하지 않았다. 안 의원의 비례대표직 승계는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올 듯 말 듯한 ‘내 차례’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다 3월이 됐다.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 박인상 의원이 “이제 정치생활을 마감하고 늙은 노동자로 돌아가겠다”며 전격적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안 의원은 이번에도 주변에서 “이젠 정말 당신 차례다. 축하한다”는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 그러나 탈당한 것으로 알려졌던 비례대표 33번 이종성 후보가 당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이 후보가 의원직을 잇게 됐다.

안 의원은 ‘금배지와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라며 협회 일에만 전념했다. 그리고 3월28일. 또다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양승부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어 17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기 위해 탈당하겠다고 선언했으니 빨리 의원직 승계 관련 서류를 준비하라는 전화가 원내대표실로부터 걸려온 것.

당시는 총선을 앞두고 있던 때라 의석수를 기준으로 책정되는 선거보조금 때문에 ‘공백’이 있어서는 곤란하다며 서둘러달라는 당부였다. 그러나 이틀 뒤 양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 또다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17대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17번을 배정받은 안 의원은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 협회 일에만 전념했다. 그러던 중 엉뚱하게도 충주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박종완 의원의 탈당으로 ‘기적적으로’ 16대 국회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5월7일. 국회 헌정기록보존소 직원은 안씨의 사인을 받으러 갔다. 국회가 마감할 때마다 의원들의 사인을 받아 기록으로 남기는 관례 때문이었다. 안 의원이 비록 짧은 기간이라 하더라도 엄연히 대한민국 헌법기관임을 분명히 보여준 사례였다.

서울시 5급공무원으로 출발

1965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안 의원은 경성제대를 졸업한 부친의 권유로 판사가 되기 위해 1년 동안 사법시험 준비를 했다. 그러다 우연히 서울시 5급(현재는 9급) 공채시험 공고를 보고 응시, 동사무소 근무를 시작으로 공직에 몸담았다. 당시만 해도 사법시험을 통과한 여성은 작고한 이태영 박사가 유일했던 때이다. 여러 사정으로 판사의 꿈은 접었지만 안 의원은 공무원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가 맨처음 맡은 보직은 동사무소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이후 승진을 거듭해 마포부녀복지관장, 가정복지과장 등을 두루 거쳤으며 정무조정관실 조정관으로 파견근무하는 등 여성정책 수립에 큰 역할을 했다. 그는 ‘가정도우미’ 제도를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안 의원은 또한 1997년 8월 여성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1급 공무원인 서울시 여성정책보좌관으로 승진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우리나라 여성정책을 총지휘하는 대통령비서실 여성정책비서관으로 일했다. 33년 공직생활의 대미를 청와대 1급 비서관으로 화려하게 마무리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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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용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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